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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의 자격 규례
레 21:10-24
10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12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3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
14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의 자손이 그의 백성 중에서 속되게 하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18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19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20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22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이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23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4 이와 같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더라
레 21:10-24 / [대제사장의 성스러움]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제사장 의복을 입고 대제사장 일을 맡아보는 이는 애도할 일이 있다고 해도 머리를 헝클어뜨리거나 옷을 찢어서는 안 된다. 11) 아무리 가까운 피붙이가 죽었다고 해도 세상을 뜬 그에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심지어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해도 그의 시신을 가까이하여 부정 타서는 안 된다. 12) 대제사장은 성소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성소 밖으로 나갔다가는 부정한 것에 닿아 부정을 탈 것이고 그랬다가는 나 하나님이 머무르는 이 성소가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나 하나님이 특별히 가려 뽑아 기름부어 제사장 일을 맡긴 사람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13) 대제사장은 반드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와 혼인해야 한다. 14) 과부나 남편과 헤어진 여인이나 비록 한때라 할지라도 몸을 판 적이 있던 여인과는 혼인해서는 안 된다. 제 겨레 중에서 처녀를 골라 장가들어야 한다. 15) 그렇게 해야 그의 자녀들이 겨레 중에서 몸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제사장을 거룩하게 특별히 가려 뽑은 여호와이다.' 16-17) [제사장이 될 수 없는 이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네 자손 가운데에서 몸에 흠이 있는 장애자는 제물을 바치려고 나 여호와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제사장 일을 볼 수 없다. 18) 신체 장애자는 어떤 사람이든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물을 바칠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나 코가 기형으로 생긴 사람이나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제사장 일을 볼 수 없다. 19) 뿐만 아니라 다리나 팔이 부러진 사람이나 20) 등이 구부러진 사람이나 난쟁이나 눈에 백태가 낀 사람이나 피부병 중에서도 옴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부스럼 병이 있는 사람이나 고자나 21) 가릴 것 없이 아론의 자손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나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치러 들어올 수 없다. 22) 이들이 나에게 바쳤던 거룩한 음식을 먹는 것은 상관없다. 23) 하지만 몸에 결함이 있으므로 거룩한 장막 안에 쳐놓은 휘장 가까이에 가서는 안 되며 제단으로 가까이 나아가서도 안 된다. 나의 성소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나는 그것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한 여호와이다.' 24) 모세는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백성을 중보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은 가혹해 보이지만 자기 혈족 인본주의보다 하나님 중심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10-12) 이미 거룩하게 구별되어 임명된 대제사장이 그 거룩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주검에도 가까이해서는 안 되고 부모가 죽었을 때조차도 그 시신에 접촉하여 자기 몸을 더럽히거나 애도의 표시로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어도 안 됩니다. 심지어 그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살붙이의 애사나, 그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성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13-15) 대제사장의 결혼 조건도 제사장과 거의 같습니다. 즉 일반 백성들처럼 남편을 잃은 여자, 소박맞은 여자나 창녀처럼 이미 부정하다 낙인찍힌 여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이방 여인은 더욱 안 되고 다만 자기 백성 가운데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또한, 제사장 가족 가운데 부정하다 판명된 자가 있으면 그 처벌은 일반 백성보다 더 엄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대제사장 개인만 아니라 가정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함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함께 감당하고 지켜야 하는 과제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본모습입니다.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16-24)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 곧 여러 가지 장애와 질병이 있는 자는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육체의 장애와 질병은 본래 창조하신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파생된 결과로 흠이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특별한 존재로서 육체적인 조건조차 순전함과 완전함이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장애와 질병을 가진 자들을 정죄하거나 차별, 혹은 도외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외적 의식이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 규례가 구속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적용: 당신을 영적인 제사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어떻게 거룩함으로 섬기며 그분의 마음에 합당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사사로운 일이나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마 6:33; 고전 15:34). 당신이 가장 뿌리치기 힘든 세속의 유혹은 무엇인가요? 합리화 시키며 살지는 않는지요?(마 26:41; 엡 4:22)
예수를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별로 거룩하지 않은 것 같을지라도 스스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설 교 >
부모상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레위기 21:10-24 / 조약돌묵상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의 정결규례로 곧 장례에 대한 것과 결혼에 대한 규정입니다. 또한 일반제사장의 임용에 대한 조건과 결격사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어떤 경우라도 장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이스라엘 처녀와 결혼해야 합니다. 제사장 집안에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세부규정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대제사장의 장례에 대한 규례, 결혼에 대한 규례, 제사장의 결격사유, 장애인 제사장에 대한 지침 등입니다.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 대제사장의 장례참석에 대한 엄격한 금지규정입니다. 그는 우선 ‘머리를 풀거나 그의 옷을 찢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히브리 인들에게 애도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부모의 상이 났을지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관유가 그 위에 있어서인데 즉,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성결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성소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단지 문맥상 장례에 한정된 대제사장의 행동규제일 뿐입니다. 즉, 평생을 성소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모의 장례에도 참여할 수 없으며 애도의 시간과 표현을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오직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곧 교대해 줄 사람이 없어 만약 그러한 규정을 어겨 대제사장이 적어도 일주일 동안 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상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또한 신체에 하자가 있으면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눈이 멀거나, 발을 절거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얼굴흉터가 큰 자), 지체가 더한 자나(신체크기가 서로 다른 자), 발이나 손이 부러지거나, 등 굽은 자나(등에 혹이 있는 자), 키 못 자란 자(키가 유난히 작은 자), 눈에 백막이 있는 자(심한 백태 안질자),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심각한 피부질환자), 고환(불알)이 상한 사람 등입니다. 이들은 저주를 받는 자들이 아니며 오히려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비록 신체장애로 인해 제사를 드릴 수 없지만 거룩한 예물을 공식적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체조건상 그런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제도는 완전히 폐하여졌습니다. 신체적 조건은 영적 조건에 구속력이 없습니다. 영적 순결과 무흠이 거룩의 조건일 뿐입니다.
