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나이를 먹는다.
그리움도 나이를 먹는다.
세월만큼, 계절만큼, 슬픔은 마흔여섯, 그리움은 가을.
계절의 길목, 몇 일을 토닥이든 궂은 비
거리의 가로수들은 모두 잎을 떨구고, 약한 바람에도 으스스 몸을 떨었다.
19차 대간길.
불빛 아래 달려가는 2차선 도로보다 맘 먼저 달려가 서성이는 그리움의 초입.
잠든 식구들의 머리맡을 살째기 빠져 나와 조심스레이 달려가는 은밀한 그 곳.
막다른 골목길 정부의 창가? 두 사람만의 암호는 갈잎 위에 서걱이는 싸락눈발소리?
인적 끊긴 이화령 고갯마루에 쌀쌀한 진눈깨비리도 흩날리면 어찌할까?
그리움 사무쳐 장승이 된대도, 행복한 꿈길=새벽 대간길.
****************
마지막 가을의 추스림으로 바쁜 한 주 였었다.
그리고 주말에 겹쳐졌든 시댁의 제사, 금요일부터 바쁜 손끝은 토요일까지 이어졌고.
오후엔 몸살기가 겹쳐와 약국을 찾았다.
삭신을 쑤셔 오든 몸살의 기미는 약 한 첩을 먹고 나니, 좀 수그러지는 듯했다.
제수를 챙겨 남편과 딸래는 시댁으로 보내고, 난 배낭을 꾸렸다 .(쥑일 @@@)
편치않은 마음과 찌푸둥한 몸둥이. 옷을 갈아 입으며 느껴졌든 가슴의 통증은
고개가 갸웃거려 졌지만, 이미 빠져 버린 늪을 헤쳐 나오는건 힘든 일이었다.
햇살이 짧아져 버린 늦가을의 10시를 넘긴 시간은 깊은 밤이었다.
약속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들은 나날이 광채를 더해 갔고,
야간산행의 여정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제 차속의 긴 여행길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언제나 달려가는 밤길은 나날이 그 모습을 달리 했고,
겨울을 부르는 사나운 혹풍이 어둠을 뚫고 차창을 때려, 차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며칠 서성이든 비 탓인지, 도로가의 가로수들은 모두 나목이 되었고,
갑자기 불어온 겨울바람에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을 해결 하기위해 새재의 주차장에 들렀을 때에도,
새벽바람은 거세었고, 차를 바람막이 삼아 언덕 아래서 아침을 먹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낯선 바람앞에,우리들은 몸둘 바를 몰랐다.
산행을 하면 나아지려니 생각하며, 이화령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고갯마루의 새벽바람은 여전했다, 차갑고 싸아한 새벽공기.
깊고 캄캄한 새벽하늘에 점점이 박힌 초록별, 스무이틀의 하현은 차갑고 시려웠다.
배낭을 메고 발을 동동이며 몸을 데웠다. 잠시라도 차가움에서 벗어나고 싶음에서.. R
달려가는 초입의 문턱은 가랑잎의 바다. 늦가을이 머무르는 산길을 폭신했지만,
옷을 벋은 나목은 차가운 새벽바람에 몸을 떨었다.
수은주를 끌어 내린 차가운 삭풍. 떨고 있는건 나목만이 아니었다.
얼굴을 돌려 바람을 따돌리려 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가을의 여린 살갗은 매서운 바람앞에, 움츠려야만 했다.
잠시 산 능선을 돌아 바람이 비켜가는 산허리를 오르니,
폐타이어로 지어진 헬기장이 나타나고 다시 조금 오르니,
어둠속에 우뚝 표지판이 서 있다.
조령산 1km,
그리고 조금위엔 바로 조령샘이다. 아직은 얼지 않은, 하늘의 달빛 만큼이나 맑고 시린 물 줄기.
이 물이 산삼 옆구리 스친 물이라고? 어느대간돌이들의 산행기에서 본 그 샘일까?
그냥 지나치면 원통해서 어이할꼬.
