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사장이 지켜야 할 성결 명령
레 21: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
2 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3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4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
5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6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7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8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9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레 21:1-9 / [일반 제사장의 성스러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인 아론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에게 가까이하여 부정 타지 않도록 하여라. 단 가까운 피붙이인 어미나 아비나 아들이나 딸이나 형제나 3) 남자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는 누이가 죽었다면 이들의 장례식에는 참석해도 상관이 없다. 4) 하지만 처가의 식구가 죽으면 그 집에 찾아가 부정을 타서는 안 된다. 5) 제사장은 머리카락을 모조리 밀어내어서는 안 된다. 수염을 밀어서도 안 되며 몸에 문신을 새기거나 상처를 내서도 안 된다. 6) 제사장들은 나 하나님의 차지이므로 거룩해야 하며 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해서도 안 된다. 제사장들은 나 여호와께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이들인 까닭에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7) 제사장은 음란한 여자나 부정한 여자에게 장가들어서는 안 된다. 남편과 헤어진 여자와 혼인해서도 안 된다. 제사장은 나 여호와의 차지이므로 다른 이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여라. 제사장은 나 하나님이 먹을 양식을 바치는 일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제사장을 늘 거룩하게 대우하여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9) 제사장의 딸이 음란한 짓을 하며 제멋대로 놀아나거든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 그가 음란한 짓을 함으로써 제사장인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며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일반 백성들보다 더 높은 거룩의 기준을 가지고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딤전 3:1-7).
제사장은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1-4) 제사장이 지녀야 할 존재 가치는 거룩함, 곧 성결입니다. 제사장도 죽은 자와의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4:3; 민 19:14). 단 그 제사장의 살붙이인 경우만 부득이 허용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어느 인간이든, 심지어 제사장이라도 죽은 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마 22:32).
제사장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5-6) 고대 우상을 섬기던 이방 풍습에서 비롯된 머리카락이나 수염, 신체의 어떤 부분을 훼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특히 애굽의 제사장들은 가까운 친척이 상을 당할 경우 애통의 표현으로 머리를 삭발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라는 말씀 역시 죽은 자를 위한 이방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긴 세월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은 애굽 우상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이 모든 풍속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항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고 백성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7-9) 제사장들은 결혼에 있어서도 순결하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 창조 질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온전함과는 거리가 먼 상태임으로 제사장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직은 순수한 신앙과 혈통으로 계승되고 그 혈통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흠 없는 조건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사장의 딸이 행음했을 경우에는 가혹하지만 그를 불사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제사장의 거룩함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엄한 경고가 됩니다.
적용: 당신 삶의 영역에서 보다 더 높은 '거룩함의 삶'을 위해 실천해 가는 규례들이 있나요? 새롭게 세울 규례들은 무엇이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딤전 3:1-7). 당신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영적 제사장직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는지요?(출 40:13; 벧전 2:9; 시 29:2; 마 5:16)
우리는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 살아가는 동시에 남편, 아내, 부모, 자녀, 친구 등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먼저 부르심 받은 성도의 모습과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 설 교 >
거룩하고 존귀한 제사장의 사명
레위기 21:1-9
지난 20장에서는 3일간에 걸쳐 반듯이 죽여야 할 범죄들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첫째는 우상숭배하는 자 특히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거나,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것을 모르는 체하여 죽이지 않은 죄, 신접한자, 박수무당을 따르는 자는 죽이라 하셨고
둘째는 부모님에게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 하셨고
세째는 성적 범죄에 대하여 죽이라고 말씀하셨다.
남의 아내와 간음한 죄,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월경중인 여인과 동침하는 죄 등이었다.
오늘 21장에는 제사장에 대한 성결 규정이 반복되고 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집례하는 매우 특별한 지위이다.
특별히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레위 지파 가운데에서만 할 수 있는 특권이었고, 대제사장은 아론의 집안과 자손들만 즉 아론지파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직분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정결을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당연히 일반 백성들보다 훨씬 엄격한 거룩과 특별한 규정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는 크게 4가지 정도로 제사장의 성결에 대한 말씀이 보인다.
1. 제사장의 장례에 관한 규정으로 보인다(1-4)
기본적으로는 백성 중에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신다.(1)
왜냐하면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기 때문에 그렇다.(4)
또 스스로 더럽혀서 욕되게 하면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4)
그러나 제사장이 장례에 참석해도 되는 예외 규정이 있다.
1. 부모나 자녀와 형제가 죽었을 경우(2)
2. 시집가지 않은 누이가 죽었을 경우(3)
이런 경우에는 시체를 만져도 되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죽은 자로 인하여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된다. 거룩한 하나님께 백성을 대신해서 제사함이 먼저 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멘.
