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 아님에도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 뵐 때마다 밀려오는 큰 부끄러움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반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늘 부담이요 민폐로 각인된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듣고, 규칙적인 성사 생활과 기도 안에 살아가는 저희 같은 사제나 수도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뒷골이 당겨옵니다. 이걸 지금 받아야 해, 말아야 해, 망설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백인대장은 정통 신앙을 자랑하는 유다인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당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행동, 언어와 믿음은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던지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열두 사도들도 받지 못하던 칭찬을 그가 받습니다. BR>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마음에 쏙 든 이유가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치유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물건처럼 매매가 되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백인 대장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품성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 예수님을 감탄하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백인대장의 겸손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위해 걸어가고 계실 때, 그는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백인대장이 얼마나 말을 예쁘게 하는지?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뿐만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태도까지 겸비했으니, 극찬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보아하니 백인 대장은 이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완벽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 죽어가는 자신의 노예를 반드시 치유시켜주실 능력을 지닌 분임을 확신한 강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세례받은 세월이 길다 해서 절대 신앙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옷이 결코 예수님의 칭찬을 불러오는 표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청이 나를 위한 것보다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청이 되어야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의 건설 같은 큰 것이어야겠습니다.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