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니 위아르 저자(글) · 이세진 번역
필로소픽 · 2023년 10월 31일
슈퍼맨이 프로이트의 내담자가 된다면?
“그는 부모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뤄낼 것이다. 그는 아버지 대신 위대한 인물, 영웅이 될 것이다.”
슈퍼맨의 도입부에 딱 들어맞을 문장이지만, 프로이트가 자아 이상을 설명하면서 쓴 문장이다. 슈퍼맨과 배트맨 등 초기 슈퍼히어로물의 개척자들이 프로이트처럼 유대인이라는 우연(?)을 비롯해서, 정신분석과 슈퍼히어로물은 비슷한 점이 있다. 슈퍼히어로물이 자기 자신을 넘는 한 인물의 서사라면 정신분석은 개인을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정신분석의 목표가 우리 내면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라면 슈퍼히어로의 목표는 자신의 천형과 계속 맞서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나르키소스, 오이디푸스 등 그리스 신화에서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정립했다. 저자는 이에 착안해 현대가 만든 신화, 슈퍼히어로물에서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설명한다.
정신분석을 알면 슈퍼히어로물이 더 재미있다
영화 배트맨을 설명할 때 정신분석은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헐리우드의 창작자들은 정신분석을 참조해서 작품을 만든다.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을 보자. 지구인 아버지 조너선 켄트는 클라크 켄트에게 아직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가 아니라며 능력을 감추라고 자제시킨다. 그리고 기꺼이 토네이도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크립톤인 아버지 조-엘은 고독의 요새를 찾아온 아들에게 최후의 크립톤인, 슈퍼맨으로서 모범을 보여 지구인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라며 부추긴다. 클라크 켄트가 조너선 켄트의 유지가 아닌 조-엘의 유지를 따라 슈퍼맨의 길을 가는 것은 필연일까? 저자는 나르시스와 자아 이상으로 이를 설명한다. 넘볼 수 없는 힘에 고귀한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 클라크 켄트는 나르시시즘이 강화된다. 그에게 처음 만나는 친부는 모든 것을 물려주며 자신을 사랑해준 이상적인 존재가 된다. 그래서 슈퍼맨은 조-엘의 이상을 기꺼이 자신의 자아 이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슈퍼히어로물로 정신분석을 읽으면 쉽고 재밌다
저자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헐크 등 다양한 슈퍼히어로의 신경증을 분석하고 이것이 어떻게 그들을 슈퍼히어로로 거듭나게 하는지 설명한다. 또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삼위일체, 이드, 자아, 초자아를 비롯해 자아 이상, 라캉의 주이상스 등 각종 어려운 개념을 슈퍼히어로의 서사와 캐릭터로 설명한다. 독자는 친숙한 슈퍼히어로물을 통해 어렵고 멀게 느껴졌던 정신분석의 개념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원더우먼, 스칼렛 위치 등 슈퍼히로인과 여성성, 엑스맨의 소수자와 세대갈등 등 다양한 슈퍼히어로물 분석을 통해 현대에 맞는 정신분석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저항하는 한 매일매일 슈퍼히어로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건강한 인간이란 생명체가 불안정한 균형에 점근선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 부단히 싸우고 있는 존재다. 그 균형은 언제고 무너지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우리가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나가려 끈질긴 싸움을 하는 한, 우리는 슈퍼히어로와 다를 바가 없다. 저자는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되는지 알려준다. 우리의 저항과 생(삶) 충동을 일상 속에서 승화하여 그들에게 어떤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라고 말한다. “슈퍼히어로들의 자본상품화와 게임 캐릭터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이(은) 언제나 혼란을 마주하는 캐릭터들로서 전복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은 곧 우리에게 던지는 말과도 같다. 혼란을 마주하고 끝없이 저항해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이 책은 우리의 삶을 격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