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53〉
■ 설야 雪夜 (김광균, 1914~1993)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1939년 시집 <와사등> (남만서점)
*그제 저녁부터는 날씨가 뚝 떨어져, 신년 들어 아주 추운 한겨울다운 날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전국 곳곳에 눈까지 뿌려서 출퇴근 길이나 장 보러 가는 일도 조심조심 다녀야 되겠습니다.
요즘처럼 춥고 긴 겨울밤에는 화롯가에서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구어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예전의 시골집 풍경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아울러 이런 밤과 잘 어울리는 이 詩도 생각나, 일전에 올렸던 것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 詩는 눈 오는 날 밤에 흰 눈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대해 서글픔과 애상에 젖어 있는 감회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잔잔하게 펼쳐지는 정경과 함께 호롱불이 시간에 따라 꺼져가는 표현 등 비유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느뇨“같은 예스런 표현으로 인해 우리를 애상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줍니다. 특히, 눈 내리는 것을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묘사해 가녀리고 신비스런 눈이 조용히 내리는 모습을 신선한 감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詩를 읽어본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구절은 몰라도 이 문구만은 명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여 다시 읽는다면 이러한 묘사는 정말 절묘하고 참신하지 않은지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