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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
이 홍사
인생을 하루로 계산한다면 나는 지금 몇 시쯤 되었을까?
환갑 언저리에 가까운 인간이라면 심도 있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질문의 해답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환갑이 석양이 되는 인간도 있고 오밤중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차장 밖 겨울 풍경을 건성으로 훑어보며 홍랑은 그걸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스톱! 시내버스가 멈추었다.
누가 세운 게 아니라 저절로 멈추어 선 것이다. 도량동 네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출발하다가 덜컥, 멈추어버렸다. 뒷바퀴 쪽에서 덜컹덜컹, 두어 번 하더니 네거리 중간에서 멈추었다.
뭐가 이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운전사 빼고 승객은 여남은 명이 타고 있었다. 버스가 사거리 중간에 멈추자, 신호등은 무용지물이 되고, 네거리에는 퇴근하느라고 밀려든 차로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버스는 시동은 걸려있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구동장치 쪽에서 뭐가 꼬인 듯, 잘못된 것 같다.
홍랑은 하필이면 그 버스를 타고 있었다.
연말의 저녁 무렵이었다. 겨울 날씨치고는 비교적 포근하지만 연말이다. 며칠이 지나면 한 살을 더 한다.
쓸쓸하다. 생각하면 쓸쓸하게도 쓸쓸했다.
자신을 돌이켜보니 홍랑은 내심 쓸쓸함을 즐기고 있었다.
감미로운 고독이다.
쓸쓸함을 더 진하게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늙은 시인에게 전화했다. 이쑤시개가 가장 맛있다는 시인이다. 언제나 디저트로 뭐가 좋을까, 물으면 항상 이쑤시개를 들먹이는 선배다. 시인의 디저트는 늘 이쑤시개다.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을 하기로 하고 그를 만나러 나가는 길인데 버스가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늙은 시인은 홍랑의 고등학교 선배인데 그를 만나면 항상 배울 게 있다. 물론 국밥값은 홍랑이 내겠지만 밑지는 장사가 절대로 아니다. 시인은 엄혹한 언어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라고 했다. 엄혹한 언어의 세계.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에겐 말 한마디를 배워도 배울 게 있다. 꼭 배울 게 아니더라도 그를 만나면 편하다. 청탁할 일도 없고 부담을 지우지도 않는 사이다.
언제나 배울 게 있는 인간.
차를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기사가 포기했는지 문을 열어주며 내리시라고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승객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아주머니 두 사람이 내리고 뒤따라 홍랑도 네거리 중간, 차도에서 내렸다. 막힌 차들 사이를 뚫고 나와 인도에 올라섰다. 물론 앞에선 아주머니를 따라서 나왔다. 홍랑이 빠져나오자 그곳이 통로가 되어 나머지 승객들도 그곳으로 빠져나왔다. 네거리 중간에 멈춰버린 버스를 두고 차들이 피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생기는 것이었다.
인생을 하루로 환산한다면 나는 도대체 몇 시쯤 되었을까?
홍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거리 광장을 빠져나와 인도에 올라서서도 홍랑의 머릿속에는 또 그 생각이 빈자리를 메웠다.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다. 홍랑은 고약한 버릇을 지녔다. 이렇게 자문하게 되면 끝장을 보는 것이다. 한번 꽂히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고 그 생각으로 파고들어 골머리를 앓는 고약한 버릇이다. 이 문제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을 예감이 불안감처럼 엄습해서 잠시 치를 떨었다. 늙은 시인에게 물어볼까?
어떻게 가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뒤에 오는 차를 기다려 버스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내버스를 타면 터미널로 돌아서 간다. 중앙시장은 걸어서 12번 도로로 질러가면 버스로 두 정류장 거리에 불과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걷는 것이 빠르겠다. 홍랑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지름길로 걷기 시작했다. 포근하지만 겨울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버스 타기를 포기한 학생 둘이서 홍랑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같은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다. 폐지를 모으는 노인이 수레에 빈 종이상자를 잔뜩 싣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고 멀리 금오산 정상에는 잔설이 희끗희끗 보이는 겨울의 일상적인 풍경 속으로 홍랑은 희석되었다.
