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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육십령휴게소 → 서봉(장수덕유산) → 봉황산(남덕유산) → 월성치 → 삿갓봉 → 삿갓재 대피소 → 황점공원지킴터' 16.9km, 8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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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南德裕山]
높이: 1,507m
위치: 경남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1,508m)은 북상면 월성리,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전북 장수군 계북면과 경계하며 솟아있는 산으로 덕유산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서 남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는 덕유산의 제2의 고봉인데,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켜나 있지만, 남덕유산은 백두 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므로 백두대간 종주팀에게는 오히려 향적봉보다 더 의미 있는 산이 된다.
남덕유산 정상에는 맑은 참샘이 있어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수이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는 찬물이 솟아오르는데 천지자연의 신비한 이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어렵고 그저 그렇게 되려니 하고 인정하기란 너무 오묘한 자연의 신비감이 있다.
등산길에 놓인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나뉘며 상봉이 되는 봉우리는 동봉(東峰)과 서봉(西峰) 두 봉우리가 된다. 그중 동봉이 정상이 되는 봉우리이며 서봉은 장수 덕유산으로 불린다.
남덕유산은 북덕유와 달리 장쾌한 산 사나이 기상으로 솟은 바위 뼈대로 솟은 개골산이다. 산 경치가 묘향(妙香)과 금강(金剛)을 닮아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등산길은 가파르고 험준하여 7백여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남덕유에서 장수덕유로 불리는 서봉은 동봉과 사이 황새 늦은목이라는 능선을 갖고 남쪽으로 육십령의 대령을 안고 자수정 산지로 유명하다. 또한, 아름다운 토옥동(土沃洞)계곡을 거느리며 그 아래로 장수 온천이 분출되고 있다. 반면에 동봉은 삿갓봉을 거느리고 한 말 거창의병사의 빛난 한쪽을 기록하고 있다.
남덕유산은 3대 강의 발원 샘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구들과 싸웠던 덕유산 의병들이 넘나들었던 육십령은 금강(錦江)의 발원 샘이며 정상 남쪽 기슭 참샘은 거룩한 논개의 충정을 담고 있는 진주 남강(南江)의 첫물길이 되며 북쪽 바른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황강(黃江)의 첫물길이다.
명소로서 함양 쪽에 서상 영각사와 1984년 완공된 덕유교육원이 있으며 거창에는 사선대, 분설담 들을 거느린 월성계곡이 자리한다. 월성계곡 상류에 있는 황점마을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이다. 조선조 때 쇠가 난 곳이며 지금은 청소년 여름 휴양지와 민박 촌으로 개발되어 있다.
산행은 황점에서 폭포골로 들어 영각재를 거쳐 오르는데 3㎞에 3시간 걸린다.
그 밖의 코스로 덕유교육원에서 참샘을 거쳐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황점에서 바른골이나 삿갓골재를 거쳐 오르기도 한다.
영각사는 신라 헌강왕 2년(876)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31년(1449) 원경(圓境)대사가 중건하였고 중종 18년(1523) 성묵(性默)대사가 중창한 절로 6·25 때 설파(雪坡)대사가 감수하여 만든 화엄경판까지 불타 버려 1959년 다시 지었다.
인기 명산 [90위]
덕유산은 남부지방에 있으면서도 서해의 습한 대기가 이 산을 넘으면서 뿌리는 많은 눈 때문에 중부 이남의 겨울 눈 산행으로 소백산과 쌍벽을 이룬다.
남덕유에서 덕유산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키가 큰 나무가 거의 없는 장쾌한 설원 능선은 겨울 종주 산행으로 인기가 있다. 1~2월의 눈 산행과 10월의 단풍산행 순으로 인기 있다. – 한국의 산하
대동여지도에 봉황봉(鳳凰峰)으로 기록된 남덕유산! 영각사를 들머리로 2017년 12월 17일[산행기], 2018년 12월 16일[산행기] 두 번에 걸쳐 덕유산 동계 종주 산행을 진행할 때 올랐던 봉우리다. 아니 종주니 올라야만 하는 봉우리다! 한국의 산하 동계산행 인기 1위인 덕유산 종주를 두 번이나 하고, 북덕유 향적봉이야, 가끔 가는 산이라, 내 성격상 덕유산엔 더 미련이 없어야 하나, 덕유산 종주라는 게 짧게는 19km, 길게는 32km에 이르는 코스라 당일 산행으로는 힘들어 무박 산행으로 진행했었다. 그것도 대중교통의 한계로 두 번 다 함양 서상에서 영각사를 들머리로 새벽 3시경 출발하는. 덕분에 육십령에서 서봉에 이르는 구간은 가지도 못했고, 봉황봉을 비롯한 남덕유 구간은 깜깜한 새벽에 통과했다. 두 번의 종주 다 삿갓재 대피소 즈음에서 여명이 밝아와서, 봉황봉과 덕유산 주 능선의 진정한 모습도 보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대낮에 봉황봉에 오르는 별도의 남덕유산행을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속 편한 산행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당일 산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고려해 봤으나, 답이 없었다. 다음은 안내산악회다. 안내산악회 봉황봉 즉 남덕유산행에는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육구종주로 육십령에서 무주 구천동까지 달리는 32km, 다른 건 백두대간 육십령에서 빼재까지 달리는 33km다. 둘 다 거리상 당일에 할 수 없는 산행이라, 무박으로 진행한다. 말인즉 새벽 3시경 들머리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들머리가 구천동이나, 빼재면, 해가 떠 있는 동안 봉황봉을 비롯한 남덕유 구간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귀경의 편리와 조망 때문에 남덕유에서 북진하는 산행을 하기에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간 팀 중에는 드물게 남진, 즉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팀도 있어 육십령에서 빼재가 아니라, 빼재에서 육십령으로 향하는 산행도 있으나, 상황에 따라 북진으로 바꾸는 예도 있어 그것도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그 드문 백두대간 남진 팀의 빼재, 육십령 33km도 무박 산행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면, 체력적 한계로 무박 산행을 지양하고 있는데, 다행인 것은 대간 팀에 따라서는 각 구간을 다시 둘로 나눠 무박이 아니라 당일 산행을 진행하는 팀도 있다는 거다. 물론 구간 내에 황병산이나, 동대산 등과 같이 비법정 코스가 있을 때는 불가피하게 무박 산행으로 진행하지만. 그런데 요즘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하는 등산객이 가성비를 많이 따지고,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 갈수록 당일 산행은 줄고 무박 산행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게 문제다. 상황이 이래서, 산행계획이 공지되는 순간 만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간꾼 대부분은 별도의 커뮤니티에서 계획을 공유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좌석을 채운 상태로 공지된다. 결국, 남은 몇 자리를 나와 같이 어디에든 소속되기 싫어하고,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 산꾼이 신청해, 공지를 늦게 발견하면 그나마도 못 간다.