남자는 정력에 죽고, 여자는 피부미용에 죽지만,
지금의 내 소원은 안 아프고 산을 오래 오르는 일이니,
이 산삼의 똥물은 무병장수의 양약이 아닐련지?
평소에 산행을 하면서도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아, 염소라는 별명도 있지만,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되리니....
억지라도 한 바가지를 후회없이 마셔본다. 혀를 돌려가며 애써 느껴 보려는 물 맛,
쌉쓰리 꾸리꾸리한가? 맛은 아리쏭쏭 하지만, 쓸어 내리는 가슴은 후련하니,
더러운 찌거기가 곧 아래로 사라 되겠지.
물 한 모금 마시고 수그려 국자를 올려놓는 자리 앞에 낯익은 글귀,
대간길 샘터에서 두세번 보았든가?
지나 온 길 덕유의 어느 산자락에서 보았든 샘터가 눈길에 아련하다.
왼쪽위로 펑퍼짐이 넓은 야영자리,
비박을 하고 일어나 앉으면, 마주보는 산릉에서 떠 오를 황홀한 일출.
샘터위엔 우스스스 머무르는 늦가을의 작은 갈대숲.
으악새 아닌 산릉의 갈대는 또 웬일인가?
조령산의 오르막은 조령샘의 물값을 땀으로 대신 받으려는 듯 숨이 차다.
새들도 쉬어 간다는 준령 조령산.
새벽의 여명속에서 맞이 하는 조령산은 하얀 설국울 꿈꾼다.
어슴프레 다가서는 산릉의 실루엣, 국토의 등골이 새벽잠에서 꿈틀인다.
아직 일출은 이른데, 지나치는 발걸음을 붙드는 쓸쓸한 흔적.
사람은 사라지고 이름만이 새겨진 초라한 비목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내려서는 가파른 내리막길, 동으론 일출의 기운이 꿈틀이는데,
가파른 길은 몸과 마음을 옭아 메어 발목을 붙든다.
먼저 간 선배님의 산행기에서 보았든 아슬한 산행길.
여기가 그긴지, 그기가 여긴지, 아직 멀기만 한발걸음은 두렵기만하다.
제 1관문 표지판,
3관문까지는 위험구간이 많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이제 시작인데 오그라드는 가슴, 멈출 줄 모르는 바람.
얼었든 서릿발은 먼저 간 이들의 발길에 맨들거려, 발자욱은 더 더욱 조심스럽고,
그렇지 않으면 암릉구간 이니, 눈이라도 내려 얼어붙었다면 어찌할것인가?
한 겨울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마음을 쪼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조심스런 발길에 마음이 바쁜데 뒤 따르든 복여사가 일출을 보라고 외쳐댄다.
언제 해가 솓았는지? 차가와서 더 눈부시게 느껴지는 햇살.
새로운 동반자를 만난 것 마냥, 가슴이 따듯하다. 이제 바람은 잠드리라.
해 뜬 봉우리가 어느 산릉인지 대장님께 여짜오니 운달산 봉우리라고,
대간릉에서의 일출은 어디서나 두 손 모으는 마음, 무엇 때문일까?
햇살이 비추이면 바람이 멎을려나 했었는데...
바람은 여전히 냉기가 스민채 마지막 잎새를 떨꾸려 보거리를 채고 있다.
가파른 암릉에서도 여인네들의 밝은 웃음소리, 복받은 여인네들의 나눔의 소리.
우리는 이렇게 밀고 당기며 서로를 배려한다.
따스한 사랑의 둥지에선 자상한 엄마, 사랑스런 아내. 단란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
햇살이 오른 하늘 아래 겹겹이 드리워진 암릉의 파노라마는 환상적이다.
나목의 바람을 막아주는 청솔, 암반과 어우러져 바위를 켜 안은 노송 .
그들은 서로 부대켜 나누며 겨울을 난다. 그리고 한 겨울엔 함박눈을 막아 주는 큰 손.
