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51〉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이용악, 1914~1971)
나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아모것두 바라볼 수 없다만
너의 가슴은 얼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다른 한 줄 너의 흐름이 쉬지 않고
바다로 가야 할 곳으로 흘러 내리고 있음을
지금 차는 차대로 달리고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 건너 벌판엔
나의 젊은 넋이
무엇인가 기대리는 듯 얼어붙은 듯 섰으니
욕된 운명은 밤 우에 밤을 마련할 뿐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 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칠다 길은 멀다.
길이 마음의 눈은 덮어 줄
검은 날개는 없느냐.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북간도로 간다는 강원도치와 마주 앉은
나는 울 줄을 몰라 외롭다.
- 1938년 시집 <낡은 집> (삼문사)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도 두만강에 대해서는 매우 친숙할 것입니다. 아마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에 발표된 유명한 대중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이 지금도 심심찮게 TV를 통해 흘러 나오기 때문이겠지요.
총 547Km의 길이를 가진 두만강은, 백두산 동쪽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오랜 세월 우리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보는 두만강은 의외로 강폭이 적고 단출하더군요. 그건 압록강 상류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요.
이 詩는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과 대화하는 형식을 취해, 일제 강점기 시절 잃어버린 조국에서 유․이민의 욕된 운명에 대한 참담한 심정과 희망을 서술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는 사람은, 곧 실제 그런 체험을 한 시인 이용악 자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얼어붙은 두만강 다리를 건너가면서 민족의 욕된 운명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만강을 바라보며,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증거해 주는 존재이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바다라는 희망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두만강처럼 희망을 기원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이 詩는, 조국을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는 한 젊은이의 비탄감을 통해, 민족이 처한 절망적 현실 앞에서 괴롭지만 절망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Choi.
첫댓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시대의 두만강을 달리면서 우리 땅을 우리가 죄인처럼 달려야 하는 처절한 기분을 읊은 시라서 마음이 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