2. 제사장의 외모에 규정으로 볼 수 있겠다.(5~6)
제사장은 직무와 관련하여 외모에 대한 규정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제사장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면 안된다.(5)
2. 수염 양편을 깎아서도 안된다.(5)
3. 살을 베어서도 안된다.(5) 물론 애도의 표시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규정이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그렇게 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렇다.
4.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해야 한다.(6)
5.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된다.(6) 왜냐하면 하나님게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이므로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6)
3. 제사장의 결혼 규정이다.(7~8)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제사장에 대한 특별한 결혼 규정도 마련하셨다.
1. 창녀와 결혼하지 말라 하신다.(7)
2. 더럽혀진 여자와 결혼 하지 말라 하신다.(7)
3. 이혼 당한 여자와도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다.(7)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의 자녀도 이와 같은 여인들과 결혼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처녀를 취하여 결혼하라고 명령하신다.(13)
하나님께 음식 예물을 바치는 제사장은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8)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렇다.(8) 아멘.
4. 자녀들의 음란을 용납치 말라 하신다.(9)
제사장의 딸이 매춘행위를 하여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했으면(9) 그녀를 반듯이 불로 태워 죽이라 명령하신다.(9) 참 끔찍한 일이다.
제사장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인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교회에서도 신앙의 연륜이 깊어 질수록 직분이 있을수록 영적 지도자로 책임이 점점 더 커질수록 하나님 앞에서 더욱 순결하고 거룩하게 구별 되도록 스스로 더럽히지 않도록 몸과 마음과 영혼을 잘 관리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사장의 성결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제사장의 거룩함에 대해서 다시 보았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사장에 합당한 거룩한 인생 되게 하옵소서.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상과 구별 되게 하시고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영적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점점 더 커질수록 성결하고 거룩하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제사장의 금기 사항
레 21:1-9 /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내린 몇 가지 중요한 금기사항이 있었다. 본문은 그 세가지를 보여준다
1. 시체 접촉 금지(1-4절)
1) 죽음은 보편적인 인류의 죄악과 저주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 시체는 종교 의식상 부정한 것이었다(창 3:14, 약 1:15).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들이 시체를 만져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다. 천막 안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민수기는 죽은 자의 주검이 있는 천막 안에 들어가는 자는 7일간 부정하다고 규정하였다(민 19:14).
2) 그러나 혈육의 죽음은 달랐다. 부모와 자녀와 형제와 시집을 가지 않은 누이가 죽었을 경우에는 제사장은 그 시체를 만질 수 있었다. 여기에 아내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럼 아내가 먼저 죽었을 경우는 어떠하였을까? 성경은 남편과 아내를 ‘한 몸’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아내도 골육지친과 동일하게 허용되었다. 다만 시집간 경우에는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제외되었다. 시체에 관한 규례 속에서 우리들은 결국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을 읽을 수 있다.
3) 성경은 백성의 지도자인 제사장에게 보통 사람과 같이 함부로 시체를 만져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하시므로 제사장 직무가 단순한 것이 아닌 그 안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려주신다. 즉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로서 구약 제사장의 직무는 신약 시대의 한 점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의 계시요 예표라고 볼 수 있다.
2. 이방 풍습 모방 금지(5-6절)
1) 제사장은 애도의 뜻으로 머리를 대머리처럼 밀거나 수염 양쪽 끝을 깎거나 살을 베어서는 안 된다. 슬픔에 대해 이 같이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풍습이었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고대 애굽 제사장들에게는 가까운 친척이 상(喪)을 당할 경우 애통의 표현으로 머리를 삭발하는 관습이 있었다. 생명과 위로를 베푸는 성직(聖職)으로 창조주 하나님이 임명하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이방 풍습을 절대 모방하지 말아야 했다.
2) 즉 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이므로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거나 욕되게 하지 말아야 했다.
3. 부정한 결혼과 음행 금지(7-9절)
1) 제사장은 여호와의 거룩한 제사장이므로 기생(창녀)나 순결을 잃은 여자나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2)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거룩해야 한다.
3) 제사장 딸의 음행 경고(9절)
(1) 제사장의 딸은 매춘 행위를 하면 안 되었다.
(2) 제사장 딸의 매춘 행위는 불에 태워 죽을 범죄 행위였다.
(3)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인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는 것은 그 아비인 제사장을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같은 행위는 백성들에게 치명적인 악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성경은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설 자
레 21:1-24
제사장의 규례(레 21:1-9)
사람마다 지켜야 할 법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 백성을 대신하여 나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1. 죽은 자로 인하여 계속 애곡 하지 말 것.
제사장들은 국은 자를 애곳하는 동안에 자신의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을 안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죽은 시체에 2미터 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식법상으로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민19:14에 보면 죽은 사람의 천막에 들어가는 자는 칠일 동안 부정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2,. 자기 몸을 단장 할 것.
