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안성 칠장사에서 김재일소장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리했습니다.
칠장사에 관한 것은 '불교문화유산 자료방'에 있는 자료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칠장사 문화해설>
-칠장사 입구 못 미쳐 ‘너와골’이라 명명된 집 앞으로 개울이 흐르는데 이곳이 옛날에는 ‘숲거리’라고 불렸다. 옛날에 인공조림을 한 지역이다. 칠장산을 뒤로 하고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만나는 곳이자 물이 흐르는 지점인데 이런 곳을 수구(水口)라고 한다. 수구는 안에서 밖으로 물이 빠져 나가는 곳인 동시에 밖에서 안으로 나쁜 기운들이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므로 이곳에 나무를 심어 물을 가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은 논농사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그 때 인공조림한 전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아름드리로 남아있다.
-칠장산은 자장율사가 칠장사를 창건할 때(536년) 아미산이라 불렸다. 중국의 아미산 이름을 빌려와 지은 이름이지만 칠장산의 지질과 모양에 잘 맞는다. 칠장산은 바위가 적고 흙이 두터운 육산(肉山)이고 능선이 미인의 눈썹처럼 부드럽다.
-칠장산은 개산(介山)으로도 불렸는데 한남금북정맥이 칠장산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칠장산에서 남쪽으로는 금강, 북쪽으로는 한강, 서쪽으로는 안성천이 갈라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절 입구 마을에 철당간이 온전히 남아있다. 풍수상 칠장사는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배에는 돛이 필요하므로 돛의 의미로 당간을 세웠을 것이다.
-절 입구 마을 이름이 산직(山直)이다. 산직은 산이나 묘를 지키는 이들로 산지기 마을임을 뜻한다. 이는 조선조 3대 세도가의 하나인 여흥 민씨네가 칠장사 땅을 빼앗아 문중의 묘지를 마련하고 산지기를 둔 것에 유래한다. 조선조 현종15년(1674년) 여흥 민씨네는 칠장사를 불태우고 땅을 빼앗아 칠장사의 사세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산직에는 현재 연밭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연밭은 연꽃을 보기위한 것과 연근을 구하기 위한 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산직 연밭은 연근을 얻기 위한 밭이다. 예전에는 논이었던 지역이다. 현재 연밭 연 줄기에는 왕우렁이가 붙여놓은 분홍색 알들이 마치 꽃처럼 보인다.
-현재 칠장사 주변 숲을 보면 칠장사 숲은 망가진 반면 민씨네 문중산은 그대로 보전되어 대비를 보이고 있다. 칠장사는 산 사람의 공간이고 문중산은 죽은 사람의 공간인데 칠장사의 숲은 망가지고 문중 숲은 보전되어 있음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환경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민씨 문중 숲은 원시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잘 보전되어 있다. 씨종자를 받을 소나무나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울창했으며 땅에는 풀들이 무릎까지 올라올 정도로 자라있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약간의 배흘림기둥에 겹처마 맞배지붕을 얹은 조선 중기 목조건물이다. 내부에는 3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원래 금당은 부처님을 한가운데 모셨다. 그러나 스님이나 불자들이 앉을 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부처님을 뒤로 밀었는데, 부처님과 인간이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기에 부처님 공간임을 표시하기 위해 불상 위에 닫집을 만들었다.
벽화는 벽에다 직접 그린 그림이고 탱화는 다른 곳에서 그린 후 끼워 맞춘 그림이다. 벽화는 세월이 흘러 훼손되면 묽은 황토흙으로 바탕을 바른 후 다시 그림을 그렸다. 벽화가 무너졌을 경우 보면 그림이 겹겹이 겹쳐져있음을 볼 수 있다. 무위사 벽화가 국보로 지정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웅전 뒤 가운데는 퇴색했지만 아름다운 꽃창살로 된 문이 있었고 괘불거는 지주목이 있었다.
-대웅전 오른편으로 안성 봉업사지에서 옮겨온 석불입상이 있었다. 석불입상은 기단, 불신, 광배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봉업사지 석불입상 광배에는 화불이 3개 있는데 화불은 홀수로 조성된다.
