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소개
온갖 오해와 무지가 가득한 조현병
한 권의 책으로 참 모습을 드러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여성이 자신의 아들이 조현병에 걸려 도무지 알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해서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날 때까지, 모든 순간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기록한 감동적인 실화. 자신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조현병 환자가 되었을 때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이처럼 진솔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조현병, 낯선 자아와 떠나는 여행(원제 Tell Me I'm Here)』은 열일곱 살 청년 조너선에게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온 가족, 특히 엄마가 벌인 7년간의 고투를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기록한 책이다.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약물 남용으로 생을 마감한 조너선의 엄마이자 책의 저자인 앤 데버슨은 호주의 유명 작가, 방송인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다. 그는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은 드라마 같은 시간을 마치 눈 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하게 기록하고 묘사했을 뿐 아니라, 병의 치료를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면서 의료계와 사회의 문제, 가족의 고통을 면밀하게 드러냈다.
책은 조너선의 출생과 유아기의 전조, 열일곱 살 때 조현병이 발병한 이야기로 시작해 이후로 매해 일어난 일을 각각의 장(chapter)으로 엮었다. 정신병적 상태의 조너선은 가족에게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연약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얼마나 깊이 엄마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치료를 거부하면서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을 진솔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내용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책을 읽어 나가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지적인 통찰과 곳곳에서 드러나는 유머,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듯한 편집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그동안 잘 몰랐던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작가는 조현병을 한 아이의 엄마가 감당해야 할 문제로 보는 대신, 연대의 힘을 믿고 사회와 체제의 적극적인 관심을 요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조현병이 사회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수많은 질병 중 하나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칼 로저스, 로버트 랭, 풀러 토리 등의 학계 저명 인물을 작가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기록과 과정을 읽는 것도 뜻밖의 즐거움일 수 있겠다.
🏫 저자 소개
앤 데버슨
앤 데버슨(1930~2016)은 호주의 작가이자 방송인, 다큐멘터리 제작자이다. 그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필리핀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유엔 방송평화상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고, 사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또한 호주 국내의 주요 상을 다수 수상한 바 있다. 남호주영화사 사장, 호주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호주영화재정회사의 회원이자 독립언론센터의 의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1983년 언론에 헌신한 공로로 호주 최고 훈장을 받았다. 한편으로 인간 관계 왕립 위원회, 뉴사우스웨일즈 차별방지 위원회, 건강증진 위원회, 성 로렌스 어린이 빈곤퇴치 캠페인 단체 등 다양한 사회정의 이슈와 관련한 주요 위원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맏아들이 조현병에 걸린 당시 뉴사우스웨일즈 조현병 협회와 전국적 조직인 호주 조현병 협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부의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뉴사우스웨일즈 정신 보건법에 관한 특별 각료 회의를 주재하였으며, 호주 국영 방송사에서 조현병에 관한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스핀아웃(Spin Out)]을 제작?감독했다.
2016년 작고한 저자는 호주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대중 인식 캠페인을 시작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신건강 분야의 선구자?다. 현재 SANE이라고 불리는 국가 단체인 호주 조현병(Schizophrenia Australia)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비단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다. 저서로는 [위기에 처한 호주인](1978) [변화의 모습들](1984) [예술, 미디어, 권력](1990) [탄성](2003) [모래 위에 그은 선](2000) [평화를 나부끼며](2013) 등 다수가 있다.
📜 목차
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고통과 희망의 여행
1장 시작
2장 조너선이 아픈 것 같아요
3장 바닷가의 집
4장 치료를 찾아서
5장 감옥은 힘들어
6장 엄격한 사랑
7장 여러 가지 이론
8장 버려진 자들
9장 고통의 나락
에필로그 빛으로
후기
참고 문헌
추천의 글
📖 책 속으로
우리는 더 이상 미쳤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미치광이’나 ‘정신병자 수용소’ 같은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머리가 돌았다’ 란 말은 듣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말은 과거 정신병에 대한 억압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날은 좀 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억압은 그대로 남아있다. 무관심이라는 형태의 억압이다.