이방인들은 자기 신을 찬양하고 섬기는 자세로 머리털을 자르고 피를 흘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들의 관습을 따라 미신적 행위를 해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앞장서서 일하는 지도자들은 세상의 빛이오 소금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가서는 안된다.
3. 자기의 가정을 깨끗이 하라.
제사장은 결혼하는 일에 품위를 떨어뜨리면 안되었다. 제사장들은 나쁘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 여인이나 죄가 있는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되었다. 이혼한 여자와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성경에는 주의 종의 아내는“단정하여 절제함으로써 직무에 책망할 것이 없도록”하라고 하였다.(딤전3:11)
4. 자기 자손을 부정케 해서는 한된다. 제사장이 순결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 자식들이 합당치 못함으로써 주님게 영광 돌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하나님게 소속 되어 있음을 기억하여 언제나 성결해야 했다. 오늘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이다.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이루어야 한다(벧전2:5)
하나님 앞에 설 자(레 21:16-24)
하나님 앞에서 직무를 행할 자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자격은 하나님 앞에;설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1. 신체적으로 흠이 없는 자가 설 수 있다.
17절 말씀에 너희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잇는 자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으며18절 말씀에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한다고 하셨다. 제사장 직분은 특정한 집안에만 주어진 직분이다. 제사장은 자손들에게 세습되는데, 자손 중에 신체적 불구자가 태어 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그 집안 출신이라고 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신약 시대에나 오늘날에 와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를 지원하는 사람에게신체적 결함을 니지고 있다는 이유로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2. 정신적 불구자는 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제단의 신성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마음이 부도덕한자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런자들은 사역자로 쓰임받을 수가 없다. 홈니와 비니하스의 죄는 신체적 결함보다. 더 악했다. 오늘날 정신적, 도덕적 결함을 가진 체, 교회지도자의 노릇을 하려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인데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허물를 사하여 주셔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제사장의 규례
레 21:1-9
1.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사장들에 관한 말씀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죽은 자를 만지는 것은 부정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외를 두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그의 형제와 자매의 시체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라할지라도 그 가족들의 시체를 만지는 것에 대하여는 더럽혀지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제사장의 직분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 가족관계의 일에서는 더럽혀져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족 간의 사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제사장으로써 거룩함이 깨어져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자신의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사랑의 상황을 회피할 때가 있음을 봅니다. 영이 주는 자유함보다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율법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왜 그러한 행태가 자주 나타날까요?
2. 본문에서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사장들은 자신을 더럽혀 세상의 삶속에 자신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거룩함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직분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분은 거룩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는 일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는 일을 하는 자도 같은 차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자신의 직무를 충실하게 해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복음의 제사장들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올려드리는 역학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제사장들이 거룩함을 유지할 때 비로소 그 제단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복음의 제사장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복음의 제사장들은 자신의 임무를 잘 감당하는 반면 어떤 자들은 잘못 감당하는 것을 봅니다. 잘못 감당하는 자들은 왜 그럴까요? 이 시대에 복음의 제사장들이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그 직무를 잘 감당치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그들의 거룩함이 육체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의 거룩함이 육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까요?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
레 21:1
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다. 그전에는 제사장의 거룩 이렇게 간단하게 붙였는데 그렇게 제목을 붙여서는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붙였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이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기 때문에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 그렇게 붙였다. 이제 전체적인 요약이다.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는 시체와 혼인과 성물을 드리는 것 여기까지는 21장에 있는 내용이다. 성물을 먹는 것은 22장에 있다. 그래서 제사장이 지킬 규례와 그리고 제사장과 이스라엘이 열납되도록 예물을 드리는 규례다. 이것도 22장에 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자가 제사장인데 이런 사람들은 시체와 혼인에 있어서 거룩하게 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먹는 자로서 자신들을 모든 부정으로부터 깨끗케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리고 먹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뒤에 열납되는 예물을 뒤에 붙여서 말씀했다.
핵심 되는 구절은 21장8절 너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제사장을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이 말이 22장 제일 끝에도 거의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금 모세보고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고 했는데 왜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했는가?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해라.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 거룩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자가 제사장이다. 21장2절부터 9절에는 제사장의 거룩이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 10-15절을 대 제사장의 거룩이 기록되어 있고 그 이하에는 여호와께 식물을 드리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2-9절 제사장의 거룩이다. 제사장의 거룩과 대 제사장의 거룩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대 제사장의 거룩에서 그 거룩이 강화되어 있다. 읽겠다. 이론 자손 제사장들은 죽은 자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라. 골육지친과 처녀인 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다. 제사장은 백성은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라. 물론 골육지친 형제나 자매 그렇게 쭉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 빼고 골육지친과 처녀인 친 자매로 이렇게 줄여서 썼다. 그런데 구약 교훈법은 반복법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요약하면 잊어버리기 쉬운데 골육지친인 형제나 부모나 이렇게 쭉 이어서 쓰고 있으면 읽어보면 그냥 안다. 그런데 자매도 골육지친이지만 결혼해 버리면 그는 아론 가문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 결혼한 가문에 속한다. 그러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친 자매는 골육지친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다. 그 시체를 만질수 있다 그 말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아라. 만일에 제사장이 죽은자와 접촉되면 그를 욕되게 하는것인데 무엇을 욕되게 하는가? 백성의 어른으로서 그 자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또 같은 말은 반복해서 설명을 할 것이다. 동심원적인 물결 구조가 항상 있다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수있다. 그러나 더 크게는 죽은자로 인해서 더럽히지 말아라.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수 있다. 또 다시 말하기를 백성의 어른인즉 더럽히지 말아라. 이렇게 작은 단락에서도 첫 주제와 뒤에 결론이 맞는 방식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설명적인 구조다.
