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風樹之嘆) 과 두자춘 (杜子春)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고사(故事)는 어느날 공자가 길을 가다가 울고 있는 우구자(虞丘子)라는 사람을 만나 까닭을 물은즉 우구자는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고 대답하는데서 나온 뒤늦은 불효(不孝)의 회한(悔恨)을 뜻하는 말이다.
「충·효(忠·孝)」를 율법(律法)의 근간(根幹)으로 한 주자학(朱子學)은 경향(京鄕) 처처(處處)에 「절효정문(節孝旌門)」을 세워 왕권(王權) 강화와 기득권자(旣得權者)들의 체제(體制) 수호(守護)의 방편(方便)으로 삼았다.
그 여랑(餘浪)이 궁벽(窮僻)한 합정리에 까지 미치여 동구(洞口)에 효자(孝子) 정문(旌門)이 있었는데 「백제 역사 재현 단지(百濟歷史再現團地)」건설(建設)이라는 대역사(大役事)에 밀려 뒷산이 자취도 없이 허물어지는 바람에 어느 곳으로 더부살이 갔는지 모르겠다.
사연(事緣)을 들자면 철종(哲宗)년간인가 연대는 가물거리는데 동지·섣달 설한풍(雪寒風)에 「딸기」가 먹고 싶다는 노모(老母)의 성화에 아들은 마을의 산야를 훑어 다니던 중에 동산 자락에서 뜻밖에 눈덩이 속에 영글어 있는 “―새 빨간 산딸기”를 구했다.
유사한 이야기로 한겨울에 죽순(竹筍)을 구하여 부모님께 봉양(奉養)하였다는 맹종동순(孟宗冬筍)이나 병석(病席)의 노모(老母)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깨니 잉어가 튀어 올라옴에 갖다가 드렸다는 왕상리어(王祥鯉魚)의 고사(故事)가 회자(膾炙)되는데 모두가 지극한 효성(孝誠)이 천지신명(天地神明)을 감동(感動)시켜 기적(奇績)을 일으켰다는 교훈깜이리라.
연(緣)으로 초동(樵童)시절에는 이 「정문(旌門)」으로 하여 애꿎게도 우리 또래들은 “불효(不孝) ”란 지청구를 달고 다녀야 했었는데 「전통문화 대학(傳統文化大學)」의 웅위(雄威)한 모습에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정문(旌門)」은 그 「전통(傳統)」의 바톤마저 넘겨주고 「명퇴(名退)」당하였음에 감회(感懷)가 남다르다.
퇴색(退色)내지 도착(倒錯)되어 가는 「전통(傳統)」에 대한 회귀(回歸)와 향수(鄕愁)로 해서「杜子春(とししゅん)」을 번역(飜譯)하는데 이마저 퇴역(退役)의 헛된 몸부림(豪氣)이고 늙은 기생(老妓)의 천박한 애교(愛嬌)로 비춰질 수 있음에 등골이 시럽다.
「두자춘(杜子春)」은 원래는 당(唐)나라의 설화(說話)인데 일본의 아꾸다가와 류노스께(芥川龍之介 - 라생문(羅生門) 의 저자)가 동화(童話)로 번안(飜案)하여 잡지『赤い鳥』에 발표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그 「杜子春(とししゅん)」을 밑천으로 하여 꾸미고 말미(末尾)에 중국 이부언(李復言)의 원전(原典)을 붙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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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財閥) 2세(世)인 두자춘(杜子春)은 재산과 인생을 흥청망청 낭비(浪費)하는「오렌지 족(族)」였다. 온갖 사치 끝에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어 도성(都城) 문 밖에서 처량히 신세타령을 하고 있는데 홀연히 나타난 신선(神仙)의 도움으로 하룻 밤 사이에 억만장자(億萬長者)로 둔갑(遁甲)하기를 두 번했으나 그때 마다 물쓰듯 낭비(浪費)하는 바람에 거듭하여 빈털털이가 되곤하였다.
종래에는 염량세태(炎凉世態)에 정나미가 떨어진 두자춘은 노인(鐵冠子)에게 선술(仙術)을 배워 신선(神仙)이 되고자 아미산(峨眉山)의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는 은둔처(隱遁處)로 동행(同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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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불사(長生不死)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한다는 신선(神仙)의 그 형상(形象)은
“― 매양 안기생(安期生)의 대추를 먹으며, 일찍이 동방삭(東方朔)의 복숭아를 맛보았더라.
기운이 단전(丹田)에 찼으니 녹근자뇌(綠筋紫腦)요, 이름이 현록(玄 )에 올랐으니 창신청간(蒼腎靑肝)이다.
