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하던 붕어빵이 사라졌다. 겨울철 저렴한 간식으로 서민의 배를 채워주던 붕어빵인데 말이다. 최근 붕어빵을 찾아 동네방네 헤매는 사람이 늘면서 구글 오픈 맵을 활용해 전국 1055개 붕어빵 노점 위치를 표시한 ‘대동풀빵여지도’(2018)가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의 붕어빵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전용 앱 ‘가슴속3천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붕세권’이란 유행어도 생겼다. 붕어빵 노점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역세권이나 숲세권처럼 집값이 높은 권역이 아니라도 겨울 만큼은 “나 붕세권 살아!”하면서 목에 힘을 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붕어빵의 몸값이 올라 금붕어빵이 된 까닭은 재료비 폭등 탓이다. 한국물가정보가 지난 14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붕어빵의 주재료는 5년 사이 평균 50% 가까이 뛰었다. 모든 게 오르는데 붕어빵값만 제자리걸음일 리가 만무하다.
고구마 크림·피자 소스·크림치즈·불닭 소스 등이 든 ‘특별한 놈’은 한 마리에 2천~3천원이나 하고, 팥으로 만든 ‘평범한 놈’도 두 마리에 천원이 기본이다. 4마리에 천원이던 5년 전에 견줘 두 배 이상 뛰었다. 더는 가성비로 경쟁하기 힘든 음식이 된 셈이다.
붕어빵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의 타이야키(도미+불로 익힌 음식)가 전해진 것이 시초다. 타이야키가 이름대로 ‘도미’ 모양인 것과 달리 한반도에선 ‘붕어’로 현지화됐다. 이후 1950~60년대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 수입되면서 점차 늘다가 1980년대 크게 유행했다.
1981년 2월4일치 <매일경제신문>은 “손이 달려 미처 구워낼 틈이 없다”는 세종문화회관 인근 붕어빵 상인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붕어빵 전성기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정부의 ‘노점상 단속’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붕어빵이 서민 속으로 돌아온 것은 IMF 이후다. 1998년 12월2일치 <영남일보>엔 “불황으로 노점이 늘면서 대구 칠성시장 철물 상가 붕어빵 틀 판매 업소의 매출이 20% 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붕어빵에 ‘붕어’ 없고, 희망퇴직엔 ‘희망’ 없다”는 말이 회자하던 때다.
붕어빵 노점 숫자가 ‘불황의 지표’ 역할은 했던 것도 이젠 옛일이 됐다. 서민이 고물가와 경제침체에 신음하는데 붕어빵 노점 역시 사라지는 ‘역설’이 21세기 불황의 새 지표가 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