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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현재적 전개
함석헌
3·1 운동을 오늘에 살려라
3·1운동이라고 입으로는 염불처럼 외우면서도 사실로는 그 정신을 계획적으로 말살시켜 버리려는 운동이 대낮에 승냥이 떼처럼 횡행천하(横行天下)하고 있는 이때에 그 천세들을 맞이하게 됐다. 3·1운동이 뭔가? 자유와 정의를 위한 씨알의 반항운동 아닌가? 지금 자유가 어디 있나? 일제시대에 그 무식 무조직인 대중을 가지고도 할 수 있었던 그 비밀 연락, 그 들고 일어섬을 지금 능히 흉내라도 낼 수 있는가? 일제 때는 아무리 가난했어도 국민적으로 빚을 지지는 않았고, 구한국 말년만 해도 외국의 빚 물자고 술 담배를 자진해 끊음으로 하는 국민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는데 오늘날은 외국에 진 빚 때문에 나라가 파산을 하게 됐는데 그런 운동을 꿈이나 꿀 수 있는가? 그때는 그 혹독한 일본 경찰 헌병의 탄압 맡 에서도 국민은 서로 무조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데모하고 학생이 들어가 숨을만한 곳 하나가 없고 자유를 위한 투쟁인줄 천하에서 알면서도 어느 인쇄소 하나가 자진 잡지 인쇄해 주겠다는 데가 없다. 어쩌면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고 말았나? 어쩌면 반심이 이렇게까지 썩고 말았나? 어쩌면 기운이 이렇게까지 죽고 인정이 이렇게 까지 야박해지고 말았는가?
아이보다 배꼽이 크다더니 국민 전체의 운동을 기념하는 일은 어째 이렇게 시시해 가고 어느 패거리의 뽑냄은 갈수록 호화로워 가느냐? 배꼽이 아이보다 크고 어찌 아이가 살 수 있느냐? 아이가 죽는 날 배꼽은 어떻게 혼자 살라느냐?
어느 계급의 힘을 자랑하고 술잔 나눠 먹기 위한 기념 소용없다. 3·1 운동을 현재적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3·1운동이 그때에 나라를 살렸다면 씨알은 오늘에 죽으려는 3·1운동을 살려내야 할 것이다. 그때는 그때요 오늘은 오늘이다. 그 정신을 오늘에 내쓰면 그 모양이 어떻겠나?
우리의 선 자리
모든 역사적 운동은 역사의 해석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는데 모든 해석은 제 선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오늘 우리 선 자리가 어디냐?
1. 지금은 세계적인 시대다. 옛날에는 입신양명 해서 집을 빛내고 집을 키워 나라를 만들고 부국강병을 해서 세계를 정복하잔 것이 잘난 사람들의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잠꼬대일 뿐 아니라 허락해 둘 수 없는 죄악이다. 지금은 모든 가치의 표준이 세계에 있다. 어제까지는 운동장 한 모퉁이에서 자기네 반의 이김을 위해 일치단결하며 전략을 짜며 먹고 자기를 잊고 악을 써 연습했지만, 이제 전교의 체육대회가 열리는 오늘에는 제반을 잊고 전교와 젊음의 영광을 위해 달려야 한다.
2. 지금 우리는 유기적 사회의 시대에 들었다. 20세기의 초까지만 해도 개인주의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그때는 아무리 복잡한 사회라도 인간관계는 기계적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극도로 발달한 기술로 인해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못해 그 도를 넘어 질적으로 변해 유기적인 관계에 들었다. 유기란 말은 하나의 산몸이란 말이다. 이제 사회는 많은 개인의 묘인 곳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하나의 산 생명체라는 말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의 모든 과거를 바로 이해할 수 없고 모든 미래를 바로 붙잡을 수 없다. 지금 세계가 어지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어지럽다는 말은 행동의 표준을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행동의 표준을 정하지 못하는 것은 앞선 세대와 새 세대 사이에 단절이 생겼기 때문인데 그 주되는 원인은 이 사회 관계의 질적 변화에 있다.
나와 남이라지만 이제 남은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지만 이제 원수가 있을 수 없다. 예수가 “한집의 식구가 원수이리라”한 것은 무섭게 내다본 말이었다. 원수일 수 없기 때문에 원 수를 사랑해야 한다.