12번 도로의 특이점은 즐거운 주유소가 있다는 점이다.
즐거운 주유소.
상호가 즐거운 주유소인데 오십 대 남자 사장이 주유소 입구에 작은 단상을 놓고 막춤을 춘다. 물론 음악에 맞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막춤이다. 오늘도 키가 작달막하고 배가 적당하게 나온 사장은 단상에 올라서서 막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가 들어오면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내려가 주유를 돕는다.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정말 즐거운 주유소다. 늘씬한 도우미도 아니고 작달막하고 배가 적당히 나온 사장이 막춤을 추는 주유소는 이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것마저도 12번 도로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주유소 입구에서 홍랑은 막춤을 추는 사장의 모습을 대수롭잖게 보고 지나쳤다. 즐거운 주유소 사장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음악에 맞추어 동작 때마다 그의 나온 배가 출렁거렸다. 얇은 티셔츠를 입었기에 그의 배가 출렁거리는 게 여실히 보였는데 곱게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춤이 아니라 그에게는 운동인지도 모른다.
즐거운 주유소를 지나서 얼마 걷지 않아서 약속한 중앙시장의 김가네 순대에 도착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늙은 시인인 선배가 먼저 와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셈이다.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
홍랑을 보자 인사를 생략하고 선배가 홍랑의 얼굴을 보고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뱉어낸 말이었다. 식당이 한산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홍랑은 빈 탁자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히말라야 설산의 호랑이를 생각하다가 떠올린 말이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지요. 시인은 굶어도 얻어먹지 않고.”
홍랑이 토를 달며 걸고넘어졌다. 시인은 가난하다. 홍랑 역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 그래서 만나면 비교적 음식값이 싼 집에서 만나고 대충 음식값을 염두에 두고 미리 약속한다. 홍랑은 그렇다. 음식값에 부담이 없어야 맛을 느낄 수가 있는 법이다. 비싼 집에 가서 음식값이 얼마나 나올까 생각하느라 맛을 못 느끼는 것보다 돼지국밥이 맛있고 마음이 편하다. 싸야 맛을 아는 혓바닥을 홍랑은 지닌 모양이다. 싸구려 입맛, 평생 반찬 투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아무거나 잘 먹는 습관을 지녔다. 홍랑은 못 먹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안 줘서 못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것이다. 싸구려 입맛,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개인적으로는 불행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실 그 노래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오늘은 내가 쏠까?”
시인은 얻어먹지 않는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던 모양인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습관이 된다. 친할수록 말을 골라서 해야 하는데, 생각하니 늦었다.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어요. 마음 상했어요?”
“아니, 내가 오늘 다른 손님을 하나 청했거든.”
“누가 오시기로 했어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류시인이 오기로 했지.”
누군지 대충 감을 잡았다. 말이 떨어지자 바로 문에 들어서는 이가 여류시인이었다. 아, 저 역동적인 지성미,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를 보고 홍랑이 먼저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언제나 웃음을 물고 사는 여류시인인데 이름은 서리다. 강 서리! 필명인지 본명인지 모르지만, 그녀를 만나면 항상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매일 미소를 머금고 다닐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언젠가 물었더니 서리의 대답은 긍정의 힘인데 연습거나 학습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서리를 가끔 만난다. 물론 늙은 시인인 선배와 술자리를 같이할 때이다. 선배와 여류시인은 문학 행사나 다른 자리에서 만나는지 모르지만 홍랑은 한 번도 따로 만난 적이 없다. 서리는 분명히 시인의 소개로 만났건만 지금은 만나면 홍랑과 말을 더 많이 하는 형편이다.
순댓집에 들어서는 차림새를 보니, 늙은 시인과 약속을 한 게 아니라 시장에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모양이다. 서리는 장바구니에 가득 장을 본 게 들어 있었다. 상당히 무거워 보여 장바구니를 받아주려고 홍랑이 냉큼 일어섰다. 일어서서 문 앞으로 다가가서 장바구니를 받으려 하자 서리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오늘의 술은 막걸리였다.