무소속 저질 체력의 산꾼은 각 산악회 게시판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기자가 일정 인원을 넘어서면 산악회가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게 버스 종류를 변경하거나, 증차를 통해 대기자를 수용하는 거. 이번 대간 팀 육십령에서 삿갓재 당일 대간 산행도 증차 덕에 동행할 수 있었다. 이 산행은 8월 21일 산악회 게시판에서 발견하자말자, 만석이라 대기자에 이름을 올렸었고, 오랜만에 올라온 백두대간 당일 남덕유산행이라 그런지, 대간꾼이 몰리면서 버스가 증차된 덕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버스 두 대가 움직이는 만큼 자리에 여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두 버스를 거의 다 채웠다는 건, 대간꾼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남덕유 단풍이 좋다는 소문 때문이 아닐까? 설악산은 한 산악회에서 5대의 버스가 출발할 정도!
늘 그렇듯이 산행 일주일 전부터 확인한 일기예보에 의하면 산행 이틀 전인 금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데, 특히 설악산은 거의 종일 비가 내린다는 경고에 봉 감독과 함께 하기로 한 설악산 직백운, 곡백운 산행을 다음으로 연기해야 했다. 하루 전인 토요일 오전에도 비가 내린 후 기온이 급강하해 영하 7~8도를 오르내린다고 했다. 대신 일요일 날씨는 화창하다고. 그 예보를 보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16km 구간에 8시간이라는 대간 팀으로서는 생각지 못할 넉넉한 시간을 배정했음에도 시간 내 완주할 자신이 없어 삿갓재까지 달리지 않고, 월성치에서 하산할 계획을 세우고 배낭도 최대한 가볍게 할 생각으로 가벼운 카메라를 들고 가려 했다. 그런데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날씨가 될 거라는 일기예보에 무리라는 걸 알지만, 줌렌즈 사용이 가능한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가져가기로 했다. 물론 먹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으나, 차림은 동계 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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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가 전북 장수 육십령으로 서울에서 거리가 있는 만큼, 산악회 버스 출발 시각도 다른 지역과 다르게 양재 기준 10분 이른 6시 50분이다. 해서 그에 맞춰 4시 40분에 알람을 맞춰 기상했다. 점심을 제외한 모든 장비가 들어있는 배낭에 기상하자마자 준비한 점심을 넣는 거로 산행 준비를 끝냈다. 이후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준비된 배낭을 둘러메고 5시 57분 양재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5시 40분에 집을 나서 불광역으로 향했다. 아직 어두운 재개발 지역을 우회하고 대조전통시장을 통과해 5시 53분경 도착해서, 정시에 들어온 열차를 타고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으로 향했다.
양재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책을 보던 중 버스가 두 대나 출발하는 상황이라 다시 한번 자리를 확인했다. 이게 다 버스를 잘못 탔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자리가 비었다. 분명 지난밤에 확인했을 때 만원이었던, 버스가 아침에 확인하니, 한 자리가 비었는데, 그게 내 옆자리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으나, 하루 전 아니면 당일, 산행을 취소한 이유가 궁금했다. 환급 기간이 지나 취소해봐야 의미가 없어, 대게는 취소라는 행위는 취하지 않고 불참하고 마는데, 취소했다.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첫째 회비를 입금하지 않아, 산악회에서 취소시킨 거. 둘째는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가고 싶은 산꾼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비워준 거. 이거 외에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데, 어쨌든 자리가 부족했음에도 미입금으로 끝까지 버틴 자, 환급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산꾼을 위해 양보한 자, 완전 반대의 인성을 가진 건데, 어느 쪽일까?
정확한 이유야 당사자나 산악회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거고, 양재역까지 기쁜 마음으로 다시 책을 읽었다. 6시 40분경 목적지에 도착해 등산객의 성지인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가, 산악회가 이용하는 마을버스 정류장과 국립외교원 앞을 보니 이른 시각임에도 각처로 떠나는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마을버스 정류장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파를 헤치고 국립외교원 앞에 당도해 조금 기다리니, 줄지어 버스가 나타나 각 산악회가 이용하는 정류장으로 향했고, 백두대간 산행인 육십령행 버스는 6시 48분경 2호 차가 먼저 도착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다. 옆자리가 비었으니, 당연히 배낭을 멘 체, 체온을 확인한 후 뒤로 가 빈자리에 배낭을 놓고 내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1호 차에 타고 있던 인솔 대장이 건너와 인원을 확인 후 예정대로 6시 50분경 2호 차가 먼저 국립외교원 앞을 떠나,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백두대간 육십령으로 향했다. 갑자기 낮아진 기온에 외출이 줄어서인지 평소보다 교통량이 적은 도로를 달려 8시 40분이 조금 지나서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 들렸다. 평소보다 이른 휴게소 도착에 약간 놀라며 볼일을 보고, 뒤로 돌아가 연못의 잉어를 구경했는데, 지난 함양 삼봉산행[산행기] 때는 보지 못한 비단잉어가 보여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추워서 주어진 시간보다 일찍 버스로 돌아왔다. 인솔 대장이 없는 버스라 기사가 대장이 해야 할 소소한 일을 대신에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도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직접 나눠주지는 않고, 볼일 보고 돌아오는 승객에게 필요하면 하나씩 집어가게 했다.