일반제사장들에는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거나 자기 옷을 찢는 그런 애곡의식을 위한 복장과 두발이 허용되었는데, 대제사장은 그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개인에 앞서 온 백성의 대표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사사로운 개인적 사정이 금물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혹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제사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은 사적인 문제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수 없습니다. 또한 파도와 같이 출렁이는 감정이나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 혹은 슬픔, 기쁨 등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이를 통제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오직 하나님 앞에 설 날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는 자가 곧 사명자입니다. 즉, 사명자는 희로애락이나 처해진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전심전력 그것을 추구하는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는 곧 만인 제사장 시대의 우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곧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고 아울러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고 이 세상에 온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그것을 달란트 비유로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기자 주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여기서 달란트는 재능, 은사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입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사명을 다하므로 이제 곧 만날 우리 예수님께 칭찬받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꾼은 건강해야 한다
레 21:16-24 / 최낙중 목사
건강이란 육체와 정신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혜와 지식, 경험과 능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군은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군대의 육,해,공군의 사관생도를 뽑을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뽑아서 교육과 훈련을 시킨 후에 장교로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육이 건강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잠4:20 이하를 보면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건강보다 더 귀한 건강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속사람이란 영혼이 잘됨을 의미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은 시험이나 환난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대적하여 싸워서 이깁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엡3:16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기쁘고 매사가 즐겁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불안합니다. 염려 근심이 생깁니다. 그때에 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잠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삽니다. 시119:97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은 자신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삶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1:12 이하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복음전파에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곧바로 실행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봉사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얼굴에 언제나 웃음이 있고 그의 삶에는 화평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세상을 밝게 하는 빛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에서 세움을 받아야 할 일군들은 건강한 사람이어여 할 것을 가르쳐 주었으니 첫째는 눈이 건강해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18,19절에 보면 소경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는 일군으로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경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눈에 백막이 있는 자도 희미하게 보일뿐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시각장애인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시각장애인보다 더 무서운 시각장애인은 바로 영적으로 어두운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미국의 크로스웨이 여사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2,000여곡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그가 쓴 찬송가가 무려 24곡이나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 204장을 보면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그는 육신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을 주님을 바라보았고 장차 나타날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으니 영안이 열린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눈을 뜨는 영적 눈이 밝은 사람이 되어야 교회의 일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 일군이 건강해야 하는데 어느 부분이 건강해야 되느냐 하면은 두 다리가 건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절뚝발이를 일군으로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절뚝발이는 한쪽다리가 짧은 사람입니다. 기우뚱기우뚱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 자신도 힘들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육신의 절뚝발이, 양 다리가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이 귀히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복음가수 리나양은 두 팔도 없고 한쪽 다리뿐입니다. 문제는 신앙의 절뚝발이입니다. 좌우로 치우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비주의 혹은 이성주의로 흘러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만 됩니다. 이런 사람만이 두 다리가 건강한 사람인 것이고 마음으로 믿고 실천에 옮길 때, 이런 것이 바로 양다리가 튼튼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교회 일군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코가 완전해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코가 불완전한 사람은 교회 일군으로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코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숨을 쉬는 일과 냄새를 맡는 일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호흡은 기도로 말할 수 있고,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능력을 많이 받은 것 같아도 분별력이 없으면 일군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할 때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코, 분별력 있는 사람, 그리고 쉬지 않는 호흡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네 번째로 건강한 교회 일군은 지체의 수가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절 하반절에 보면 지체가 더한 자도 덜한 자도 부적합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지체를 줄 때 눈과 귀, 코, 입 필요한대로 주셨고 귀는 둘, 눈은 둘, 코는 하나, 입은 하나, 팔도 둘, 다리도 둘 그렇게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외에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에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하나님의 교회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곱사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등뼈가 휘어져서 또 갈비뼈가 벌어진 사람, 그래서 곧바로 서지 못한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굽어있다, 항상 생각이 부정적이다, 이런 사람 하나님이 교회의 일군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난장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준미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행위에 대해서 수준미달이면 안되겠죠? 그 다음에 교회의 건강한 일군으로 세울 사람은 궤혈병이 있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타민C 부족으로 생긴 피가 썩는 병이죠. 빈혈이 심해지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보혈을 의지해야 되고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버짐이 있어도 안된다고 했으니 그것은 좋지못한 것을 전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알 상한 자도 안된다고 했으니 생식기가 고장난 사람, 생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복음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교회에 좋은 일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의 기준이 높을수록 사랑으로 배려합니다
레 21:10-24
대제사장은 성소를 떠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성별하신 그가 성소를 떠나는 것은 성소를 더럽히는 일이 되었다(12).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있어야 하는 자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이다.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서 결코 떠날 수 없고 멀어질 수 없다. 성도는 예배자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신다.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시키시지 않으신다. 아론 자손이라 할지라도 육체에 흠이 있는 사람은 제사장 직무를 할 수 없었다(17~21). 장애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의무를 면제해 주는 차원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아신다. 그리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구약시대에는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통해 성결함을 추구했지만, 신약시대에는 보다 본질적인 성결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본문을 통하여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자로서 성결함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대제사장이 더 엄격한 규례로 제약을 받는 것은 그 직책과 사명이 중요했기 때문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귀한 사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 리더의 조건
레위기 21:10~24 / 김종호 목사
어제는 제사장의 성결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대제사장의 성결에 대한 말씀이다.
