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의 삶
여기저기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감동과 찬사가 들려왔다. 책의 표지부터가 뭔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저자 룰루 밀러 (Lulu Miller)는 과학 전문기자로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한다. 책의 장르 역시 독특하다.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이다. 그녀는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굴복하지 않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찬사를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경이로움’이다. 누군가의 회고록이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나. 책을 읽기 전부터 뭔가 기대와 설렘이 생겼다. 나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재미를 종종 즐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해하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혼돈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그녀는 혼돈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라 표현했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할 뿐 이 법칙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라고 그녀를 가르쳤다. 그녀의 삶은 혼돈의 덩어리였다. 그 혼돈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 스타 조던 (Davie Srarr Jordan)이라는 한 과학자를 알게 된다. 데이비드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여러 방면에서 지구의 혼돈과 싸우고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분류학자이다. 그리고 스텐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다. 밀러는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데이비드의 삶에서 찾으려고 한다. 한 과학자의 삶을 끈질기게 쫓아가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놀라운 영감을 전해준다.
질서의 삶
1906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지진으로 데이비드가 수집한 표본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지진이 전하는 메시지, 즉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에 그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물고기들을 주워 다시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한 이 과학자. 룰루 밀러는 이 과학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세상은 데이비드에게 관대함을 베풀지 않았다. 데이비드에게 던져지는 잔인한 개인적 재앙이 수시로 밀려드는 이 야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수 있었을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 룰루 밀러는 19세기 어류 분류학자의 삶과 현재 자신의 삶을 치밀하게 엮어 나간다. 룰루 밀러의 혼돈의 삶과 데이비드의 질서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읽어낸다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보일 것이다.
저자는 데이비드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문장을 절박한 마음으로 찾고 있었다. 마치 몇 년 전에 책 속에서 어두운 삶을 건져낼 문장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단지 삶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그 행위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여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책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책의 막바지에서 전해지는 충격은 상당하다. 밀러는 자신이 깨달았던 것들을 13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개시킨다. 이것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만 독립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모든 혼란과 충격은 책을 덮고 나서야 하나의 맥락으로 응축됨을 느끼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몰고 온다.
물고기는 없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평생을 물고기 수집으로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의 삶에서 그녀가 얻은 생각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의 책은 직관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내 눈에 보이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밀러는 이런 우리들에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룰루 밀러는 무신론자이고 다윈의 추종자이다. 그리고 양성애자다. 책 속에서 묻어나는 그녀의 가치관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녀의 삶 자체가 범주의 잣대로 세상에 선을 긋고자 하는 모든 행위에 거부를 드러내는 듯하다. 데이비드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질서와 자신 앞에 놓인 삶의 시련을 유리하게 재단하며 승리의 삶으로 이끌었던 모든 것들이 세상에 선을 긋는 행위였다니.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쓰는 척도를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밀러가 생각하는 질서를 파괴하는 삶이란 단순한 게 아니다. 우주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렌즈로 내가 속한 소우주의 현실에 조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한쪽으로 매몰되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삶의 밸런스를 통제하는 힘은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깨달으며 이만 마친다.
책 익는 마을 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