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시고 열납하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온전한 말씀, 전적인 말씀의 신앙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고 심히 당연한 것으로 그러한 진리라는 것부터도 그 자체가 말씀인 것이지만 영이라는 것도 그 본질은 말씀인 것이고,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모든 예배 가운데 순간순간 실제와 감동과 경험과 성취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예배를 받으시는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예배를 위해 순간순간마다,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께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그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연결되며 경배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예배 가운데 있어서의 모든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것인데 진정 그러한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특히 예배에 있어서야 말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가 아니실 수 없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특히 모든 진정한 예배의 자리마다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예배의 주요 순서 및 구성 요소인 성경 교독이나 설교도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기도도 말씀이신 하나님께 말씀대로, 또는 말씀을 위해 구하고 말씀 그대로 열납되며 누리고 성취됨이 기도의 실제이자 근본이고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만일 그 누구라도 그러한 말씀이 아니라 정욕이나 자기 소견으로 구하면 기도일 수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응답 또한 불가한 것이며, 찬송 또한 그 가사에서부터 해서 하나하나 모든 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 직접적이든 고백적이든 체험적이든 단 하나라도 별개이거나 동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봉헌도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말씀 그대로 전심으로 올려 드릴 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 속에서의 모든 봉사들도 전적으로 말씀대로의 섬김이어야 하는 것이고, 교제도 말씀에 있어서의 가장 핵심이자 근간인 사랑의 나눔과 실천인 것으로..
잘 통찰해 보면 말씀이신 하나님께 가장 온전한 말씀, 전적인 말씀의 신앙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말씀 그 자체이거나 말씀과 직결된 방법들이 예배에 있어서의 모든 구성과 요소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앞에 선 목회자나 항존 직분자들, 순서자들, 봉사자들 등에 있어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집중할 수 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고로 우선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본이나 도구나 통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로마서 12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꼭 교회의 예배당이나 가정의 예배의 자리나 집중적인 경배의 모임 등이 아니라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 영적인 예배, 산 제물 및 산 제사와 같은 예배 또한 어떤 식으로든, 어떻게 해서든 본질적으로는 온전한 말씀, 전적인 말씀의 신앙이 될 때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 속에서도 주일 예배 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그에 합당한 정도의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열납과 은혜들, 복과 역사들 등이 작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구주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러한 예배에 있어서의 말씀과 기도와 찬미 등 모든 순서들에 있어서, 모든 상황 상황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 게다가 목회자 등 여러 순서 맡은 자들, 또한 여러 모양으로 섬기고 준비하며 봉사하는 자들에 있어서, 더 나아가 그 예배에 참석한 회중들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그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자기 소견들, 불신앙들, 염려들, 온갖 잡생각들 등과 매 순간 싸우고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혹 범한 죄악들이 있다면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킴과 함께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참으로 모든 순서들과 순간들과 심령들에 있어 오직 말씀, 참으로 온전하고 전적인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만일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 그러한 예배의 자리야 말로 가장 강력하고 집중적이며 복이 될 수 있는 말씀의 복합체이자 절정일 수 있는 곳이자 시간인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영광을 거두시는 것인데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면서 임재하시고 영광 거두심과 함께 강렬하게 역사하심으로 인해 사람들이 할 수 없고 세상이 짐작도 못할 하늘의 것들, 일들로,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역사들로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생생하고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4:23~2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5월 21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