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눈높이 외면한 ‘와인바 조카’ 해명에 역풍
박지원에 7000만원짜리 시계 30개 자랑 전력도
“나도 고모한테 전화나 한번 걸어봐야 겠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갑자기 고모 안부를 묻겠다는 사람이 여기저기 보인다. 조카 등 친인척 이름으로 목포의 적산가옥(일제 때 일본식 주택) 10여 채를 무더기 구매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덕분이다. 그는 세간의 투기의혹을 부인하면서 “경리단길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던 조카가 굉장히 고달프게 살고 있어서 목포 집 사라고 1억원을 증여해줬다”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경리단길에서 와인바를 운영한 조카의 경제력을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만한 능력이 안 되는 고달픈 삶’으로 표현한 것도 국민들 눈높이와 한참 거리가 멀지만, 자식도 아닌 조카에게 아무 조건없이 집 사라고 큰돈을 줬다고 하니 이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해명이 되기는커녕 경제위기에 취업난으로 마음고생 심한 청년들 상처에 소금 뿌린 격이 됐다.
투기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남의 마음과 형편을 살피는 최소한의 ‘눈치’조차 없어 빚어진 이번 설화(舌禍) 아닌 설화는 돌이켜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2016년 8월 한 언론 인터뷰에선 “내가 입으니 다 명품같이 보이지만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는 2만3000원, 바지 8만원, 재킷 25만원”이라며 서민 코스프레를 했다. 하지만 돈과 관련해 유독 뒤떨어지는 현실감각과 눈치 없는 언행은 진작부터 논란을 일으켜왔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 시절인 2015년 8월 불거진 명품시계 논란이 대표적이다.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당시 손 의원을 만난 후 페이스북에 “(손혜원은) 통영시와 일하며 나전칠기에 매료돼 70억원을 구매해 (본인) 소유 빌딩에 개인 박물관을 갖고 있다. 차고 있는 시계가 7000만원 짜리. 시계 컬렉터로 30여 개 가지고 있다니 20억원?”이라고 칭찬인지 디스(비난)인지 알쏭달쏭한 글을 올렸다. 논란이 되자 박 의원은 다음날 “재미있게 졸필을 쓰다가 과했다”고 했고, 손 의원 본인도 “여러 개 갖고 있던 명품 시계를 거의 작품으로 바꿔 이제는 결혼시계만 남았다”며 해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그 발언이 오간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듬해 총선 당시 맞붙었던 김철 국민의당 후보(현 민주평화당 마포을 위원장)가 TV토론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손 의원은 구체적 해명없이 얼버무렸다. 김 위원장은 “이후 손 의원이 선관위에 허위사실 유포로 신고했으나 무혐의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박 의원 페이스북대로라면 작품과 시계값만 90억원에 달하지만 손 의원은 골동품 28억원, 롤렉스 2개와 불가리 시계 1개를 합한 7100만원 등 45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축소 신고한 게 아니라면 중진 정치인을 앞에 두고 사치품 자랑하느라 허언을 날릴 정도로 눈치 없는 행태를 보인 셈이다.
이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남에게는 눈치 없다며 줄곧 타박을 일삼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 “처음부터 눈치가 없었던 것”이라고 몰아부쳤다. 2017년 9월엔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 인준안 표결에 반대해 피켓시위 중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눈치도 감각도 없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을 비판한 나경원 의원에게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일찍 출세한 분들의 특징은 눈치 없고 언제나 자기만 옳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비단 돈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눈치 없이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언행은 사실 손 의원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측근인 차은택씨의 벗거진 머리가 드러난 검찰 호송 사진을 보고는 SNS에 “차라리 다 밀고 와야지”라고 조롱했다. 국보급 투수였던 선동렬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모욕을 줘 결국 감독직을 내놓게 만들었다. 가장 최근엔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개입과 무리한 국채 발행을 고발한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에게 “나쁜 머리를 쓰며 위인인 척 한다. 단시간에 큰돈 벌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도박꾼이 모든 것을 거는 것 같다”는 막말로 ‘국민 밉상’ 반열에 오를 만큼 공분을 샀다. 남의 가슴에 박은 이런 대못들이 지금은 부메랑처럼 본인에게 돌아오고 있다.
손 의원은 2015년 12월 “문재인 대표 등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보고 당명 개정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권력 앞에 주눅들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하겠다는 다짐인 줄 알았더니 눈치없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눈치야말로 정치인은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사회생활의 기술 아닌가. 맥락을 파악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 능력이 눈치로 표출되는 것이니 말이다.
손 의원은 속된 말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라는 최소한의 눈치도 없이 막말을 일삼은 대가를 이제서야 혹독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