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후미의 게걸스러운 갈매기 떼거리는
동 서해를 막론하고 그들의 유전자적 관습인가보다
뒤틀 거리는 바다의 몸부림에서 싱그러운 바다의 깊은 향을 물어 올려본다
아들 녀석과 꼬치어묵과 삶은 계란을 먹으며 갈매기의 새우깡 다툼을
구경하는 사이 배는 밤섬선착장에 밧줄을 묶는다.
삽시도, 항상 그렇듯 섬에 오면
누군가 목 빠지고 눈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인터넷 뒤져 괜찮아 보이는 펜션형 민박집을 예약했었다
내리고 타는 선착장이 다르고 여객선의 차량 선적량이 17대에
불과해 이산가족이 생길수도 있어 예매가 쉽지 않았다.
얼룩이나 누렁이의 멍멍거림 대신
짙붉은 벼슬을 늘어뜨리고 꼿꼿하게 기상이 당당한
토종 장닭이 길고 우렁차게 경계의 훼를 친다.
바다 쪽 맨 끝동에 짐을 풀고 커피를 끓인다.
주인아낙네, 투숙객들을 마당에 모아놓고 호미와 비닐봉투를
나눠준 뒤 트럭의 적재함에 주저앉혀 싣고는 꼬불꼬불 산모퉁이
털털거리고 돌아 멈춰선 곳 더덕채취 특별이벤트다
20여분 산을 올라 간단한 식별과 채취요령 교육을 마친 뒤
두 시간 뒤 모일 것을 당부하고 뿔뿔이 심마니 흉내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더듬거렸지만 이내 잎과 줄기가 눈에 익자
대략 3 ~ 7,8년생 더덕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한 시간 남짓 넋을 잃고 캐다보니 봉지에 가득하다
이 노릇, 해봄직하고 솔직히 대빵 재미있다
철석~ 쏴아~ 철석~소리 가까이 절벽이 나타나고
늙은 해송의 솔바람 사이로 신음하는 잔 물살 가르며
지친 목선 한척이 돌아온다.
일탈의 해방감인가
아니면 서서히 채워지는 외딴섬 정취의 설레임인가
집집마다 왁자지껄 객고풀기의 행티가 유별하다
옆집의 후한 개불과 해삼 큰 접시 선심에
섬과 어우려 이슬을 마신다. 아마 신선이 이렇게 사셨을 게다
산골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뜨고 산봉우리로 지고
서울사람에게 해는 빌딩에서 뜨고 빌딩 뒤로 지고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뜨고 바다로 진다
오늘의 해는 내일아침을 밝히려 수평선을 빨갛게 태운다.
둘째 날
조반을 서두른다.
마음은 진작에 방파제와 갯바위에 가있다
오늘은 낚시 하는 날, 조막만한 갯지렁이 한갑에 오천원
다까이 데스다 조황만 좋다면야.... 발걸음에 흥이 붙는다
세월을 낚는것이 낚시라는데, 던지면 곧바로 어신이 납신다
초고추장과 고추냉이간장이 준비되자 이슬잔이 직각으로 꺽이고
민박주인의 노련한 무술에 우럭과 놀래미의 시신이 즐비하다
마구 구겨진 바다 제살 상처내며 바위틈에 부딪친다.
녀석들 그러니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
자연산 활어 매운탕의 그 깊고 담백한 맛을
어찌 필설로 다 하리오, 배 두드리며 저녁을 포식했다
옆집 객들, 취기의 힘이 배가된 목청이 어둠을 흔든다
달빛은 산을 덮고 바다를 덮어도
사람 섞이는 소음과 파도는 재우지 못 한다
자정을 훌쩍 넘긴시간, 이 풍진세상 잠 못 이루어 뜨락에 달 밟고
턱 괴고 있는 옆집의 저 여인은 지사의 불면을 연습 하는가
밤새 부엉이 운다.