그 다음 것은 이것을 조금더 진행시킨 방식이다. 제사장은 머리털을 밀거나 수염 양편을 깍지 말며 살을 베지 말며 하나님께서 거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들은 화제 곧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지어다. 첫 단락에서는 백성의 어른인즉 거룩해라.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백성의 대표로서 여호와께서 식물을 드리는 자인데 앞에는 더럽히지 말아라. 그러나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 수 있다. 하는 기본적인 단위를 말하고 두 번째는 이제 더럽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확대되고 있는데 머리를 밀어서 대머리같이 말고 수염 양편을 깍지 말고 살을 베지 말아라. 왜 하나님께 거룩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이런 일을 안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자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욕이 안되는데 만일에 이들이 머리를 깎아서 대머리 같이 하고 수염 양편을 깎고 살을 베면 하나님께 속한자가 아닌 것 같이된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마 이것은 이방인이 슬퍼하는 슬픈 풍속일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 장례법을 잘 모르니까 모르지만 그 당시 가나안과 애굽 배경을 두고 그들이 슬픔을 표현할 때 살을 벤다거나 또 이스라엘 같으면 슬프면 머리는 다 쥐어뜯어서 대머리 같게 되게 하라 그런 말도 있다. 그러니까 아마 이방인들도 머리를 밀어서 더구나 앞대머리가 되게 하던지 수염을 다 뽑는 식으로 양쪽을 다 깎던지 그런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런 식으로 슬픔을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속한자가 아니고 그런 일을 안하면 하나님께 속한자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니까 이방인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말아라 그런 말이다.
제사장은 그 다음 혼인으로 인해서 깨끗해야 한다.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결혼을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기생과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면 함께 창기가 되는 것이라고 고전에도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합하지를 말아라. 너는 그를 거룩하라. 그는 내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지금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모세에게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왜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니까 너는 그를 거룩히 여겨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여기서 다시 거룩에 대한 문제를 첫 시작에서 강조한 만큼 한 번더 크게 강조함으로 단락을 마무리 짓고 있다.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라. 그렇게 해서 제일 앞에 거룩하라 한 것을 읽었던 주제적인 것을 다시 한 번 한 단락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불살라라. 제사장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해서 함께 창기의 몸이 되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딸까지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죽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 가문을 거룩하게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체와 그리고 결혼으로 인한 부정으로부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것인데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고 백성의 대표고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다. 그런데 백성을 대표하는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소유로 삼으셨고 그리고 그 어른을 불러서 자기 앞에 나와서 식물을 드리도록 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체에 있어서도 부정하면 안되고 결혼에 있어서도 부정하면 안되고 심지어 자기 딸까지라도 부정하면 안되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그들은 이방인처럼 슬퍼해서는 안된다.
지금 본문을 더 요약해서 제가 적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대 제사장의 거룩에 대한 규례인데 형제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북을 입은 대 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는 자기 백성중 처녀로 아내로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 더럽히지 말라.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이 말이 또 끝에 결론적으로 다시 나와 있다. 언약적인 표현법이다.
그런데 대 제사장은 제사장보다 한 등급이 더 높다. 대 제사장은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냐면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다.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다.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데 대 제사장은 그렇게 묘사되어 있지 않고 기름 부음이 그에게 있고 거룩한 예복이 그에게 있다. 관유로 부은 것은 성령으로 충만케 한 것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고 예복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성소에 위엄을 입고 있는 것이다. 예복은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과 같이 되어 있다. 이처럼 대 제사장은 그렇게 되어 있고 그 머리에는 거룩한 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방인처럼 대머리 되게 한다거나 수염을 민다거나 그런 슬픈 표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슬픈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 안된다. 왜 그 머리에는 거룩한 기름 부음이 있고 옷은 성소의 영광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 어떤 슬픔의 표시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떤 시체든지 대 제사장은 접촉하면 안된다. 자기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하고 절대로 성서에서 나오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이 성소에 기름을 그에게 부어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슬픔도 표현되어 있으면 안되고 자기 아버지가 죽어도 그 죽음에 접촉하면 안된다. 그는 성소에 기름 부음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일체 성소에서 나와서도 안된다.