유기와 기계적의 차이는 기계적 관계에서는 개체를 전체에서 때놓을 수 있고 떼놓아도 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없는데, 유기체에서는 한 몸이기 때문에 그 지체를 가를 수 없고 억지로 가르면 전체도 그 지체도 다 죽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옛날은 나라가 그 국민 중 어떤 분자를 무시하고도 서 갈 수 있고 세계가 어느 민족의 망하는 것을 그냥 버려두고도 서 갈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어졌다. 오늘날 정치 경제 교육 예술 종교 스포츠 문화의 각 방면에 걸쳐 수많은 세계적 기관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어제까지 서로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로 싸웠는데 오늘 와서 갑자기 서로 공존을 하자고 타협을 하기 시작하는 것, 이 시대를 脫이데올로기의 시대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죽이고 싶지만 죽일 수가 없다 저놈을 죽이면 저놈만 아니라 나도 죽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부족의 대립, 민족의 대립,국가의 대립, 그리고 계급의 대립이라고 역사를 해석해서, 그래서 이데올로기었는데 이제 그 이데올로기가 문제 아니된다. 그것을 상관 말고라도 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탈 곧 이데올로기를 벗고 나온 시대란 말이다. 이데올로기 보다 큰 것은 무엇인가? 생명이다. 전체다. 이제 인간은 자아를 자각한 개인 속이 아니라 그 보다도 깊이 들어가 전체 속에 발견해야 하는 때다.
3. 그러므로 이 앞의 시대는 내면화의 시대다. 전체는 겉에 뵈는 것이 아니라. 뵈는 것은 모든 지체지만 전체는 그 모든 지체를 합한 것보다도 크다. 그 의미에서 그것은 속이요 정 신이다. 유기적인 전체의 시대가 온 것은 극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 때문인데 그 기술을 기술대로만 두면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거기 대치하는 보 다 높은 정신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이 앞으로 인류가 자멸을 면하려면 더 깊이 정신적인 면으로 발전하는 수밖에 없다. 이날까지 온 진화와 역사의 과정을 보면 더 잘 내면화한 생물이나 민족일수록 잘 번성한 것을 본다. 파충류는 멸망하고 인류가 이겼으며 앗시리아 스파르타는 멸망하고 이스라엘 아테네는 남았다.
3·1 운동의 의미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미래를 생각 하며 3·1운동을 돌아볼 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할까?
1. 그것은 전체의식을 크게 일으켰다. 어떤 사람은 3·1운동을 민족정신의 발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적 자각이라고 한다. 다 옳은 말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부족하다. 민족시대에는 민족이 전체기 때문에 민족이란 말이 감격적이었고 민주주의시대에는 민중이 전체기 때문에 민중이라 하면 힘이났다. 그 요점은 전체인 데 있다. 사람은 개체 아니고 존재 하지 못하지만 생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살리는 힘은 전체에 있다. 그러므로 자기 속에 전체를 체험했을 때 개체는 참으로 삶을 얻고 힘을 얻고 지혜를 얻는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망할 때까지 우리 씨알은 전체의식을 분명히 갖지 못했다. 나라가 망해도 양반들의 나라로 알았지 자기네 나라가 망하는 것으로 아프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국민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국민운동을 일으킬 실력이 없었다. 실력이 없었다는 것은 국민의식 곧 전체의식의 약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운동이 못됐으므로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나라가 망하고 나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나라 팔아먹은 양반 계급은 여전히 잘 살 수 있는데 나라 망한 아픔 설음은 팔리운 씨알이 당하지 않으면 아니됐다. 그래서 비로소 차차 깨게 됐다 그때 일본의 정책은 아주 무단적인 것이어서 우리 민족을 만주로 내몰고 따뜻하고 살찐 반도에는 자기네 민족을 옮겨 오려 했다. 그래서 합병 후 날마다 북으로 가는 열차 는 보따리 바가지 쪽으로 쫓겨 가는 불쌍한 농민으로 가득 찼다. 그것을 보면서야 비로소 “우리”라는 의식이 일어나게 됐다.
