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 (天衣無縫) 의기교
천의 무봉(天衣無縫)리라는 말이 있다.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인위적인 어떤 옷도 걸치지 않은 채 태고의 알몸을 그대로 간직해야 선녀다.
천의 무봉이란 말은 성격이나 언동 등이 조금도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움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인다. 시나 문장 및 붓글씨 등이 기교를 부린
흔적이 없이 아주 천연(天然)할 경우에도 쓰이는 말이다.
일전에 우연히 서예 전시회에 갔다가 어느 한 작품 앞에 몇몇 분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중 한 분이 천의 무봉한 글씨체라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지점에 걸려있는 작품인지를 눈여겨 보았다가 그 작품앞에 멈춰 서서
감상을 했다. 예서도 초서도 아니고 딱 뭐라고 하기 애매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왕희지체와는 더욱더 거리가 멀었다.
그림과 글씨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했다.
한 작가의 세 작품이 연속으로 걸려있어서 더둑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는 이해가 되었다. 어떠한 형식이나 틀에도
얽매임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쓰는 도필(道筆)을 지향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 보아도 일기가성(一氣呵成)의 천의무봉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기저기 바늘로 꿰매고 수선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도필의 전제 조건은 단 하나다. 어떤 형식이나 기교에도 물들지 않은 마음이
끊어짐 없이 붓을 통해 화선지 위로 옮겨져야 하다는 것, 이밖에 아무것도 없다
형식을 벗어난 것처럼 조작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은 것처럼 꾸미는 짓은
결코 천의무봉이라 할 수 없다. 도필(道筆)은 쓰려는 자가 사라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의도를 가지고 애써 쓰거나 흉내낼 수 있는 글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