꼭 필요한 건 아니나, 혹시 파악하지 못한 사항이 있나 해서 지도를 한 장 들고 와 가장 먼저 확인한 게 산악회 게시판에 공지한 산행 계획에는 없던, 월성치에서 중탈하는 코스를 포함했는지였다. 내가 그럴 예정이라. 역시, 나 같은 저질 체력 인간도 고려해 코스에 월성치에서 중탈하는 게 있었다. 그것만 확인하고, 지도를 사진 찍은 후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패드를 들고 책을 보고 있는데, 2호 차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1호 차에서 인솔 대장이 건너오자, 인원을 확인 후 육십령을 향해 출발했다. 한 명의 대장이 차 두 대를 인솔하는 거라, 차를 오가는 게 당연했고, 왜 인솔 대장이 산악회 소속 차가 아닌 임대한 관광버스에 탔는지, 그리고 왜 인솔 대장이 탄 임대 버스가 1호 차인지 알 수 있었다. 산악회 소속 버스 기사는 산행만 같이하지 않을 뿐 웬만한 인솔 대장 이상이라, 이동 중에는 딱히 인솔 대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1호 차는 인솔 대장과 백두대간을 함께 시작해 끝까지 할 인원이 대부분이라, 산행에 특화된 버스가 아니라고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인솔 대장을 태운 2호 차가 먼저 휴게소를 출발하자, 다른 산행과 같이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백두대간 육십령, 삿갓재 구간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 육십령에서 봉황봉 즉 남덕유산에 이르는 구간에 겁을 먹고 있어, 하산도 삿갓재가 아닌 중간 월성치에서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10시에 산행을 시작한다는 전제로 4시가 넘어 월성치에 도착하면 무조건 월성치로 하산하라고 했다. 말인즉 웬만한 사람은 4시 이전에 월성치를 통과한다는 얘기다. 해서 지도를 유심히 보니, 중요 이정표 통과 시각이 있었다. '월성치 4시 중탈'만 확인하고 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아 놓친 거다. 안 그래도 지난 두 번의 덕유산 무박 종주 때 삿갓재에서 날이 밝아, 새벽에 통과한 전 구간을 낮에 감상하고 싶었는데, 대장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폰으로 지도를 다시 찍었다. 산행 중 이정표 통과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삿갓재까지 달리는 거로 계획을 변경했다.
계속되는 설명 중에 날머리에 식당이 있는데, 주인장이 몸이 불편해 다양한 메뉴는 불가하고 파전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주어진 8시간 안에 16km를 달리고, 비록 안주는 파전 하나지만, 하산주도 한잔해야 하는 산행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대장의 한 마디가 지레 겁먹었던 육십령 구간을 '7시간 만에 돌파하고, 나머지 한 시간 동안 하산주를 마시자!'로 바뀌었다. 그 한마디는 코스 난이도를 설명하면서 한 "중상(中上)"이라는 말이다. "상상(上上)"이라 생각하고, 지레 겁먹고 있었는데, 중상이라는 말에 계획을 바로 변경했다. 설명이 끝나고 다시 패드를 들고 이어서 책을 보다가 버스가 힘겨워한다는 느낌에 창밖을 보니, 고속도로를 벗어나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해서 패드를 끄고,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뒤, 미니 스패츠도 착용했다. 얼마 전까지는 비 예보가 있을 때만 착용했으나, 이제는 산행 준비 중 하나가 돼버렸다. 준비를 끝내고 10분 정도 있으니, 꽤 넓은 주차장에 버스가 정차한다. 육십령 휴게소로 그 시각이 9시 54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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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별러 방문한 육십령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여기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다. 기록으로 남길 만한 것을 사진으로 남긴 후 나무 계단을 통해 능선 즉 백두대간으로 올라갔다. 능선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좌가 남덕유산, 우가 무룡고개다. 분명 북진하는 거니, 북이 남덕유라, 우로 가야 하는데, 좌다! 어쨌든 이정표 지시대로 좌로 방향을 틀어 육십령 터널 위를 지나 첫 번째 목표인 할미봉을 향해 갔다. 그런데 가는 내내 좌우 문제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백두대간 기준 동쪽인 함양에서 출발했으니, 북진은 우(右)회전해야 하는데, 좌(左)회전하라니?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백두대간을 따라 오르다가 문득 깨달은 게, 다른 곳도 아니고 육십령에 있는 이정표가 틀릴 일은 없고, 그럼 출발지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 출발지가 동쪽인 함양이 아니라 서쪽인 장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터널을 지나 장수로 넘어왔나?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가, 과거 두 번의 무박 종주 때 함양 서상까지 버스로 와서 택시로 영각사로 갔었고, 육십령도 같은 과정을 거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둘 다 들머리가 함양이라는 것이 돌머리에 정으로 각인된 때문이다. 육십령 휴게소에서 사진을 찍은 안내문에 적힌 게시자가 "장수군"이라는 것만 제대로 봤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함양이 아닌 장수가 들머리였다는 걸 확인하는 거로 고민을 해결하고, 울창한 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능선, 즉 백두대간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전진해, 산행 시작 후 30분이 지나자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확실한 거는 아니나,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물론 페이스 조절과 시간 계획을 위해 산행 시작 전 육십령의 해발 고도를 확인했다. 730m가량으로 봉황봉이 1,500m가 조금 넘으니, 대략 고도 800m가량 올라가야 한다. 800m 쉽지 않다. 이런 계산을 하며 묵묵히 오르다 10시 47분경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했다. 앞에 나란히 보이는 두 개의 봉우리가 남덕유산의 서봉(장수덕유)과 동봉(봉황봉)인 거는 틀림없어, 먼저 그걸 사진으로 남긴 후, 뒤로 돌아 지금까지 온 백두대간을 감상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대간 밑 터널로 사라진 도로를 보며, 좌가 함양, 우가 장수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이 능선을 죽 따라가면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것도.
