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 숲으로
올 추석은 예년보다 이르게 들었다. 구월 둘째 금요일이다. 그 덕에 닷새 머물다 창원으로 복귀하는데 이번 주는 사흘만 지내다 수요일 오후 뭍으로 건너왔다. 금요일이 추석이라 차례와 성묘를 위한 귀성은 목요일 오후 해도 되는지라 아침나절은 자투리지만 틈이 생겼다. 이른 아침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여름 끝자락에 한 번 찾기로 마음 둔 불모산 기슭으로 오르기 위해서다.
가을이 오기 전 불모산으로 오르려고 마음 두었다가 시간이 나지 않아 미뤄둔 산행이다. 이번에 찾고 나면 단풍이 소신공양을 끝낸 늦가을이 되어야 올라갈 셈이다. 그 사이는 불모산을 찾아갈 겨를이 나지 않을 듯하다. 내가 불모산을 가도 근래는 정상까진 잘 오르질 않는다. 여러 갈래 비공식 등산로 가운데 한 곳을 택해 산중턱까지 올랐다가 다른 등산로를 찾아 내려오기 일쑤다.
미명에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갔다. 월영동을 출발 불모산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탔다. 이른 시각이라 승객이 적어 중앙동과 창원대로를 거쳐 종점까지 곧장 내달렸다. 시내버스 공영차고지가 종점이었다. 저수지 아래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전기연구원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지난여름 두 차례 지난 적 있다. 불모산터널 가까운 숲에 들어 영지버섯을 찾고 알탕을 했더랬다.
불모산터널이 지나는 굴다리 밑에서 목덜미와 바짓단에 진드기 기피제를 뿌렸다. 아직은 날씨가 더워 진드기가 활동하는 때다. 올 여름 주중 거제에 머물면서 산행 중 두 차례나 진드기에 물리고는 신경이 바짝 쓰였다. 성주사로 가는 고개를 넘지 않고 송전탑이 지나는 숲으로 들었다. 등산로였지만 산행객이 잘 다니질 않아 거미줄이 걸쳐져 등산 스틱으로 걷어가면서 지나야 했다.
대숲을 지나니 김녕 김 씨 선산이 나왔다. 추석을 앞두고 자손들이 벌초를 깔끔하게 마쳐 놓았다. 불모산 북사면 너른 산기슭에는 후손들이 관리가 잘 되는 무덤이 많았다. 그 무덤으로 다니는 벌초나 성묘객들로 추석 전후는 여름까지 희미했던 등산로가 뚜렷해지기도 했다. 거기다가 송전탑을 관리하는 한전 하청 부서에서도 군데군데 깃을 달아놓고 주기적인 점검을 하는 듯했다.
아까 종점에 내렸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만 숲으로 드니 그쳐갔다. 등산로를 얼마 오르니 불모산터널로 드나드는 자동차바퀴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신 숲속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청아했다. 귀뚜라미소리는 전기연구원 근처까지만 들려왔다. 그 이후부터는 희미해져가는 풀벌레소리가 들려왔다. 귀뚜라미는 사람 사는 동네 근처서만 울어대고 산이 높아지니 살지 않는 듯했다.
새벽녘 내린 비로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혔다만 바람이 설렁설렁 일어 바짓단은 젖지 않았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숲이 우거진 산모롱이를 돌아갔다. 불모산은 간혹 주말에만 찾는 이가 오르는 등산로다. 추석 연휴 첫날인지라 불모산을 찾는 이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상점고개로부터 이어진 십자형 숲속 나들이 길에서 오는 중년 사내를 스쳐 지났다.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선 듯했다.
성주사 바깥 주차장까지 옆으로 걸쳐진 숲속 나들이 길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올랐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무덤은 점차 줄어들고 등산로는 희미해졌다. 그래도 높이 지란 활엽수와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숲이라 산행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른 아침 공기 맑은 숲속에서 삼림욕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산중턱 갈림길에 이르러 성주사로 내려가는 작은 샛길을 찾아 들었다.
산마루를 넘어선 남향에는 낙엽활엽수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송림을 지나니 한 그루 삭은 참나무둥치에 식용 여부를 알 수 없는 버섯이 자라나왔다. 삭은 참나무에 붙는 버섯으로는 포교와 느타리와 영지 밖에 아는 게 없었다. 혼효림 숲을 지나 한참 내려가니 성주사가 나왔다.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은 뒤 절간을 빠져나왔다. 시내로 드니 속세가 멀지 않았다. 19.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