왼쪽으로 치마바위의 절경이 한폭의 동양화이고,
오른쪽으로 다가오는 월항삼봉과 부봉, 주흘산의 엇갈린 얼굴들이 못지 않음이다.
치마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내려서는, 깃대봉 삼거리.
나는 어디에 홀려 있었을까?
카메라의 렌즈앞에서 포즈를 취하든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성곽이 시작되는 삼거리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표식기를 따라 능선을 오른다.
무명의 작은 봉우리.
희미한 오른쪽 길을 버리고 왼쪽 비탈을 내려서니,
어디에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제 3관문 조령관?
아직 까마득한 길이 남았는데, 산행이 끝난 것 마냥 마음이 가볍다.
3관문 지붕의 기왓골 아래로, 못다한 늦가을의 단픙이 불붙고,
나무 아랜 함께하는 일행들의 정들이 무르익는다.
언제나 날 챙겨주는 자상한 언니같은 친구 복여사.
손 저어 날 부르는 외침이 징하게 고맙다.
맘 바쁘지만 또 한번 지나칠 수 없는, 산삼 밑둥 스친 약숫물 한 바가지.
오전의 암릉길에서 지친 심신을 씻는다.
대간길 점심을 제대로 먹은날이 언제인지? 언제나 까슬한 입은 물 말아 대신하는
식은밥 한덩이. 술은 술술 잘 넘어가는데 밥은 왜이리 까칠한지?
술쟁이 여인네라 욕한대도 정상주 한 잔의 맛과 멋이 없으면 무슨 재민가?
우리를 기다리며 나부끼는 주막집의 백두대간 플랜카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거운 발걸음 쫒아올라가, 동동주 한 주전자를 받아오니,
절로 넉넉해지는 마음, 잔 돌려 나누는 맛이 또 얼마나 큰 기쁨인가?
고운 단풍색 만큼 노리짱한 동동주 한 잔의 맛이 깊은 가을맛이다.
언제나 바삐 달려가든 무정스런 남정들도,
마지막 가을이 머무르는 새재 고갯마루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나 보다.
잔뒤밭에 어우러져 추억 한 컷을 새기고, 오후의 산행길에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암릉구간이 없다니 조금은 안정되는 마음.
마폐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은 산성길도 함께 다른다.
구부구부 얼룩진 역사의 흔적들,
문경 어느 산자락에 있을 성불사의 종소리가 마음전에 머문다.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든 한 밤의 풍경소리,
객마저 잠이 든 산사에 혼자 운 풍경은 얼마나 쓸쓸했었을까?
그래서 날아간 머언 미지의 세계. 풍경이 헤엄쳐 다니든 미지의 세계를 떠돌다.
다시 돌아온 현실의 뜨락
색색이든 가슴이 숨을 돌리는 곳은 마역봉 정상.
가을 산행을 나온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이리저리 카메라의 셔터가 분주하다.
되돌아보는 지나온 능선. 지나온 조령산, 다가서는 월악영봉.
불끈불끈 쏟은 암봉들은, 내 맘의 뜨거운 열정.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속에 잠시 넋을 놓다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표지목 지름재 방향으로 내려서니, 산성이 이어지고 북암분에 다다른다.
혼자 남은 길에 뒤따라 온 후미 두 분.
조령 3관문에서 여유로왔든 사람들은 탈출을 한 모양이다.
느긋했던 마음이 바빠진다.
그리고 점심 때 빠뜨렸든 약 때문인지, 몸의 컨디션이 점점 망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가슴을 눌러오는 통증, 기침과 동반되는 찬바람으로 인한 색색거림은 자꾸만 발목을 붙든다.
왕대장과 홍씨 아저씨가 주신 해열제 두알과 토종꿀을 먹어도 보았지만,
두분의 배려엔 아랑곳, 자꾸만 거친 숨소리와 가슴의 압박은,
부봉을 오르지 못하고 스쳐 지나고 만다.
자꾸만 애궂은 지도를 들추이며,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역부족.
기다릴 사람들, 늘 선두를 달리다 꼴찌를 채근해 가야하는 대장의 애로.
