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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게
살전 5:23~24
예배일자 : 2023-11-05
[목회기도]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오늘 예배할 수 있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쁨으로 예배함이 구원받은 우리의 특권임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예배를 통해 … 말씀을 통해 …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뜻대로, 모든 일에 주께 하듯 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부끄러웠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을 잃었고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렸습니다.
회복할 수 있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늘 백성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객지에, 외국에, 군대에, 병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평안케 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선교지, 선교사, 전국에 있는 참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은혜의 날/평안의 날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같은 시간에 예배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은혜 충만케 하시고 평강으로 지켜 주옵소서.
예배하는 우리들 ~ 말씀을 전하고 듣습니다.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게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몸이 따뜻하면 면역력이 높아져서 병에 잘 안 걸린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은 씽씽하다고 착각해서 옷을 얇게 입었더니 감기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몸이 따뜻하면 마음의 질병도, 정신적인 아픔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청림출판 네이버 포스트 ‘지금 당신의 감정은 몇 도인가요?’ 김병수 저, 『감정의 온도』참조. >
날이 추워질수록, 따뜻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늘 ‘차갑다, 쌀쌀맞다, 무섭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따뜻하게 보일까 해서 옷을 바꿔입었는데도 여전히 쌀쌀맞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권사님이 ‘목사님 ! 왜 차갑게 보이는지 아십니까?’라고 하시는데 순간 당황 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잘 생겨서’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답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누가 쌀쌀맞아 보인다고 하면 이뻐서 그런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Excuse me’- 실례합니다. / ‘I'm sorry.’-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
‘Please’- 부탁합니다. / ‘It's OK.’‘No problem.’-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런 말을 잘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별일 아닌데 어떤 사람이 기분 나빠하는 것같아 보이면 ‘죄송합니다.
혹시 저 때문에 기분 나쁘신가봐요?’ 라고 묻고 '아니라'고 하면‘다행이네요.’라고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행 17:1~9)
후에 고린도에 머물던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살전 3:6)
- 교회가 세워진 지 오래되지는 않았었지만 여러 박해를 잘 견디고 있다는 것 (살전 2:14~16)
- 그런 그들의 모습이 다른 지방, 다른 교회에까지 모범이 되고 있다는 것 … 등 (살전 1:2~9)
바울이 전해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은 좋은 소식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가르치기 위해 기쁜 소식을 듣게 해 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쓴 편지가 …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비전성경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2011), p.251. 참조. >
바울은 글을 마무리 짓기 전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바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는 것 … 그것이 바람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사건과 사고가 많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바램이며 기도 제목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군에 입대한다고 기도해 달라하기에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군대 갈 때의 이 모습 이대로 상함이 없게 군 생활 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해야”한다고 말입니다.
흠 없이 군대 생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바램도 영과 혼과 몸이 흠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렘 33:3)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채우시고, 닫힌 곳을 열어주십니다. (마 7:7~8)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신앙생활이 기도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자면, 건강을 지키려면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만
건강한 생활을 해야 하고,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하루 종일 기도만 하면 됩니까? 기도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기도만 잘한다고 / 기도를 많이 한다고 / 기도를 오래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영적 습관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흠 없게 보전되어야 할 성도의 습관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영적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 흠 없이 보전하려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성서해석학’을 배웁니다.
제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성경해석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해석학’은 사람들이 쓴 ‘글(text)’, 말로 표현된 ‘대화(conversation)’
그리고 사람들이 체험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물론 성경해석학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해석학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것인데
사실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상황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 가치, 만족감이 달라집니다.
누구나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사한 삶인지, 불평의 삶인지 결정됩니다.
돈이 많아야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더 많지 않음에 불평합니다.
어떤 이는 적게 소유하고 적게 가지고 사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추구해서
집에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만족하며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창고나 보관함에 잔뜩 쌓아놓고도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 배우자, 자녀, 형제, 친구, 애인 ~
그러나 무엇이 사랑인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강성률,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서울: 평단문화사, 2008), pp. 335~336 참조.>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계속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받으려고만 합니다.
이처럼 해석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평안한 삶, 행복한 삶도
내가 얼마나 평안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안과 행복을 좌우합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해석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뜻에 따르는 삶이 신앙이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그날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속에서 흠 없이 살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를 감사로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모든 일 / 범사(凡事)에 감사할 수 있어야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그 삶이 감사할 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어야 그 삶이 평안해집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2016년 3월 3일 동아일보 A34면 기사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 : 일상의 기적” 참조.>
걷는 것이 기적이라는데 … 오늘 여러분, 걸어오셨나요? 기어 오셨어요?
걸어 오셨죠? 그럼 여러분 기적을 행한 겁니다.
제가 목회 40년 넘게 했는데 ‘걸어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헌금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휠체어를 이용해서, 목발을 이용해서라도 …
다닐 수 있는 것 /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 기적이요 감사의 조건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다’라고 해석한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한다면 …
그 인생은 넉넉하고 감사하고 흠 없는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마귀는 시시때때로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흠 없이 보전되지 못하도록, 망가뜨리려 합니다.
