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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민족과의 관계에서 성결규례
레 20:22-27
22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5 너희는 짐승이 정하고 부정함과 새가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것들로 너희의 몸을 더럽히지 말라
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레 20:22-27 / [마무리] 내가 너희에게 지키라고 일러준 규정과 법을 그대로 지켜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데리고 들어갈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으리라. 23) 너희 앞에서 몰아낼 저 민족들이 따르는 규정을 좇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그들을 지겹게 생각하는 것은 저들이 못된 짓만 골라 해왔기 때문이다. 24) 내가 이미 너희에게 저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제 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너희 차지가 될 것이다. 나는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너희를 가려 뽑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25) 그러므로 너희는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분명히 구별하고 부정한 날짐승과 깨끗한 날짐승을 분명히 구별하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집짐승과 날짐승과 길짐승을 구별해 주었으니 그런 것 때문에 너희가 부정 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26) 나 여호와가 거룩하다. 따라서 너희도 내게 거룩하게 처신하여라. 이것은 내가 뭇 백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가려 뽑았기 때문이다. 27) 여자든 남자든 무당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죽여라. 그런 자는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규례와 법도를 주셔서 이스라엘이 구별된 삶을 살게 하셨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규례와 법도의 목적(22-24)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는 일시적인 명령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도 지켜져야 할 그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택함 받은 민족의 구별된 모습을 나타내줍니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면 약속의 땅에서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경고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될 민족들이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족속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이 이방 민족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명령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이들이 이방인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25-27) 이스라엘이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서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규례와 법도를 정해 주셨고, 이스라엘이 이것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위치를 알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소극적으로 부정한 것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정한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켜야할 명령들을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상과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용: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우는, 슈바이처(Schweitz-er, Albert) 박사는 21세 때,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한 그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구원하는데 공헌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결심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고 위인들의 결심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설 교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위기 20:22-27 / 송호영 목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잘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땅이 그들을 토하여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족속의 풍습을 따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민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으니 그들이 가나안의 풍속을
찬 양 : 374장(새 328) 너 주의 사람아 378장(새 597)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 본문해설
1. 나의 법도와 규례를 행하라(22~23절)
- 지켜 행하라(22절) : 솨마르
‘지켜 행하다’에 해당하는 ‘솨마르’는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 사방에 주의를 기울여 경계를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자신의 울타리로 삼아 이방의 가증스러운 죄악들이 결단코 한시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22절) : 콰야
‘토하다’에 해당하는 ‘콰야’는 어린아이들이 먹기 싫은 음식을 내뱉듯 ‘멀리 뱉어 버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땅이 그 백성들을 뱉어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지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어겨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그 땅이 그들을 토해냅니다. 그들이 땅을 잃고 그 땅에서 쫓겨난다는 뜻입니다.
- 내가 그들을 가증히 혀기노라(23절) : 쿠츠 ‘가증히 여긴다’에 해당하는 ‘쿠츠’는 ‘지속적으로 화를 돋운 일로 발생된 깊은 감정으로 역겨워하고 혐오하다’를 뜻합니다.
레위기 18:22의 ‘가증한 일’에서는 ‘구토가 나올 정도로 혐오하다’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몹시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일을 뜻하는 ‘토에바’사 사용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오랫동안 분노가 축적되어 참을 수 없는 상태인 ‘쿠츠’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풍속을 역겨워하십니다. 본래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이 우상숭배와 음란한 풍속으로 인해 그 땅에서 쫓겨났는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과 동일한 죄를 범한다면 그들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쫓겨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24~26절)
- 젖과 꿀이 흐르는 땅(24절) : 약속의 땅,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 하나님의 복이 가득한 땅. 젖은 목축의 번영을 가리키고, 꿀은 야생의 꿀 외에 포도의 시럽을 가리키는 것으로 농업의 번창을 말합니다.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엄마의 품에서 젖을 물리고 있는 아기처럼 평안한 땅을 의미합니다.
3. 신접한 자와 박수에 대한 심판(27절)
* 묵상 point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기쁨과 평강이 풍성한 은혜의 땅(24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➀ 하나님의 약속의 땅,
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
➂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의 복이 가득한 땅을 의미합니다.
젖은 양의 젖을 가리키고, 꿀은 야생의 꿀과 포도의 시럽을 가리키는 것으로 목축업과 농업의 번창을 말합니다.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엄마의 품에서 젖을 물리고 있는 아기처럼 평안한 땅을 의미합니다.