국밥 셋에 추가로 수육 한 접시를 시켰다. 돼지고기에 내장을 적당히 넣은 수육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먹음직스러웠다. 막걸리 안주로는 그만이다.
미숙한 정부에서 요구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위하여!
늙은 시인이 잔을 들고 건배 제의를 했다.
막걸리에서 서정이 나온다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항상 술잔 밑바닥에 들어앉은 모양이다.
위하여!
이구동성과 함께 막걸리가 든 잔 세 개가 허공으로 솟았다. 막걸리를 마시며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 그렇다. 선배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선심성 지원금을 국민에게 뿌렸다. 물론 세금이다. 갖가지 생색을 다 내는 미숙한 정부의 지원금을 선배는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 돈이 몇 번 나왔지만, 선배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 심정이었을까?
입에 넣어주고 등을 치면 뱉어내야 해!
곧 등을 칠 거야.
왜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느냐고 언젠가 물었더니 선배의 대답이었다. 그는 국민의 세금으로 표를 사는 매표행위라고 단언했다. 대선이 임박해서 그런 돈 풀기를 했다. 미숙한 정부의 얄팍한 술수다. 막걸리를 마시며 미숙한 정부에 대해 선배는 비방했다. 홍랑은 듣고만 있었다. 언젠가 술맛 떨어진다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선배는 서리 앞이라 그랬는지 미숙한 정부의 비방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리는 한마디도 거들지 않고 있었다.
보통 만나면 선배가 이야기하며 주제를 끌고 가고 서리가 맞장구를 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서리는 새초롬하게 앉아서 막걸리만 마시고 있었다. 홍랑은 술잔을 기울이며 힐끔힐끔 서리를 관찰하니 표정이 새초롬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선배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서리를 힐끔힐끔 관찰했다. 정확한 나이를 모르지만 아마도 서리는 홍랑보다 대여섯이 적은 오십 대 초반일 것이다. 인생을 덤덤한 눈으로 관조할 수 있는 나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게야. 내 눈은 못 속여.
홍랑은 서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를 짚어 보았다.
서리도 역시 선배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듯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선배의 이야기는 허공에 맴돌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선배는 눈치 없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번 정부에 어지간히 한이 맺힌 모양이다. 술잔을 들며 서리의 눈치를 살폈다. 서리의 눈치를 살피느라 술맛을 모르겠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선배의 이야기 중간에 홍랑이 서리에게 불쑥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무슨 일이에요?”
기습적인 질문에 서리가 움찔, 놀랐다. 그러자 서리는 대답을 못 하고 공허한 이야기를 하던 선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리를 넘어다보았다. 선배도 그러고 보니 서리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지니 서리는 꼭 다문,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홍랑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런 예감은 예고 없이 방어할 틈도 없이 여척없이 음습하게 밀려들어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죽었어.”
그 말을 뱉은 서리의 입술은 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홍랑을 바라보는데 볼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었어, 한 마디에 동작 그만, 선배도 젓가락을 쥔 채 굳었고 홍랑도 고기를 씹다가 굳었다. 뭐가 죽었는가? 홍랑은 순간적으로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서리는 남편 없이 혼자서 장애인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다. 거기까지는 들어서 아는 사실이다. 남편은 없다.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혼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들은 중증 장애인인데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서만 지낸다고 들었다. 밥도 먹여주고 대소변도 받아내는 모양이었다. 장애인 시설로 보내지 않고 집에서 직접 키우고 있는 모양인데, 아들 때문에 외국에는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시인이라고 언젠가 선배에게 들었다. 여류시인은 성당에 다니면서 성당의 경리와 잡무를 보고 얼마를 받아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그것도 선배에게 들은 얘기지만, 아마도 아들 때문에 회사나 다른 직장에 다닐 수가 없어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성당 일을 보고 있는 것으로 간주 된다.
누가? 뭐가 죽었어?
당연히 그렇게 물어야 하는데 선배도 홍랑도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 눈빛만 교차 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에 볼에는 눈물이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홍랑은 불현듯 킬리만자로의 산정에서 굶어서 얼어 죽은 표범의 사체가 눈에 어른거렸다. 그게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무겁고 어두운 침묵의 강을 건너서 입을 먼저 연 건 서리였다.