그리고 아내도 제사장의 결혼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아라 이 정도만 되어 있는데 대 제사장도 그런 말이 함께 쭉 있다. 그런데 특별히 더 강조되기는 자기 백성 중 처녀로 아내로 삼으라 하는 말이 특별히 더 덧붙여 강조되어 있다. 다른 것은 다 빼고 그 쪽만 붙여 놓은 것이다. 자기 백성중 처녀로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 더럽히지 말라. 왜 처녀로 삼아야 되고 또 자기 백성중에 해야 되는가? 여기서는 과부나 이혼당한 여인도 안된다고 덧붙여 있다. 그러면 이혼된 여자는 여기서는 자기 죄로 이혼된 여자는 죽지 살아 남지 못한다. 단지 여기서는 수치된 일이 있는 줄 알고 이혼당한 여자지 구체적인 범죄로 이혼당하면 그는 돌에 맞아 죽지 살아 있지 못한다.
그런 항목들이 있는데 다 빼고 여기 대 제사장의 강조된 점만 썼다. 그런데 자기 백성 중에서 얻어야 된다. 여기서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아론 지파 자기 지파 안에서만 얻어야 된다. 그리고 처녀로만 얻어야 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대 제사장에서는 그 깨끗함이 한층더 강조되어 있다. 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에 얻으라 그런 말이 안나타나 있다. 그러나 아마 제사장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 제사장은 특별히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지파하고 아론의 지파하고 섞이지 않도록 해라. 만일에 섞어지면 그 백성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아예 대 제사장은 자기 백성 자기 가문중에 처녀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다른 지파하고도 섞이지 않는다. 뭐 부정한 여자하고 안 섞인 정도가 아니라 다른 지파하고도 안섞여진다. 그래야 그 자손이 더럽혀지지 않는다. 만일에 다른 지파하고 결혼하면 더럽혀 진다 그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제 제사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식물을 드리고 식물을 먹는가? 식물을 드리는 것이 21장 후반부에 있고 이제 먹는 규례는 22장에 있다. 아론의 자손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를 말아라. 흠이 있는 자는 나와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흠이 있은 즉 나와아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요약을 했어도 그 특성을 살리느라고 요약을 했다. 거기서는 흠이 있은 즉 하는 말이 계속 반복된다. 아마 성경 본문을 읽어보면 더 많이 반복되어 있을 것이다.
흠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지 못한다. 요약하면 그 말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물이든지 지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장안에 들어가거나 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그런데 그가 흠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지 못하는데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 성소에나 단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 왜 그런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거룩한 하나님으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에 흠이 있는 자는 내게 예물을 드리지 말아라. 먹을 수는 있지만 절대 나오지 말아라. 나오면 나를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제사장을 백성의 대표로 어른으로 그리고 시체와 부정으로부터 깨끗게 했어도 만일에 제사장 몸 자체에 흠이 있으면 그는 내 앞에 나오면 내가 더러워지니 만나지 말자 그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21장에서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다.
이제 설명이다. 아론 자손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여 백성의 어른을 삼고 여호와의 화제 곧 여호와의 식물을 드리도록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시체와 혼인으로 인해서 더럽혀서는 안된다. 죽음과 더러움은 성소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가문 그 딸로 부정하게 되면 죽이라고 그랬다. 그 가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백성의 어른으로 삼으사 성소와 단에 나아와 식물을 드리는 자로 세우신 제사장에게는 백성보다 더한 규례를 주셨고 또 대 제사장에게는 제사장보다 더욱 규례를 주시어 거룩하게 하셨다. 백성은 자기 시체로 인하여 더러워질 수 있다. 그러나 제사장은 골육지친을 인해서는 더러워 져도 다른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안된다. 그런데 백성은 다른 사람의 시체를 만질 수 있다.
그러니까 백성의 거룩 제사장의 거룩 대 제사장의 거룩이 다르다. 대 제사장은 어떤 시체에도 접촉하지도 말며 슬퍼하지도 말며 항상 성소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성소에 속한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성소에 관유를 그에게 부으셔서 거룩한 직무를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성소를 섬기는 직무로 임했기 때문에 성소를 떠나면 안된다.
과부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그녀에게도 남편의 죽음에서 죽음의 저주와 권세가 임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적인 방식이다. 대 제사장은 자기 백성 곧 자기 지파의 처녀와 결혼하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아론의 가문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일반 백성과 혼인함으로 인하여 그 후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 아론 자손은 그 성소를 봉사하지만 일반 백성은 성소밖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성소밖에 있는 일반 백성과 성소를 봉사하는 아론의 지파는 섞지 말아라 그 말이다. 같은 이스라엘인데도 그렇게 구별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 중 처녀하고만 결혼하도록 했다. 만일에 일반 지파가 성소에 들어오면 죽지요? 그러니까 더럽히지 않도록 했다. 죽음에 접촉한 제사장 뿐만 아니라 신체적 흠이 있는 제사장도 휘장안이나 단에 가까이 못한다. 그리하면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다.