대제사장에게 요구하시는 성결한 삶, 거룩삶의 수준은 매우 높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경건의 수준도 이와 같이 높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값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치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높은 수준의 거룩한 기준을 마련하시고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대제사장의 성결에 대한 기준은 어떤 것인가?
먼저 말씀을 통해서 크게 3가지 정도로 보인다.
1. 장례식에 대한 성결에 대한 말씀이다. (10~12)
일반 제사장은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출가 이전의 자매가 죽었을 경우에는 장례식에 참석 할 수도 있었다.(2,3)
그러나 오늘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다르다.
1)어떤 시체에도 가가이 하지 말라 하신다.(11) 부모의 상에도 예외가 아니다.(11)
인간에 대한 첫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이시다.
그러나 대 제사장은 부모가 소천했을 경우에도 장례를 못하게 하신다.
언뜻 보기에 참 가혹하신 하나님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부모님 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된다.
대제사장으로 특별히 구별된 사명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 보다 더 우선시 하는 일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2)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서 머리를 풀어서도 안되고 옷을 찢어도 안된다.(10)
대제사장은 함부로 감정을 표현해서도 안되는 가 보다.
3)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하나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13) 말씀하신다.
대제사장이 있어야 할 곳은 성소이다.
죽는 날까지 늘 하나님을 가까이 말씀을 가까이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하나 보다. 아멘.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10)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잘 예배하고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제사를 잘 드려야 하는 거룩한 소명 때문에 그렇다.
주여!!! 나도 이 거룩한 소명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멘.
대제사장의 성결 가운데 첫번째가 장례식에서의 성결이였다면
2. 결혼식에서의 성결이 있다(13~15)
역시 일반 제사장 보다 대제사장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신다.
일반 제사장에게는 과부는 아내로 선택을 했어도 되었는데(7)
대제사장에게는 과부도 아내로 선택할 수 없다.(14)
이혼한 여인을 아내로 선택 할 수도 없다.(14)
더럽혀진 여자와 결혼을 해서도 안된다.(14)
창녀와 결혼 하는 것은 더더구나 안된다.(14)
처녀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야 한다.(13)
그것도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야 한다.(14)
결혼이 대제사장의 성결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제한 하셨을 것이다.
구별 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이만 큼 중요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하여 말씀하실 것이다.
특히 믿는 성도가 믿지 않는 성도와의 결혼은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여인을 아내로 선택해야 한다. 아멘.
결혼의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이 가정의 중요성을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경건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 왕 같은 제사장인 나의 책임이다.
이 시대와 역사 앞에 중요한 책무 중에 하나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3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고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혼의 순결과 영적 정결함을 가정에서 반듯이 세워야 한다. 아멘.
대제사장의 성결 가운데 첫번째가 장례식이고 두번째가 결혼식이라면
3. 대제사장의 신체적 조건을 두고 구별하신다.(16~23)
하나님이 핸디캡을 차별하시는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핸디캡을 사랑하신다.
예수님도 소경이 눈을 뜨게,앉은 뱅이가 일어나게,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게 하셨고 혈루병 걸린 부정한 여인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이방 여인도 다 만나주시고 치료해 주셨다.
지금은 아주 특별한 제사장의 직무에 관해서 엄격한 규정을 정해 두신 것이다.
제사장의 직무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특별히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도 레위 자손만이 그 가운데 아론의 직계 후손 만이 대제사장으로 섬길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흠이 없고 영적으로 성결하고 남자들만이 행 할 수 있는 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흠이 있는 자는 성소에서 들어가지 못하고(23) 번제단에 가까이 가서도 안 되었다.(23)
그러나 한가지 감사한 것이 있다.
아론의 자손 가운데 비록 흠이 있어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음식 예물은 지성소에 드려진 예물이든 성소에 드려진 예물이든 화목의 제물 가운데 제사장에게 주어진 몫은 먹을 수가 있었다.(22) 할렐루야.
비록 육체의 흠이 있어 제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성물을 먹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사람의 차별이 아니라 기능의 구별이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영적리더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하심을 감사합니다.
대제사장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성결한 삶, 깨끗한 삶,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중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제사장은 흠이 없고 순결해야 함을 봅니다.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흠 없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사명감 있게 살게 하시고
결혼의 순결과 영적 정결함을 가정에서 지키게 하시고
이 세상에 속해 살고 있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는 구별된 삶
거룩한 제사장으로 택함 받은 사명자로 살 아 갈 수 있도록
성령님 순간마다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옵소서.