깨뜨리려 합니다. 흩어 놓으려고 합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평안하게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마귀는 평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한 거 마귀는 원치 않습니다.
마귀는 교회가 평안한 거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흔들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귀에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마귀에게 쓰임 받는 줄도 모르고 평안을 깨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어체계는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망가지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겨 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는 흠 없이 보전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믿을 때 얻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형편이 나아집니까? 금방 수입이 늘어나나요?
웃을 일만 생기던가요? 행복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지나요?
예수 믿어도 삶의 형편과 우리 태도는 생각처럼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다른 번역으로 보면, “난 비참합니다. 나 참 비참한 사람입니다. 나 괴롭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이 비참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공부 많이 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최고의 학문을 한 가말리엘의 후예입니다.
당시에 꼭 필요했던 장막 짓는 기술을 가지고 있던 기술자였습니다.
최고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하는데도 지장을 받지 않았던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치열한 싸움 때문에 죽을 것 같이 괴로워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곤고함(쉬운 성경 : 비참함)을 토로(吐露 - 마음에 있는 것을 죄다 드러내어서 말함) 한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 (롬 7:2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은 당연히 하나님만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죄의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서 육신의 법과 마음의 법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러기에 혼란을 겪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 다툼이 생기면 마귀가 끼어들어 불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내 안에 같이 있어 다투고 있다는 것은 / 갈등이 있다는 것은 …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내 안에 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간섭하심이 계셔서 내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불편한 일이 있나요? 생기나요?
예수 믿기 때문에 겪는 갈등이 / 어려움이 많아졌습니까?
봉사하는 것 때문에 불편하고, 갈등하고, 마음 상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시나요?
그 틈에 마귀가 끼지 않게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곤고한 사람 / 비참한 사람임을 알고 곧바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세상 법에 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5월 30일 국민일보 31면 겨자씨 ‘곤고한 자의 감사’ 기사 참조. >
어느 해 여름인가 여름에 청년들이 방글라데시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목사님, 장로님,선생님 들도 교회 봉헌을 위해 다녀왔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다녀오신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녀온 이후에,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삶의 조건이 갑자기 개선되어 편안해졌을까요?
삶의 조건과 환경은 그대로지만 삶의 현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입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편안히 잘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미국 앨라바마(Alabama) 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시는 한때 목화 산지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땅콩 특산지로 알려진 그곳 법원 앞에는 독특한 벌레 비석이 있습니다.
1915년, 그 마을은 목화를 갉아 먹는 병충해의 일종인
‘목화 바구미(boll weevil)’때문에 목화 농장이 초토화되었습니다. 망했습니다.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했고, 파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민들은 새로운 작물 땅콩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던 땅콩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 후 엔터프라이즈 시는 미국에서 땅콩 재배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목화 바구미를 기념물로 만들었고 기념물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해충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었던 벌레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새로운 번성의 계기를 주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
< 2012년 9월 15일 한국 장로신문 및 앨라배마 한인회 연합회, 『2013 앨라배마 가이드』 pp.53~55 참조. >
목화 농사를 망친 것이 계기가 되어 땅콩 농사로 더 잘 살게 된 것에 감사한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도 동행해 주십니다.
회복할 수 있도록 … 일어설 수 있도록 …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어려움도 언젠가 감사의 제목으로 바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불행을 덮어두기 위해 억지로 감사하라는 게 아닙니다.
어려움을 외면하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눈으로 인생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흠 없이 보전되는 복을 주십니다.
더욱 감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지금 이 맘때쯤엔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십시오.
다른 안목으로, 다른 관점으로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지난 밤에 잠 잘 자고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난 것만으로도 감사입니다.
오늘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기적이고, 감사입니다.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세요.
찾게 된 감사를 하나님께 표현하십시오.
- 정성을 다해 감사의 예물을 드리십시오.
- 찬양 잔치에 참여하여 잔치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 불평하고 한탄하며 드렸던 기도를 감사와 기쁨의 기도로 바꾸십시오.
‘추수 감사절’은 감사의 명절입니다.
우리가 다른 때 밥 먹는 것과 명절에 밥해 먹는 게 다릅니다.
하나님께 1년의 삶을 돌아보며 최선을 다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집을 팔아서 감사 헌금할 겁니까? 땅을 팔 수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한 감사가 될까요?
그래서 추수 감사절 때가 되면 ‘왜 이런 걸 하냐, 왜 귀찮게 하냐’고 하지만 그래도 찬양 잔치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확인시켜 준 약속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험한 일이 많은 세상 삶에서 흠 없게 보전되는 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미쁘신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감사의 계절에 … 가정에서, 일터에서 겪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고 있는지 … 돌아보세요.
다르게 해석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 혹시 내가 해석하면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라고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흠 없이 보존되는 복을 누리고 감사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 감사의 계절에, 가정에서, 일터에서 겪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았는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혹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려 한 적은 없었는지 우리들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땀 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을 구별합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일천번제예물 여러 가지 제목을 적어 예물을 드립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주시옵소서. 저들의 가정과 일터를 축복하셔서
양식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나님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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