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휴게소서 잠시 쉬고 나니 찐 고구마 하나를 준다. 속이 노란 것이 호박 같다하여 일명 호박고구마다. 약간 질척해도 달착지근하니 먹을 만하다. 다시 새벽에 만들었다며 동그랑땡 같은 쑥떡 두 개를 준다. 여기에 청송사과라며 사과 두 쪽을 준다. 산행 길에 동행을 잘 만나 아침부터 잘 먹었다. 이웃을 배려하며 나눠 먹으려는 보다 넉넉한 마음씨다. 감사하다. 그 힘으로 오늘 산행은 거뜬할 것 같다. 길가에 축 늘어진 능수버들은 갓 새싹을 피운 것처럼 유난히 푸르르다. 약한 듯 강한 근성을 가졌다.
산행은 내장산 저수지 쪽에서 오른다. 저수지는 물이 말라 위쪽은 허옇게 바닥을 들어낸 것이 흉측스럽다. 오늘 산행에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암봉에 경관이 빼어난 서래봉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그 아래에는 유서 깊은 벽련사가 자리 잡고 있다. 서래약수는 더러워 마실 맘이 싹 가신다. 불출봉 망해봉을 돌아 연지봉 까치봉을 거쳐 정상인 신선봉(783m)에 오른다. 계속 원을 그리듯 연자봉에서 계곡에 있는 내장사로 하산이다. 비로소 늦었지만 단풍다운 단풍을 만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제 철이 있다.
內藏山엔 무엇을 그렇게 많이도 감추어 두었을까. 하나하나가 신비스럽네. 그중에도 단풍의 물결이 가장 으뜸이지 싶네. 도대체 일 년 내내 어디에 숨겼다가 한꺼번에 내놓는 것인지 어쩜 저렇게 고울까. 화끈해지는 얼굴에 물 들고 있나봐. 그렇다고 저만큼은 따라갈 수 없지. 누가 물감을 뿌려 그린 것일까. 원색의 물결 순수 그대로야. 아 좋다. 정말 아 좋다. 벌어진 입에 하늘이 들어오겠네. 가을하늘에 피어난 곱디고운 꽃이라 할까.
미쳤잖아
저토록 피를 쏟고도
생글생글
- <단풍>
오늘은 그냥 단풍만을 찾아보려네. 九折羊腸, 산세가 둘러친 아늑하고도 으슥한 곳에 가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단풍으로 시끌벅적하네. 黑心은 어둠으로 음흉하고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紅心은 밝음으로 설렘에 사랑이요 왕성한 혈기이네. 붉은 기운이 온통 들어찼으니 이것이 丹心 아니겠는가. 나무들 저마다 흥에 겨워 스스로를 물들였다 지우지 않는가. 보는 마음도 함께 동화되어 마음이 붉게 물들어가며 흥겨워 들떠서 있네.
불빛은 어두워야 더 빛을 내고 그 진가가 드러난다. 종일토록 옅은 안개에 덮였다. 아니 마지막 단풍을 모아 태우는 연기다. 좀은 눅눅한 날씨에도 단풍의 물결은 결코 기죽지 않고 활활 타오르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화상을 입었다는 이 없는 걸 보면 몸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태우고 있던 거야. 사랑의 불씨를 지피고 있던 거야. 그만큼 더 화려하게 마음에 꽂히는 거야. 만산홍엽이라고 가을의 축제로 떠남을 준비하고 비움을 자랑으로 삼는 저네들의 황홀한 의식을 보고 있는 거라네.
떨어진다고 꽃이 아니더냐. 떨어진다고 단풍이 아니더냐. 지나는 바람을 기다린 듯 우우우 단풍비가 내린다. 단풍 눈발이 날린다. 바닥에 꽃이불 펴듯 곱게 깔아놓았다. 새빨갛고 노오란 단풍잎이 메말라 오그라들거나 바삭거리고 이미 쏟아져 내렸는가하면 그 고운 물이 빠져 아쉬움 남긴다. 그나마 대웅전 앞에 단풍은 염불소리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지 다소 생기발랄한 싱싱함을 유지하여 보는 마음도 설렘에 달아오른다. 일주문 안에 있는 것들은 그래도 경내를 기웃거리는지 아직껏 미련처럼 남아있다.
내놓고 자랑하는 단풍 숲길도 점점 어설픈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도 인산인해 이뤄 벅적거린다. 꼬부라진 할머니 할아버지에 듬직한 아저씨 아주머니며 아이가 딸린 젊은 부부들 장난기 서린 선남선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이르기까지 평상심을 벗어나 경외감에 한껏 들뜬 마음들이다. 이렇게 여러 계층 사람들이 어울렸듯 지금 단풍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여기에 배낭을 둘러메고 오르내리는 등산객까지 합세하였으니 그냥 그 자체가 축제분위기로 장사꾼이 한 몫을 노려 더 분주함에 빠져 들어갔다.
- 2007. 11. 09. 文房
첫댓글 글씨 한개 안놓치고 다 읽고 갑니다. 자주 뵈니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산행하시고 좋은 날 되십시오.
실감나는글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즐겁고 보람된 날 되시며 즐거운 산행 하십시오.
글을 읽어가다보니 다시금 내장산 산행에 취한듯합니다. 앞자리에 앉아 같이 산행을한 사람입니다. 어쩜 글이 이리도 맛날수가 있을까요? 좋은글 감사히 읽어보았습니다. 건강하시고 종종 좋은 산행후기 부탁 드려봅니다...
그러셨군요. 감사드립니다. 함께 산행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미래 뿐 아니라 현재까지 두루두루 행복하시길 빕니다. 이제 향로봉으로 떠났다가 다음 주나 들려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