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음대들은 시끄럽다는 이유로 학교 구석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음대는 바로 뒤에 산이 있었고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눅눅한 곳이었습니다.
건물도 오래된 건물이라 아침에도 불이 꺼져있으면 으스스 했죠.
저희 과는 작곡 전공으로 작곡 전공 과방이 있는 층에는 성악, 피아노 전공생들을 위한 연습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연습실과 과방 문에는 좁고 세로로 길긴 유리창이 있구요.
그리고 작곡 전공은 다른 전공보다 실기 마감이 1~2주 더 빨라 밤을 새는 릴레이의 첫 타자를 끊는 전공이었습니다.
3학년 2학기, 원래는 외박이 안 됐는데 쓰고있던 학기 제출 곡을 보니 답이 안 나와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처음으로 외박을 해서 밤을 샜던 4일 중 첫째 날과 셋째 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졸업한지 꽤 돼서 대화는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그리고 이틀 합쳐진 거라 좀 길어요)
첫째 날
저와 동기 셋이서 밤을 새고 있었습니다.
정말 졸리면 30분 자고 서로 깨워주며 밤을 새고 있었어요.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무것도 안 들리던 연습실에서 갑자기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솔직히 이 때도 누가 12시가 넘어서 연습을 하러 와요...
실기 평가도 3주 정도 남았을텐데...
급하지 않은데...
말이 안 돼고, 무서워서
'놀다가 이제 연습하나?'
하고 억지로 괜찮다... 괜찮다...합리화를 한 후
그냥 이어폰을 계속 귀에 꼽고 곡을 썼습니다.
드뷔시 기쁨의 섬을 연습하는 것 같았는데
https://youtu.be/OrGMdjmgUPo
이 곡에 트릴(두 개 음을 빠르게 연속으로 치는 것)이 많아 까다롭거든요.
초반에 트릴을 하다가 자꾸 꼬여서 도#을 계속 쎄게 치는 겁니다.
'아이고... 스트레스 받겠다' 싶었는데
틀렸던 부분 뒤로 넘어가지도 않고 계속 도#을
땅!... 땅!... 땅!...
치는 겁니다.
원래 그렇게 자꾸 틀리면 화를 내며 몇 번 치다가 넘기는데
한 1분동안 계속 그러는 겁니다.
모두 이상다고 느끼고 소름이 돋았는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과방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피아노 소리가 뚝 멈췄습니다.
그 때 한 동기가 침묵을 깨고
"야. 우리 차라리 보고 올래?"
라며 입을 땠습니다.
진짜 그냥 연습하는 친구라면 차라리 보고 가볍게 '야 무서워 죽는줄!ㅋㅋㅋ'하며 같이 수다도 좀 떨고, 빨리 털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또 다시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고
또 다시 도#을 연속해서
땅!... 땅!... 땅!...
하며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빨리 곡 써야하는데 짜증, 무서움, 여기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합쳐져 불이 꺼져있는 연습실 복도 쪽으로 서로 손을 꼭 잡고, 핸드폰 라이트를 켜서 갔고, 연습실 복도에 와보니 끝에서 두 번째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무서워서 조심조심 방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또 초반부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소리가 멈췄습니다.
이때 뭔가 모를 섬짓한 느낌에 그냥 돌아가자고 친구를 잡아 끌었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손을 놓더니 불이 새어나오는 방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겁니다.
너무 놀라 남겨진 둘이 어버버 거렸는데
친구가 방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흘끗 뭘 보더니 저희 쪽으로 소리를 죽이고 냅다 달려와서 가자고 끌고 연습실 복도 시작 점으로 오더니 연습실 대여 시간을 적는 화이트보드를 가르켰습니다.
102 피아노 줄이
전체적으로 느슨함
심각함.
빨리 재조율 요망.
(느슨하면 음이 제 음으로 안 납니다.)
"저 방 102호야"
그 친구는 아침에 봤던 연습실 대관 게시판이 생각나서 방 호수를 확인하러 혼자 걸어간 거였고, 저희는 소리를 지르거나 놀랄 겨를도 없이 얘기를 듣자마자 과방으로 뛰어 돌아와 노트북과 짐을 챙기고 음대를 뛰쳐나와 결국 40분을 걸어 스터디 카페로 가서 밤을 샜습니다.
그리고 저희 셋은
"고쳐졌는데 괜히 우리가 오버한 거 아니야?"
