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요한 3,16-21)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16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줄곧 그분의 마음을 상해 드렸는데 그들을 사랑하셨다.
이들을 위해 그분은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내 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며 귀중한 피를 흘리셨다. 그분이 헐벗고 나그네 되었을 때도 우리는 못 본 체했고, 무엇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드님을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 오심은 이미 지났고 지금 계속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이 첫 번째 오심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두 번째 오심은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두 번째 오시기 전까지는 심판하시는 대신에 용서를 베푸시며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이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받을 필요가 없고, 믿지 않는 자들은 불신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판은 이미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판받을 사람들은 하느님께 충실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즉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유혹에 이끌려 잘못을 저지르고, 기도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이러하다. 그들은 어둠을 떠나 빛으로 달려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빛이 자신에게 오는데도 빛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자신이 눈이 먼 것을 빛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구원이나 멸망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하십니다(요한 3,16 참조). 따라서 주님과 대화하고 만나는 데 집중하는 습관이 가장 좋은 것이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습관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을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요한 3,19)라고 하십니다. 빛이신 주님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어둠의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면서 그 어둠의 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빛으로 나아가면서 주님의 뜻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좋은 습관을 나의 삶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기도와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