대간을 따라 전진하는 앞에 나타난 바위 군락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분명 할미봉 주변이라 보이는데, 폰의 등산 앱으로 확인한 고도는 아직 1,000m를 넘지 못했는데, 할미봉?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해하며 10여 분 정도 올라가자 아래에서 봤던 바위 군락을 위에서 내려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할미봉이다. 할미봉 주위에는 앞서 출발한 대간꾼이 줄 서서 인증을 찍고 있었다. 할미봉도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장소 중 하나다. 그 시각이 10시 49분으로 산행 시작 50분이 지났다. 그런데, 대간꾼이 줄 서서 인증을 찍는 틈새로 역광으로 잘 찍히지 않는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며 확인한 결과 할미봉의 해발고도는 1,026m에 불과했다. 왜 내 메모리에는 1,400m대로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고로 생각보다는 쉽게 할미봉에 도착한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면서, 계산이 틀렸으니, 남은 구간이 더 힘들 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까만 소 인증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이번 산행에서 할미봉은 중요한 게 아니어서, 인증꾼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먼저 서봉과 동봉에 도착해 여유롭게 인증을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앞에 보이는 두 봉우리 중 왼쪽의 장수덕유를 향해 갔다. 그런데 고개를 들면 한눈에 들어오는 쌍둥이 봉우리의 모습에 갑자기 왜, 한국에는 쌍둥이 봉우리가 많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뒤로 펼쳐진 지리산 주 능선의 왼쪽 끝 천왕봉과 중봉도 쌍둥이로 보이고, 오른쪽 끝에 가까운 반야봉과 나란히 있는 중봉도 그렇고. 물론 다른 나라 산은 가보지 않아서 한국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송마을 갈림길을 지나자 암봉답게 아래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그 계단 끝은 전망대로 쌍둥이 봉우리를 조망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봉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이 서봉에서 동봉으로 이어지고, 동봉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장쾌한 모습!
밧줄이 설치된 바위를 지나기도 하며, 서봉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음성으로 알린다. 봉우리? 지도에서는 못 봤는데? 하긴 할미봉도 국립공원 영역이 아니어서, 국립공원 지도에는 없다. 아, 그래서 내가 할미봉의 정확한 고도를 모르고 다만, 서봉과 가까워 비슷한 높이일 거로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산악회 코스 설명에도 없는 봉우리가 갑자기 등장해, 폰을 꺼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준 등산 앱을 확인했다. '삼자봉'이란다. 막상 봉우리에도 도착하자, 정상석도 없는 평지에 허술한 이정표가 하나 서 있었고, 누군가 "삼자봉"이라 써 놓은 게 다였는데, 삼거리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거 같았다. 삼자의 뜻이 뭐든 덕유산 국립공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고로 육십령부터 삼자봉까지는 국립공원이 아니다. 다른 길은 ‘경상남도 덕유교육원’으로 가고 있었다. 덕유산 영구종주의 영각사 옆이다.
삼자봉에서 산림청 구간을 벗어나 환경부 구역으로 들어서자, 역시 국립공원답게 등산로와 시설 등에 차이가 나타났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로 서봉을 향해 헉헉대며 올라가다가, 종일 햇볕을 쬘 수 없는 길로 접어들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얼음 조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혹시 상고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으나, 산행을 너무 늦게 시작해 비록 상고대가 폈다고 해도 다 녹았을 시각이긴 하나, 어디서도 상고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발 1,000m가 넘어가자 그늘에 있는 습기는 모두 얼어 있었다. 그늘은 얼어붙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은 그 얼음이 녹아 진흙이 되어가는 급경사의 등산로로 올라갈수록 서봉과 동봉은 점점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다른 산줄기에 막혀 긴가민가했던 지리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론 천왕봉과 중봉의 쌍둥이도.
지리산 조망 전망대를 떠나 서봉를 향해 올라, 어느 순간부터 등산로는 암릉으로 바뀌었다. 역시 남덕유산도 한국의 여느 고산과 다름없이 정상은 암봉이다. 음. 세계적으로 암봉이 아닌 고산이 있기는 하나? 그 암봉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하며 급경사를 오르는 와중에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12시 41분경, 서봉인 장수덕유산 정상이 멀지 않은 바위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드름이다! 상고대가 안 핀 대신 고드름이 달렸다! 겨울이라 칭하기는 이르나, 어쨌든 이번 겨울? 처음 보는 고드름.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고, 하나 따 먹을까 하다가, 땀도 나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그나마 바람이 없어 버티고 있는데, 얼음과자는 자살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다시 서봉을 향해 올랐다. 물론 동요 고드름을 흥얼거리며.
급경사의 암릉은 양지는 얼었던 물이 녹는 중이라 미끄럽고, 음지는 아직 얼어 있어 어디가 더 미끄러운가 경쟁하는 듯했다. 가끔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춰 뒤돌아 지리산을 향해 파도치듯 퍼져 나가는 산줄기를 감상하며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12시 47분 안부에 도착하니, '남덕유산 1.5km'라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문제는 지금의 목표는 남덕유산의 봉황봉이 아니라, 서봉인 장수덕유인데, 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거. 물론 바로 앞에 있는 바위가 정상이라는 건 불문가지! 안부에서 바위로 올라서자 정상석이 반겨주었다. 물론 정상석 주변에 인증을 찍고 있는 등산객이 있기는 했으나, 2명에 불과했다. 할미봉에서 인증을 남기느라 다른 대간꾼이 정신 없는 사이 남덕유산의 주봉이랄 수 있는 서봉과 동봉에서 여유롭게 인증을 남기기 위해 서둘러 떠난 게 주효했다.
그중 한 명과 상부상조 서로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으로는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과 주목이 보였다. 그런데 몇 번 향적봉에 오르며 주목을 보고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지만, 남덕유에서 보일 정도를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사진을 확대해봤다. 기와를 올린 정자였다. 그것도 몇 층의. 그럼 주목이 아니라, 설천봉 휴게소다. 어쨌든 향적봉과 휴게소를 사진으로 남겼다. 남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산줄기의 파도와 그 끝의 지리산 주 능선! 내가 대낮에 남덕유산에 오르고자 했던 이유가 이걸 보기 위함이다. 소원성취했다! 그렇게 사방을 감상하는 사이 한두 명의 등산객이 도착하는 걸 보고, 정상석이 있는 곳을 떠나 헬기장으로 갔다.
