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상드하면 얼른 쇼팽의 애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뮈세로 하여금 [회상]이라는 이별의 절창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이었다.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생전에 약 40년간의 문필생활을 하는 동안 70편의 소설과 24편의 희곡, 그리고 4만 통에 달하는 편지들을 썼다고 한다. 4만통이란 정말 놀라운 숫자의 편지다. 물론 연애편지가 대분이었겠지만...
오늘날 그녀의 작품은 거의 읽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유명한 것은 뮈세, 쇼팽 등을 위시한 시인, 음악가, 예술가, 사상가들과의 파란만장한 연애 사건들이 가장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연하의 애인들을 거느린 여자였고, 중성적이면서도 요부적인 이미지에는 색정증과 동성애의 혐의마저 따라붙곤 했다고 한다.
조르주 상드가 대단한 이유가 매년 2편 이상의 작품과 1천 통의 편지를 쓰고 끊임없이 다른 남성들과 사랑에 빠지며 애인들을 돌보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정원 일에 열을 올리면서도 사소한 가정일까지 다 해내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조르주 상드의 능력이 그때 당시는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냉소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지금의 여성들 입장에서 보면 상드가 시대를 앞서간 여성해방 운동과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칭송받을만한 여성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명 또한 남자이름(조르주)을 본 딴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혼 후, 아이 둘을 데리고 파리로 올라와 문필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남장을 하고 다니면서 남자들과 어울려 함께 담배를 피우고, 연하의 꽃미남(그녀는 금발 미남 취향이었다고 한다)들과 숱한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소문난 바람둥이었다. 식욕도 엄청 좋았지만, 식욕만큼 살집은 없었으니 바람을 피웠을지도... 10년을 함께 보낸 쇼팽도 그런 그녀의 인상에 대해서는 꼴볼견이이라고 한 것을 보면 상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식욕과 섹스는 함수관계??? 물론 음식 고르는데 까다로운 여자는 남자 고르는데도 까다롭다 하던데... 정말 이건 연구해봐야 될 좋은 재료가 아닐까?
뮈세 또한 그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가슴 아팠기에 그렇게 구구절절 [회상]이라는 시로 표현했을까? 더군다나 조르주 상드가 병에 걸린 뮈세를 간호하는 동안 뮈세의 주치의인 이탈리아인 파젤로라는 젊은 의사와 애정의 행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뮈세는 절망과 질투에 빠진 채, 한때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정말 조르주 상드가 요부이긴 요부였었나 보다.
세계 3대 연애시중에 하나인 뮈세의 [회상]을 감상해 보면서 둘이 한 때 열렬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밀월을 속삭였던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속의 현장을 몰래 들여다보자.
[회상 / 뮈세]
보면 눈물이 흐를 것을 알면서 나는 여기 왔노라 영원히 성스러운 장소여, 괴로움을 각오했는데도 오오, 더할 나위 없이 그립고 또한 은밀하게 회상을 자아내는 그리운 곳이여!
그대들은 왜 이 고독을 만류했는가? 친구들이여, 왜 내 손을 잡으며 만류했는가? 정겨운 오랜 습관이 이 길을 걸어가라고 나를 이끌어 주었던 때에
바로 이곳이었다 이 언덕, 이 꽃 피는 히드의 풀밭 말없는 모래밭에 남아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발자취 사랑 가득한 오솔길 속삭임이 넘쳤고 그녀의 팔은 힘껏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었다, 이 초록색 잎사귀 우거진 떡갈나무 숲 굽이굽이 굽이쳐 겹쳐진 이 깊은 협곡 이 야생마 친구들, 옛날 그들의 속삭임에 마음 하느작거리던 아름다운 나날
바로 이곳이었다, 이 숲속, 지금도 걷노라면 젊음은 발자국 소리 따라 한 떼의 새가 되어 연이어 노래한다 매혹의 땅이여, 아름다운 광야, 연인들의 산책길이여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아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상처 아물지 않은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이 눈물! 사정 보지 말고 그대로 멈추게 하라, 나의 눈에 옛날을 숨겨주는 이 너울!
내 행복을 지켜보는 이 숲의 메아리 속에 애석한 마음을 외치러 온 것은 아니다 고요히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는 이 숲이 자랑스러울 때 내 마음 역시 자랑스러운 것이다
Bette Davis Eyes / Kim Carn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