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작은 나무 27
델핀 발레트 저자(글) · 피에르 에마뉘엘 리예 그림/만화 · 이세진 번역
푸른숲주니어 · 2023년 11월 07일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서로 다른 문화권
세 어린이가 건네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
푸른숲 작은 나무 27번째 도서인 《달팽이의 장례식》은 공원에서 놀던 친구들이 서로의 종교를 절충한 방식으로 달팽이의 장례를 치러 준다는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문학이다. 작가는 작은 실수로 인해 처음으로 동물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알리스에게 엄마의 목소리로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다정한 위로를 전하며, ‘달팽이 장례식’을 제안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로 종교와 문화가 다른 세 아이가 달팽이를 두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며 갈등과 오해를 풀어 가는 과정이 순수하면서도 평화로워서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셋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 어느 오후를 눈부시게 그려 낸다.
《달팽이의 장례식》은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에 대한 관용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책”이라는 평을 받으며 2020년 뮐루즈(Mulhouse) 시립 도서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2021년 프랑스 소시에르상 아동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여기에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피에르 에마뉘엘 리예가 다채로운 색감과 감각적인 터치로 아름다운 그림을 더했다.
“우리가 서로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종교, 문화, 성별을 뛰어넘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우정
이야기는 어느 토요일, 알리스가 공원에서 친구 라셸을 기다리면서 시작된다. 기다리는 동안 아민과 어울려 놀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제안에 “어떻게 남자아이와 놀 수 있냐”고 난처해할 정도로 알리스는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뉴스’를 가지고 라셸이 도착한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오갈 법한 재잘거림이 이어지던 가운데, 갑자기 라셸이 아민에게 다가간다. “안녕. 우리랑 놀래?”
그렇게 피부색도, 종교도, 성별도 다른 알리스, 라셸, 아민은 처음으로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 세 아이는 함께할 수 있는 놀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민의 주도 아래 비밀 작전 놀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아민이 흙바닥에 낙서하는 순간 흙 속에서 달팽이가 튀어나오고, 순식간에 아이들의 관심사는 달팽이로 옮겨 간다. 달팽이에게 예쁜 집도 지어 주고, 맛있는 음식도 주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알리스가 실수로 달팽이를 밟으며 끝이 난다. 하지만 알리스, 라셸, 아민은 아이답게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화하고 조율하면서 달팽이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무사히 달팽이를 묻어 주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전쟁이 끊이지 않아 인도주의가 필요한 시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 어린이들의 성장기
가톨릭인 알리스, 유대교도인 라셸, 이슬람교도인 아민은 달팽이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쓴다. 장례식은 엄숙한 의식이기 때문에 달팽이의 종교에 따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작고, 소중하기만 하다. 각자 자신이 보고 들었던 방식으로 달팽이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성장이 엿보인다. 마침내 아이들은 세 종교의 장례 문화를 약간씩 반영하고 절충한 방식으로 달팽이를 묻어 주게 된다. 《달팽이의 장례식》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렇듯 어른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대상에도 마음을 쏟고, 어떻게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견 없는 아이들의 맑은 마음이다.
지금도 지구 저편에서는 전쟁으로 민간인과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는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까지 야기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케케묵은 감정은 서로 물러서지 않는 신념 때문이라고 한다. 증오와 혐오로 서로 양극단으로 치달아 가는 이 시점에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양보하는 어린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일 수는 없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아이들을 보여 준다.”는 어느 프랑스 언론 기사에 공감이 되는 이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셋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 세 아이의 앞으로의 우정을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