신체의 흠이 있는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몫으로 주신 식물을 먹을 수 있으나 여호와께 식물을 드리지는 못한다. 백성과 제사장과 대 제사장의 이러한 거룩의 차이는 모세 제도적인 차이 곧 하나님을 섬기면 누리는 관계의 차이다. 그러나 교회 직분자에게 평신도보다 더한 윤리적인 요구를 하신 것은 이런 질에 차이가 아니라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구약 때는 아예 거룩의 질적인 차이가 있다. 대 제사장이 누리는 것과 제사장이 누리는 것과 백성이 누리는 것 관계가 아예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간격을 두고 교제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 간격을 넘으면 죽는다. 그러니까 심지어 결혼할 때까지라도 대 제사장의 가문은 일반 이스라엘 백성과 섞이지 못하도록 했다. 왜 그 가문만 하나님의 성소를 봉사하고 일반 가문은 결혼을 통해서도 성소를 봉사하도록 못 들어온다. 그런 직무에로 못 들어온다. 완전히 분리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그냥 신약 교회에 적용하면 막 이제 목사부터 적용하기 쉽다. 왜냐하면 목사 장로에게도 그런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불순종하는 자식이 없어야 되겠다. 감독들은 그런 말이 쭉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분명히 직분자에게는 이런 것을 신약에서도 더 요구한다. 그러니까 이것을 구약을 그런 식으로 신약에 막 적용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신약에서는 직분자와 평신도 사이에 이런 거룩의 차이가 없다. 예수 안에서 다 함께 하늘에 속한 거룩을 누리지 너는 나와 다르다. 우리 섞이지 말라 너는 저 선밖에 서있어라 하는 그런 윤리적인 간격은 없다. 그러니까 초신자나 오래 믿은 신자나 똑같은 윤리적인 관계 하나님과 교제는 그 몸의 관계지 초신자는 그쯤 살고 오래 믿은 신자는 이쯤 살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윤리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구약을 적용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신약에서 직분자에게 더 거룩한 윤리를 요구한 것은 그것은 먼저 믿는 자들이 덕이 되게 하기위한 것이지 하나님과 누리는 그런 윤리의 질적인 차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은 구원의 책이어서 이 구원의 질적인 간격이 예수 안에서 여원히 없어&51275;다. 단순히 제거 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거룩을 완전하게 얻음으로 없어졌다 하는 이것을 말할려고 구약 제도를 말하고 있는것이지 지금도 이것을 그대로 우리 믿는 신자들에게 등급을 나눠어서 연결시키라고 그렇게 읽어서는 안된다. 구약 성경은 그렇게 도덕책으로 풀어서는 안되고 구원의 책으로 읽어야 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성소에 속한 거룩함으로 주셨다. 죽음과 더러움의 권세는 부활하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대 제사장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끝났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거룩에 참여한 교회에서 모든 거룩의 관계는 없어졌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셔서 자기 상에서 봉사토록 하신 은혜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시켰다. 성도끼리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연합의 비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지 목사 자녀들은 목사 자녀끼리 결혼하고 그런 것은 없다 그 말이다. 그러나 성도와 불신자 간격은 여전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밖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은 교회안에 있는 거룩을 예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성도끼리 결혼은 거기서도 조금 봐주는 결혼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의 비밀이 거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신다. 교회는 다 주의 상에서 하늘 성소에서 먹고 마시지 그 성소밖에 있는 자 따로 있는 것 아니고 신체의 흠이 있으니까 먹기는 먹어도 예배하지 말고 그런 것은 없다.
그러면 우리들은 신체적으로 완전해야 전도사도 뽑고 그럴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약 때 신체적인 흠은 생명의 흠 죄의 권세가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 신약 교회 신체검사 기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말하자면 전염병이 있는 사람이 목사 하기 힘들지요? 감기만 걸려서 심방 가도 다 옮겨버릴것인데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새 장애자 목사들도 장애자를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는 많은 봉사를 한다. 아마 서양 같으면 장애자나 정상인이나 그런 의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나라는 그런 것은 본다. 공부 못한 것은 머리 장애자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은 별로 관계가 없는데 다른 것이 좀 불편하면 도덕적으로 취급을 해버릴려고 그런다. 그런데 우리들이 본래 눈뜨고 보니까 전기불만 나가 버리면 캄캄해서 못 보지만 본래 못보신분은 전기불 꺼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 행동 영역에서 불편이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와 어울려 행동하는데 불편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봐서는 안된다.
