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글) 안겔리카 오버라트
안겔리카 오버라트
1957년 칼스루에에서 태어났다. 튀빙엔 대학에서 독문학과 역사학, 그리고 이탈리아와 유럽 문화를 공부했고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신문기자, 에세이스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레포타쥬 문학성을 인정 받아 1996년 에곤-이르빈-키르쉬 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소설 《가까운 날들》로 타도이스-트롤 상을 수상했다. 현재 튀빙엔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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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글) 만프레드 코흐
1955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튀빙엔, 테살로니키, 기센 대학 등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 논문에 통과했다. 헝가리, 폴란드, 그리스에서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던 중 잘츠부르크 주립극장에서 풍자적인 글들을 써서 유명해졌다. 1984년부터 잘츠부르크 뉴스의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 밖에도 소극장을 위한 카바레-대본과 소설 〈사이버맨〉을 썼다. 또 화가인 귄터 누스바우머와 함께 〈만하타매니아〉를 출간하기도 했다. 아내인 안겔라 오버라트와 다양한 문학사화집을 엮었다. 현재 튀빙엔에서 저널리스트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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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시 ‘천재’들은 평범함 속에서 탄생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의 독일어 원제는 ‘천재들과 그들의 비밀’이다. 여기서 비밀이란 물론 천재적 예술가들의 숨겨진 면모나 생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폭로된 비밀에는 유독 혐오스럽거나 끔찍한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정말 흔히 하는 말처럼 예술가들, 특히 천재라 불리는 예술가들은 모두 다 미친 걸까? 아니면 바로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평범 이상의 작품들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걸까?
어쨌거나 천재 예술가들의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면모나 생활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폭로하는 이유가 결코 이런 것으로 그들의 작품이나 예술성을 깎아내리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언급된 사실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너무나 완벽해 보여서 우러러보았던 그 천재 예술가들에게도 ‘옥의 티’ 같은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에 살짝 안도감과 위안을 느끼는 정도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이제 어디선가 마틴 루터나 칸트, 헨델의 인물화를 보게 되면 그들의 근엄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빙그레 웃음이 날 것 같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100인의 등장인물
렘브란트, 헤르더, 쇼펜하우어, 켈러, 스트린드베리, 프루스트, 샤넬, 암스트롱, 와일더, 칼라스, 뒤러, 루소, 브렌타노, 바그너, 르누와르, 뭉크, 조이스, 미로, 가르보, 퀸, 데카르트, 칸트, 아르님, 마르크스, 니체, 쉴러, 카프카, 히치콕, 베이커, 하이스미스, 라이프니츠, 괴테, 드로스테-휠스호프, 폰타네, 고흐, 콜레트, 샤갈, 자코메티, 아렌트, 먼로, 루터, 디드로, 파가니니, 베르디, 니체, 베버, 발렌틴, 브레히트, 베케트, 펠리니, 비발디, 모리츠, 뫼리케, 플로베르, 프로이트, 쇤베르크, 채플린, 디트리히, 헵번, 플라스, 다 빈치, 바흐, 베토벤, 키르케고르, 차이콥스키, 말러, 피카소, 반스, 사르트르, 피아프, 헨델, 실러, 쇼팽, 브루크너, 두세, 라벨, 비트겐슈타인, 닌, 안더슈, 프레슬리, 메리안, 모차르트, 하이네, 보들레르, 와일드, 슈타인, 뒤샹, 디즈니, 비스콘티, 브렐, 볼테르, 헤겔, 리스트, 톨스토이, 체호프, 만, 크리스티, 달리, 웰스, 레넌
그(그녀)는 누구일까요?
● 그는 집에 손님을 초대해놓고 갑자기 악상이 떠올랐다면서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그런데 열쇠 구멍으로 그가 들어간 방을 몰래 들여다보면 악보를 적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내놓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 “나는 멀리서 여자가 다가오면 으슥한 골목에 숨어 있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나의 음탕한 물건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을 보여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했다.”
● 도대체 뭐가 되고 싶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건 오직 책뿐이에요. 책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뿌듯하거든요. 그 외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어요.” 그건 사실이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의 옆에는 늘 착한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아니라 애인이.
● 그는 주치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곤 했다. (…) 게다가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자신의 치질에 대해 분석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일이 ‘귀족적이고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겐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님을 강조했다.