--- p.20
한 번은 방과 후 조너선이 내 무릎에 앉아서 말을 한다.
“엄마를 보면 엄마 얼굴이 자꾸 마녀로 변해요.”
이 말을 내게 속삭이고 나를 꼭 끌어안는다.
“사람들 얼굴이 가끔 그렇게 되나요? 끔직한 얼굴로 변해요?”
--- p.31
그 당시에는 정신병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이런 금기는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조현병은 아마도 질병 중 가장 잘못 알려지고 잘 모르며 관심받지 못하는 병일 것이다. 그러나 조현병은 다른 어떤 병보다 많은 병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제적, 사회적 상태나 인종, 문화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조현병은 모든 정신이상의 75퍼센트를 차지한다.
--- p.71
조현병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증상이 있으며 심각성의 정도도 매우 상이하다. 좀 더 흔한 유형은 청소년기 이전까지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점진적으로 발병이 진행되는 경우이며, 다른 주요 유형으로는 성인이 되면서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다. 완치되는 경우는 후 자의 유형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중략) 환영은 플래시 불빛 같거나 설명할 수 없는 형태 로 나타난다. 후각과 미각이 변하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도 한다. 일분을 백 년처럼 느낄 수도 있고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분해되거나 일그러져 어떤 무서운 형태로 보일 수도 있다. 사고 과정이 와해되기도 해서 자신의 경계에 대한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세계가 자 신의 몸과 마음을 침입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깜깜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 p.74
연구에 따르면 발병은 뇌의 변연계(내부나 외부에서 받는 모든 메 시지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필터 같은 기능을 하는 뇌의 부분, 옮긴이) 내에서 발생하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겪는 증상은 그들의 문화적, 교육적 배 경이 관련되어 있다. 나이지리아의 열대 우림에 사는 한 남자는 주술사 가 자신의 마음을 훔쳐갔다고 말하고, 뉴욕에 사는 여자는 텔레비전에 서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생각을 방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너선은 시드니의 병원 침대에 앉아 귀에 워크맨 헤드폰을 꽂은 채, 자신이 핑크플로이드와 교감을 나누고 있으며 해와 달로 여행을 간다고 믿는다.
--- p.75
“아드님이 제 정원 끝에 있는 동굴에서 살고 있어요.”
“동굴이요?”
“강기슭에 있어요. 제가 매일 아드님을 위해 음식을 두고 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애는 괜찮은가요?”
“아니요, 짐승 같아요. 동굴에 사는.”
--- p.82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모든 이들의 감정을 모르는 척 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조슈아는 운동을 피난처로 삼았고 조니아는 학업을 피난처로 삼았다. 건축가는 자신의 정돈된 별장으로 물러나 있었다. 한번은 조자아와 조슈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청부살인업자를 구해.”
한 아이가 말했다.
“하지만 조너선은 우리 형제야.”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 p.112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지도책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미쳤다는 것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얼굴이 우리 눈 앞에서 와해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유리잔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그것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곳에 있다. 우리는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생각을 방송한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때 그 애들의 얼굴이 사악한 얼굴로 일그러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 p.126
브렌다와 마거렛은 내가 조너선을 폭행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한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생각은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조너선이 나를 공격한 것이 화가 났고 그를 도와주지 않는 제도에 화가 났고 그 병에 대해 화가 났다. 가장 다루기 힘든 분노는 역설적인 상황 때문에, 정확히는 조너선 때문에 일어난 분노였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변한 이유가 병 때문이라면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나, 누구나 두들겨주고 싶었다. 너무 화가 나서 나의 격분을 쿠션에 묶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너무나 무기력해 보여서 그리고 나서도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 p.154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들은 대개가 온순하고 내성적이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조현병과 관련된 폭력의 위험이 사라진다. 되풀이하지만 사례 연구에 의하면 폭력은 계속적인 경고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무시당했을 때만 발생한다. 진정한 폭력은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방치라는 폭력이다.
