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문가 남편 / 백현
1991년 12월에 결혼해서 벌교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자가용이 많지 않을 때라 교통이 좋은 곳에 집을 얻고자 했는데, 다행히 벌교 터미널 앞쪽에 있는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읍 단위에서 아파트 전세를 얻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타운’이라는 새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도배를 한 기술자가 잔금 대신 받은 아파트를 못 팔고 세 놓은 것이었다.
한 달 전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가 있었다는 것이 운이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퇴근 후에 일삼아서 벌교를 샅샅이 둘러보던 남편 노력의 결실이었다. ‘막고 품기’라고 하던가. 아파트를 일일이 다 찾아가서 그곳 주민이나 경비를 보던 아저씨에게 물어봤단다. 한 번만 간 것이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여러 차례 돌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집이란다.
교통도 좋고, 전망도 좋은 그 집에서 불편 없이 살았다. 1993년 3월 초에 첫아이를 낳았다. 광주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남편은 주말에 아이를 보러 올라왔다. 아이를 낳은 지 열흘이 채 못되어서 그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단다. 아들이 곧 결혼하는데, 여기서 살게 하겠다고 말이다. 지금 아내가 애 낳으러 간 상황이라고 말을 하니 그나마 기한을 길게 주었다고 했다. 그러니 주중에 틈틈이 집을 보러 다니겠다고 했다.
보름이 지났을까 남편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했다. 분양을 못 해 아파트 회사에서 전세로 임대하는 102호가 곧 만기인데, 지금 사는 세입자가 이사 갈 것 같다는 정보가 있단다. 평소에 우리 부부와 잘 지내던 경비아저씨가 알아봐 준 것이다. 집을 얻고나니 이사할 일이 큰일이었지만, 빨리 이사를 해야 학교 나가기 며칠 전이라도 아기랑 같이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남편은 혼자 이사를 했다. 이삿짐센터를 부르지도 않고 802호에서 102호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지인들 몇을 동원해서 이삿짐을 날랐단다.
남편이 애써 정리하고 청소한 집에 아가랑 같이 갔다. 출산휴가가 두 달이라 일주일쯤 같이 살다가 아기는 친정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5년 2월이 되어 둘째를 낳게 되었다. 첫애 때에도 열흘쯤이나 빨리 낳았던 생각이 나서 미리 준비해서 친정에 갔다. 남편은 며칠만 있다가 내려올 참이었다. 첫애 낳고 이사했던 일을 떠올리며, 또 이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키득거렸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102호가 팔렸단다. 더 싸게 내놓거나, 특별히 팔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사겠다고 나섰다고 회사 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남편은 이번에도 ‘우리 타운’ 안에서 구하려고 했는데 없고, 벌교에서도 못 찾아 결국 순천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그때는 ‘사랑방 신문’에 실린 정보를 보고 집을 얻을 때였다. ‘사랑방 신문’이 나오는 화요일 시간을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막 깔린 신문을 보고 전화를 걸어보면 임대로 나온 집이 이미 다 나갔다며 걱정스럽다고 했다. 친한 동료와 같이 신문을 기다리는 작전을 한 지 얼마 지났을까? 순천 연향동에 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사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포장이사를 한다고 했다.
또 나는 아가와 이사한 새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는다. 아이를 낳을 때면 이사하게 되는 상황. 자기는 돌쇠 팔자이고 나는 마님 팔자라고도 한다.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얘기가 길어져 더 쓰지 못했지만, 그 뒤 두 번의 이사에서도 상황이 그랬다.
남편은 자기가 이사 전문가라고 한다. 나는 그렇다고 맞장구친다. 딸 많은 집의 외아들도 자라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인데, 집을 구한다고 여기저기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는 것,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일머리가 없는데도 그 서툰 솜씨로 어떻게든 애쓰고 해내는 것을 볼 때면 뭉클하다. 책임감, 가족애가 넘치는 대단한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원래 대단한 존재다.
첫댓글 마냥 부럽기만 했던 맞벌이 부부의 애환이 느껴져서 마음이 뭉클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돌쇠와 마님, 멋진 남편 이시네요
멋질 때도 있어요. 가끔이지만요. 고맙습니다.
하하 웃깁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사가야하니.
글쵸. 이사가 무서워서 셋째를 못 낳았다는 슬픈 전설이 있답니다.
부지런하고 꼼꼼한 사장님이네요. 본받고 싶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선생님도 충분히 그러실 거에요. 글을 보면 더 본받을만한 분이시던데요. 고맙습니다.
그런 애환이 있기에 내 집 갖기를 소원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주거가 아니라 투기가 목적이 되어 버렸어요.
그 애환끝에 집을 사서 세 번째 이사를 갔답니다. 아직도 책 잘 읽고 있습니다.
벌교에도 사셨군요.
저도 그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돌쇠와 사는 마님이 부럽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