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을 자고 눈을 떴다.
베란다를 통해 밖을 보았다.
바람이 제법 불고 있었다.
그리고 눈발이 날렸다.
이미 세상엔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었는데 그 위로 또다시 흰눈이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채비를 갖추고 장거리 트레킹에 나섰다.
단 일 분이라도 집안에서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흩날리는 눈발을 가르며 전철역까지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갔다.
열차를 타고 화서역에 내려서 바로 옆에 있는 '서호'부터 일주했다.
정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서호천'을 따라서 파워워킹을 했다.
'왕송호'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황구지천'이라고 하는데 '서호천'과 '황구지천'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지나 남쪽으로 계속 트레킹을 이어갔다.
얼마나 갔을까?
"와우, 이럴수가?"
정말 OMG(오마이갓)이었다.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군부대 시설로 인해 개천 안에도, 둑방길에도 엄청난 철조망들이 겹겹이 설치되어 있었다.
낭패였다.
그렇다고 불쌍한 초병들에게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군당국에 한다면 모를까.
할 수 없었다.
길을 틀었다.
'성황산' 방향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유명한 '용주사'가 있는 산이었다.
또 한참을 걸었다.
칼바람이 불었다.
낭낭한 풍경소리가 고즈넉한 사찰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서 마음을 모아 부처님께 합장했다.
내 마음과 영혼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용주사를 떠나 '융릉과 건릉'으로 향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제일의 비극적인 쟁투와 정변이 내 뇌리속으로 밀려들었다.
뒤주에서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한.
그리고 그런 기가 막힌 삶을 살다가 떠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애끓는 효심.
이런저런 역사의 상념들이 융,건릉 위로 표표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눈발같았다.
나의 가슴속에도 필설로 형용치 못할 진한 회한과 애닲음이 함박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조선왕조 최고의 전성기 중 한 시대였던 영,정조시대.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종묘사직에 대해선 훗날 다시 한번 기술할 때가 있을 것이다.
옷깃을 여민 채 다시 걸었다.
도회지를 지나고, 넓은 들판을 건너 어느새 '황구지천'에 당도했다.
거기서부터는 천변길을 따라 꽤 긴 거리를 북상했다.
길고 긴 천혜의 '황구지천길'.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더욱 감사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마음속으로 시도 짓고, 수필도 짓고, 기도도 드렸다.
파워워킹으로 목적지였던 '성대역'에 도착했다.
거리를 재보진 않았지만 대략 32-33킬로쯤 될 거라 생각했다.
순전히 감이었다.
트레킹 마지막 피니시라인에 '율전동 성당'이 보였다.
춥고 피곤하고 지친 심신.
그래서였을까?
성당을 보자마자 포근한 안도와 위로가 확 느껴졌다.
한참동안 성대역 앞 사거리 코너에 서서 그 '성당'을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과 붉은 벽돌건물 그리고 푸근학고 다정한 정감.
뚯하지 않게 내 영혼에도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마리아님의 사랑의 손길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다.
늘 그렇지만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을 만날 때마다 내 가슴엔 감동과 환희가 흐른다.
혹한이든 폭염이든, 산이든 들이든, 계절과 장소가 문제될 건 없다.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