주흘산 삼거리에 섰을땐 상당이 지쳐 있었다. 그래도 채우고 싶은, 놓치기 싫은,
마음의 욕심은 있어 왕대장이 가르키는 손 끝에 눈길을 돌렸다.
베를 늘어뜨려 이어진 바위산 포암산, 그리고 월악산.
주흘삼거리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쏟아져 평천재에
다 다를때까진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있었는데, 월항삼봉을 오르면서,
지친 몸둥이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심장이 찢어지는듯한 통증, 미안스러워 먼저 가시라 했었지만,
늘 뒤를 돌아보시든 홍씨 아저씨게서, 지친 안색을 보시며 배낭을
받아주셨고, 그 때부터 내 서러운 가슴의 눈물보는 멈추이질 않았다.
지리산 용소의 물길 아래서, 릿지의 암벽 아래서 매서운 눈초리로 채찍 했었든
옆지기의 야속한 눈길이 간절이 그리웠든 것은, 그 야속함과 무심이 사랑 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됨일까?
집으로 돌아가면 혀 끝에 짓누르는 납덩이를 덜어 내고, 지잉한 사랑의 고백을 해 볼까?
다리가 아프면 끌고라도 가련마는, 짓누르는 가슴은 어이하련가?
그냥 보내지 않으려 했었든 열 아홉구간 대간길. 하늘재 가는 길.
하늘 고개가 눈물 고개가 될 줄 뉘 알았던가? 머릿속을 스쳐가는 구슬픈 아리랑 한가락.
"문경새재는 몇굽이인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하늘재를 내려서며 쏟았든, 무너지는 자존심과 고통과 서러움의 눈물.
굽이굽이 걸음걸음 사무쳤든 눈물을 역사속의 가장 오랜고개.
하늘고개 산마루에 묻고 내려서는, 쓸쓸한 가슴을 뉘알까?
서러움과 아픔의 봇물은, 깊은 그리움의 늪이 되리니,
영원히 잊지 못할, 하늘재의 추억이여.......
첫댓글 하늘재에서의 지난 시절의 눈부신 야영이 생각납니다...그때의 산친구들은 지금은 어디로 가고.,...아!~~ 가슴속에 스며드는 말들이 참 많네요,...대간을 해보면서..느끼는 감흥은 글로 표현이 힘들지요...좋은 산행과 기록.안전한 산행하시길..진심으로 빕니다..........
님의 종주기를 보면 잔잔한 감동이 저며듭니다. 이화령에서 하늘재 가는길...1년전 무명낭자와 함께걸었던 백두대간 종주길인데...항상 안전산행 하시구여...조만간 님의 뒤를 따라 백두대간 길을 달려가겠습니다.
복어공주님! 앞뒤 좌우를 보시고 마음속까지 느끼시니 산 인의 경지가 아닌가 싶읍니다. 저는 앞만보고 걸었던 기억밖엔 ㅎㅎㅎ 님에글로 공부 다시해야 겠읍니다 충만한날이 되시길.
^^
감기 빨리 나으시고 건강 회복하셔서 남은 대간길 씩씩하게 걸으시길...
바로 산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잔잔함과 애잔함이 스며있는듯..... 건강하게 오래 산을 다니시길 기원합니다.
힘들줄 알았는데, 내도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그댈 기다리지못했네, 역시 공주님의 저력으로 무사히 하산길에 내린것을 보며 월매나 반가웠던지,,.<사실은 여러사람 붙잡고 당신의 행적을 물었었걸랑>우리모두 건강하세삽세다,,,으하하 ☆감기조심하세용~☆
울시골집도 대간길어귄데...공주님이 지나가셨을 생각을 하면...좋은데요...아시죠...제가 감히 공주님 팬이란는 거~~~~ㅎㅎㅎ
언제나 글 올리나 궁금했는데..... 하늘재왔으면 빨리 따라오세요. 전 태백산 화방재 끝내고 이제 함백산 들어 갑니다. 올라 올 수록 대간길의 기운이 온몸에 힘 주니까 힘내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