흠 없고 순결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양식을 드리는 제사장,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해지다
레 21:10-24
* 시작 기도
주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나이다. 썩어지고 낡아지고 없어질 인생이지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로 인하여 날마다 위의 것을 찾게 하셨사오니 그곳에는 주께서 계신 하늘 지성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거기로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아버지 품에 들어가게 하소서. 할 수만 있으면 세상의 정욕과 소욕들이 썩고 없어질 땅의 것에 나로 하여금 매이게 하오니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이 시간 카이로스의 하나님이 틈입하여 나의 모든 시간이 주 안에서 의미가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제사장의 성결 규례와 관련된 21, 22장 중에서 특별히 대제사장의 성결 규례와 일반 제사장의 신체 조건에 관한 규정이다.
대제사장은 장례와 관련하여 머리를 풀지 말고 옷을 찢지도 말 것이며 어떠한 시체나 심지어 부모의 시신이라도 만지지 말 것이다.
그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경우에는 성소 곧 지성소에서 나오지 말 것이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처녀만을 아내로 삼을 수 있으며 과부나 이혼녀 더러운 창녀를 아내로 취하면 안 된다. 오직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아내로 삼아 그 자손으로 하여금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제사장의 신체 조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비록 아론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육체에 흠이 있는 신체장애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소경, 다리 저는 자, 코가 온전치 못한 자, 지체가 더한 자, 손이나 발이 부러진 자, 등이 굽은 자, 난장이, 눈에 백막이 있는 자,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 고환이 상한 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지성물이나 성물은 먹을 수 있지만 성소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로서 일반 제사장보다 더 엄격한 거룩이 요구된다.
그는 하나님이 성별하여 기름 곧 관유를 부음 받은 자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성소를 떠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주의 자녀들은 구약의 대제사장보다 훨씬 우월하다.
왜냐하면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것도 하나님과 교제나 사귐의 목적이 아니라 속죄를 목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왕 같은 제사장들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언제나 그리고 날마다 하늘 지성소에 들어간다.
그 목적은 속죄의 차원을 넘어 날마다 교제와 사귐을 위함이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언제든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얻은 특권이며 또한 왕 같은 제사장의 특권이다.
이와 같이 왕 같은 제사장에게는 특권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이 수반된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지성소 곧 하늘 지성소로 나아가야 한다.
성소를 비워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성소를 떠나는 것은 곧 하늘 지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며 그리로 들어가게 한 그리스도의 피를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기름이요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기 때문인데 이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왕 같은 제사장은 항상 주님과 연합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바로 거기로부터 모든 삶의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이나 일반 제사장이나 최고의 거룩을 요구한다.
일반 제사장에게 이러한 거룩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화제란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인데 번제 제물의 전부와 화목제나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의 기름을 태워드리는 것이다.
이 때 화제로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양식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양식을 드리는 제사장은 거룩해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은 조건은 신약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왕 같은 제사장에게는 상징적 예표가 된다.
율법에 의해서 세워진 구약의 제사장은 흠이 없는 자여야 한다.
이런 구약의 제사장은 또한 완전하시며 참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일 년에 한 차례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일지라도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전에 자신의 흠을 없애기 위하여 먼저 자신을 위하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면 일반 제사장들이야 두말해 무엇하랴?
일반 제사장들이 그러한 성결 규례를 지켜야 했고 또한 최선을 다해서 지켰을 것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흠이 있는 자이다.
그것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며 참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드리는 자들이 때마다 바뀌는 이유이다.
(히 7:26-28)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온전한 제사장임을 증거한다.
아무리 율법에 의해서 흠이 없이 세워진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온전한 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비하면 흠이 있는 자이며 병든 자요 장애인이다.
율법에 의해 세워진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과 그 기름을 태워 하나님께 화제로 드렸지만 그것은 결코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은 계속해서 그 화제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히 온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제물이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와 같이 영원히 완전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제물(하나님의 양식)로 드리심은 거룩하게 된 자들 곧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신 것이다.
(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의 조건에 맞지 않는 흠이 있는 자, 장애자 그리고 병이 든 자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새 생명을 얻은 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처럼 왕 같은 제사장 곧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새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아들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서 아들의 생명으로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그 부활의 생명의 온전한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나는 구약을 신약의 상징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됨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율법에 매여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는 나의 기준으로 남들을 판단하며 정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자이다.
구약의 율법 조건으로 보면 나 같은 이는 결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하물며 대제사장이겠는가?
나는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흠은 없을지라도 내 속에 이와 같은 흠 그보다 더 심한 흠 곧 끔찍한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심령의 코를 찌르는 그런 죄악이 나의 폐부를 찌른다.
이런 나는 결코 제사장도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부정하고 흠이 많은 자요 날마다 죄를 양식으로 먹고 사는 자였지만 이런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세워지게 하심은 날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을 나의 양식으로 삼고 또한 나 자신을 아버지의 양식으로 드리게 하심을 믿는다.
오늘도 나의 영이 새 생명으로 춤을 춘다.
크로노스 안에서는 여전히 죄에 속하여 사는 날이지만 내 영은 카이로스에 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간을 틈입하여 뚫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와 동행하며 연합하는 날이다.
