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1
캐드 독립선언을 하면서
지난 30년 이상 미국산 소프트웨어가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여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캐드 프로그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80년대 초반 조그만 벤처기업이었던 오토데스크는 오늘날 세계 4위권에 속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캐드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지가 오래다. 그런데 이웃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는 자국의 프로그램이 제법 시장을 확보하고 있음을 볼 때에 우리나라의 캐드 시장은 너무나 크게 왜곡되어 온 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오토캐드가 약 45% 정도로 1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나머지 절반 이상은 일본산 제품들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사용자는 오토캐드 라는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캐드 프로그램이 시장에 진입해도 오래가지 못함에 따라 많은 노력에 의해 태동한 제품이 있다해도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형국이다.
왜일까?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본의 아니게 불법복제품을 많이 사용해 왔지만 정부의 단속 강화와 정품마인드 확산에 힘입어 단계적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손에 익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높은 취업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들은 오토캐드 라는 외산 캐드로 교육을 해야 취업률을 높일 수 있으니 학교마저 오토캐드가 장악하기에 이른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다른 캐드로 교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타사의 도면정보와 호환성에 문제가 발생하니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더욱이 졸업하는 학생들마저 오토캐드에만 익숙하니 당장 급한 설계를 위해서라도 오토캐드를 외면하기 어려운 형국에 처해 버린다.
공공기관은 어떠한가! 건축사사무소, 엔지니어링, 기술단 등에서 상당기간 동안 오토캐드 설계한 도면을 납품하고 있으니 이를 뷰잉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다른 캐드를 선택할 방도가 애초부터 없었다. 결국 공공기관의 RFP에는 ‘오토캐드 200x 버전으로 그릴 것’이라는 토가 달리기까지 하니 설계업체에서는 외산캐드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아예 막혀 버린다.
외국산 캐드의 단가가 올라가도 교체할 방도가 도대체 없는 현실이니 우리 설계업체들은 어려운 경제 현실을 감안하여 대안캐드를 모색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모든 게 부메랑이 되었음을 알면서도 돌이킬 수조차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소프트웨어란 원래 마약과도 같아서 한번 익숙해진 후에 다른 제품으로 바꾼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할 때에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외국산 캐드만 사용해야 하는가! 국가의 중대한 도면정보나 파일이 외국의 한 업체에서 개발한 제품에만 의지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한 번 정도 생각해 볼 시기가 아닌가라는 자문을 던지면 어떨까 싶다.
오랜 기간동안 업계 표준이 되다시피 한 프로그램을 어느 대기업의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이 졸업하면 뭘 사용하겠는가 라는 진부한 안으로는 도저히 바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결국 그 해안은 우리 정부에 있다. 중국 정부가 공개소프트웨어인 리눅스를 국가 표준으로 삼아 본격 투자함으로써 MS 윈도의 대항마로 성장하듯이 우리 정부가 토종 캐드를 줄기차게 지원하고 사용하게 되면 기업들이 뒤따라가게 되고 교육기관도 기업에서 사용되는 제품을 실습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결국 이 방법은 오토캐드 라는 제품이 성장해 온 방법의 역순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해안으로 보인다.
그럼 우리정부는 그 동안 토종 캐드에 대하여 어떤 지원을 했는지 살펴보자. 작년부터 정부 입찰은 국산 패키지를 제안하면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안다. 업계 한 사람으로써 무척이나 고무된 정책이니 누군들 반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정책이다. 건교부가 발주한 지적대장 전산화의 경우 AutoCAD MAP을 이용하여 개발할 것 이라는 토가 달려 있으니 다른 프로그램은 예선 탈락이다. 이미 업계를 평정한 제품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니 어느 토종 캐드가 감히 대항마로 발전하겠는가! 234개 지자체에서 잘 사용해 오던 토종 캐디안은 지적대장 전산화 프로그램과 연계가 되지 않게 되었으니 추가 수주는커녕 기존 지자체에서도 애로를 겪은 바가 있어 필자는 과히 혼줄이 난 적이 있었다. 정부에 제안도 해 보았지만 앞으로 고도화사업을 할 때에 검토하겠다는 극히 짧은 답변을 읽고 도대체 정부가 토종 프로그램을 키우기는커녕 말살하는 정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토종 프로그램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역차별은 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정부나리들은 현실을 너무 모른다.
좋은 국산 프로그램이 있으면 누군들 사용하지 않겠는가! 라고들 하겠지만 한글워드처럼 우리말을 이용한 제품도 아니고 후발주자가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는 길만은 열어 줘야 하는데도 우리 실정은 참으로 암담하기 이를 데 없다. 국내에서 뿌리를 내린 프로그램이 이를 토대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마땅할진데 일부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외국을 겨냥하여 개발하는 습성이 어느순간 생겨나고 있다. 필자가 개발한 캐디안 역시 좁은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시장을 위주로 마케팅한 결과 이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되는 글로벌 캐드로 성장한 데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자못 크다 하겠다. 프로그램 분야는 다르지만 어려운 현실에서도 티멕스, 세중나모, 안철수연구소, 핸디소프트 등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일부 개발사들에 박수를 보낸다. 토종 캐드 개발사도 머지않아 세계적인 캐드엔진이 되는데 많은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6년 3월 1일
캐디안소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