구약에서는 이방인들의 윤리 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는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가 있는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그런데 대 제사장은 성소의 영광의 옷으로 덧입히고 성소의 기름으로 발라 났다. 거기는 어떤 죽음도 손대지 못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식탁에서 봉사하고 내 식탁에서 먹어라. 백성의 대표자인 너희가 그렇게 해라. 그것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규례를 주셔서 이 규례를 지킴으로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구별되어서 성소에 계신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하늘에 속한 성소로 완성시키셨다. 이제 그분 안에서는 이런 백성의 어른과 백성 간에 이런 윤리적인 간격이 없다.
이제는 다 거룩하다. 우리는 다 주의 상에서 먹고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 간격이 없이 완전한 생명의 교제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처녀 총각 결혼은 아주 거룩하고 그리고 재혼한 결혼은 아이코 나도 흠이 많은데 대충대충 그런 개념을 교인들까지 가지고 있다. 이방인들은 그런 개념을 가져도 이해를 하는데 교인들은 그런 개념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교인도 똑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것만 흠이 되고 그 외예는 흠이 될것이 없다. 그러니까 가령 신약 성경은 과부라도 믿는 형제에게 결혼해라.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지만 믿는자에게만 결혼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처녀 아이들도 똑똑한 총각 만나면 시집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소와 우상의 전을 함께 합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다. 구약 같으면 만일 이방혼을 한 사람은 제사장이든 선지자든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은 여호와의 장막에서 끊어라. 언약 백성으로부터 죽는 것이다. 배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은 하나님께 속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혈통을 따라 속한자가 아니어도 죽어야 되는데 예수의 부활의 영을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는데 그 확실한 은혜를 거절한 이방인을 자기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좋게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은 결혼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소위 구약 식으로 당장에 여호와의 백성으로 끊어 버리는 죽음의 벌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신약 교회는 수찬 정지함으로 그냥 교회 교제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땅의 성소에서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 있는 교제의 식탁으로부터 배제를 시키는 것인데도 당장 신체적인 재앙이 없으니까 괜찮은 줄 알고 오히려 교회 안 나오고 편안히 산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연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약처럼 꼭 결혼을 해야 된다는 그런 시대 가운데 있지도 안는다.
여러분이 그런 점을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죽으심의 권세로 깨긋게 되어서 이제는 어떤 더러움도 없이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 했다. 모세를 제도를 통한 깨끗함이 아니라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성소로 옮기셨다. 여러분이 이 은혜를 깊이 기념하시고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기념한 것처럼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구체적인 삶에서도 그 주님을 기억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신령한 제사장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거룩하게 드리고 거룩하게 취하는 그런 예배의 삶을 사셔야 할 것이다. 아멘.
제사장들에게 주는 율법
레위기 21:1-9 / 매튜 헨리 주석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10:10, 11) 일에 관한 법도를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그들 자신도 그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주어져 있다. 교훈을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훈계는 물론 모범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딤전 4:12).
제사장들은 백성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했고, 성물(聖物)과 더욱 친숙해야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더러운 일을 삼가야되지만, 특히 제사장들은 더욱 철저하여 자기들의 제사장직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Ⅰ. 제사장들은 죽은 자들을 애곡하는 동안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해 곡하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시체에 직접 손을 댈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체에 가까이 갔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죽은 시체에 2m 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식법상으로 부정(不淨)한 것이라" 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천막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7 일 간 부정하다고 되어 있다(민 19:14). 그러므로 장례식에 참여하여 곡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7 일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 당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음 명령이 내려졌다.
1.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골육지친이 죽은 경우가 아니고는 그런 일을 하면(애곡을 하고 장례에 참예하면) 성소에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1-3절). 부모나 자식, 혹은 형제나 미혼 누이들을 위해서는 상(喪)을 치르는 것이 제사장들에게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확실히(이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아내를 위해서도 허용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인 에스겔은 특별한 금지 조항이 없는 한, 그의 아내를 위해서 곡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겔 24:17). 이러한 일을 허용해 둠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을 존귀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사, 7 일 간은 당신의 종들(제사장들)에게 집무 수행을 면제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그 기간동안에는 그들의 친족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을 지나서도 곡하는 것은 금하셨으니, 그것이 씨 뿌리는 것(장례)을 방해하기 때문이요, 또 친척에 대한 애정 때문에 성소에서의 예식에 불참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죽었을 때에는, 전혀 애곡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 바대로, "백성 중의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아니 된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친족이 아니라면, 자신들을 그런 일로 더렵혀서는 안 되었다. 대제사장일지라도 역시 안 된다.
세상에 "어떤 친구들은 형제보다 친밀하다" (잠 18:24). 그러나 제사장들은 자기의 친족 외에는 자기와 가장 절친한 친구가 죽었을지라도 존경의 염을 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한 친구에게 그렇게 하고 나면,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할 것이요, 마침내는 종종 집무를 빼먹는 사례가 생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들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애정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런 자들이 죽으면 자연히 거기에 마음이 쏠리고 동화되어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들의 뒤를 따라갈 준비를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경고로 삼아야 되는 것이다.