라고 했고, 워낙 무서웠던지라 그랬던 것 같다. 맞다. 하며
아침에 수업 때문에 음대에 왔을 때 다 같이 102호에 들어가 그 방의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 피아노 줄은 이곳 저곳이 늘어져있었고, 특히 도#은 심하게 늘어져 있어 도#을 쳐보니 제대로 된 소리도 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셋째 날
둘째 날은 스터디 카페에서 모여 곡을 썼는데
앞에서 말했듯 학교 밖으로 나가려면 40분이 걸리기도 하고, 서로 깨워주고, 잠 깨려고 헛소리도 해야하고, 아무래도 주변이 모두 공부하는 분위기다보니 잠이 너무 잘 와서
설마 또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어?
라는 마음으로
첫째 날에 같이 있던 동기 한 명과 남자 동기 한 명과 셋이서 다시 과방에서 밤을 새려고 했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 남자 동기에게 말해줬습니다.
이 친구가 마당발에, 학교에 오래 계셨던 조교님과도 친했는데
이 친구가 말하길 밤 샜던 애들한테 종종 듣는 얘기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조율을 해도 몇주 뒤면 다시 조율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며 그 방을 창고방으로 쓰자는 학생회 안건이 있었다고, 그 외에도 창고방으로 쓰자는 말이 나온 이유를 조교님께서 이 친구에게 얘기 해줬다는 겁니다.
조교님께서 나이가 좀 있으신데 그 분이 학부생일때 피아노 전공 신입생이 술에 취해서 택시타고 집에 가다가 실종 됐고 결국 죽어서 발견이 됐다고
학교에 오랫동안 계셨던 분들은 알던 얘기고
그동안 피아노도 교체해보고, 사비 들여 제사도 지내보고 해봤다고 합니다. 근데 꼭 몇달에 한 두 번씩 얘기가 들려오고 줄도 저렇게 잘 늘어지고 나간다며 이번에 창고방으로 쓰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소름돋는다고, 시끄럽고 그냥 밥이나 먹자고 했죠.
속으로는 아주 오들오들 떨면서요.
2시쯤 됐을까
모든 방 문에 세로로 좁고 길게 창이 나 있다고 했잖아요.
거기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겁니다.
가끔 술 마시던 과 사람들이 과방에서 자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에 문을 쳐다봤죠.
근데 아무도 없길래 다시 곡을 쓰고 있는데 또 인기척이 느껴져 밖을 보니 또 아무도 없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봤을 때 사람의 형체가 살짝 보였습니다.
이번엔 저희 셋 다 문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야, 너도 봤어?"
라고 물었고 아마 저희 다 느낀 듯 했습니다.
근데 음대 사람이 워낙 적어서
친하지 않은 사이라도 멀리서 보면 '어 음대 사람이다' 라고 알 정도였고
마당발 친구가 있어서 혹시라도 저희가 모른다면 얘는 알았을 텐데
그 친구가 먼저
"누구?"라고 저희에게 물어보고
"니가 모르는 사람이면 우리도 몰라"
라고 대답했죠...
음악 대학 학관은 저녁 6시 이후엔 꼭 학생증을 찍고 들어와야해서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었으며
우리가 모르는 음대생이 여기에 기웃거릴 일은 없었던 거죠.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라고 '허허 우리가 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웃기다'
라며 멍청한 합리화를 또 했죠.
다시 곡을 쓰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또 보니 단발머리를 한 키가 작은 사람이 얼굴은 거의 그 단발 머리로 가려져서는 창으로 계속 빼꼼 빼꼼 쳐다보는 거였습니다.
키가 작아서 성인이라기보단 초등학생? 중학생에 가까워 보였어요.
너무 놀라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ㄴ...누구세요!"라고 물으니까
문을 두 번 쾅!쾅! 치고 웃으며 뛰어가는 소리가 복도에 울리는 겁니다.
저희는 이번에도 순식간에 노트북을 접고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T바 wf하지마!!!!!!!!' '이런 w같은 학교!!!!!!!' '꺼져!!!!!!' 등등 욕을 욕을 하며 뛰쳐나와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와 또 스터디 카페로 도망쳤고
그 다음 날도 밤을 샜지만 절대로 과방에서 새진 않았습니다.
음대에 귀신이 많다고는 하지만
왜 하필, 해봤자 몇 달에 한 두 번 봤다는 얘기가 나오는 귀신은, 왜 하필...ㅠ 제가 로망을 가지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밤을 샐 때 두 번이나 나타난 걸까요......
로망이고 뭐고 다 사라졌습니다...
첫댓글 헉 음대에 귀신이 많군요... 첨 들은 얘긴데 개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