2) 그러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가나안 땅 자체가 비옥한 땅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가나안 땅은 대부분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되는 착박한 땅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면 적절한 비를 내리셔서 기쁨과 평강이 가득한 땅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면 그 땅은 모든 복이 가득한 샬롬의 땅이 되지만, 그들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을 따라 행하면 그 땅이 그들을 토하여 내서 그들이 죽든지 다른 민족의 포로가 되게 됩니다.
➠ ‘땅이 어떤 땅이냐’가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이 누구냐’입니다.
그 땅이 좋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좋아서 척박한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서는 복이 있는 땅인 소위 ‘명당(明堂)’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 명당을 차지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무덤 자리가 좋아야 한다든지, 집이나 사업의 터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땅보다는 그 땅에서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살면 내가 사는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멀리하면 내가 사는 땅이 황량한 광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이나 환경 탓하지 말고 말씀에 합당하게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26절)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특별히 구별하여 선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자들도 하나님의 명을 따라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거룩하라고 명하십니다.
1) 먹고 마시는 일에도 거룩하라(25절)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먹을거리에서부터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부정하게 여기는 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다보면 그 음식과 함께 따라오는 가나안의 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음식을 가려서 먹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방인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문화와 구별된 자가 되기 위해 제일 먼저 먹을거리에서부터 구별된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2) 일상생활의 삶에서도 거룩하라(23절)
일상생활에서의 풍속은 먹을거리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깊게 영향을 줍니다.
날마다 그 풍속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가나안의 우상숭배의 습관이나 음란한 습관들을 멀리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않기 위해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새, 화장법 등에서도 가나안 사람들을 따르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이렇게 부정한 습관을 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정한 습관을 가진 자들과 접촉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과의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일에서는 조금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니 우리는 그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라(22절)
거룩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1)번 먹고 마시는 일과 2)번 일상생활에서의 거룩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였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부족하면 그는 결코 거룩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기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 나는 위에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이 부족한지 자신을 점검하여 봅시다.
*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잘 지켜 우리가 사는 이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옵소서.
2. 먹고 마시는 일이나, 일상생활에서의 삶에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언약 안에서 구별된 삶과 연합, 하늘의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레위기 20장 22절 – 27절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시작함은 복되고 감사한 일임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속되지 못하고 더 많은 시간은 주님과 멀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되어 사셨던 모습을 보여주시고 본받게 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길 소망하며 오늘도 저의 허물과 부정함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마음을 내어 놓사오니 주의 보혈로 씻으시고 정결하게 하옵소서.
주 안에 거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더욱 주를 사랑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해설
22절부터의 내용은 18장 26절부터 28절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서술하여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시며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날 것이고 말씀대로 살면 가나안에 머물며 살 것을 선언하신다.
이는 세상의 환경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우선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가나안에서 쫓겨나간 족속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일들이 가증한 일임을 말씀하시면서 쫓겨난 이유를 드러내신다.
이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실 것과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음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것들의 정함과 부정함을 구별하고 몸을 더럽히지 않게 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도 구별되어 거룩해야 함을 선포하신다.
무엇보다 세상의 신과 접신하는 박수마당은 반드시 돌로 쳐 죽일 것을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을 향한 심판과 하나님 백성의 구별됨을 보이게 하셨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단순히 가나안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것은 만물 안에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며 세상의 환경에 묶인 삶을 말한다.
세상의 가치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의해 구별되며 환경의 차이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생기고 계층이 생기며 세대차이가 생겨난다.
이는 갈등의 구조를 가지게 만들고 분쟁의 이유가 되며 서로 대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그 땅이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진 땅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와 환경으로 보면 가나안보다 더 좋은 땅과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땅도 많다.
그러나 그 땅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관계가 땅의 환경과 상관없이 그 땅이 구별된 땅이 되게 했으며 그곳을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언약의 백성이 되며 말씀 앞에서 동등한 위치를 얻는다.
백성의 지도자도, 백성도, 노예도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앞에서는 주종의 관계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 언약을 벗어나는 자는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 그 죽음의 상징으로 제사와 제물의 희생을 통해 다시 언약 안에 들어가도록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과 구별되며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닌 하늘에 속한 나라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구별됨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에 속했기 때문에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정함과 부정함의 차이는 하나님의 언약 속에 나타나는 특징이며 이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함과 부정함이 결정되고 정한 것을 선택함으로써 관계가 유지된다.