잠시도 비울 수 없는 자리
레위기 21:10-24 / 김도완 목사
제사장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성소를 섬기고, 돌아보는 그런 직무를 맡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할 수 있도록 많은 제약들로 제사장을 보호하셨는데요. 게다가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에게는 더욱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시는 본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이스라엘에 단 한 명 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말씀드린대로 모든 성도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다고 했었죠?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의 직무는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 되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또 돌아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바로 이 교회를 위하여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우리에게 은사와 은혜와 믿음을 주사 교회를 잘 섬기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우리들의 생애가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왜 대제사장은 일반 제사장과 다른 아주 엄격한 기준을 주셨을까요?
첫째,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10절 본문에서 ‘애곡 할 때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 그 행위’는 일반 제사장에게는 허용되었지만 대제사장은 그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시신도 특별히 부모의 시신 조차도 대제사장은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12절 말씀에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라는 것은 성소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성소를 떠나는 것이 사실상 금지되었던 그런 엄격함이 대제사장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는 구약성경의 대제사장에게만 해당 되는 말은 아니였습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한 제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를 따르되 내가 먼저 내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와서 주를 따르게 하소서' 라고 그렇게 주님께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아주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 하여금 그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성도가 되어 왕 같은 제사장 되어진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사람들이 어떠한 우선순위를 취해야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셨다고 생각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제 죽음의 자리 장례의 문제 뿐만 아니라 결혼에 경우에 있어서도 대제사장은 일반 제사장과 다른 아주 엄격한 기준을 가지셨습니다. 심지어 일반 제사장은 과부와도 결혼할 수 있었지만, 대제사장은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백성 중에 있는 처녀와만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일반 제사장에 비하여서 대제사장은 더 엄격한 결혼 배우자를 한정하고 있다' 라는 사실은 그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하나님이 그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다른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지성소를 출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 대제상의 직분이 세습되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신앙의 초보자들에게 이제 예수를 갓 믿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처음에는 젖을 먹었지만 점점 자라갈수록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되었던 것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고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뜻을 더 엄중히 쫓고 따라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대제사장 되어진 성도님들의 삶 속에 이런 놀라운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따르고 순종하는 회복이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둘째. 흠이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17절 이하에 말씀 속에서는 대제사장에 신체적인 조건들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17절을 읽어봅니다.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제사장에게 신체적인 흠이 있다면 제사장은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소외된 자들 장애인과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과 같은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신 것이 아니십니다. 그만큼 신체적인 결함은 하나님의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이지요. 18절 부터 21절까지의 말씀에서 신체적인 결함에 관하여서 여러가지를 열거하면서 하나님의 성소를 섬길 수 없는 조건들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공교롭게 열 두 가지에 결함의 내용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닌 것은 금요일 본문인 레위기 22장 22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 속에 하나님 앞에 희생 제물로 드려질 그 짐승 제물의 관하여서도 흠 없는 짐승을 드려야 했는데, 그 흠 없는 짐승의 흠에 여러가지 사례들도 역시 12가지의 사례들이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은 마치 제물과 같은 입장으로 늘 정결하고, 온전해야 된다 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유일한 제물인 예수님을 상징하는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한 구원의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성경이 ’죽음 당하신 어린양‘ 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제사장은 그 제물과 함께 마치 하나님께 드려진 자다 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흠 없는 제물이라는 제사는 나대신 직접 양을 잡는 것이고 예배는 직접 제물이신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를 드린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22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이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이 있는 사람이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의 직무를 섬기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물을 먹을 수 있다는 융통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배려 하신 분이요.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 갈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흠 없는 제물이요. 하나님 앞에 드려질 만한 그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귀히 여기시고 주님 앞에 드려지는 완전히 헌신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흠 있는 자와 제사장 직무
레 21:16-24 / 장낙원 목사
제사장은 성전의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성전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고 거룩을 유지케 해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거룩케 하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들과는 달리 모든 것에 거룩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백성들의 어른으로 삼은 것도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성막에서 드려지는 각종 제사와 성소 안에서 행하여지는 제사장 직임을 담당 할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지목하는 것이지 인간의 조건으로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입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아들들은 자기 조건과 상관없이 제사장 신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성도의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이 제사장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지목을 당하고 선택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 조건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이사야 43장에서 “야곱아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내가 너를 창조 하였고 조성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를 일컬어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신분을 누리는 것과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육체의 흠이 있는 자들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은 유지를 하지만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은 육체적으로 흠이 없는 거룩한 자만이 감당 할 수가 있습니다.
육체에 흠이 있는 자가 성소를 드나드는 것은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면서 금하였습니다.
성소를 더럽힌다는 말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성막의 뜰에는 들어와서 제사장들이 먹는 제사의 제물인 지성물은 먹을 수는 있어도 성소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소 안은 오직 흠 없는 자들만이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흠이라는 말은 “뭄” 이라고 하는데, 이는 “더러운 것”, “얼룩”, “결함”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하고 결함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흠은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흠은 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흠을 통해서 죄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육체의 여러 가지 흠처럼 삶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죄가 이러한 부패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흠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선천적인 장애도 있고 살아가면서 다치거나 병이 걸려서 생기는 후천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흠은 눈에서부터 시작하여서, 코, 손발, 몸통, 피부,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온 몸에 퍼져 있습니다.