--- p.243
“나는 검은 띠가 사십 개나 있어. 나는 킹스크로스에서 쿵후 챔피언이야. 나는 그랜드 마스터 검은 띠 챔피언이야, 그럼, 그럼.” 그러더니 낄낄거렸다.
피터가 조너선의 팔을 잡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멈추게 한 다음 눈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조너선, 너 두렵니?”
조너선이 멈춰 서서 피터를 응시했다.
“응, 열나 무서워.”
그러더니 다시 방을 춤추듯 돌아다니면서 이번에는 매춘부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너선은 종종 매춘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가 킹스크로스에 있는 모든 매춘부들을 돌보고 있으며 그들을 포주와 경찰로부터 구해냈다고 상상했다. 피터가 물었다.
“조너선, 너 외롭니?”
“응, 나 외로워.”
피터는 조너선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했으며 그가 어떤 감정인지를 해석할 수 있었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 상태를 묘사하는데 비유와 상징을 종종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려서 그들의 내면 세계와 외부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유가 현실이 된다.
--- p.266
공감을 높이기 위한 말과 행동의 예에 관한 글을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은 현대 최면 치료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인간주의 심리학자인 밀톤 에릭슨(Milton Erickson, 1901-1980)의 발상이었다. 에릭슨은 공식적인 최면만을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환자가 그와 연관이 되어있고 그와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연주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것은 때로 공감과 수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담자가 내담자의 움직임과 언어를 따라하는 행위를 수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롱베이 구치소에서 이른 아침에 나무기둥처럼 한 다리로 서있는 아들을 말없이 쳐다보면서 나도 기둥처럼 한 다리로 서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은 철망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나는 약간 흔들거리고 뒤뚱거리면서 거기에 삼 분 아니면 사 분 아니면 오 분 동안 서 있었다. 잠시 후 조너선이 올렸던 발을 내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아요.”
우리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 p.283
탈시설화의 문제 중 하나는 장기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어떤 경우는 사회에서 스스로 항상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재활이라는 그럴싸한 전문적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이 환자들의 자유를 속박한다는 걸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하기를 꺼린다. 비자의적 치료는 언제나 우리에게 어려운 딜레마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심각하게 아픈데 도움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것을 넘어, 나을 수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역사회 내에서 비자의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병원에서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보다 어디서 치료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이론적인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그들이 지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포함한 포괄적인 범위의 서비스다.
--- p.391
목사님은 조너선을 인생의 우여곡절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섬세하게 조율된 악기에 비유했다. 나는 수년간의 소용돌이를 지나는 동안 모든 이들이 보여준 사랑과 도움에 감사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났다. 아니면 고개를 들어 빗속을 지나 무덤 저편에서 레이 버크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노숙자, 미친 사람, 병든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탤벗에서, 다른 쉼터에서, 킹스크로스에서, 조너선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그들은 조너선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와주어서, 그들은 내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너선의 짧은 생애에서 고통스러웠던 여행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의미는 삶의 모든 역설, 기쁨, 고통, 연약함, 강함, 분노, 사랑이 담긴 삶 그 자체였다.
--- p.443
조현병을 악하고 두려운 천벌 정도로 여기는 한,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계속 배척할 것이며 그들의 가족을 계속 버려둘 것이다. 조현병에 걸린 젊은이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해 보려고 이 책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미치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또 그들을 집어 삼킬 만한 이 소용돌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미치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또 그들을 집어 삼킬 만한 이 소용돌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썼다. 조현병 환자와 산다는 것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과 일어나는 일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 우울한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조현병 환자와 산다는 것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과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 우울한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에게서 고통스러운 편지를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 책을 썼다. 내가 받은 편지 하나 하나의 사연이 전 세계를 돌며 천 배로 다시 또 다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 p.448
정신질환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우리에게는 거부 대신 수용이 필요하다. 수치 대신 사랑이 필요하다. 절망 대신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지지가 필요하다. 그늘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설 때이다.