헬기장에서 보이는 조망도 정상과 다름이 없었었으나, 동봉 즉 봉황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험한 정도와 소요 시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후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12시 55분으로 점심시간 끝 무렵이라, 햇볕 따뜻하고 바람 한 점 없는 헬기장 한쪽에 앉아 점심을 먹을까 했다. 그런데 햇볕이 따뜻함을 넘어 따가울 지경이라 그늘을 찾기로 하고 봉황봉을 향해 출발했다. 서봉이라는 암봉을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경사가 심해 난간을 잡지 않으면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 두 고봉 사이의 고개로 향하자, 바람이 강하고, 그늘은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역시 정상이 아무리 고요해도 바람골은 어쩔 수 없었다. 해서 이제는 햇볕 따뜻하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등산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전진했다. 적당한 식당을 발견한 곳은 헬기장으로부터 5분 정도 거리로, 햇볕이 잘 드는 건 아니나, 바람은 불지 않아, 점심 먹을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간편식을 먹는데 5분 이상 걸릴 일도 없고, 계속 가봐야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늘 배낭 옆 주머니에 들어 있는 등산용 방석을 꺼내 바위에 놓고 그걸 깔고 앉아, 새벽에 준비한 점심거리를 꺼냈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1분 20초 동안 전자레인지에 돌린 간편식에 마늘종 무침이 다지만. 정확하게 3분 만에 점심을 먹고, 누군가 있었다는 흔적을 인멸하고, 1시 10분경 오이를 반을 잘라 한쪽을 입가심으로 먹으며, 식당을 떠나 남덕유산 상봉인 봉황봉을 향해 출발했다. 식당을 떠나 17분가량 가자, 생각지도 못한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났다. '삿갓재 대피소' 갈림길이다. 대간 종주가 목적인 대간꾼에게는 봉황봉이란 의미가 없는 거라 바로 삿갓재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대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봉황봉의 본 모습이 궁금한 나야 당연히 이정표 기준 남덕유산까지 300m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기뻐하며 계속 올랐다. 어느 봉우리나 정상 직전 깔딱은 있게 마련이라, 3km 같은 300m를 헉헉대고 오르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서서 뒤를 돌아보니, 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할미봉 기준 반대쪽이다.
숨을 고른 위치에서 5분 정도 올라가자, 거리로는 100m가량, 다시 삼거리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다. 역시 삿갓재 대피소 갈림길이다. 덕유산 영구종주가 목표라 서봉 방향으로 갈 이유가 없는 등산객을 위한 삼거리다. 여기서부터는 앞으로 갈 구간은 비록 깜깜한 한겨울 새벽이지만, 두 번이나 왔었던 곳으로 이론적으로는 익숙해야 하나, 사실은 하나도 모르는 구간이다. 하긴 익숙했으면, 여기 다시 오지 않았을 거다. 익숙했어야 할 삼거리에서 봉황봉까지 100m를 다시 힘겹게 헉헉대고 올라, 1시 42분에 정상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산악회 목표 시각이 2시 40분이니 대략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두 번이나 왔었고, 인증까지 남기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초면이나 다름없이 모든 게 새롭기만 했다. 다행히 할미봉에서 일찍 떠난 전술이 주효해 역시 정상에는 2명의 등산객이 유유자적하며 서로 인증을 찍어 주고 있었다. 해서 그중 한 명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길 수 있었다.
봉황봉에서는 보는 조망은 서봉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서봉에서는 육십령 방향과 동봉의 서쪽이 보인다면, 동봉인 봉황봉에서는 영각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서봉의 동쪽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정도?! 이 근방에서는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1시 49분경 정상을 떠나 다시 삿갓재 삼거리로 내려갔다. 그런데 갈림길로 내려가는 중에 올라오는 등산객을 많이 만났다, 서봉과 동봉 그리고 전망대에서 노닥거리는 사이 할미봉에서 지체했던 등산객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특히 서봉 삼거리이자, 삿갓재 삼거리 공터에는 이제 막 도착한 등산객 10여 명이 배낭을 벗고 있었다. 다시 내려와야 하니 굳이 배낭을 짊어지고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 모습을 보자, 인증이고 뭐고 할미봉에서 일찍 출발한 게 신의 한 수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봉황봉에 오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배낭을 벗어 한 곳에 모으고 있는 등산객을 뒤로 하고 서봉 갈림길에서 삿갓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연히 4시 이전 통과를 해야,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하산주를 즐길 수 있어 서둘렀다. 1시 56분 서봉에서 동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났던 삿갓재 방면 갈림길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대간꾼을 위한 길로 '육십령' 갈림길이다. 그 갈림길을 지나 앞만 보고, 가는데 길 상태가 양호해 이동 중 카메라에 있는 사진을 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려는 데, 갑자기 폰이 꺼져 버렸다. 봉황봉에서 카메라 배터리를 교체한 것과 같은 이유인 낮은 기온 때문이다. 해서 바로 보조 배터리를 꺼내 폰에 연결하자 폰이 다시 기동하며, 처음 보여주는 게 배터리 잔량인데 46%나 남아 있었다. 폰과 카메라가 꺼질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나, 그걸 못 느끼고 있었다. 겨울 복장이 아닌 가을 복장임에도 초기 양재역에서 버스 타기 전 추위를 느꼈을 뿐.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해가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게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해서 비상용 옷을 꺼낼까 하다가 귀찮아서 바람막이 주머니에 있던 넥워머만 착용했다.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던 월성재에 2시 25분에 도착했다. 산악회 목표 시각 3시 30분보다 1시간 이상 빠르다. 처음 대간 팀에 합류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육십령에서 동봉인 봉황봉에 이르는 구간에 지레 겁먹고, 팀과는 무관하게 월성재에서 하산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는 거라 대단히 만족해 기분이 좋았다. 해서 2.9km 밖에 있는 삿갓재 대피소에 3시 30분 이전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 길이 기복이 심한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월성재에서 하산하지 않고 삿갓재 대피소를 목표로 한다면 꼭 조망이 탁월한 삿갓봉에 올라보라고 권했다. 그런데, 지난 두 번의 겨울 덕유 종주 시 삿갓봉에 올랐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올랐다고 해도 여명이 밝아오기 전이라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테지만. 해서 비록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해도 삿갓봉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삿갓봉을 찾으며 길을 갔다. 인솔 대장의 설명에 의하면 대간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해서 앞에 뾰족한 봉우리가 있으면 삿갓봉이 아닐까 유심히 살폈다. 혹시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월성재에서 삿갓재에 이르는 2.9km에 불과한 구간은 육십령에서 삿갓재에 이르는 전체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이라 느껴질 정도로 기복이 심해,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숨을 돌리느라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북으로는 해발 1,491m의 불영봉(무룡산)과 작은 봉우리가 가로 막고 있어 보이는 게 별로 없었으나, 남동쪽으로는 지리산 주 능선 중 토끼봉에서부터 천왕봉에 이르는 구간은 잘 보였다. 나머지 구간은 동봉과 서봉이 가로 막고 있었고. 조릿대 구간과 고드름이 달린 바위 밑을 통과하며 이 상태로 계속 갔다 간 탈진할 거 같아 조금은 여유를 두며 천천히 걷고 있으니, 뒤에서 몇 명의 등산객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삿갓재에서 1.6km가량 떨어진 곳에 1.3m가량의 바위를 내려가는 구간이 있었다. 경사도 급하지 않고, 바위도 울퉁불퉁한 게 전혀 미끄러워 보이지 않았는데, 발을 딛는 순간 미끈했다. 음지라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바위에 살얼음을 얼어 있었다. 해서 네발로 조심조심 내려갔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은 내가 내려가는 모습을 본 후라 같은 자세로 내려왔다.
