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경 근처의 한 마을에서 시작되는 피난민들의 탈출 이야기. 남을 위한 헌신의 아름다움이란…….
이웃을 위한 희생이나 헌신이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서 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희생이나 헌신은 고귀하기 마련이다. 뿌려진 씨는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이웃을 위한 헌신적 사랑의 경우, 그 열매는 더욱 아름답게 맺히게 되며, 흔히 그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그 씨를 뿌린 사람일 경우가 많다.
스페인 국경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한 마을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마을의 하숙집과 여관 등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다 독일 경찰로부터 피해 불란서로 도망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피난민들 중에 네 살쯤 되었을까 말까 하는 어린 딸을 안고 있는 한 젊은 여인이 있었다. 다른 모든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의 유일한 소망도 국경을 무사히 넘어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안전하게 미국으로 피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게쉬타포의 추적을 받아 만약 붙잡히게 된다면 수용소에 끌려가게 될 것이며, 필경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이미 이 마을까지 수백 마일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 여인과 그 아이는 거의 기진맥진, 자유를 눈앞에 두고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스페인 국경의 경비대원들은 퍽 까다로웠다. 그들은 피난민들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선다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비밀경찰들이 곧 나타나 하숙집이나 여관에 머물고 있는 낯선 이들을 체포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그 젊은 여인은 두려움 가운데서 딸을 가슴에 힘껏 안으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국경을 넘어 자유를 맛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우연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하간 그 다음 날, 이 여인의 방에 특별한 사명을 띠고 온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나는 지하조직으로부터 파견된 안내원입니다. 내 임무는 오늘 밤 피난민의 일부를 이끌고 산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길도 험하거니와, 아주 힘들고 위험한 작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날 밤, 온 마을이 잠들어 적막에 빠져 들어갔을 때, 그 여인과 딸은 안내원이 미리 지시해 준 산중턱까지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어린아이가 먼저 지쳐버렸으므로, 여인이 그 아이를 업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 여인은 거기에 미리 와서 대기 중에 있던 몇 사람의 피난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다 산을 넘어 평화와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다. 지도자는 그 피난민들을 향해, 이 작전이 매우 힘들고 위험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자기의 지시대로만 하라고 말했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이 모녀를 환영했고, 자기들이 어린아이를 업겠다고 자원해 나섰다. 그들은 곧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이 점점 정상에 가까워 갈수록 힘에 겨워 기진맥진, 거의 한 발자국도 더 옮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중 제일 나이 먹고 약한 남자 어른 한 사람이 땅 위에 주저앉아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당신네들이나 가도록 하시오” 하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누워 버렸다.
그러나 지도자는 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소!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도와야만 합니다. 당신한테 남아 있는 힘은 우리 모두의 것이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약간의 힘을 가지고라도 당신이 죽어 버릴 때까지는 여인의 아이를 업어 나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오!”
일행 중 나이 먹은 세 사람의 남자가 한 사람씩 차례로 피난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그때마다 지도자는 남은 힘을 모아서 어린아이를 업어 날라야 된다고 명령을 내리곤 했다. 여명이 밝아올 때쯤, 그들은 드디어 정상을 넘어 국경을 지나 다른 나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부축해 주던 일행은 모두가 다 무사했다.
여인의 딸을 업어 나르던 세 사람의 남자들은 새로운 힘, 새로운 생명을 찾았고, 결국 새로운 자유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남을 돕고 이웃을 위해 현신하는 일을 통해 새로운 힘과 새로운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여기에 인생의 수수께끼를 위한 위대한 해답이 있다.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