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찾은 장소인데도 묘하게 낯익은 곳이란 느낌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전생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이들에게 이런 일들은 놀라운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의 진짜 이야기들은 환생의 진실에 빛을 쪼이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와 사건들이라고 야후! 라이프의 블로그 'Love to know'가 28일(현지시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이 기사는 다섯 사례를 소개한 뒤에 다음 문구를 붙였는데 앞으로 옮긴다.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과학적 프로토콜들을 이용해 환생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이렇게 해서 환생이 실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대로 문서로 정리된 사례들이 모이게 됐다.'
"150년 전에 살았던 여자였소"
환생을 기록한 사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이 분야의 선구자인 고 이언 스티븐슨 박사가 기록한 것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전생을 살았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서른두 살 여성 우타라 후다(Uttara Huddar) 이야기다. 부모들은 그녀가 마라티 문화와 무척 다른 벵갈 문화에 빠져들고 유달리 뱀을 무서워하는 것에 그닥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전생 캐릭터 샤라다(Sharada)는 완전히 체계가 다른 언어인 벵갈어로 얘기하자 부모들은 걱정하게 됐다. 샤라다로서 그녀는 생전에 알았던 25명의 이름을 댔으며 각자와의 관계를 묘사하며 자신이 어떻게 그들과 상호작용했는지 설명했다. 샤라다는 150년 전에 살았고, 우타라의 집에서 900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샤라다는 킹 코브라에 오른 발가락을 물린 적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어떻게 죽었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스티븐슨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이 사례를 알게 됐을 때 그는 어떤 연구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그런 일은 상당히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타라와 그의 연구팀이 증명할 수 있었던 그녀의 전생 기억들이 털어놓은 24가지 사건들에 대해 책을 썼다.
여섯 살 소년이 "해군 조종사였소"
2004년 미국 ABC 뉴스는 많은 이들이 전생의 기억이라고 믿는 얘기들을 두 살 때부터 하기 시작한 여섯 살 소년 제임스 레이닝거의 환생 이야기를 방영했다. 그가 태어난 지 18개월 됐을 때 가족이 전쟁기념관을 찾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차츰 그 아이는 비행기에 빠져들었고 불타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악몽을 되풀이해 꿨다. "비행기 추락! 엔진에 불이 났어! 작은 남자는 빠져나올 수가 없어!"라고 비명을 지르다 깨곤 했다. 전투 장면을 자세히 담은 그림을 그려 전생이라고 주장했다. 그림에 서명을 남겼는데 제임스 3세라고 했다.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제임스는 부모들에게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전투기 조종사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자신이 탔던 비행기 기종 이름 뿐만 아니라 수송기 나토마 이름도 척척 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죽는 모습을 봤다며 잭 라센이란 조종사 이름도 댔다. 이런 진술 모두는 진짜 있었던 일로 증명됐다. 부모는 나중에 제임스 M 후스턴 주니어란 사람이 미해군함정(USS) 나토마 베이 호 승선자 가운데 제임스가 묘사한 전투에서 유일하게 희생된 인물이었다. 그 파일럿이 주니어였기 때문에 제임스 레이닝거는 스스로를 제임스 3세라고 여겼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잭 라센의 자취를 따라가 그가 제임스 후스턴의 비행기가 격추돼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들은 또 그의 전생이 언급한 제임스 후스턴의 누이동생과도 접촉했다. 그 누이는 제임스가 언급한 가족관계와 부친의 알코올 중독이 맞다고 확인했다. 그녀는 오빠가 환생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그의 부모는 제임스 얘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13차례 우승한 골퍼였소"
골프 천재로 통한 세 살 소년이 13차례 우승한 골퍼 바비 존스라고 주장했다. 헌터란 가명으로 불린 아이는 두 살 때 어린이용 플라스티 골프 클럽 세트를 선물받고 이내 빠져들었다. 골프채널에서 방영된 1930년대 동영상을 시청하다 헌터는 바비를 지목하며 자신이 컸을 때 모습이라고 선언했다. 그 뒤 그는 진짜 이름 바비로 불러달라고 부모에게 말했다.
헌터의 얘기를 증명하려는 시도로 부친은 1930년대 골퍼들 사진 여섯 장을 보여줬다. 헌터는 바비 존스를 가리키며 "이게 나!"라고 말했다. 호기심이 동한 부친은 바비 존스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 등 여러 주택 사진들도 아들에게 보여줬다. 헌터는 사진들을 죽 보더니 바비의 어린 시절 집을 정확히 집어냈다. 그는 "집"이라고 말했다.