무사히 내려와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비명과 함께 미끄러져 떨어지는 소리와 괜찮냐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거다. 해서 걸음을 멈추고 혹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거 같아 계속 길을 가는데, 앞에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지칠 대로 지쳐 계단 난간에 의지해 올라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돌아보니, 계단 끝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만 지친 게 아니었다. 계단을 다 올라 10분 정도 가자 이정표가 나타났다. 삿갓봉 갈림길이다. 당연히 이정표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삿갓봉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왔건만 이정표가 있었다. 삿갓봉까지는 300m가 남았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봉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번 산행 마지막 깔딱이라 생각되는 정상을 향해 올랐다.
보통 깔딱이라하면 실거리 300m가 3km로 느껴져야 하는데, 삿갓봉 정상으로 오르는 깔딱은 300m가 30m처럼 느껴졌다. 오르는데 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에도. 마지막이라는 것에 남은 힘을 다 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3시 31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월성치를 떠나며 삿갓재 대피소 도착목표시각을 3시 30분으로 잡았었는데, 늦었다. 그런데, 인솔 대장의 설명대로 해발 1,418m로 최고의 조망처다. 사방이 뻥 뚫린 게. 해서 먼저 빙 둘러 사진을 찍은 후 카메라를 바닥에 거치하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으려고 하는데, 한무리의 등산객이 올라왔다. 그걸 보고 그들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말 꺼내기도 귀찮아 그냥 인증을 찍고, 재빨리 그들에게 정상석을 넘겨주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지난 두 번의 종주 산행 시 삿갓봉에 올랐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뒤져보니 두 번째 종주 시 정상석을 찍은 사진을 찾았다. 주변이 어두워 경치는 찍지 않아 다른 사진은 없었다. 이번 포함 두 번 삿갓봉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와 당연히 삼거리에 도착했다. 삿갓봉에 오르기 전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길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그 이정표에 ‘삿갓재 대피소’ 0.9km라 적혀있었다. 그 전 삼거리 이정표에는 1km. 고로 앞의 갈림길에서 여기까지 100m에 불과한 거리이나, 봉우리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300m를 올랐다가 100m를 내려와야 하고, 소요 시간 7분 정도다. 직진하면 2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거고. 물론 힘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과거 그 심설에도 삿갓봉에 올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탄하며, 삿갓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해 15분 정도 가자 저 아래로 건물이 보였다. 대피소다. 야간 산행 금지로 막아 놓은 금줄을 열고 들어가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3시 54분으로 목표보다 30분가량 늦었으나, 산악회 계획보다는 30분 빠르다. 그런데, 월성재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의 2.9km를 한 시간 만에 통과하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거기다 삿갓봉까지 들리면 더욱!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우연히 국립공원에서 제작한 지도를 보게 됐는데, 월성치에서 삿갓봉까지 2.9km에 50분, 삿갓봉에서 대피소까지 1km에 40분으로 표기하고 있었으나, 월성재에 있는 이정표는 대피소까지 2.9km로 적혀 있었다. 고로 국립공원 지도에 따르면 3.9km를 1시간 30분이 걸린 게 정상이고, 이정표가 틀렸다!
어쨌든 목표보다는 30분이 늦었으니, 여유롭게 하산주를 즐기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해서 주변을 살필 여유도 없이,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삿갓재에서 황점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 이정표를 보니, 황점 아래에 "참샘 0.06km'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즉 60m 아래에 참샘이 있다는 거다. 문제는 덕유산 참샘은 봉황봉 아래에 있는 거로 남강의 발원지로, 지난 두 번의 새벽 산행은 여건상 샘을 찾을 수 없어서, 이번 산행에서 다녀올 예정이었다. 막상 봉황봉에서 주위의 경관에 취해 잊어버리고 하산했다가 거의 월성치 직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는데, 삿갓재 아래에 참샘이라니? 다시 봉황봉에 오른다면, 그 참샘을 찾기 위함인데, 삿갓재 아래에? 그럼 삿갓골의 발원이 참샘이고, 삿갓골이 남강으로? 갑자기 늘어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급히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자, 왼쪽으로 국립공원 수원지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붕을 씌운 작은 저장고가 있고, 거기서 힘차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PVC 파이프를 통해 주기적으로 지하수가 꿀렁거리며 나오는 뒤에 "황강 발원지[삿갓샘]"소개 글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남강의 발원지 참샘이 아니라,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 발원지 삿갓샘이다. 이정표가 틀렸다. 남덕유산 쪽 이정표 문제가 심각하다.
