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일리(可逸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법정리(里).
가일리(可逸里)는 가평군 설악면 15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가일1리, 가일2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 방일천이 흐르고 있고, 남쪽으로 유명산이 위치하고 있다. 유명산 북쪽 자락에 위치 한 가일리는 산지지형이다. 가일리의 서쪽으로는 중미산, 남쪽으로는 유명산·어비산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중앙을 지나는 가일천이 사기막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가일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평군 북상도면(北上道面) 가정리와 대일리 전체가 통합되어 양평군 설악면 가일리가 되었다.
-1942.10.1 양평군 설악면 전체가 가평군에 편입되면서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가 되었다.
가일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정리(可亭里)와 대일리(大逸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형성된 지명이다.
자연마을로는 아래가정, 가정, 대일, 윗가정 등이 있다. 가일리는 마을한복판에 아가위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나그네가 그 정자밑에서 쉬어가면서 가정(嘉亭)이라고 부를만하다고 한후 “가정”으로 써오다가 지금은 가정(可亭)으로 쉬운 글자로 바뀌어 쓰게되고, 지명도 가정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가정리가 되었다. 또한 윗가정 동남쪽에 대일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대일이란 숨어살기에 좋은 외딴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검사가 나면 큰 동네라고 하였는데 이 마을에서 이(李)검사가 나와 대일이라고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
가일리는 설악면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13.08㎢이다. 298가구, 518명[남 251명, 여 267명]이 거주하고 있다(2019.12.31 기준). 유명산의 유명계곡은 경관이 아름다워 가평팔경의 하나인 제8경 유명농계로 불리며, 어비계곡과 유명산자연휴양림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가일리(佳日里)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에 있는 리(里).
서쪽으로 북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 용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강의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벌말, 중간말, 안가일 등이 있다.벌말은 마을이 가일리 벌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간말은 가일리 중심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안가일은 가일리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가일리(佳日里)는 북한강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일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가일리(駕日里)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에 있는 법정리(里).
가일리(駕日里)는 경산시 압량읍의 중앙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가일리 한 개이다. 가일리의 동쪽은 자인면 남신리, 서쪽은 신대리, 남쪽은 당음리, 북쪽은 내리와 접한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동쪽으로 오목천이 흘러가고 있으며, 서쪽에는 저수지인 생글못(운문지)이 위치해 있다. 마을에는 평지 혹은 낮은 언덕 위에 밭이 많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각종 제조업 공장과 차고 등으로 활용되면서 북동부 일각만이 농경지로 이용된다.
가일리는 본래 자인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산군 압량면 가일동으로 개설되었다.
-1988년 군조례에 의해 가일동이 가일리로 개편되었다.
-1995.1.1 경산시·군 통합에 따라 경산시 압량면 가일리가 되었다.
-2020.1.1 압량읍으로 승격되어 경산시 압량읍 가일리로 개편되었다.
가일리는 남천 가에 위치한다 해서 개나리 혹은 개일로 불리다가 후에 가일로 개칭되었다. 마을 주위의 산 모양이 소의 멍에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갓골새는 가일 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이며, 샛밭은 밭이 많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일, 갓골새, 샛밭 마을, 강골, 아릿말 등이 있다. 가일 마을은 남천가에 위치한다 해서 개나리 또는 개일이라 불리다가 후에 가일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갓골새 마을은 가일 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이며, 샛밭 마을은 밭이 많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가일리의 면적은 1.2㎢이며, 인구는 149가구, 270명[남자 156명, 여자 114명, 외국인 제외]이다(2020.5.31 기준).
1413년(태종 13)경 순천 이씨의 선비 이선(李瑄)이 처음 개척했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 중에는 순천 이씨와 김해 김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농가는 이제 60가구가 채 되지 않으며 외지로 터를 옮긴 사람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