헌터의 골프 재능은 워낙 빠르게 늘어 5년차 클라스로 여겨졌다. 헌터는 전생의 실력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주니어 대회 51개 가운데 41개를 우승했다. 그 중 21차례는 연속해 이룬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소년의 전생 얘기를 모르는 사람도 스윙 모습이 바비 존스와 똑같다고 부친에게 얘기했다. 소년은 부모에게 오거스타 코스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고 얘기했다. 바비 존스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창설해 설계에 많은 도움을 줬음은 물론이다. 존스는 골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마스터스 대회 창설자다. 누구도 그가 다음 바비 존스가 될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가 다음 타이거 우즈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진주만 피습 때 해군 장교였소"
한 환생 이야기가 'Lifetimes, True Accounts of Reincarnation'을 쓴 프레드릭 렌츠 박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이 책은 네 살 때 자신이 진주만에서 숨진 사람이라고 기억한 찰리란 이름의 소년 주장을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
메리는 네 살 아들 찰리가 "한 번 죽었어요, 다쳤고요!"라고 말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모험을 즐긴 뒤 돌아오는 차안에서 찰리는 "한 번 죽었다니까요!"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메리는 다이브할 때 그랬다는 얘기냐고 물었는데 "아뇨.한 번 죽었어요. 다쳤고요!"란 답이 돌아왔다.
메리는 어떻게 죽었는지 얘기해보라고 했다. 찰리는 다리를 크게 다쳐 죽었다고 했다. 찰리의 얘기는 이런 대화들을 통해 하나씩 맞춰졌다. 전생의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외아들 제임스 켈로로 태어났다. 20대의 켈로는 해군 장교로 함정에 승선해 복무하고 있었다. 그 함정이 폭탄을 맞아 폭발했다. 제임스와 세 남성은 구명정에 겨우 올라 타 해변에 이르렀고, 제임스는 유일한 생존 승무원을 해변까지 끌어낸 뒤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메리는 찰리를 전역한 USS 앨라배마 호로 데려가기로 했는데 함정 이름을 잘못 들은 결과였다. 그녀는 이 함정의 승선원 명단에서 제임스 켈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가이드는 앨라배마 호는 폭탄을 맞지 않았다며 애리조나 호가 맞다고 일러줬다. 거기 있는 동안 찰리는 능숙한 선원처럼 함정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진주만 기습 때 격침된 USS 애리조나 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애리조나 승무원 명단을 뒤져 샌프란시스코 출신 제임스 켈로의 이름을 찾아냈다.
렌츠 박사는 애리조나 함이 일본 어뢰 공격에 당한 뒤 구명정에 올라 탄 남자들과 켈로의 시신을 수거한 일 등 찰리 이야기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증명했다. 그 함정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공격 때 탄약고가 폭탄에 맞아 폭발하고 말았다. 그 함정은 진주만 바닥에 여전히 누워 있으며 물 위로 갑판이 나와 USS 애리조나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집트 파라오의 여사제이자 정부였소"
영국 출신 도로시 이디의 환생 이야기는 세 살 때 죽어서 시작된(?) 매혹적인 이야기다. 그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가족 주치의에 의해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슬퍼하는 부모를 위로하다 헤어진 의사가 한 시간도 채 안돼 딸아이가 아직 살아 있으니 집에 다시 와달라는 부모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라.
도로시는 3300년 전 살았던 이집트 여사제의 환생이란 믿음을 평생 간직했다. 되살아난 도로시는 영국식 억양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이집트 억양을 썼다. 그녀는 푸르게 우거진 사원에 대한 생생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부모에게 집에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다. 대신 부모는 대영박물관에 데려갔는데 도로시는 이집트 석상들을 보고 달려가 발끝에 입을 맞추고 껴안았다. 부모에게는 그들이 자신의 동포라고 선언했다.
도로시는 이집트 세티 1세(Seti I) 사원 사진을 보고 자기 집이라고 부모에게 말했다. 그녀의 이집트 집착은 이집트인과 결혼하게 했고 아들 이름도 세티로 짓게 했다. 그녀는 곧 벤트레시트(Bentreshyt 기쁨의 하프)가 됐다는 기억을 되찾았다. 그녀는 파라오 세티 1세의 여사제이자 정부였다. 그녀는 그의 연인이 됐을 때 독신 서약을 어겼는데 설상가상으로 임신하자 파라오가 공개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자결을 감행했다.
결국 도로시의 전생 집착도 결혼 생활을 파괴해 이혼에 이르렀다. 그녀는 아비도스(Abydos, 이집트 나일 강 좌안(左岸) 테베스의 남쪽 고대 도시)에 머무르며 이집트 고대유물부와 함께 일했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그녀의 지식은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세티 1세 사원 내부를 돌아볼 권한을 가진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대유물부는 도로시의 주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했다. 고고학자들은 그녀를 캄캄한 사원에로 데려가 그 안을 묘사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사원 내부 모든 것을 묘사해 우수한 성적으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밖에서도 그녀는 정원이 있던 자리를 정확히 짚어냈는데 나무 그루터기가 그곳에서 발굴됐다. 도로시는 세티 1세 사원 자리에서 평생을 고고학자들과 즐겁게 지냈다. 해서 그녀에게 주어진 별명은 '옴 세티'(Omm Sety, 세티의 엄마)였다. 고대 이집트를 이해하는 데 그녀의 기여는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