그러는 때에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기회를 타 일본은 자본주의로 발전하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점점 더 압박 착취의 고통을 가져왔다. 그랬기 때문에 전쟁 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민족자결주의 물결에 접하자 마른 섶에 불티가 떨어지듯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2. 전체같이 무서운 것은 없다. 만세를 한번 부르고 나자 민중은 딴 사람이 됐다. 마치 마비됐던 신체에 피가 돌듯 전 민중이 활기를 띠고 살아났다. 1910년에 합병이 된 후 1919년까지 국민의 의기는 줄어들기만 했다. 나는 그것을 소년으로 잘 체험했다. 그런데 3·1운동 후 그 사회의 기풍이 크게 달라졌다. 외면으로는, 되는 줄 알았던 독립이 아니됐으니, 숨길 수 없는 실패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3·1운동이후 일어난 이 활발한 문화운동은 크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신문 잡지, 학교 강습소가 정말 우후죽순 그대로였다. 이것이 다 그 전체의식의 산물이다. 그 운동은 그 후 신간회운동을 그 종점으로 차차 약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만이라도 했기 때문에 독립을 얻지 못하고 30년을 오면서도 민족적인 주체성을 완전히 떨어뜨리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약화된 근본 원인이 뭐냐 하면 역시 전체의식의 약화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대적으로 불가피라면 불가피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산주의가 들어와서 민족주의와 대립하게 되는 한편 일본의 정책은 그것을 이용해 민족 분열을 정책적으로 꾀했고 또 자본주의의 일어남을 따라 전날의 지사 투사던 사람들도 민중을 저버리고 일본 세력과 타협하는 자가 있게 됨을 따라 전체의식은 그만 차차 약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 힘 있는 투쟁이 있을 수 없다. 이점은 5·16 이후의 사회를 보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3. 그다음 또 하나깊이 생각할 것은 이것이 비폭력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이점은 많은 사람이 지적은 하면서도 사실 그 의미는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념 할 때는 하나의 자랑거리로 내세우면서도 그 사실 그것을 오늘에 실천해 보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모처럼 위대했던 운동을 죽이는 일이다.
눈을 좀 크게 뜨고 보라. 그것이 얼마나 큰일이었던가? 그 당시에 식민지의 설움을 당한 민족이 많아도 전 세계에 인도 하나를 내놓고는 그런 운동을 그런 규모로 한 예가 우리 밖에는 없다. 제 것 귀한 줄 모르는 이 민족의 버릇으로 이것도 역시 스스로 버리고 있지만 통탄할 일이다.
이 놀라운 운동의 힘이 도대체 어 디서 나왔나? 옅게 보는 사람들이 세 종교가 연합한 것을 그 당시에 조직체라고는 종교 밖에 없어 그랬다느니 비폭력으로 나간 것은 무기 하나 가진 것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런 말이나 하려거든 역사 해석 아니하는 것이 좋다. 그런 말을 누가 못하겠나? 그렇다면 지금은 그런 운동이 왜 불가능 한가? 그 보다는 좀더 깊이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지만 소위 생각만이 생각이 아니라. 개인도 단체도 정말 그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소위 의식이라는 알 수 있는 의식이라기보다는 저 깊은데서 솟아 나오는 잠재의식으로 된다는 것을 심리학이 가르쳐 주지 않던가? 잠재의식이라 해야겠는지 무의식이라 해야겠는지, 그렇지 않으면 초의식이라 해야겠는지, 아주 종교의 말대로 하늘 명령이라 해야겠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개인에 있어서 보다도 전체에 있어서는 자기의 참 자아를 알기는 더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에 있는 것만이 생각의 전부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것 같은 옅은 판단은 다 의식된 것만이 참이고 그밖에 것은 다 미신이요 상상 망상이라는 근대의 잘못된 과학주의에 병이 든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가벼운 해석을 할 것 없이 사실을 사실로 볼 때 그것은 우연도 보통도 아닌 놀랍고 큰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의 역사를 생각하고 오늘의 꼴을 생각할 때 그것을 어떻게 몇 사람의 지혜에서만 나왔다 하며 우연한 성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화산이 지심에서 근원해 나오듯이 전체 생명의 깊은 도가니 속에서 터져 나왔다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무력에 빠졌던 민중이 어디서 그 용기를 얻었으며 어디서 그 슬기를 얻었는가? 그렇게 단결할 줄 모르는 민족이 어떻게 그런 단결을 할 수 있었을까? 산과 돌의 나무 속 풀 속을 다 뒤지더라도 화산의 현인은 아니나오듯이 역사의 표면에 나타난 일과 생각을 다 찾아보아도 거기 사건의 정말 원인은 나와 있지 않다.
이야말로 내면화의 과정이다. 정신이 물질을 극복하고 살려내는 일의 한 토막이다. 정치와 종교를 다시 연결해 살려내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종족적인 계시였다.