바햐흐로 이 삼경(三更)에 달 아래를 거닐면 난성(鸞聲)이 멀고, 만리(萬里)에 구름을 타면 학배(鶴背)가 높다. ― ”
신선(神仙) 철관자(鐵冠子)는 두자춘(杜子春)에게 자기가 부재중(不在中)에 온갖 잡귀(雜鬼)들이 백방으로 엄포를 놓으며 위해(危害)를 가할 듯이 시험(試驗)하겠지만 그에 현혹(眩惑)되지 말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입을 열지 않도록 하라고 신신당부(申申當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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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일진광풍(一陣狂風)과 함께 집채만한 호랑이가 산이 떠나갈 듯이 포효(咆哮)하며 앞에 나타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고 머리 위에서는 소나무 가지를 분지르며 절구통 굵기만한 백사(白蛇)가 두자춘의 몸둥이를 한 입에 삼키려는 듯이 붉은 혀를 낼름 거렸다.
두 흉물(凶物)이 일시에 두자춘을 향하여 달려들었으나 신선과 약속했던 바를 되뇌이며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물었다.
주위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를 진동하며 철갑을 두른 일원(一員) 대마두(大魔頭)가 무수한 귀졸(鬼卒)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바위위에 납작 엎드려 있는 두자춘(杜子春)을 보고는 다짜고짜 왠놈이 무슨 연고로 아미산(峨眉山)에 왔느냐고 불호령을 하였다. 두자춘이 대답이 없자 대로(大怒)한 대마두는 두자춘을 한 창에 찔러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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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肉身)을 떠난 두자춘의 혼백(魂魄)은 지옥(地獄)의 삼라전(森羅殿)으로 끌려가니 전상(殿上)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 왠 놈이 천험(天險)의 아미산(峨眉山)에서 어기적거리고 있었느냐 ?"고 불호령으로 다그치는데
철관자(鐵冠子)와의 언약(言約)을 되새기며 두자춘이 입을 봉한체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니 노염이 충천(衝天)한 염라대왕은 호독한 지옥의 형벌(刑罰)을 가하도록 명하였다.
옥졸(獄卒)들이 칼로 살점을 도려내고 쇠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등활지옥(等活地獄) ,
온 몸을 벌겋게 달군 쇠사슬로 묶어 놓고 사지(四肢)를 톱질해 대는 흑승지옥(黑繩地獄),
쇠로 된 큰 구유 속에서 눌러 짬을 내는 중합지옥(衆合地獄),
펄펄끓는 기름 가마솥에 삶는 규환지옥(叫喚地獄),불에 달군 철판 위에 눕혀 놓고 벌겋게 단 쇠몽둥이와 쇠꼬챙이로 지져대는 초열지옥(焦熱地獄), 살가죽을 벗기고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을 훑었다.
한사코 묵비권(默秘權)을 고집하는 두자춘의 고집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안달복달 치던 염라대왕은 하나의 묘책(妙策)을 생각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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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봐라 저 놈의 부모가 여기 축생도(畜生道)에 갇혀 있으렷다. 그것들을 잡아다가 저 놈이 보는 앞에서 혹형(酷刑)을 가하여라."
귀졸(鬼卒)들이 바람같이 사라졌다가 삼라전(森羅殿) 뜰에 내 팽개쳐 놓은 짐승은 빼빼 여윈 두 마리의 말였다. 그러나 이목구비(耳目口鼻)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부모의 모습이 여실하였다.
쇠몽둥이로 후려칠 때마다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며 낭자한 선혈(鮮血)이 땅위에 흥건하게 젹셨고 두 마리 말은 비명(悲鳴) 지를 기운도 없는지 겨우 숨만 할딱거릭고 있었다. 너무나 참혹(慘酷)한 광경(光景)에 두자춘은 사색(死色)이 되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때 그의 귀에 들릴 듯 말 듯 모기 소리만한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 얘야, 자춘아 염려하지 말아라. 네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으니 너는 기어코 이겨내야한다. 염라대왕이 아무리 핍박하더라도 입을 다물어 기어코 신선(神仙)이 되어다오."
아 ― 그것은 분명코 어머니의 음성였다.
두자춘은 소용돌이치는 충격(衝擊)에 놀라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눈을 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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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깨지고 다리가 부러진체 허연 뼈가 튕겨나오고 배가 터져 내장(內臟)이 흘러내린체 널브러저 있는 말이 자기 쪽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그 눈과 마주쳤습니다. 어머니는 저 지경이 되어서도 자식인 나를 걱정하고 내 행복만을 바래고 있지 않은가?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에 두자춘은 철관자(鐵冠子)의 철석(鐵石)같은 신신당부(申申當付)도 잊은체 그만 구르듯이 어머니 말 곁으로 달려가 말의 목을 안고서 통곡을 했습니다.