-대웅전 앞 어간계단 좌우에 괘불지주가 남아있다. 괘불지주는 괘불을 내걸기 위해 박아놓은 돌기둥이다.
-혜소국사비는 대웅전 뒤쪽 언덕에 있는데 칠장사의 중흥조인 혜소국사의 행장을 기록한 비이다. 고려문종 14년에 세워진 혜소국사비는 비신과 이수, 귀부가 따로따로 있다. 이수와 귀부는 화강암으로 된 반면 비신은 점판암으로 되어있어 비신이 무거운 이수를 지탱할 수가 없어 따로 따로 해체해 놓은 것이다. 비신의 옆면은 쌍룡의 비늘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천왕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품으로 나무보다는 크고 웅장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장점이 있다.
-부도전의 부도 옆면에 돋을새김 되어있는 것은 구름모양이다.
<칠장사의 생태>
-칠장사 입구 주차장에 있는 아름드리 이태리 포플러의 살랑거리는 잎들이 초여름 더위를 식혀주었고 나한전 뒤 소나무 모습이 특이했다.
혜소국사비로 오르는 길의 단풍나무와 주엽나무는 칠장사의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고 오래된 벚나무는 줄기 내부가 거의 없어도 내년에도 꽃을 피우겠지...
-원통전 뒤편으로 조릿대 숲이 있었는데 이것은 나무를 마구 베어버린 자리에 조릿대가 들어앉아 버린 것이다.
-칠장사의 유래에 연유된 옻나무를 비롯해, 호두나무, 헛개나무, 오갈피나무, 박쥐나무, 재래종 자두나무 등 흔치않은 나무들을 관찰했고
뽕나무의 오디, 벚나무의 버찌, 뜰보리수의 열매도 맛을 보았다.
-연잎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다니는 것은 연잎 위에 섬모들이 촘촘하게 있기 때문이다.
-고라니가 칡을 먹으며 우리를 위해 오랫동안 포즈를 잡아주었다.
-들풀로는 자주달개비, 사상자, 이삭여뀌, 줄딸기, 큰뱀무, 두메씀바귀, 땅두릅(독할), 쇠비름, 하수오, 물통이 등을 보았다.
첫댓글아, 참, 실수 ! 부도에 조각된 문양은 당초무늬의 변형이라고 설명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름 문양의 변형이었습니다. 머리 속에 입력된 것까지 정정해주세요. ㅎㅎ 나중에 당초문양을 보여줄께요- 그리고 연잎 부분에서 오타가 났군요. '선모'가 아니라 '섬모'입니다. 기록 하나 멋지게, 자세히 잘 해주셨습니다. 내가 학교 있을 때 보니 노트 정리를 잘 하는 학생일 수록 성적이 좋더라구요. ㅎㅎ
첫댓글 아, 참, 실수 ! 부도에 조각된 문양은 당초무늬의 변형이라고 설명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름 문양의 변형이었습니다. 머리 속에 입력된 것까지 정정해주세요. ㅎㅎ 나중에 당초문양을 보여줄께요- 그리고 연잎 부분에서 오타가 났군요. '선모'가 아니라 '섬모'입니다. 기록 하나 멋지게, 자세히 잘 해주셨습니다. 내가 학교 있을 때 보니 노트 정리를 잘 하는 학생일 수록 성적이 좋더라구요. ㅎㅎ
구름모양같다고 생각은 했었는데...머리 속도 정정하고 글도 수정했습니다.
상세한 글로 주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꾸벅~
연꽃님! 왕우렁이가 연꽃님 친구 하자고 찾아 왔군요, 우린 메모 하다가 연꽃님 밑고 중도 포기 했습니다. 역시 기대 이상입니다. 소장님 설명을 재방송 듣는것 같습니다. ㅎ ㅎ ㅎ
이렇게 정리를 하려면 정신차려 듣고 적고 기억해야 하는데.. 그러고는 다시 총정리를 하니 머잖아 박사님 되시겠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영수 샘이 보내준 도피안사 숲 모니터 보고서도 잘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 것과 취합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