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2023년 3월 9일(목) 안개, 안산시 대부도 구봉도
풍도바람꽃을 보려고 작년부터 벼렸다. 풍도에 민박을 예약하고 대부도에서 풍도 가는
왕복 배편도 예약했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출항시간이 10시 30분이다. 길도우미는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고 하지만 직장인 출근시간이어서 차가 밀릴 것이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대부도 가는 서울순환고속도로에 안개가 자욱하고, 시화방조제는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다.
바람보다 안개가 더 무섭다고 한다. 배는 출항 대기상태다. 인천 기준 12시까지 안개가
걷히지 않으면 오늘 배는 결항할 거라고 한다. 초조하게 2시간 가까이 안개 걷히기를 기다
렸지만 오히려 안개가 더 자욱하게 낀다. 차디찬 안개비까지 내린다. 결항이다. (안내산악
회를 따라 서산 삼길포항에서 배를 전세 내어 당일로 풍도를 갔다 오는 수가 있지만 나에
게는 가는 날자가 맞지 않았다.)
이런 추운 날씨에 풍도에 간들 풍도바람꽃이라고 우리를 반겨줄 것 같지는 않다. 작년
이때쯤에도 풍도 간다고 대부도에 왔으나 그때는 코로나 19로 풍도에서 외지인을 받아들
이지 않았다. 그때 구봉도에 가서 노루귀를 보았다. 오늘도 풍도 대신 구봉도를 간다.
아, 노루귀도 추워서 집밖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몇몇은 나섰지만 잔뜩 웅크리고 있다.
트위터 현대시봇에 올라온 시 몇 수를 함께 올린다.
시는 전문이 아니라 일부분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인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
숨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느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은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 이육사, 「자야곡(子夜曲)」
나는 당신이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 한용운, 「쾌락」
가을날 땅거미 아름풋한 흐름 우를
고요히 실리우다 훤뜻 스러지는 것
잊은 봄 보랏빛의 낡은 내음이뇨
임의 사라진 천리밖의 산울림
오랜세월 시닷긴 오스름한 파스텔
―― 김영랑, 「땅거미」
저긔 산비탈의 작은 마을과
언덕에 늘어섰는 나무나무는
모두 구름과 함께 희미하여라
아아 이날도 벌써 저물었는가.
―― 이장희, 「저녁」
눈물을 잊어버린 사나이에게 어쩌자구 한잔 술을 권하는 사람들만 이리 많은가
―― 조치훈, 「비혈기(鼻血記)」
불노리를
시름없이 즐기다가
아불싸! 부르짖을때
벌써 내손가락은
발갛게 되었더라.
봄날
비오는 봄날
파라케 여윈 손가락을
고요히 바라보고
남모르는 한숨을 짓는다.
―― 이장희, 「불노리」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魂)
별과 달이 부서진
샘물을 마신다.
―― 조지훈, 「암혈(巖穴)의 노래」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후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길바다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별들 버르르 떨리겠고나
―― 김영랑, 「두견(杜鵑)」
꽃 지는 소리
하도 가늘어
귀 기울려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이도 한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어라
―― 조치훈, 「낙화(落花)」
첫댓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아내가..
정지용 -향수-
세월 가니
자신이 자신을 봐도
.
.
이렇습니다.
저는 세월이 가도 자신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문득 문득 세월의 무게를 느낍니다.
한편 그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쉽게 노루귀가 덜 피었군요. 구봉도에서 하룻밤을 주무셨나요?
집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고, 이 다음주 초에 다시 풍도 가려고 집으로 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