“미안해요. 기분 좋게 한잔 하시는데, 분위기를 망쳐서.”
그 말을 하며 여류시인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선배도 홍랑도 그녀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죽었어요. 갈 때가 되니까 갔겠지.”
여류시인이 그렇게 고백하듯이 말을 하고 웃음을 지었다. 홍랑은 그녀의 쓴웃음이 차갑게 여겨졌다.
“어쩌다가?”
마주 앉은 늙은 시인이 그제야 말문이 터였는지 그렇게 물었다.
서리는 눈물을 닦고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장애아들은 누워서만 지낸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누워서 지내는데 엎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팔과 고개를 못 쓰니까 엎드리면 숨을 못 쉰다는 것이다. 높은 침대가 아니고 두꺼운 요를 비스듬히 놓고 그 위에서 비스듬히 누워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데, 바다가 나오면 그렇게 좋아하는 눈치였다고 했다. 그날 밤에도 텔레비전으로 바다를 보는 걸 보고 시인은 옆에서 잤다고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바다를 한번 보여주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니 텔레비전은 혼자 지껄이고 있고 아들이 침대 옆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화들짝 놀라 아이를 일으키니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는 것이다.
질식사란 이야기다.
“아들은 숨을 못 쉬고 죽어가는데 어미란 년은 바로 옆에서 태평스레 자고 있었어요.”
자책하는 시인은 두 손으로 설움에 북받치는 듯 얼굴을 감쌌다.
이럴 때는 어떤 위로가 적절할까? 할 말이 궁했다.
늙은 시인은 그게 언제였냐고 물었다.
보름이 좀 넘었다고 했다. 아들은 열여섯 살이었는데, 그날 이발을 해서 인물이 달덩이 같았다고 하며 앞에 놓인 막걸릿잔을 들어 입을 살짝 축였다.
“연락하지, 혼자서 장례는 어떻게 치렀어요?”
역시 할 말이 궁했던 선배가 물었다.
성당에서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남동생이 와서, 화장해서 바다에 뿌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바다를 동경하고 바다에 한 번도 못 가 본 아이라서 바다로 돌아갔다고 하면서 그 아이는 바다의 자식이라 바다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서리가 울음을 참고 있는 표정이 안쓰럽게 보였다.
바다의 자식?
시인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홍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잔을 들었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어, 아니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말을 아끼며 술잔만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앉은 자리가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내 생의 몇 시일까?
홍랑은 늙은 시인이 하는 위로의 말을 들으며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서리의 아들은 막 햇살이 퍼질 무렵인데 바다로 돌아갔다. 남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덤덤할 수가 있을까?
홍랑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이가 들면 호기심과 더불어 분명 감흥도 줄어든다. 그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덤덤할 수가 있는 건 감흥이 줄어든 나이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서리는 아이를 바다로 보내고 처음 하는 외출이라고 했다. 집에서 나오기가 싫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고 하면서 갑자기 밤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밤바다? 어디?”
이야기를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던 선배가 잔을 내려놓고 반말로 물었다. 분명히 반말이었다.
“아이가 있는 그 바다.”
서리가 대답하는 도중에 일곱 시 부산행 기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시장은 바로 철로 옆이어서 기차가 지나가면 시장통 가게의 바닥이 들썩거린다. 온통 지축을 흔들어놓고 지나가는 소리에 대답을 잘 듣지 못했다.
“어디라고?”
기차가 지나가고 나서 선배가 재차 물었다.
“아이가 있는 바다에 가 보고 싶어요. 미치도록.”
차라리 확 울어버리지. 울음을 참고 있는 서리가 안쓰럽게 여겨져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이의 유골을 어느 바다에 뿌렸을까?
감포 앞바다라고 했다. 문무대왕 수중릉에서 가까운 곳이라고 거듭 얘기했다. 그곳에 미치도록 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감포 앞바다라면 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전부 술을 마셨다. 차는 집에 있지만, 운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난감했다. 서리가 이렇게 원하면 같이 가는 게 도리인데.