2. 그러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죽었을 때라도 도에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 된다(5절)
그들의 슬픔은 (1)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믿는 바대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고 있는 신(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을 찬양하기 위하여 머리털을 짜르고 피를 흘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그들의 관습을 좇아 미신적인 짓을 해서는 안 되며, 죽은 친구들을 위하여 단지 도에 맞게만 슬퍼해야 한다.
장례식에서 옛부터 사용되어 오던 미신적인 의식은, 영혼 불멸을 믿고 그 영혼이 다른 세계에서 존재한다고 하는 고대인의 신앙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이런 의식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금하여졌다. 그런 것은 거짓 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 대한 고상한 존경심은, 우리가 죽은 자들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시해 주며,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 가르쳐 주고 있는 바요, 또 율법이 부정하고 있는 바도 아니다.
(2) 또한 그 슬픔은 격정적이고 무절제한 애곡이 되어서도 안된다.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괴로움에 잠긴 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그들이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지(살전 4:13)그 이유를 남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저하게 안정되고 침착하게, 그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있는 자답게 남들을 위로해 주어야만 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죽은 자들을 위해 미신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19:27, 28). 그들에게 반율법적인 일이라면, 제사장들에는 더욱 범법적인 일이 되리라. 우리는 그들이 각별히 조심하여 자신을 더렵혀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식물(食物)" 을 먹고, 심지어 하나님의 집과 식탁에 음식이 되는 예물 곧 "여호와께 화제" 를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6절).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존중을 받았다. 그러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을 더렵혀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룩한 일에 종사해야 하며, 그들의 소명에 부적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더럽히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 만일 종들이 조잡한 짓을 하고 잘못된 행실을 저지르면, 그들의 주인에게까지 욕을 돌리게 된다. 주인이 자기 집안의 규모와 질서를 잘 다스리지 했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거나 제물을 먹는 자들은 모든 대화의 예법에서도 거룩해야 되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그들이 거룩히 여기는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고 만다는 것이다 .
Ⅱ. 제사장들은 결혼을 하는 일에 있어서도 잘못하여 자기들의 품위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7절).
제사장들은, 평판이 나쁘거나 죄를 지었거나 죄가 있다고 의심이 가는 여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창녀와도 결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볍게 처신하고 부정한 행동으로 자신을 더럽힌 여자와도 결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혼한 여자와도 결혼할 수 없었는데, 그녀에게는 이혼하게 된 어떤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이런 결혼을 해서 자신들을 경멸하는 일을 범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런 결혼이 일반인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었다.
1.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의 직무가 당장 질책을 받게 되고 불경건한 자들을 더욱 불경스럽게 만드는 계기가 되며 성실한 자들에게 슬픔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사역자의 아내는 "단정하여 절제함으로써 집무에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딤전 3:11).
2. 또한 가족들에게 오명을 주어서도 안 된다. 제사장의 직분과 명예는 그들의 자손들에게 세습적으로 전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을 도모하여 좋은 결혼을 함으로써, 그들의 자손이 "거룩한 씨" (말 2:15)가 되어 혈통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 너는 하나님을 거룩케 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거룩하여질 것이다" 라는 말이 부가되어 있다. 즉 "모세여, 너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이 율법을 실행하여 제사장의 명예를 보존케 하라. 그리하여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잃을 만한 일을 삼가라. 그(제사장)는 그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니라(7절). 그러므로 그가 너희에게도 거룩하니라"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이름을 존귀케 해 준 자들의 이름은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 따라서 복음의 사역자는 이런 법칙에 따라서 "그들의 일 때문에 그들이 지극히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살전 5:1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들의 명예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Ⅲ. 제사장의 자녀들도 자기들을 경멸케 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만일 제사장의 딸이 행음을 했다면" (9절) 그녀는 중죄인이 된다.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모독한" 것이다. 다른 여인들은 제사장의 딸이 지니고 있는 그런 명예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에게는 잃을 명예도 상대적으로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딸은 거룩한 음식을 먹고, 남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를 모욕한 것이다. "그 영향이 아버지에게까지 이르고, 사람은 아버지가 그 딸을 교육시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왜 그는 자기 딸을 잘 교육시키지 못했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온의 죄인들은 그 제사장된 아버지를 욕하고, "여기 당신들의 제사장의 딸이 있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받을 형벌도 특히 가중해야 했다. "그녀는 불에 태워 죽일 것이라" 고 했다. 즉 모든 제사장의 딸들에게 경고의 본보기를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모든 제사장의 자녀들은 더러운 행실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2중적인 추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은 죄는 "질투하는 자" 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