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절제
효종8년(1657년) 5월 5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은 분노의 절제가 중요함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전하께서는 남달리 총명하시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남달리 총명하면 아랫사람을 경시하는 병통이 있으며, 기쁘거나 노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상벌에서 당연한 원칙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이 날로 전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아래와 같이 고요한 마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제어할 것을 요구한다.
『고요한 마음에는 분노가 없습니다. 분한 감정을 참는 것을 남에게 주는 일이라거나 양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먼저 나 자신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기 위한 생활의 기술입니다. 내가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내 자신에게나 남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때의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것은 남을 해칠 뿐 아니라 내 자신의 뼈와 살을 찌르게 됩니다. 울화가 치밀어도 참으면 달리는 마차를 제어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평안과 고요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분노하여 언제나 원한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슬기로운 자는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는 분노를 버릴 줄 압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분노를 끊으면 걱정이 없어지고 온 밤 내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마음속에 있는 분노부터 없애십시오. 분노가 없어진다면 그 마음속에 절로 편안이 고이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참아내기 어려운 일들 수 없이 많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는 더욱 참아내기 힘들지요. 그걸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자신이 더 아프게 됩니다. 무작정 속으로 삭히면서 참아내기만 하는 것은 속에 병이 들게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가지려 노력하면 조금씩 풀어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평안을 얻으리니” 이는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품성을 기르는 것이 분노를 절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는 만큼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 보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건대 인간의 감정 중 제일 절제하기 어려운 감정이 분노일 것이니, 분노를 절제하려면 각별한 공부가 요구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에게 분노하였듯이, 바리새인 같은 위선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극심한 분노의 말씀을 하였듯이 분노도 하나의 강력한 의사표시인 만큼 절박한 경우에 효과적인 구제책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분노를 하나의 구제책으로 삼는 것은 매우 신중하여야 하며, 인륜도의의 실현이나 정의의 실천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수불가결할 때만 분노의 방법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2024. 8.15.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