소경은 보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절뚝발이는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자를 말합니다.
코가 불완전한 자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지체가 더한 자는 수족의 숫자가 많은 자를 말합니다.
손발이 부러진 자는 온전히 일을 할 수가 없는 자를 말합니다.
곱사등이나 난장이는 몸이 기형적으로 성장하여서 생긴 자를 말합니다.
눈에 백막이 있는 자는 눈이 흐려서 사물은 온전하게 분멸할 수 없는 자를 말합니다.
괴혈병이나 버짐은 피부가 깨끗하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불알이 상한 자는 생식 기능을 상실한 자를 말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죄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육체적 결함은 신약에서는 영적 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문자적으로 육체의 결함을 가지고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장애자라고 해서 구원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육체적 흠을 가진 사람은 제사장 직분을 감당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은혜 아래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의 제사장을 신약에서 목사라고 말을 한다면 신약에서는 장애자라고 해서 목사가 되는 일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육체적 조건으로 성도로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육체적 흠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영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소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신약에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제사장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세워졌습니다.
신약 교회에서의 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에서는 율법의 의를 가진 자는 제사장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은혜의 나라에서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려면 은혜 아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율법의 의로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로만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자는 눈을 뜬 자이고 이 사실을 모르는 자는 소경입니다.
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는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눈에 비늘이 떨어졌습니다.
소경이 눈이 떠진 것입니다.
눈이 떠지고 나니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율법의 비늘이 떨어지고 나니까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에 비늘이 떨어지고 난 후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주 라는 것을 율법 아래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앞을 보지 못하면 제물을 분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제물이 온전한 것인지 아니면 흠이 있는 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럼 부정한 제물로 제사를 드릴 수 있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소경이면 율법의 의로 하나님에게 나오고자 합니다.
신약에서 율법의 의로 나오는 것은 부정한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을 일컬어 소경이 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뚝발이는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자를 말합니다.
솔로몬 성전에 보면 두 놋 기둥이 있습니다.
“야긴”과 “보아스”라고 합니다.
오른편 곧 남쪽 기둥의 이름을 “야긴”이라고 합니다.
야긴은 “그(여호와)가 세우실 것이다”, “그분이 일으키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성전을 세우시고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왼편 곧 북쪽에 세워진 기둥은 “보아스” 라고 합니다.
보아스는 “그(하나님) 안에 능력이 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에 여호와의 능력이 머문다는 뜻입니다.
신약의 성전은 성도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성도들 심령에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예수님의 것으로 채우십니다.
성전을 두 기둥이 받들고 있듯이 성도들 안에 세워진 성전도 두 기둥이 받들고 있습니다.
두 기둥은 두 언약과 같습니다.
창세전 언약 속에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은 죄 아래 가두는 언약이고,
새 언약은 죄에서 구원하는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율법이고, 새 언약은 은혜입니다.
율법과 은혜는 서로 짝입니다.
율법은 은혜를 전제로 있고, 은혜는 율법을 바탕으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신앙은 율법과 은혜를 동일한 중수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은혜를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은 내용을 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내용을 가진 사람은 그릇도 귀히 여깁니다.
천국의 서기관들은 옛 것과 새 것을 귀하게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두 언약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언약도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 언약 중에서 어느 한 쪽이 경홀히 여기게 되면 절뚝발이 신앙이 됩니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경홀히 여기는 자는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율법과 은혜의 길이가 다르고 중수가 다르면 절뚝발이가 됩니다.
절뚝발이 신앙으로서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뚝발이는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코는 냄새를 맡는 기관입니다.
코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향기를 토하여 내게 되어 있습니다.
향기는 삶을 말합니다.
두 가지 향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생명의 향기와 사망의 향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냄새는 은혜 아래 있는 성도들이 토하는 향기이고,
사망의 냄새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토하는 향기입니다.
제사장이 코가 이상이 생기면 이것이 은혜로운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향기인지 아니면 인간들의 의인 사망의 율법의 향기인지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신앙을 올바르게 지도 할 수가 없습니다.
새 언약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에서 율법의 향기를 토하게 되면 그것은 성소를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지체가 더하거나 손발이 부러진 자는 제사장 직무를 담당 할 수가 없습니다.
수족은 일하는 기관입니다.
손발이 부러졌다는 것은 온전하게 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족이 더한 것은 넘침을 말하고, 손발이 부러진 것은 온전치 못함을 말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신앙은 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도 안 됩니다.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두 가지 행함이 있습니다.
율법적 행함과 믿음의 행함이 있습니다.
율법적인 행함은 법으로 하는 것이고,
믿음의 행함은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율법적 행함을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고,
믿음의 행함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으로 인하여 분쟁을 할 때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들은 먹지 못하는 자들을 업신여기기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나 안 먹는 것이나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러한 자유 때문에 연약한 자가 시험에 든다고 하면 나의 자유가 연약한 자의 양심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므로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들일수록 자신의 자유가 연약한 자들에게 시험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아래 있어도 때로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율법적으로 행할 때도 있습니다.
은혜 아래 옮겨짐을 당하여도 아직까지 율법의 습성이 남아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적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하다고 하여서 이들 앞에서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행동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때론 율법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어른은 어린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행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행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할 수 있어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배려하여야 합니다.