아주 당연하게 꿀렁거리며 힘차게 나오는 지하수를 옆에 있던 바가지로 한가득 받아 물맛을 보고 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산 저산 돌아다닌 결과 의도치 않게 대한민국 유명 강의 발원지는 거의 다 방문해 물맛을 봤고, 그중 하나의 물맛을 보고 있었다. 삿갓샘의 시원한 물을 연거푸 두 잔 마시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지도와 인솔 대장의 설명에는 대피소 기준 1km까지는 급경사 너덜이라 대단히 위험하니 특히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했었다. 역시 쉽지 않은 너덜이라, 정신을 초집중해서 내려가야 해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초긴장 상태로 위험구역을 지나자 길이 좋아지고 옆으로 계곡의 물소리도 들렸다. 물론 이전에도 물은 흘렀으나,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듣지 못했다. 그리고 계곡을 건너는 곳에는 여지없이 노여 있는 다리. 역시 국립공원이다!
등산로가 좋아지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겨, 삿갓샘에서 발원한 삿갓골 옆으로 난 길로 내려가며 계곡을 살펴보았다. 사실 한국의 산하 남덕유산 소개 글에는 월성계곡에 관한 내용은 있으나, 삿갓골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게 월성치로 하산하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당연히 삿갓골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내려가면 갈수록 계곡에 놀랐다. 곳곳에 작은 폭포와 소, 마치 미끄럼틀 같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 소개 글조차 없는 계곡이 이럴진대, 월성계곡은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한 순간이다. 그런데 산행 후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알았는데, 어깨에 거치한 카메라를 실수로 건드려 촬영이 시작됐고,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촬영이 중단된 6분이 넘는 동영상이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아래를 향하고 있어 볼 거는 없으나, 오히려 등산로 상태는 잘 알 수 있었고, 정면을 향한 액션 카메라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의도치 않은 동영상을 중지하고 찍은 사진이 너덜이 끝난 등산로다!
4시 38분경 황점마을로부터 1.7km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5시까지는 12분이 남았는데, 달리지 않는 한 목표한 시간 내 도착은 어렵다. 그럼 목표 시간을 변경해야지, 말인즉 하산주 마실 시간을 줄인다는 얘기다. 경험상 단독산행의 경우 30분이면 하산주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해서 목표 시각을 5시 10분으로 변경했다. 1.7km는 22분이면 차고 넘친다. 그 이정표를 지나자 등산로는 산책로에 가깝게 변했고, 계곡의 폭포는 좀 더 폭포다워졌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지류가 합류하면서 수량이 풍부해졌기 때문일 거다. 목표 시간 내 도착하기 위해 멈춰 사진 찍는 건 보류하고, 눈으로 로만 계곡을 감상하는 내려가는데, 삿갓골로 합류하는 지류를 건너는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야 많이 있었으나, 다리 건너의 길이 거의 임도 수준으로 보이는 게 계곡을 건너는 마지막 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각이 4시 42분이었다. 예상대로 다리를 건너자 임도는 아니나, 그 수준에 가까운 등산로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 생각되는 폭포가 남덕유산 육십령에서 삿갓재 코스에 지친 등산객을 전송했다.
예상대로 마지막인 다리를 건너 10분가량 임도 수준의 등산로로 내려가자 숲사이로 건물이 보였다. 아직 마을은 멀어 보이고, 황점마을 끝 집이 아닐까 생각하며 계속 전진하자, 길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끝지점에 공단에서 설치한 차단봉이 있었다. 국립공원이 끝이다. 숲사이로 보였던 건물은 사람이 사는 건 아니고, 양봉장과 창고로 쓰고 있었다. 사실상 등산이 끝난 시점이라 포장도로로 터덜터덜 식당으로 향했는데, 도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여전히 훌륭해 물놀이가 목적이라면 굳이 국립공원 안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4시 54분 갈림길에 도착해 황정지구 지도를 사진으로 남기고 가던 길을 계속 가 5시 1분에 마을에 도착했는데, 의외의 시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족장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탁족이 아니라 세족이라 칭했을까?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다. 그 결과 여기에도 기독교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기사]. 고로 세족장이 아니라 탁족장이다! 어쨌든 마을에 도착해 국도로 나가자 왼쪽으로 식당이 보였다. 하산주를 마실 장소다 그 시각이 5시 3분으로 목표보다 7분 빠르다. 좀 서둘렀으면, 처음 목표였던 5시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라, '이정표의 1.7km가 정확한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국립공원 남덕유산 지역의 이정표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어쨌든 산행은 끝났다.
3
마감 시각이 촉박하거나, 산악회 버스가 보였으면 먼저 버스에 배낭을 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식당으로 향했을 텐데, 일단 가까운 주변을 살폈으나, 버스가 보이지 않는 게 꽤 거리가 있어 보이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 바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식당이 거의 만원이다. 테이블은 빈자리가 없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마루도 거의 반이 찼다. 분명 나보다 앞선 등산객은 소수에 불과했는데, 이 인원은 뭔가? 그럼 다들 월성치에서 하산했다는 얘기? 와중에 인솔 대장도 있었는데, 혼자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혼자니 다른 등산객과 합석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하겠다고 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스패츠를 벗고 등산화를 벗으며, 차림표를 보니 메뉴가 다양하다. 산행 전 파전과 막걸리 정도만 주문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혹시나 해서 주인장에게 가능한 음식이 뭔지 물었다. 역시 돌아온 답은 이미 알고 있었던 파전과 막걸리, 소주다.