막걸리를 마시고 안주를 집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듣던 선배가 일어났다. 전화기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화장실을 가는 모양이었다. 시장은 네거리 저쪽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 이야기하면서 마신 막걸리 다섯 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홍랑은 서리의 눈을 보며 무슨 이야기든 하기가 거북해서 안주도 없이 연거푸 남은 막걸리 두 잔을 마셨다.
이 시간에 감포까지 갈 수가 있을까?
무슨 묘수는 없을까? 누구를 불러내서 도움을 청할까? 누가 적당할까? 아내에게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할까? 아니야. 아내는 초저녁잠이 많아서 곤란하다. 꼭 가야 한다. 그게 부조를 하는 일이다. 차라리 택시가 어떨까? 택시라고 하니 성주가 떠오른다. 성주는 홍랑의 고향 친구인데 이 도시에서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성주 전화번호가 있을 것이다. 적당한 인물이다. 택시비는 나중에 통장으로 송금해도 된다. 그런데 서리가 보는 앞에서, 전화를 할 수가 없다.
“잠깐만 전화 한 통 하고 올게요.”
서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기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순댓집 문 앞에서 성주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했다.
“홍랑이 웬일이야?”
거두절미하고 지금 운행 중인지 물으니 터미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감포에 좀 갈 일이 있는데 가능하냐고 물었는데, 감포? 그래 감포. 감포를 들먹이는데, 누가 옆구리를 찔렀다. 돌아보니 늙은 시인이었다. 선배는 오른쪽 손가락을 말아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해결되었어.”
늙은 시인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화장실을 갔던 게 아니고 차를 수배하러 갔던 모양이다.
“친구야, 내 상의 해서 전화 다시 할게.”
그렇게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요 앞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후배 알지? 그 친구가 아직 퇴근을 안 하고 사무실에 있더라구, 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
그 공인중개사는 한두 번 본 적이 있다. 잘됐네요. 그 말을 하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서리가 그사이에 막걸리를 한 병 더 시켜서 마개를 따고 있었다.
“차 편이 준비되었어. 밤바다에 갑시다.”
선배의 말에 서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며 힘이 실렸다. 그것을 홍랑은 똑똑히 보았다. 아, 저렇게 절실했구나. 의자에 다시 앉을 틈도 없이 선 채로 막걸리를 석 잔 따라서 쭈욱 들이켰다. 그리곤 바로 순댓집을 나섰다. 서리의 장바구니는 홍랑이 들었다.
시장 골목은 철도 굴다리에 다다라 끝이 난다.
굴다리를 건너가니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불을 훤히 켜놓고 있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해서 늙은 시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몇 마디를 하자 금세 사무실 불이 꺼지고 대머리 공인중개사가 외투를 걸치며 나왔다. 늙은 시인의 후배라는 공인중개사는 젊은 나이인데도 지독한 대머리다. 시쳇말로 주변머리도 없고 소갈머리도 없다. 이마가 뒤통수까지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 앞에 주차된 승용차에 올랐다. 선배가 조수석에 타고 서리와 홍랑이 뒷좌석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가려면 12번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대머리는 차를 몰아 바로 즐거운 주유소로 들어갔다.
감포까지 갔다가 오려면 기름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즐거운 주유소.
불이 훤히 켜진 주유소, 즐거운 주유소의 사장은 그때까지 단상에서 막춤을 추고 있었다. 차가 들어가서 냉큼 내려와서 주유하는 걸 도와주었다. 주유가 끝나고 홍랑이 계산하겠다고 뒷좌석에서 운전석으로 카드를 내밀었지만, 대머리는 받지 않았다. 주유소 사장은 차 꽁무니에 대고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바로 출발이다.
“갔다가 오면 자정이 넘겠네.”