강함이 약함을 배려하지 않을 때는 약한 자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기를 먹는 것 때문에 연약한 자들이 시험이 든다고 하면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율법적 행함도 필요하고 때로는 믿음으로 하는 행함도 필요한 것입니다.
강건한 사람은 율법과 은혜를 조화롭게 잘 사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지체가 더하여도 안 되고 손발이 부러져도 안 되는 것입니다.
즉 교만한 자도 안 되고 균형을 잃은 자도 제사장 직무를 감당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곱사등이나 난장이는 몸이 기형적으로 생긴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성장 발육에 문제가 있는 자들입니다.
신앙은 믿음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거나 게을리하는 사람은 온전한 신앙이 아니므로 제사장 직무를 담당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온전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린아이로서 교회 안에서 어른인 제사장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에 백막이 있는 자는 눈이 흐려서 사물은 온전하게 분멸할 수 없는 자를 말합니다.
눈이 흐리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눈이 없다는 뜻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실족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리거나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을 여자라고 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배우라고 하는 것은 영적 분별력이 없는 성도는 교회에서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자는 목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자는 목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자라도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남자입니다.
남자라도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여자입니다.
영적 분별력이란? 복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입니다.
괴혈병이나 버짐은 피부가 깨끗하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이는 살아가는 삶에 흠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삶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삶은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그려내는 그림입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합니다.
성도의 삶은 신앙의 그림과 같습니다.
그런데 괴혈병이나 피부병이 번진 사람들처럼 삶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삶이 문란한 사람은 사단으로부터 참소를 당하게 됩니다.
사단은 항상 인간의 행실을 가지고 참소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성도의 삶을 윤리적 온전으로 말하는 것은 사단으로부터 참소를 막기 위함입니다.
불알이 상한 자는 생식 기능을 상실한 자를 말합니다.
생식 기능을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은 강건한 남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의 미숙함을 말합니다.
구원은 죽은 자가 예수의 생명으로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어린아이로부터 출발하여 남자답게 강건한 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남자는 생명이 영글어서 씨를 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불알은 생식기관입니다.
그런데 고장이 난 것입니다.
불알이 상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 “메로아흐” 라고 하는데 이는 “멍들어 찌그러진”, “부서진” “약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병이 들거나 외부의 충격에 의하여 부서지거나 찌그러져서 생식기능이 유약해진 불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진리의 길을 버리고 비진리를 따른다는 뜻입니다.
이단은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이단의 교리를 따르는 자는 불알이 상한 자와 같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거룩 또한 전인적인 것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주는 화면과 같습니다.
구원은 몸의 구속까지입니다.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도 마음도 거룩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단번에 이룬 거룩을 현재화 시켜서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하늘에 가치로 하늘을 지향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외국인으로서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흠이 있다고 하여서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육체의 흠이 있으면 제사장 직분은 행사하지 못하여도 제사장 신분은 상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록 육체의 흠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의 제물인 지성물을 먹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모든 제사의 제물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지성물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비록 성도가 흠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안에서 구원은 유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전 5:1-13절.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는 음행이 만연하였습니다.
음행은 이방인 신전에서 행하여지던 종교의식입니다.
그래서 성적인 문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방 문화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교회 안에서까지 들어와서 만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계모와 교합하는 음행의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제제를 하지 않고 방치를 해 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교회는 이러한 것으로부터 빼내심을 입은 자들이 모인 곳인데 어찌하여 세상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방치할 수가 있느냐?
이러한 것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교회의 거룩성을 헤치는 것이 되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하듯이 교회 안에 작은 죄도 방치해 두면 온 교회를 더럽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지은 자를 출교를 시키라는 것은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 출교를 당한다고 해서 구원에서 잘려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몸은 사단에게 내어주었지만 그 영혼은 마지막에 살리심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육신의 흠은 있지만 그 영혼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육체의 흠이 있는 제사장들이 비록 제사장 직임은 감당 할 수는 없어도 제사장의 신분은 사라지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흠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지성물을 먹게 한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므로 행위로 취소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은혜에 속한 것이므로 은혜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에서 절려 나가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이 지켜내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켜내는가 하면 은혜로 지켜내십니다(롬 8:33-39)
구원은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으로 잘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흠을 통하여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일어나고 긍휼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당하지 않는다고 하신 이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이는 그 어떤 것에서도 잘려나가는 것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십니다(요 17:9-15절).
죄는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죄는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죄는 엄청난 아픔을 몰고 옵니다.
성도는 징계는 당하여도 구원에서 잘려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징계가 훨씬 아픈 것입니다.
징계는 죄를 짓는 것보다 훨씬 큰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이는 정답을 아는 자가 답을 틀리게 적었을 때 정답을 모르는 자보다 훨씬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정답을 모르는 자는 답을 틀리게 써도 아픔을 모릅니다.
아픔은 답을 아는 자들만이 느끼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에 대하여 아파하는 것도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죄에 대한 아픔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에 대한 아픔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죄에 대하여 압니다.
성도는 죄에 대하여 살아 있기 때문에 죄 때문에 고통스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면 불신자들보다 훨씬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살아 있는 자만이 느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살려 놓고 죄 아래 살게 하신 것은 죄를 미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긍휼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서 긍휼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기에 긍휼의 자리를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흠 있는 자들입니다.
