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불효도 아니다 / 조성현
그의 모친이 길고 긴 이승에서의 끈을 놓았다. 아들은 그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 이대로 영원히 잠드시기를 바랐다. 그는 불효자일까.
7~8년 전쯤 그는 혼자 사는 어머니에게 노인 돌봄 요양기관인 데이케어센터에 다니길 권했지만, 그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곳에 다닐 정도로 노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고, 그만큼 총기도 충분했다. 젊어서부터 배움이 적지 않았고, 유행 감각도 있어서 여느 노인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외며느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가 반찬과 먹을거리를 해다 드렸다.
평온하던 가족에게 신은 심술을 부렸다. 그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며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지만, 고운 치매라 그런지 아들 내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다. 치매란 괴물에게 뒷걸음질은 없다.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다. 아들 내외는 모친을 모셔왔다.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 후 종교적 믿음과 함께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지만, 아들은 치매 환자인 모친을 종일 집에서 지내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모친을 데이케어센터에 모시고 가서 등록하였다. 다행히 그녀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였다. 아침이면 센터에서 승합차로 모시고 갔다. 아침과 점심은 물론 저녁 식사까지 센터에서 제공하였고, 초저녁에 귀가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구십을 훌쩍 넘기자 몸과 함께 정신도 급격히 노쇠해갔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몇 년 전 환갑을 넘긴 외아들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주위의 돌봄이 없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독자에게는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십 년 떨어져 살던 아들과 며느리가 모친과 한집안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일 터, 치매 노인을 모시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다.
그들에게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노인에게 폐렴이 급습하였다. 정신에 이어 몸도 무너졌다. 그녀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도, 회생 가능성도 없고 죽음이 임박한 임종 단계에 접어들었다. 주치의는 절차에 따라 아들에게 연명의료를 중단할지 물었다. 아들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라서 수많은 환자를 봐왔지만, 중환자실에서 주렁주렁 생명줄을 매달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의식 없이 목숨만 유지하는 모친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이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그녀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어머니의 생명이 오간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쓰리게 하였으나 그는 모친을 조용히 보내드리기로 하였다.
젊은 주치의는 의욕이 넘쳤다. 다시 치료해보겠다며 연명의료 중단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상황에서 담당 의사의 요청을 거부할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들도 의사이므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의식 없는 삶이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삶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 운운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신앙인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했기에 살아있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일까. 지금 돌아가시면 자연적인 죽음이므로 신의 뜻에 합당한 것 아닌가. 인위적 생명 연장이야말로 반기독교적 행위 아닌가. 이성과 감정의 골에서 고민하였지만, 그는 주치의의 제안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그녀의 호흡기에는 한 뼘쯤 되는 관이 꽂혀 있다. 수면 마취는 필수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중환자실에서 회생의 기대도 없이 생명 유지 장치와 여러 가닥의 관을 몸에 꽂은 채 홀로 지내야 했다. 무의식 상태에서도 환자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이유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데, 그녀 또한 고통과 고독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겨우 연명하던 그녀의 상태가 호전된 듯싶었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의식은 없는 상태였다. 만약 호흡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된다면 더 오래 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구십오 세 고령이다. 예전처럼 데이케어센터에 다닐 수 없고, 의식 회복의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한다.
아들에게 또 다른 갈등이 찾아왔다. 이런 삶에 대해 의미 부여는 차치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면 아내와 자신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고통이 될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편 이런 자신이 불효자라는 생각에 이래저래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가 들어앉았다.
남들은 쉽사리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수일 만에 그녀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다시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어느 자식인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연명의료 중단에 쉽사리 동의하겠는가. 아들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모친에게 이승에서의 고통을 줄여주기로 하였다. 주치의는 연명의료를 중단했다. 아들은 평생 이성적 판단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앞서 젊은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여 모친을 살려보겠다고 하였을 때 거부하지 않은 자신이 후회되었다. 어차피 곧 가실 명을 며칠 잡아둔 들 그녀의 고통만 가중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연명의료 중단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동의하였다.
장례식장 앞에는 근조화환이 줄을 이었고, 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경황이 없던 상주는 슬플 겨를도 없었다. 이제 그녀의 육신이 재가 될 때가 왔다. 화장장 유리창 너머 화로로 모친이 안치된 관이 들어가며 문이 닫혔다. 그의 두 눈에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효자도 불효자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