언약 안에 거하는 삶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나무 가지 비유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요 15:5-11).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주님 안에 거하고자 하는 삶은 그 자체로 구별된 삶과 능력 있는 삶, 그리고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거룩한 삶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은혜이며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것임을 바울이 선포하고 있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디도서 2:11~14
구별된 삶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은 언약을 따르는 순종을 통해 지속되며 그리스도 안, 언약 안에서 얻는 것은 세상의 열매와 다른 구별된 삶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감은 세상의 계층이 무의미하며 갈등이 아닌 동질성을 갖게 한다.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라는 공통의 신분을 얻게 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며 각 지체의 소중함과 연합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것에 중심을 두고 그것을 얻고자 힘쓰게 된다.
오늘도 하늘에 속한 것으로 내 삶을 채우는 시간이 더 많아 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거룩한 삶,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며 주 안에서 얻는 기쁨과 사랑, 하나님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 갈등하는 세상의 구조와 다른 삶이 주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연합과 사랑, 기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환경은 갈등을 일으키고 분쟁과 분열을 가져오지만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순종과 연합, 그리고 사랑과 기쁨을 경험하게 만드십니다.
나라 안팎에서 들려오는 갈등과 분열의 소리가 마음을 흔들고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은 경쟁과 치열한 다툼을 일으킴을 경험합니다.
주 안에 거함으로 이런 세상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옵소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언약 안에서 얻는 연합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채우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이름 안에 감춰진 보물을 날마다 캐어 내게 하시고 기쁨으로 밭을 사고 일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늘의 것을 알게 하시고 그것을 사모하게 만드신 주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더욱 주 안에 거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주의 풍요함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내 삶에 풍요함을 허락하시고 은혜로 채우실 것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거룩해야만 하는 이유
레위기 20:22-27 / 진광교회 윤봉원 목사
1. 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우리는 계속해서 레위기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이와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명으로써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을 벗어나서 악을 행하는 행악자는 타락한 인간의 속성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대표적인 예로써 아담과 하와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기 때문에 탐욕을 쫓아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레 20:6~8)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20장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8번이나 거듭 강조하셨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레위기를 비롯한 성경에서 더럽히는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신약에서도 분명하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그렇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과연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에 걸맞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진단해 보아야 하겠다. “나는 과연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며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자. 하나님과 사람들, 피조물이 우리를 보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는지?
거룩하라는 명령은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향한 명령이기도 하다. 이제 하나님이 왜 그 당시에 거룩하라는 명령을 특별히 내리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거룩해야만 하는 이유
2.1.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레 20:24)
‘거룩’이라는 말은 구약 시대에서는 주로 “코데쉬”라는 단어로 쓰여졌는데 이 말은 “거룩하게 하다,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카다쉬”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고데쉬”는 “거룩 선별, 신성함, 독실함, 믿음, 경건한 생활” 등의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이 ‘거룩’은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하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삶을 지칭한다. 그리고 세상의 속되고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하여 묘사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다. 또한, 성도가 장차 있을 영광의 새 나라에 적응하여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것은 성도의 의로움을 나타내주는 예복이 된다.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께 향한 성화의 모습으로써 하나님께 합당한 자들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4)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죄악과 구별된 더덕적인 삶(‘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이나 세속적이고 비신앙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건한 행위를 말한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6)
이스라엘 백성이 이 거룩한 사람을 살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시고 있었다(24).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었으며, 그분의 관심사였고, 그분의 선택이었으며, 그분의 나라의 제사장들이었다(26). 그래서 “너희는 나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백성은 참으로 행복하고 위대하다.
그들의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들 위에 무한히 뛰어나시고 거룩한 하나님이다(26). 그의 거룩은 그의 영광이었고, 또 이것이 하나님과 관련된 그분 백성들의 명예였다. 반면에 그들의 이웃은 불순한 영들의 숭배자로 유명했다.
그 위대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백성들과 구분하셨다(24). 또 이 사실이 26절에도 반복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은 다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구별되어 따로 정해져 있었고, 축복받았고, 특권을 누렸으며 특별한 명예를 지녔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을 거기에 맞게 평가하고, 그들의 명예를 보존해야 하며, 이방인들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 명예를 더러운 먼지 속에 처박아 두어서는 안 된다.
2.2.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존엄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백성보다 그들에게 더 많은 일을 행하여 주셨으므로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구하시고 계획하시는 것을 알아보자.
