黃金榜首吾曾占 황금방 첫머리를 내 일찍 차지했는데,
丹桂嵬枝子亦收 붉은 계수나무 높은 가지 그대 또한 얻었구려
千萬古來稀有事 천만년 이래 드물게 있는 일이라네,
一家生得兩龍頭 한 집안에 나서 두 용머리를 얻는 것은.
장흥위문은 고려조 충렬왕 때 평양군사(平陽郡事, (知)郡事=조선시대 군수, 정 3품, '평양'은 現순천시의 고호)를 지내신 문개(文凱) 공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문개 공께서는 문과에 장원급제하셨는데 이에 앞서 송광사 16국사 중 한 분이시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정 3품)를 역임하신 원개(元凱)공께서도 장원급제를 하셨습니다. 이에 원개 공께서 아우님의 장원급제를 기뻐하여 남긴 시문이 바로 위에 적은 한시입니다.
장흥위문의 신라조 때의 식읍(食邑)은 장흥군(면적 : 622.41㎢)인데 - 서울시 면적은 605.02㎢ - 이곳에서 200여리가 떨어진 순천시 접경지역인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조선이 개국되기 300여년 전부터 대규모 토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현재의 여수화학공단 부지로 수용된 지역에도 대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 화학공단에 있었던 대토지는 고려시대 과전(科田)이었으나 조선조 태종임금이 사전(私田)으로 돌려 주었다고 함 -
순천시 인근인 여수시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던 것은 아마도 원감국사를 스승으로 모셨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황제에 의해서 시조공을 원의 승상(정 2품, 비황족으로서는 최고 품계)으로 추증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 무렵 원감국사께서는 순천 송광사에 계셨고 문개 공께서는 순천군사로 계셨기 때문에 순천시 인근에 대토지를 소유하게 된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산수리는 상당기간 순천시에 속했으며, 한 때 여수시는 순천시에 통합되었습니다. 여수시가 다시 순천시에서 분리된 것은 임진전쟁에 여수 지역민의 공이 지대하다 하여 조선조 임금의 조칙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순천시에는 도호부사가 있었고 여수시에 전라좌수사가 있었는데 관습적으로 여수시의 전라좌수사를 순천시의 도호부사보다 상석에 앉혀서 이러한 관습이 이어져서 현대에 들어서도 여수시장과 순천시장이 합석하면 의례상 여수시장이 순천시장보다 상석에 좌정하는 것이 지역의 관례입니다 -
산수리의 명칭은 이곳의 산수가 수려해서 '산수(山水)'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을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앵무산(395m)으로 이곳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여수산단과 광양산단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순천만, 여자만이 조망되어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집니다.
조상님 덕분에 발복하여 큰 복을 받으신 분들이 산수 종친 중 여러분이 계실 것입니다. 축하 드립니다.
신도시가 조성된 이후에도 산수 위씨의 본가터가 있는 곳은 전통적 기품이 이어져서 도농병존의 품격있는 씨족마을로서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여수시청 산수리 소개글 : 산수리 - 디지털여수문화대전 (grandculture.net)
관련 보도 동영상 : 여수 율촌에 '미래형 복합 신도시' 건설 ::::: 기사 (kjmbc.co.kr)
산수리 앵무산 등산 영상(앵무산은 산수위씨의 종산(宗山)이었음)
https://www.youtube.com/watch?v=qLyNkS7G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