--- p.450
🖋 출판사 서평
고통과 희망이라는, 도착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조현병 환자와 가족. 그들이 질환을 이해하고
여정을 준비하도록 돕는, 시대를 초월한 논픽션 스토리.
치매, 뇌전증, 조현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뇌기능의 이상에서 생기는 질병이라고 답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명을 했다. 각각 노망, 간질, 정신분열증이라는 과거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중 치매는 이마저 부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에서 또 다시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개명을 한 조현병은 개명 전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그냥 미쳤다고 했으며 이는 지금도 흔히 들리는, 욕과 같은 의미다. 부정적인 인식을 덜기 위해 이름을 여러 번 바꾸기까지 해야 할 만큼 우리는 이 병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동안 쌓여온 부정적인 인식에 더해, 간간히 들리는 흉흉한 사건의 주인공이 조현병 환자라는 뉴스를 접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철저한 관리(관리라고 쓰고 격리라고 읽는다.)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기자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섣불리 조현병 환자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범죄의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사건이 잊혀진 이후에야 밝혀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가 위험하지 않으며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다는 사실에 대해 의외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경우는 거의 모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된 경우이며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은 적절한 치료를 위해 아마도 수없이 많은 시도와 호소를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조현병은 유전적 질환이며 나와는 관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나 형제 중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경우는 10 퍼센트, 부모 모두 환자일 경우는 40퍼센트 정도로 일반인의 발병율인 1퍼센트보다는 높다. 그러나 이 수치로 짐작할 수 있듯 조현병은 가족력이 있어도 발병하지 않는 경우가 월등히 많고 많은 수는 가족력이 없는 경우에 발병하며, 한편으로 100명 중 1명이라는 꽤 높은 비율로 발병한다. 류마티스 발병률과 비슷하며 어떤 단일 암보다도 발병률이 월등히 높다. 그럼에도 조기 발견과 치료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조현병만큼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평생 발병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어서는데 말이다. 그러니 조현병에 걸린 아들을 둔 이 책의 저자는 억울하고 분했다. 병원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침묵해서 수많은 전조 증상을 알아채지 못했고, 막상 발병을 한 이후에도 본인이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해주지 않아 결국 아들은 열일곱 살에 사망했다. 그 동안 이들을 돕고 위로해온 사람은 이웃과 친구, 또 다른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던 앤은 7 년의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부끄러운 실수와 감정, 고된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아들과 엄마가 뒤얽혀 엮어내는 드라마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아픈 아들을 고쳐보겠다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하지 말아야 했을 여러 시도도 해본다. 심지어 인도까지 아들을 끌고 가고, 제도를 바꿔보겠다며 유럽과 미주를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한 인본주의 상담학의 창시자 칼 로저스, 반정신의학의 선두주자 로버트 랭, 〈조현병의 모든 것〉의 저자 풀러 토리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가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조현병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조현병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30년 전인 1993년 호주에서 발간되었음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다. 책이 호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자 저자는 책의 내용을 〈스핀아웃(Spin Out)s〉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했고, 이후 호주 조현병 협회를 결성해 환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며 사회의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원서 〈Tell Me I'm Here〉은 조너선이 살던 호주 애들레이드에 우연히 살게 된 옮긴이가 헌책 더미에서 발견한 보물이다.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덧붙인 지도가 되기를, 여기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삶의 경계를 넓히는 값진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번역 작업을 했다. 조현병 혹은 다른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아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잠시 내가 아니었던, 또는 아니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자녀를 둔 부모 역시 이 아이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혼란에 빠질 때가 많다. 옮긴이는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나와 다른 낯선 ‘나’와 잠시 또는 오래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향한 창 하나를 열어두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은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나머지 가족 또는 친구들이 환자를 이해하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견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임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이들에게 정신질환을 지닌 환자와 그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되어주며, 의료 행정가에게는 어떤 치료와 복지가 환자와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뛰어난 문학 작품이자 진지하게 다뤄진 적 없는, 조현병이라는 주제를 다룬 개척자적인 작품이다.
‘호주 인권상’ 논픽션 부문 수상에 대한 심사위원 평에서(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