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강론>
(2024. 2. 29. 목)(루카 16,19-31)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루카 16,19-22).”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라고 가르치셨을 때(루카 16,13),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루카 16,14).
그들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자들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그런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경고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루카복음 12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거의 같습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6-21).”
여기서 ‘오늘 밤에’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회개할 수 있는 ‘몇 시간’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그 시간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는 ‘시간’으로 그 기회가
주어졌지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는 ‘라자로’ 라는
상황으로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라자로에게(또는 라자로 같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부자가 자기의 잘못된 삶을 바로잡는
방법이고, 비유 속에서는 마지막 기회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문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현세의 삶을 즐기기만 한다는
것인데, 라자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나타냅니다.
비유에서 “그의 집 대문 앞”이라는 말은, “그의 집의
밖”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시선 앞”이라는 뜻입니다.
라자로는 항상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부자가 오며가며
빵 부스러기 같은 것을 던져 주었음을 뜻합니다.
그 부자는 라자로를 모르지 않았고,
완전히 외면한 것도 아니고,
빵 부스러기 같은 것을 던져 주면서,
자기는 할 만큼 했다고,
사랑 실천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사랑 없음을 나타내는 태도일 뿐입니다.
사랑 실천은 ‘나’를 기준으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했다는
말은 내 쪽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라는 말은,
부자가 던져 주는 빵 부스러기는 아주 적은 것,
라자로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개들까지 와서” 라는 말은, 부자가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 줄 때 마치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처럼
던져 주었음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큰 죄입니다.
<이 말은, 라자로를 개들이 있는 곳에 방치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매일미사 책 ‘오늘의 묵상’ 글을 보면, 교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라자로를 만나야 한다고 썼는데,
글을 쓴 이가 속해 있는 교회는 라자로 같은 이가
하나도 없는 교회인가? 부자들만 있는 교회인가?
그리고 그 교회는 항상 문을 닫아 놓고 있는가?
라자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고, 우리 가운데에도 있고,
어디에나 있습니다.
바로 곁에 있는 라자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라자로는 더욱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실, 안이냐, 밖이냐, 곁에 있느냐, 멀리 있느냐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입니다.
사랑 실천은, 모든 곳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문을 닫아 놓은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향해, 또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마르 11,17).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은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