● “처음엔 난생처음 겪는 그 불쾌한 느낌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어요. 문득 책상 서랍에서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서랍을 열었더니 그 안에 썩은 사과가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기절초풍할 지경이었죠.” (…) 그의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서랍에는 항상 썩은 사과가 채워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썩은 사과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냄새 없이는 일을 할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 그를 찾아온 방문객들은 그가 시도 때도 없이 손바닥에 침을 뱉어대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또는 “알록달록한 손수건을 꺼내 가래를 그러모아서 뱉은 다음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고는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
● 자신이 번 돈은 물론이고 결코 적지 않았던 유산마저도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된 데는 이사한 새집의 집단장이 화근이었다. 그가 집시였다면 결코 집단장 따위에 치중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가 대단한 부자인 양 겉모양에 집착한 대가로 그의 가족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옷이란 옷은 전부 전당포에 맡긴 탓에 당장 입을 게 없어서 외출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또 종이가 없어서 “황소 머리에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옮겨 적지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첫 소설을 끝마치고 출판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자 그는 친한 친구 두 명을 초대해 꼬박 8시간 동안을 거의 부르짖다시피 읽어주었다. 그렇게 매일 8시간씩 꼬박 나흘이 흘러갔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읽고 있는 동안 절대로 중단시키거나 토를 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들은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음에 틀림없는 것이, 그토록 괴로운 고문을 묵묵히 견뎌냈다. 낭독을 듣고 녹초가 된 친구들은 별 망설임 없이 한결같은 평가를 내렸다. 당장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Uv0uSPZ6Q
● “내 속에 악마가 들어왔었나 보다.”
예순한 살의 노인이 된 그가 일기장에 남긴 글이다. 그가 말한 악마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를 의미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관계 후 “잠을 설쳤다”라든가 “너무 끔찍했다” 또는 “꼭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라고 쓰여 있고, 몇 년 후의 기록에는 “더 강하게 사로잡혔다” 그리고 “난 타락했다”라고 적혀 있다. 그가 이런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자식이 태어났다. 충실한 아내로부터 열세 명의 아이를 얻은 것이다.
● 미국의 한 신문사 사장이 그에게 미국에서의 순회강연을 요청해왔다. (…) 미국이 몹시 추운 곳이라고 들은 그는 발목까지 오는 긴 초록색 외투를 맞추었고 깃과 소맷부리에는 수달과 바다표범의 털을 달았다. 미국의 각 일간지마다 그의 강연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과 광고가 연일 쏟아졌다. 그는 드라큘라 백작 같은 망토를 걸치고 안에는 보라색 공단으로 된 재킷과 무릎 바지에 검은 양말, 에나멜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나의 턱수염은 여전히 신이야.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스물두 살의 청년이 벽에 붙어 있는 파리 친구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중에는 잘라낸 손톱까지도 너무 소중해서 버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 또한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었다. (…)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가 그의 신발을 깨끗하게 닦아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외투의 먼지까지 털어내셨다! 파리에서 온 먼지, 오랫동안 함께 다녔던 그 먼지를 없애버리다니! 아들이 얼마나 난리를 쳤던지 어머니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고 한다.
● 그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고 독단적이었다. 그리고 악취를 풍겼다. 어릴 때부터 씻기를 거부했으며 어른이 된 후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아내는 남편에게 시위하기 위해 목과 귀에 비누 거품을 바르고 다녔다. 물론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도망가게 만드는 악취를 고수했다. 그의 동료는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모두들 그 옆에 앉아 있는 걸 괴로워했다”며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 감자에 대한 그의 사랑은 순수했다. 감자는 삶거나 굽거나 튀기거나 볶아서 먹을 수도 있고, 노년에 이가 시원찮으면 죽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유용한 식품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아메리칸드림은 그에게 아이스크림과 스테이크로 현실화되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그는 그를 만나게 되어 기뻐하는 기자에게 이른 아침부터 브랜디를 넣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말했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커다란 스테이크 세 조각과 아이스크림 세 컵을 먹어치웠다.
그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신체 부위는 목 위쪽, 즉 얼굴의 눈과 입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 쾌변은 결국 그를 상징하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는 우편엽서를 제작했고 나중에는 편지지까지 만들었는데 거기엔 화장실 문구멍 사이로 그가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머리 위쪽에 있는 카메라를 보며 웃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고딕체로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라!”라고 써넣었다.
● 인생에 특별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살에 마음이 끌렸다.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수면제로는 죽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잠을 자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동맥을 끊는 것도 너무 간단한 방법 같아서 싫었다. 반면 부엌칼로 “한쪽 귀에서 반대편 귀까지” 그어 기도를 절단하는 건 좀 그럴듯해 보였다. 그건 정말 “제대로 일을 내는 것” 같았다. 또는 “두꺼운 밧줄로 목을 조르는 것”도 매력 있어 보였다. 하지만 가장 매혹적인 자살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분신이었다. 그는 새벽 4시에 화실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부을 거라며 한 달 내내 아내를 괴롭혔다. 마침내 참다못한 아내가 “하고 싶으면 빨리 해버리고 그 입 좀 다물어!” 하고 소리쳤다. 그 후로 그는 잠잠해졌다.
● 그는 여자와 예기치 않은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남성의 변형된 생식기 사진이 있는 책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 (…) 어쩌면 그저 타고난 성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주의 깊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청년, 금과 똥을 착각했고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성적 쾌감을 느끼기 위해 대변을 참았다가 그 귀한 물건을 서랍이나 카펫 위나 또는 설탕 종지에 누었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