흠 없는 제사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제사장 신분은 가졌지만 제사장 직임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성물을 먹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비록 죄의 몸으로 살고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죄인이지만 긍휼의 자리에서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눈앞에서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울듯이 우리도 우리의 눈앞에서 주님이 보이지 않으면 울어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
1.제사장의 자격(레 21:10-24)
1.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지파만이 할 수 있었다(신 21:5). 제사장을 일정 수준 유지하기 위해서 나이의 제한을 조정하였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30세였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도 30세였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도 30세였다.
그래도 수가 모자랄 경우 나실제사장으로 보충하였다. 나실제사장은 지파에 관계없이 나실 인으로 서원을 한 사람들이었다(민수기 6장).
2.제사장은 육체에 흠이 없어야 한다(레 21:18-21).
3.제사장은 정결해야 한다(레 21:1-3).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부모의 시체까지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레 21:11).
2. 대제사장의 임무
1.번제단에서 속죄(레 16:18-19)
2.물두명에서 수족을 닦는 일(출 30:19-21)
3.떡상에 떡을 진설하는 일(출 25:30)
4.등대의 불을 간검하는 일(출 27:20-21)
5.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출 30:7-8)
6.지성소에서 속죄하는 일(히 9:7)
지성소에 들어가는 규칙
1)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레 16:11)
2)향연으로 속죄소가 보이지 않도록 가려야 한다(레 16:13)
3)속죄소에 피를 뿌린다(레 16:14-15).
7.판결하는 일(신 21:5)
8.축복하는 일(신 6:22-27)
제사장의 세가지 축복
1)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
2)여호와는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
3)여호와는 네게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
9.성막일에 총지휘하는 일
성막에 봉사한 레위인은 30세에서 50세까지의 남자로 모두 8.580명이었다(민 4:46-47).
게르손 자손:성막, 장막, 덮개, 회막, 문장, 뜰 휘장(민 3:21-26)
고핫 자손:증거궤, 떡상, 등대, 번제단(민 3:27-32)
므라리 자손:널판, 띠, 기둥받침, 말둑, 줄(민 3:33-37)
10.율법을 가르치는 일
3. 대제사장의 예복(출 28:1-43)
1.속옷(출 28:39)
대제사장이 가장 먼저 입는 옷으로 가는 베실로 짠 세마포 옷이다. 가는 베실은 성결을 의미한다.
2.에봇 받침 겉옷(출 28:31-34)
성결한 속옷 위에 입는 믿음과 구원의 옷입니다.
에봇받침:청색(생명을 의미)-제사장의 최대 목표는 생명구원이다.
금방울:믿음을 의미-제사장은 움직일 때마다 금방울 소리가 나야 한다.
가는 곳마다 믿음(금)으로 구원받음(청색)을 증거하여야 한다.
석류(금방울과 금방울 사이에 석류를 수놓음):
석류는 씨를 붉은 즙(피)로 감싸고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의 모 습과 같다. 성도들(석류)은 믿음(금방울)과 믿음(금방울) 사이에 있어야 한다.
3.에봇(출 28:6)
대제사장이 세번째 입는 옷으로,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었다.
4.두 견대(출 28:7-14)
대제사장의 어깨에는 두 견대가 있는데, 호마노 보석 위에 이스라엘 12 아들들의 이름을 여섯씩 새겼다.
우편 견대:르우벤, 레위, 단, 시므온, 유다, 납달리
좌편 견대:아셀, 스불론, 베냐민, 갓, 잇사갈, 요셉
5.흉패(출 28:15-30)
에봇짜는 법과 동일하게 만들었다(15절).
크기는 가로 세로 각 한뼘식 정사각형으로 두겹으로 만들었다(16절).
보석에는 모두 금테를 두르고,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겼다. 성막을 둘러싸고 있는 진의 배치와 같이 동, 남, 서, 북의 순서로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겼다.
첫째줄(동):홍보석(유다), 황옥(잇사갈), 녹주옥(스불론)
둘째줄(남):석류석(르우벤), 남보석(시므온), 홍마노(갓)
셋째줄(서):호박(에브라임), 백마노(므낫세), 자수정(베냐민)
넷째줄(북):녹보석(단), 호마노(아셀), 벽옥(납달리)
우림과 둠밈을 흉패 안에 넣어 가슴 위에 있게 하였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으로 흰 돌이 다. 둠밈은 완전이라는 뜻으로 검은 돌이다.
제사장의 판결 원칙
1)생명을 주는 방향으로 판결해야 한다(청색실).
2)왕권으로 선포해야 한다(자색실).
3)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심정으로 판결해야 한다(홍색실).
4)믿음으로 판단해야 한다(금실).
5)백성들을 보석과도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보석에 새긴 이름).
6)공의로 판단해야 한다(정사각형의 판결흉패)
7)하나님 앞에서 판단해야 한다.
8)사랑으로 판결해야 한다(판결흉패를 가슴에 담)
6.띠(출 28:4-5)
봉사(눅 17:8)
힘(사 22:21)
준비자세(눅 12:35; 출 12:11)
7.관(출 28:36-38)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써 놓았다. 대제사장의 가장 우선은 성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