“너희는 나의 모든 법도를 지킬지니라”(22). 그 법도는 그들의 명예였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에 복종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기꺼이 거기에 복종하면 그것은 영원히 그들의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토하지 아니하리라’(22)고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은 가나안의 신 바알이나 부요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왕으로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때 그 땅도 이스라엘 백성을 토해내지 않고 풍성한 ‘젖과 꿀’을 내어줄 것이다. 삶의 조건이나 생산능력을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를 키우는 일이다. 그럼 어디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약속의 땅이 될 것이다.
“너희는 열방의 풍속을 좇지 말라”(23). 그들은 열방과 구별되었기 때문에 열방과 합동하거나 그들의 행실을 배워서도 안 된다. 열방의 풍속들은 열방 자신들에게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욱 해로운 것이었을 것이다. 영원 전부터 거룩하심으로 구별되어 존재하여 오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있는 거룩함을 흉내 내는 우상들과는 비교될 수가 없는 분이시다. 우상을 숭배하는 잡신들의 제사 형태들을 보면 난잡하고 조잡하여 비윤리적인 요소들이 다분하다.
거룩하지 못한 우상들에게 경배하는 것은 종교적 간음이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몰렉에게 경배하고 박수와 신접한 자들을 가까이한 것은 성민, 곧 유일신이신 하나님만을 최고 신으로 섬겨야 하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에게 배신하는 간음 행위이다. 그러한 자들은 용서 없이 죽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당신의 구별된 백성에게는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너희들은 “정하고 부정(不淨)한 것을 구별할지니라”(25). 마치 우리가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듯이 말하거나 제멋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조심스럽게 구별해서 행동하고 말하며 그 속에서 차이점을 식별하는 것이 바로 거룩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고 구별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은 백성으로 창조하기 위해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부르셨다.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당신의 통치가 임하는 땅으로 만들려고 부르셨다. 그러니 그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정해지는 것이며,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를 신뢰하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또한 세상이 상식으로 여기는 풍속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인다움을 구현할 영역은 어디일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며 성령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영혼(개역: 몸)을 더럽히지 말지니라”(25). 우리 영혼의 순수성과 명예를 보존키 위해 부단히 염려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양심을 더럽히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잡다한 우상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처럼 오늘의 혼탁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모시고 삶으로써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하여야 하겠다.
2.3. 큰 위험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죄악이 감염된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참이다(24). “너희들은 그들의 땅을 유업으로 받으리라”. 그것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다.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순전함을 지킨다면 그 땅이 주는 위안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나 매음으로 그 땅을 가득 채운다면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그런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이상한 기질에 물들어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 땅에서 물들어 버리고 말면, 그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운명을 가져 오리라고 했다. 가나안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죄 때문에 지금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들이 이런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겼노라”(23). 따라서 우리는 죄(罪)가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불러오는가를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죄란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당신의 피조물을 증오할 만큼 하나님을 분노케 한다. 만일 인간에게 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 즉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후손들을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의 불경건한 발자취를 밟는다면 그들은 그 땅에서 토하여 냄을 당한다고 했다(22). 이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던 말씀이다.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레 18:28)
더 나아가서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면 그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27절에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미신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된 신을 섬기는 일은 나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또한 주님의 인도 하심을 잊고 다른 신에게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 20: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택하신 가지(이스라엘)가 타락할 때에 그것을 아낌없이 꺾어 버리신다면, 그 가지에 접붙여진 가지들(그리스도인)이 타락했을 경우에는 오죽했겠는가!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 나라에서 쫓겨났었던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하나의 경고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죄를 지으면 역시 똑같이 멸망 당하고 말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한 그들의 신앙 그 자체가 결코 그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3.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 약속의 복을 온전히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둘째,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삶을 삶아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없는 위험에 놓여 있었다. 아울러 27절에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께 대해서 거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임재하는 그가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시겠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택한 자라면 지옥에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약속하신 신구약 66권의 복을 금생과 내생에 누릴 수 없는 비극에 처하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진광교회 모든 지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할 근거와 이유를 항상 기억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음으로 약속하신 무한한 복을 금생과 내생에 풍성히 누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 되세요.