" 어머니 ―"
하고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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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절규(絶叫)에 화들짝 놀라 두자춘이 번쩍 정신을 채려보니 그는 도성(都城)의 성문(城門) 앞에서 석양(夕陽)을 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희미한 초승달 · 부산히 왕래하는 인파(人波) · 긴 그림자 ― 모든 것이 아미산(峨眉山)으로 향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 만사휴의(萬事休矣)로다. 신선(神仙)이 되기는 나무아미타불되었으니 어쩐다."
어느새 닦아왔는지 철관자(鐵冠子)는 미소(微笑)를 지으며 탄식조로 말을 붙혔다.
"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기쁩니다. 비록 신선이 될 기회는 놓쳤지만 다시 삼라전(森羅殿)의 형극(荊棘)이 우리 부모님에게 가해진다면 역시 입을 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허어 그래. 기특한지고. 네가 끝까지 신선이 될 욕심에서 입을 봉했더라면 내 지팡이가 네 명줄을 끊었을 것이야. 부디 이제부터는 진세(塵世)의 영욕(榮辱)에 자신을 걸지 않도록 하여라. 태산(泰山) 남쪽 등성이에 한칸 누옥(陋屋)이 있으니 그리로 가서 산수(山水)를 벗삼아 농사를 짓거라. 지금쯤은 복숭아 꽃이 만발했을 것이다. 자 이것으로 금생(今生)에서의 인연(因緣)은 다한 것이다. "
★ 이설(異說) 두자춘(杜子春)
재산(財産)을 탕진(蕩盡)하여 알거지가 된 두자춘(杜子春)이 신선(神仙)의 도움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같으나 세 번째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만금(萬金)을 가지고 자선(慈善) · 구호(救護) 사업을 벌렸다.
신선(神仙)을 따라 화산(華山) 운대봉(雲台峰)으로 갔는데 입을 열지 않아야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받았다.
온갖 형벌(刑罰)도 감내(堪耐)하고 종래(從來)네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안해의 간청도 한사코 거부한체 입을 다물자 마귀(魔鬼)는 그의 안해를 때려 죽이고는 두자춘도 천하에 둘도 없는 몰인정(沒人情)한 놈이라며 죽여 버렸다.
저승에 끌려간 두자춘(杜子春)은 온갖 형벌(刑罰)을 다 받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자 염라대왕은 송주에 있는 왕륵의 여아(女兒)로 탄생시켜 보냈다.
왕륵의 딸은 병치례가 잦고 태어나면서부터 벙어리인데 차츰 자라자 그 미모(美貌)는 가히 절세(絶世)였다. 노(盧)라는 청년의 배필(配匹)이 되어 금슬(琴瑟) 좋은 부부로 아들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인 노(盧)는 자기의 부인의 말소리를 한번 듣는 것이 평생의 소원(所願)였다. 그래서 갖은 꾀와 술수(術數)를 써 봤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아들을 머리 위로 번쩍들어 몰리며
" 당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아들놈을 저 돌에 패대기쳐서 짓이겨버리겠소. "
그녀가 대꾸를 않자 남편은 사정없이 아이의 머리를 절구에 찧어 버리니 두개골(頭蓋骨)은 깨지고 피가 튀었다.
그 광경에 그만 그녀는
"아- 아가 ―”하며 달려 아기를 부등켜 안았다.
그녀의 비명(悲鳴)과 함께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끝나고 두자춘(杜子春)은 운대봉 바위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신선은 길이 탄식하면서
“ 그래, 모든 것이 허사(虛事)로구나. 너는 6정(情) - 희(喜)·노(怒)·애(哀)·낙(樂)·구(懼) ·증(憎) - 은 능히 넘을 수가 있었으나 오직 애(愛) 의 쇠사슬만은 끊을 수가 없음이로다. 물러가거라 .”
두자춘이 후일 다시 운대봉을 찾았으나 거기엔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 아무 흔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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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ㅣ 아니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기리 업슬세 글로 셜워하나이다.
육적회귤(陸績懷橘 ― 후한 때 6살인 육적이 원술을 찾아가 귤을 받게 되었는데, 귤 3개를 가슴에 품었다가 일어설 때 떨어지고 말았다. 원술이 그 이유를 물은즉,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어린 그의 효심에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의 고사(故事)를 생각하며 읊은 노계(蘆溪)의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아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松江)
*자료 보관창고에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