사실 소주를 마시고 싶었으나, 안주가 파전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없이 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하자 바로 파전이 나왔다. 누군가 미리 주문하고, 씻으러 간 사이에 가져온 거 같았다. 주인장의 계획에 의해 내놓는 걸 내가 뭐라 할 사항이 아니라, 받아서 자작하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산꾼을 한 명을 데려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월성치에서 하산해, 식당이 아니라, 건너편 매점에서 컵라면과 막걸리로 한잔하고 있다가, 대장이 불러 막걸리와 소주를 들고 온 거였다. 혼자서는 안주 대부분을 남기는 식성이라 대환영이었다. 둘이 막걸리를 마시며 산행 얘기를 했는데. 거의 매일 산에 다니는 진정한 산꾼이었다. 모르는 산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둘이 전국의 산 얘기를 하는 중에 대장이 한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제야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성명을 했다. 물론 산악회 아이디로!
통성명하는 중에 두 산꾼 다 내 아이디를 듣더니 놀란다. 아이디를 보고 나이 많은 노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다. 굳이 아이디 배경을 설명할 이유가 없어 씩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산과 산악회 얘기를 했는데, 둘 다 진정한 산꾼이라, 산악회나 산행 관련 주변 얘기에 정통했다. 특히 이번에 동행한 산악회에 불만이 많았다. 다른 안내 산악회가 포탈의 카페에 본거지를 두고 운영하는 동호회 수준의 카페 산악회(처음 듣는 용어다)지만, 이 산악회는 관광회사 법인이라, 법적 권한과 책임이 달라, 코로나 시대에도 별 어려움이 없이 운영됐다는 거다. 코로나로 카페 산악회는 직격탄을 맞아 거의 유명무실해진 틈을 노력 가격을 올리고, 거리 두기 핑계로 버스도 고급 위주로 변경해 더 가격을 올렸다는 거다. 과거에는 3만 원이 넘는 산행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3만 원 아래 산행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열변을 토했다. 나처럼 일주일 한 번, 아니면 어쩌다 산에 다니는 사람은 잘 못 느꼈을 테지만, 거의 매일 산에 가는 산꾼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를 이용해 대기업 안내 산악회가 폭리를 취해 가성비 떨어지는 산행을 하고 있다는 분노의 표출이다. 하긴 카페 산악회뿐만 아니라, 생계형 소사업은 다 죽어 가고 있는 건 틀림없다.
이야기는 다시 이번 산행으로 돌아와, 다음 코스가 어딘지 물었다. 백두대간 종주 팀이라, 혹시 내가 원하는 산이 포함된 구간이지 않을까 해서다. 예상대로 여기 황점마을에서 시작해 덕유산 백암봉까지 달린 후 곤도라를 이용해 하산하는 덕유산 연결계획이라고 했다. 이후 추가로 한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동안 산악회 대간 팀은 빠른 종주와 가성비를 위해 무박산행 위주로 진행해 왔는데, 체력적 한계를 느낀 대간꾼의 요청으로 이번 54기는 가능한 모든 구간을 당일산행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두 사람은 이 계획에 불만이 많았으나, 나야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해서 일정을 알 수 없냐고 묻자, 인솔 대장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매주 산에는 가야 하나, 이미 웬만한 산은 다 올라, 안내산악회에서 새로운 산을 찾기가 쉽지 않아, 백두대간이나 연결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해서 귀가 후 산악회 사이트로 들어가 '대간54'로 검색해 올해 말까지의 계획을 보고 몇 구간은 사전 신청했다.
10월 20일 수요일 오전 확인해보니, 12월 19일 산행이 벌써 만석에 대기자만 9명이다. 원칙대로 하면 삿갓재~백암산 구간 이후, 바로 백암산~빼재로 달려야 하나, 덕유산 리조트의 곤도라를 이용해 설천봉에 오를 예정이라, 눈꽃이 활짝 핀 한겨울로 일정을 미룬 거로 보인다. 꼭 대간이 아니라 눈꽃 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도 유인하기 위함일 거다. 두 산꾼과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인솔 대장의 권한이 생각보다 강하고 그에 따라 책임도 크다는 거다. 물론 등산객이 아닌 회사와의 관계에서. 추측컨대 흥행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감 시각이 가까워 오자, 테이블에서 대간꾼과 술을 마시고 있던 대장이 식당을 나가며, 5시 55분까지는 버스로 오라고 해 시계를 보니, 40분이다. 해서 서둘러 막걸리 한 병을 급히 더 마시고 5시 50분경 식당을 나와 버스로 갔다.
식당으로 들어가기 전 버스를 못 찾았는데, 그 이유가 개울 건너에 거대한 주차장이 있고, 이쪽에서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주차장의 규모에 놀랐다. 이 정도로 등산객이 많이 온다고? 하긴 그러니 하산로 입구에 탁족장을 만들었겠지!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두 산꾼은 1호 차, 나는 2호 차에 탑승해 예정보다 1분 빠른 5시 59분에 황점마을 주차장을 떠나 서울로 출발했다. 귀경 중 신탄진 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 후 다시 달려 8시 58분에 양재역에 도착하는 거로 산악회의 공식 산행을 마치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가 10시 3분 전에 도착했다. 씻고 저녁을 먹으며 와이프에게 한 말이 "앞으로 지리산 종주는 못할 거 같다!"였다. 수요일까지 다리가 뻐근해 잘 걷지를 못하는 게 생각보다 힘든 산행이었다. 그런 산을 무박으로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달리는 사람을 존경한다!
처음 계획대로 '육십령 → 할미봉 → 반송마을 갈림길 → 삼자봉 → 서봉(장수덕유산) → 삿갓재 삼거리 → 삿갓재 삼거리 → 봉황산(남덕유산) → 삿갓재 삼거리 → 월성치 → 삿갓봉 삼거리 → 삿갓봉 → 삿갓봉 삼거리 → 삿갓재 대피소 → 삿갓골 → 황점마을'의 15.94km(트랭글), 7시간 16분 코스를 추위에 떨며 달렸다. 이동 7시간 5분, 휴식 11분!
산행 목표 중 하나인 대낮에 덕유산 육구종주 중 육십령에서 삿갓재까지 달린 소원성취 산행이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날이라, 남으로는 지리산 주 능선이, 북으로는 향적봉과 그 너머로 파도치는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삿갓재에서 황점마을에 이르는 삿갓골이라는 계곡을 발견했고, 월성계곡이 궁금해지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