셋째 날
빵 굽고 스프 끓여 계란 지짐으로 아침을 때웠다
오늘은 섬을 일주 해볼 양으로 신발끈을 힘주어 묶었다
어촌 길 솔잎겹겹 양탄자 감촉인양 오솔길이 이쁘다
언제 부터인가 주인이 도시사람으로 바뀌었다는 횟집들을 지나
올망졸망 하늘색 함석지붕의 작은 마을도 지나
조금 높은곳에 이곳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럴듯한 횟집에
동백 뭐라하는 간판을 내 걸었다 역시 주인은 외지인
여기저기 자본의 도색이 눈에 띠지만 투자의 결손이 불 보듯 하다.
원목 계단을 내려가니 거물너머 해변이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 진배없다
모래 너 참 곱기도 하구나 아내 손잡고 길게 걸었다
동안, 당신! 來生 에서도 나랑 살 꺼지?
잊을 만하면 아내가 불쑥 물어왔던 난처한 질문에
항상 고개를 가로 저어왔던 겁 없는 이 남정네가
그만 ‘그리 함세’ 라고 답 해 올렸다
이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난 남정네의 대열에 기꺼이 합류했다.
따스한 햇볕 쏟아지는 앞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둘러앉았다
두툼한 목살과 버섯 더덕등을 굽고 묻어놓은 주인댁 김장독에서
막 꺼내온 김치를 쭉쭉 찢어 푸짐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기대에 부풀었던 해삼잡이, 장비는 밝은 랜턴과 0.6이상의 시력이다
길게 뻗은 갯바위 틈과 모래톱에 해삼은 붙어 있거나 움츠려 있었다
잡는다기보다 줍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밤골 해변에서는 아이들 주먹크기의 골뱅이가
심심찮게 널려있다 약 세 시간의 수확이 쏠쏠하다
해삼 80여 마리 골뱅이 40여개 모시조개 한 냄비
해삼으로 배불러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님들 의 미각에 끼칠 오만하고 방만한 풍미의 결례를 덜기위해
밤바다에서 막 건져온 해삼과 골뱅이 "맛" 얘기는 덮기로 한다.
보채는 파도 잠투정하는 바다
밤에는 더욱 거칠게 바다가 울고 나는 잠을 청 한다.
넷째 날
오전동안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캤다.
원주민의 숙련된 솜씨에 기가 죽어 저만치 떨어져야 했다
그래도 손이 여럿이니 한 바구니는 무난하다.
오후 내내 주변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섬만의 냄새를 섬만의 미학을 온몸으로 챙겨 담았다
눈 빠지고 목 빠지게 기다려주는 누군가도 늘 그랬듯이 없었다.
하긴 20대에 얻어진 역마살에 항상 속아 살아도 억울하지 않았으니,
동방삭이나 염라대왕도 손 못쓰고 속수무책 이라는
시간은 이렇듯 잘도 갔다 모두 다 챙겨 떠나고 텅 비어있는 펜션
주인아낙네와 이별을 나누고 예매해둔 물똥 선착장의 막배에 올랐다
저 만치 대천항의 이른 네온이 도시의 간판처럼 보인다.
적당히 탁한 공기 조금의 탐욕 주고받는 상처에 길들여진
회색도시 속으로 나도 총총히 섞인다.
2006 . 1 . 18 . 양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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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양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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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3
07.01.18 19:3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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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환상적인 여행 스케치네요. 너무 행복해 보이는 가족 모습입니다.
곱게 봐 주시니 황감할 따름입니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을 가득 담아 오셨으니 불국정토에도 조금 내려주시면 아니될까요?
녜! 당연히 나눠 드립지요. 지둘리십시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추억에 시간을 만드셨군요. 머리속에 그려보는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인생, 그거 어차피 연습없는 한편 드라마 이지요. 녹화장소가 섬 이였을뿐! 덧글 고맙습니다.
섬으로 잠시 도피하셨군요... 일상생활에서... 부럽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도피생활의 행복함이 글 곳곳에 묻어납니다... ^^*
내자와 궁작이 잘 맞아 자주 도피를 하곤 합니다. 게시판 곳곳의 왕성하고 역동적 활동을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