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뜨겁던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이고, 어느덧 조추(早秋)의 문턱에 들어섰다. 추석연휴를 맞아 강화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강화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피해 도읍을 옮겨 38년 동안 임시수도로 삼았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던 최전선이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을 거치면서 강화도는 항쟁과 개항이라는 격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래서 강화도는 어디를 달리든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강화도를 몇 차례 찾아본 적은 있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일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부평에서 오전 7시에 일행과 만나 밴에 자전거를 싣고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로 가는 도중에 김포 대곶점 안동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초지대교를 건너 후포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20분경 이었다.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강태공들은 한가롭게 낚시바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후포항에서 마침내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오늘 라이딩의 초점은 단순히 달리는데 있지 않았다. 강화도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즐기면서 그곳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다. 출발부터 내리막길이 이어져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내달렸다.
장곶돈대를 지나 장화리로 접어들자 이번 라이딩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나타났다. 약 1km에 걸쳐 경사도 12도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고갯길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정상에 올라서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차리를 지나 미루지에서 우회전하여 시멘트 농로를 따라 약 2km를 달렸다.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마니산 자락을 품은 시골 마을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평화로웠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흥왕리에서는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라이딩 중에 먹는 간식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특히 바이크 손대장은 추석을 맞아 직접 농사지은 땅콩과 옥수수를 준비해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 늘 주변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손대장의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다시 페달을 밟고 해안도로로 진입해서 약 2km 달리니 동막해수욕장이 나타났다. 강화도에서 동막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다.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해변 너머로 광활한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갯벌은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작품 같았다. 해변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갯벌 속으로 들어가 바다생물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닐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었다. 갯벌은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며, 어민들에게는 식량의 보고였다. 본오리돈대에 올라서자 강화도 남단의 드넓은 갯벌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인천국제공항까지 바라보이는 전망이 시원했다. 강화도의 해안길을 달리다 보면 돈대(墩臺), 진(鎭), 보(堡)라는 낯선 군사용어를 자주 만나게 된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방어하기 위해 쌓은 소규모 시설이고, 진과 보는 해안방어를 담당하던 군사 거점이었다.
조선 숙종 때에는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강화도 일대에 여러 진과 보, 돈대를 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평화롭게 지나가는 이 길이 과거에는 나라의 운명을 걸고 외적과 맞서던 방어선이었던 것이다. 본오리돈대를 내려와 해변둑길로 접어들었다. 강화나들길과 이어지는 비포장 둑길 양옆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갯벌에서는 검은 개흙을 뒤집어쓴 칠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바닷가의 생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약 4km 해안 둑길을 달린 뒤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애돈대가 나타났다.
잠시 역사 현장을 들러본 뒤 황산도로 향했다. 황산도는 원래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노변에 작은 상점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쌀 인삼막걸리에 옥수수와 오이를 곁들여 한 잔씩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었다. 흘린 땀을 식히면서 나누는 한 잔의 막걸리와 정담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오수 1시 30분 다시 길을 나섰다. 초지대교 입구를 지나 초지진에 도착했다. 초지진은 강화도의 근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을 거치면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조선군은 열악한 무기와 장비로 서양의 신식 무기에 맞서야 했다. 용감하게 싸웠지만 압도적인 화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군기고와 무기고 등 군사시설은 파괴되었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초지진 성곽 밖에는 수령 400년을 넘긴 것으로 알려진 노송 두 그루가 마치 형제처럼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중 한 그루에는 포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그루의 소나무에 새겨진 작은 상처가 15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저투를 오늘날까지 증언하고 있는 듯했다. 초지진에서 약 2km를 달려 광성보에 도착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특히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조선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웠으며 많은 장병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신미순의총에는 당시 전투에서 희생된 이름없는 병사들의 넋이 잠들어 있고,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도 세워져 있다. 역사 현장을 바라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오늘 우리가 아무 걱정없이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갈 수 있는 것은 과거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성보 앞 해협은 손돌목이라 불린다. 밀물 때면 물살이 매우 빠른 곳으로 유명하다. 손돌목에는 손돌에 관한 애틋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병자호란 당시 ㅇ니조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사공 손돌이 임금을 모시고 험한 물길을 건넜다고 한다. 물살이 거센 꼿으로 배를 몰자 임금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그를 죽게했다. 손돌은 죽는 순간에도 임금에게 물길의 안전한 길을 알려주었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그 뒤 손돌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오두돈대로 향했다. 광성보에서 약 3km 떨어잔 곳에 있는 오두돈대는 다른 돈대와 달리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강화해협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두돈대에서 강화해협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오두돈대의 인근의 갯벌장어 전문점에서 장어구이로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하며 라이딩을 마무리했다. 상추에 마늘과 생강, 부추와 쌈장을 곁들인 장어구이는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후 5시 30분경 귀경길에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과 작별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자전거 두 바퀴로 달린 길 위에서 강화도의 아름다운 해안길, 자연과 우정 ,그리고 역사를 함께 만나는 시간이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페달을 밟을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