이목지신
레위기 20:22-27 / 이종태 목사
이목지신이라는 말은 고사성어로 나무를 옮겨 믿음을 준다. 보통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라는 말을 할 때 이 고사성어를 사용하고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을 속여서는 안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목지신이라는 말은 위 나라 사람, 상앙이라는 제상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앙은 법률에 밝은 사람으로써 그는 진나라 효공에 의해서 발탁이 되어서 나중에 제상이 되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법치에 의한 부국강병책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그가 법을 제정해 놓았다. 그런데 공포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가 있었다. 법을 공포를 해도 백성들이 지키지 않으면 어떡하지 백성이 법을 따라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묘책을 낸것이 바로 이목지신이라고 한다. 남문에 9m 되는 높은 나무를 세웠다. 그리고 그 나무를 동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황금 10냥을 주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 나무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상앙은 황금 50냥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 나무를 옮겨보자라고 하고 그 나무를 동문으로 옮겼다. 그러나 상앙은 그것을 보고 바로 황금 50냥을 주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한다.
그후에 상앙은 새로운 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아니다 다를까 새로운 법이 공포되자 1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 부당함을 주장하는 사람이 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때 태자가 있었는데 태자가 법을 위반했다고 한다. 상앙은 법에 따라서 태자의 태부를 처형하고 태자를 처벌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백성들은 법을 준수하게 되었고 10년이 지나자 이 법에 대해서 매우 만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목지신이라는 말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이목지신이 나오는 상앙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 나오신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렇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도 이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바로 오늘 본문은 어떤 내용이냐면 ‘너희는 내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성결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거룩’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뭐냐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을 명령하셨는가? 이에 대한 답을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세지를 통해서 상고하고자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소유 삼으셨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을 명령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20: 22-23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는 명령과 가나안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는 명령이 함께 나온다(레위기 20:22-23).
본문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서 추방당한다라는 내용이 있고 또 하나는 가나안족속의 풍속은 가증하기 때문에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레위기 22,2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충방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무슨 뜻인가? 본문의 말씀을 이해할려면 창세기 15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15장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자손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고 군사를 모아서 그돌라오멜과 그의 연합군들과 전투를 해서 승리해서 왔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너무나 불안하고 부러웠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가 정서적으로 낙담하고 그가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돌라오멜과 연합군들이 다시 복수하려고 전쟁을 일으키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있었고 또 가나안열국과 동맹을 일으켜서 전쟁을 일으키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가나안땅과 자손, 후손을 약속하셨는데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오셨던것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서 말씀하신다.
아브라함!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두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첫번째 질문(창세기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네 자손이 하늘에 수 많은 별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해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칭하셨다.
두번째 질문은 (창세기 15: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3년된 암소, 3년된 암염소, 3년된 숫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 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가나안따을 기업으로 받을 보증으로 무엇을 요구하셨냐면 번제물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당시 언약을 맺는다라는 것은 무슨뜻이냐면 쌍방이 희생제물을 둘로 나누어서 그 언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증표로 그 사이를 지나갔다. 지나간 이유는 계약당사자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 언약을 어기면 희생제물과 같이 될것이라는 엄중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쪼깬 그 사이로 하나님의 상징인 횃불이 지나갔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 언약에 대해서 책임을 지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았다. 하나님만이 언약을 지키신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만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언약임을 알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400년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것을 예언하시고 그 후에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올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그 예언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어제의 일도 잊어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무려 690년이 훨씬 넘는 그 기간동안에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망각하시거나 변질하시는 것이 절대로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본문은 말하고 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라면 이 말씀, 창세기 15장 말씀과 레위기 20장 말씀은 어떻게 연결이 되냐고 질문한다면 레위기 20:22-2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받을 땅’ ‘ 유업으로 주실 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또 가나안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에 대한 언약을 하시면서 창세기 15:16절에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아니함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그 당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는데 아직 가득 차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이제는 가나안족속의 죄악이 가득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그들을 토해 내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쫒아 내시겠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킴으로써 가나안 땅의 풍속을 버리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이고 주권적인 언약의 성취이기때문에 그들은 거룩해야했다.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을 횃불로 언약하셨고 400년의 애굽 노예생활을 예언하셨고 그리고 마침내 기업으로 주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룩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소유로 삼으셨기때문이다. 처음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하나님은 거룩을 명령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소유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만민중에서 구별하여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언약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사야 62:1 /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사야서 62장 말씀처럼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볼처럼 나타나도록 예루살렘을 위해서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타는 횃불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것도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을 거룩을 명령하신것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쉬지 않는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에 온 인류의 역사가운데 개입하시고 그리고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는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의 인생가운데 온 역사 가운데 전해졌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저와 성도님들도 거룩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가운데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은혜에 감격하며 오늘도 거룩한 삶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만민 중에 구별하신 하나님의 열심때문에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거룩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오늘도 거룩한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