한참을 가다가 차량에 달린 시계를 보았는지 대머리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어쩌면 하품을 뱉으며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
선배가 그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그때부터 차에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도 자는 게 아니었지만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다. 누가 침묵을 강요한 게 아닌데 그랬다. 하긴 바다로 간 아이를 보러 가는데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홍랑은 생각했다. 타인의 기분을 살피며 뭐라고 떠드는 것 보다, 무거운 침묵이 오히려 편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좀 붐볐지만 차가 막히는 일은 없었다. 홍랑은 잠을 쫓기 위해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경주를 거쳐서 고개를 넘어 감은사지 앞을 지나는데 서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앞에 삼거리에 감포 쪽으로 올라가자고, 운전대를 잡은 대머리에게 하는 말인지 늙은 시인에게 하는 말인지 그렇게 말했다.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그 바다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고충 위에 명당이 있다고 했는데 홍랑은 수중릉 위에 뿌렸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서리가 가르쳐 준 곳은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다음 골짜기의 해변이었다. 도롯가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해변에는 모래가 아닌 자갈이 깔린 해수욕장이었다. 바다는 컴컴하고 황량한 겨울바람에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어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있는 바다가 이곳이야?”
늙은 시인의 물음에 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필요 없다. 서리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두면 된다.
남편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서리는 자식을 바다에 묻은 모양이라고 홍랑은 생각하며 자갈밭으로 내려가 물가의 자갈 위에 앉았다. 엉덩이에 와닿는 감촉, 자갈이 상당히 차가웠다. 짜르르, 물결링 몰려올 때마다 자갈이 같이 굴러왔다가 밀려갔다.
겨울 밤바다에 오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홍랑이 자리를 잡고 앉자 늙은 시인도 대머리도 옆에 앉았다. 다만 서리는 조용히 물가를 거닐고 있었다.
“달이 어디 오입하러 갔나? 보이질 않네!”
홍랑 옆에 앉은 늙은 시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누구도 웃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 하늘에는 달이 없었다. 컴컴한 바다였다. 서리는 자갈밭 끝까지 깠다가 돌아오곤 했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어둠이 눈에 익었다. 서리가 자갈밭 끝까지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자갈밭에 앉은 늙은 시인은 뜬금없이 중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중국의 어는 오지, 아직도 모계사회가 형성된 마을을 찾아서 부족장 할머니와 자고 싶다고 했다. 홍랑은 그 말을 들으며 저 멀리 있는 서리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 그 마을은 선배님 것이네.”
대머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런데 여류시인, 서리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바닷가를 거닐던 서리가 사라진 것이었다.
“서리가 보이지 않는다.”
홍랑이 나직하고 은밀하게 말하며 일어섰다.
늙은 시인도 대머리도 벌떡 일어났다. 약속이나 한 듯이 셋은 해안 저 끝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뛰어가서 보니 서리가 신발만 벗어놓고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나 깊은 곳인지 서리의 머리만 보였다. 부를 사이도 없이 홍랑이 신발을 급하게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첨벙첨벙, 물은 차가운가? 모르겠다. 차갑다는 걸 느끼지 못할 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 서리의 머리만 보이길래 꽤 깊은 곳인 줄 알았더니 겨우 허벅지까지 오는 깊이였다. 서리는 물속에 앉아 있었다.
“뭐 하는 짓이에요?”
“아이가 불러서요.”
“정신 차리세요.”
예상과 달리 서리는 우는 게 아니었다. 여류시인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쉿, 이라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뭔가?
“가만히 들어와요.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요. 요기 앉으면 따뜻해요.”
서리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이의 노래라? 거역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홍랑도 서리 옆에 목만 내놓고 앉았다. 바다 밑도 자갈밭이었다. 희한하게 바닷물이 차갑지 않았다.
“아이의 노래가 들리나요?”
서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늙은 시인이 아까 말했어요.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고.”
“그렇죠. 시인은 자식이 죽어도 울지 않고요.”
“아이를 이 바다로 보내고 한 번도 울지 않았어요?”
홍랑이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렇다고 했다. 아이가 죽고 한 번도 울지 않은 비정한 어머니라고 했다.
“야! 무슨 일이야?”
자갈밭에서 늙은 시인이 소리쳤다.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자갈밭에서 늙은 시인이 첨벙첨벙, 옷을 입은 채, 겨울 바다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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