도대체 세 종교의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는가? 당시 운동의 주동력이 기독교에 있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 기독교를 움직여 통일된 힘으로 내세운 데는 남강 이승훈선생의 힘이 참으로 크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그것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모든 조직과 방법이 다 결정이 되고 독립선언문도 다 만들어지고 상동교회에서 그 마지막 서명을 하게 됐는데 그 민족대표의 이름을 쓰는 순서에서 서로 주장이 엇갈려 밤새도록 결정이 되지 않았다. 기독교에서는 이승훈을 먼저 쓰자는 것이고 천도교에서는 손병희를 먼저 쓰자는 것이다. 때 마침 남강선생은 어디 밖엘 나갔다가 돌아와서 밤늦도록 논쟁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 때문이냐 물었다. 대답하는 사람이 그 대표 서명의 순서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선생은 한마디로 “순서가 무슨 순서냐? 죽는 순서야. 손병희씨를 어서 먼저 쓰라고 해라”했다. 그래서 곧 결정이 되고 일사천리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남강이 법정에서 왜 독립 운동을 했나 심문을 받았을 때 무엇이라 대답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했다고 했다. 그만했으면 그의 속을 침작할 수 있다. 그것이 결코 생각 없이 했거나 옅은 생각으로 만들어서 한 것일 수 없다. 그는 판결 후 3년 징역을 하는 동안 구약성경을 20번 신약성경을 100번 통독했고 감방에서 똥통을 날마다 맡아 놓고 손으로 닦으며 한 기도가 “하나님 이 다음 나가서도 이 민족을 위해 길이 똥통 청소를 할 수 있게 해줍시사”하는 것이었던 사람이다. 그러기에 “내가 의를 위해 여기 들어왔거니 생각하니 정말 춤이 나가서 나 감방 안에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하고 증거할 수가 있었고, 자기 동상의 제막식을 하는 날 구름 같은 군중 앞에서 “내가 한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셨을 뿐입니다” 했다.
105인 사건에 그 모진 악형을 견디고 나와서 “목사 치고도 거짓말 아니 한 사람 없다”하는 그의 입에서 그만한 증언이 나왔다면 3·1운동의 정말 깊은 근원이 어디 있었음을 대개 짐작할 수가 있다.
이 커다란 비폭력의 반항운동 보다 더 깊이 밝히 우리의 속 자아를 보여 주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기 때문에 월남 참전 같은 부끄러운 죄악을 지으면서도 오히려 살아갈 수가 있다.
어린양의 싸움
최근에 우리나라를 찾아왔던 한 퀘이커 학자는 때마침 일어났던 학생 데모와 위수령 발표를 보고 소감을 말하기를 “한국은 어린양의 싸움을 하는 나라“라고 했다. 어린양의 싸움이 란 신약성경의 계시록에서 나온 말이다. 어린양은 평화의 그리스도를 상징해서 우는 말이요 그 그리스도가 그 절대 평화주의로 마침내 세계를 지배하는 모든 국가와 그 폭력을 이길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
인도의 네루는 오랜 정치 생활 끝에 “인도의 발견”이라는 책을 썼다. 우리 중에 한국을 정말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또 그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어떤 위대한 사람이 어떤 한국 상을 발견해 우리 앞에 보여 주겠는지 모르겠으나, 아무가 어떤 것을 한다 해도 무사할 수 없는 한 가지 조건은 이것일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가 고난과 부끄럼의 역사인 데 그러면서도 망하지 않고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은 무슨 힘일까? 정치도 아니요. 경제도 아니요 배타심이 강한 것도 아니요 전쟁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요새 갑자기 변하는 세계 정국을 보고 양심을 가지고 감히 앞날을 말할 자신 있는 정치인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의 지혜를 거의 완전히 막아버리지 않았나? 역사는 우리를 자꾸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만 몰아넣는 것같이 보인다. 그럼 나갈 데가 어딜까?
이런 때에 3·1운동을 한번 고쳐 씹어볼 필요는 없을까? 어찌보면 이 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외로운 섬처럼 보인다. 그 산맥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물 위에 외롭게 떨어져 맥락을 알 수 없을수록 물 밑에는 반드시 큰 산맥이 있을 것이다. 엄정한 의미에서 역사의 외론 섬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역사를 잠깐 덮어놓고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보면 거기 하나 나오는 문제가 있다. 개인에 있어서나 단체에 있어서나 도덕적인 것이 그 본질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그러면서도 개인과 단체는 도덕으로 연결은 아니된다. 개인에서는 자기희생을 가장 높은 도덕이 라면서 단체에 있어서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미래의 역사는 단체로도 자기희생을 하는 각오를 감히 해서만 살 길이 열리지 않을까?
가령 그것을 맡은 것이 우리라면 어찌할까? 역사 위의 외로운 섬이라는 3·1운동, 어린양의 싸움, 그리고 이 미래의 골고다 길, 이 세 점을 연결하는 선은 못 그려볼까?
씨알의소리 1972. 3 9호
저작집; 5- 27
전집; 17-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