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놀던 때가 그립 습니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 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니-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 습 나-다.
이 노래는 이원수(李元壽) 선생님이 작시하고, 홍난파 선생님이 작곡한 어린 시절 누구나 불렀던 가곡 이전에 동요(童謠)“고향의 봄”이다 고향의 봄노래는 홍난파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때인 1929년 동요로 발표하였다. 우리 어렸을 때 천방치축(天方地軸) 뛰 놀던 초등학교(예전에 국민 학교) 시절에 불렀던 노래다. 고향의 봄 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시울 을 적시게 하고, 마음 속 깊은 고향 생각나는 향수(鄕愁)를 불러 오게 하는 노래이다,
아동 문학가 이원수(李元壽) 선생님은(1911 - 1981) 까지 사셨다. 우리나라 근대 어린이 문학과 문화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하였고, 마산에서 성장 하였다, 1926년 16세에 <고향의 봄>이 방정환(方定煥) 선생님의 어린이지(誌)에 실리고, 이후 여러 잡지와 신문에 실려 아동 문학가로 성장 하였다. 그 무렵 <오빠 생각>의 동요 작가 12세의 최순애 선생님과 10여 년 동안 펜팔로 마음을 주고받았고, 4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작곡가 홍난파(洪蘭坡) 선생님은 (1898 - 1941)년 까지 사셨다. 아호는 난파(蘭坡)이며,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홍난파(洪蘭坡)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유명한 초창기 작곡가다, 동요 <고향의 봄> 가곡으로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 랏다> <봄처녀> <봉숭아> <사 랑> <사공의 노래>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장안사>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을 작곡 한 우리나라 현대 음악의 선각자다. 111개의 동요와 가곡을 작곡하여, 천재 작곡가로 알려졌으며.‘한국의“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고향의 봄 (사진 폄) 4월의 미풍이 꽃바람타고 불어온다. 4월의 꽃향기는 겨우내 닫혀있던 내 영혼의 꿈의 문을 열어주고, 싱그러운 푸르른 자연을 꿈꾸며, 꽃향기에 취하여 춘몽(春夢)의 꿈을 꾸게 하며, 봄 안개 품은 하늘가 꽃망울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나의 고향은 조금만 뒷동산이 있고, 60년대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담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봄이 와서 강물이 풀리고 경칩(驚蟄) 지나면 달 밝은 밤에, 마을 앞 물 논에서 개구리가 밤새운 합창소리로 지새우고, 넓은 들 언덕에는 아지랑이 피어올라 종달새가 높이 떠 봄노래 부르면, 뒷동산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붉게 피어나고, 건너 마을 산등성에는 산 벗 꽃이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울굿 불굿 꽃동산을 이루고, 떡갈 나뭇잎이 피어오르면, 뒷동산 숲에서 뻐꾸기와, 꾀꼬리가 이산 저산 옮겨가며 님 그리운 소리에 밤이 깊어가는 내 고향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이다.
고향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타향에서 삶의 마음이 찌들고, 허전한 마음이 밀려올 때면, 문득 추억어린 옛 생각과 고향을 찿아 예전에 지나던 언덕길과 마을 앞개울 둑길을 걸어보면 마음의 위안처가 되며, 내 마음은 어릴 때 뛰 놀던 친구들 생각이 난다
내 고향은 여전히 꿈결 같아서 봄이 오면 어린 시절 뛰 놀았던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고향의 노래 부르면 어느새 내 눈가가 촉촉 해지며, 나의 망향(望鄕) 노래인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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