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는 미국의 교포작가 이민진이 쓴 소설이다.
남편의 근무지인 도쿄로 가면서 일본에 살고있는 조선인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모아 30여 년에 걸쳐 써 내려간 장편소설이다.
1930년대 부산 영도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조선인이 4 代를 이어가며
살아간 가족의 이야기이다.
편견과 차별을 받는 일본 사회 속에서 파친코 사업으로 성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자식들을 와세다 대학에 보내고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물로 키워내지만
명예로운 지위나 선택한 직업은 일본의 방해를 받는다.
결국, 돈 버는 직업은 파친코 사업 밖에 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 살아간다.
'파친코' 라면 범죄의 냄새가 나는 조선인 야쿠자들의 돈벌이로 일본인들은 인식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줄거리나 독후감의 후기 같은 걸 쓰고 싶지 않다.
다만 현실 속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제주 4.3 사건이 터지고 혼란한 시기에 외할아버지도 일본에 건너갔다.
아마도 밀항했을 것이다.
"소 잡는 놈이나 면서기 한다" 면서 큰소리 치고 떠났다.
(지금은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 됐지만.)
그 좋은 필체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代書나 해주면서 푼돈이나 받아
살아갔던 것 같다.
할머니는 눈 감기 전까지 "貧乏, 貧乏ったれ 가난뱅이" 라며 욕을 해댔다.
평생을 처, 자식 위해 돈 한푼 보낸 적 없고 소포 한번 보낸 적 없었으니.
할아버지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와 서너달을 골골하더니
그런대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일본의 "화장터 불 속에서 죽기 싫다" 고 하더니 소원대로 고향의 흙에 묻혔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마을이자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을 우연히 지나치게 됐다.
소학교 때, 우체부가 겉봉투에 쓰여진 글씨체를 유심히 보고는 감탄을 하며 건네 준
편지 주소는 日本 大阪 生野区였다.
그 다음 한자는 어려워 못 읽었는데 아마도 猪飼野 였을 것 같다.
창살 빠진 문 앞에서
몸에 맞지 않는 크고 허름한 양복을 입고 등 굽은 채 서 있는 사진을 보면
할아버지는 매우 곤궁하게 살았던 것 같다.
猪飼野 いかいの
猪는 いのしし멧돼지
飼는 かう 기르다
野는 の 들판
멧돼지를 기르는 들판.
豚 ぶた 돼지를 길렀을텐데 멧돼지라니 좀 이해가 안 됐다.
일본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조선인 집단촌.
마을 한 가운데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누각이 딱 서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코리아타운인 걸 알 수 있었다.
옛날에 백제인들이 도래해서 정착했다는 설도 있고
실제 오사카 여러 지역에 百済 くだら라는 지명이 있는 걸 보면 사실인 모양이다.
일본 천황도 '자신의 몸 속에는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 고 했으니.
이 마을에 유독 제주인들이 많이 사는 이유가 무얼까?
4.3 사건 후, 어수선하고 척박한 섬에서 가난을 견디지 못 한 젊은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친,인척의 알선으로 오사카 鶴橋와 猪飼野에 많이 몰려와 살았다고 한다.
집이랄 것도 없는 움막 한 쪽에 돼지를 키우고 짚을 깐 한 쪽에 누적떼기를 덮고
시장에서 주워온 배춧잎을 모아 소금에 절여 먹고 마늘냄새, 된장냄새 풍기며 살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으니 길가 시장통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 위해
여인네들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싸우니 원색적인 각 지방의 사투리가 저절로 튀여 나왔다.
한 집에 보통 자식들이 대여섯 되어 먹여살리려니 시장통은 매일 피터지게 싸우는
생존경쟁의 전쟁터였다.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제주 사투리는 얼마나 투박하고 억세였을까?
제주 여인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억척스러움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있으니.
한 겨울에도 무명천 한 겹으로 얼음의 바닷속을 헤집는 해녀들이 아닌가!
허름한 한복이나 몸빼를 입고 제대로 된 일본어도 아닌 말로
おいしい
おいしい
やすい
やすい를 외치며 김치를 만들어 팔고 생선을 팔고 마늘짱아지를 팔았다.
猪飼野의 지명대로 특히 정육점이 많았는데 싯뻘건 선지를 팔고 호르몬도 팔았다.
제주의 여인들은 토속신앙을 믿었고 할망당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
지금도 제주의 심방(무당) 들이 이카이노를 자주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보통 사나흘 걸리는 궂판이 벌어졌으니 온종일 징소리, 북소리, 요령 흔드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을까?
일본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흔히 말하는
うるさい 시끄럽다.
きたない 더럽다.
くさい 냄새난다. 등등
조선인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조선인은 잘 싸우고 모두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조선인의 피에는 분노와 화가 너무 많이 담겨있다"고도 한다.
허나 훈도시만 입고 문자도 없는 왜나라에
하얀 두루마기까지 의관을 갖쳐입고 文物을 깨우쳐 준 것이 조선이 아니였던가!
임진왜란 후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서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끔씩 찾아오는 일본 바이어에게 서툰 일본어로 말해준다.
"일본은 조선의 국보와 문화제를 훔쳐 간 나라" 이라고.
겉으론 수긍하는 듯 해 보이지만
일본인들의 本音는 알 수가 없으니...
지나간 역사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지배를 당한 나라와
지배 한 나라.
화해의 악수를 나누어도 감정은 영원히 평행선으로 갈 것이다.
몇 백년의 세월 속에 깊이 가라앉은 원한과 앙금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는 말로 임시방편책을 썼지만
계속 툭툭 불거져 나오는 외교마찰은 상처를 덮은 딱지를 떼어내는 것 처럼 고통스런 일이다.
요즘도 한,일간의 지소미아 문제로 시끄럽다.
이제는 피해국의 인식에서 벗어나서
당당하게 나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본전도 못 건지는 서투른 외교는 하지말고.
그런데, 소설로 시작된 이야기가
왜 정치로 끝나는지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ㅎ
첫댓글 항상 모든일은 정치로부터 시작이 되니까요.
두 나라의 차이는 끝까지 해결이 않날 겁니다.
일본도그렇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끝까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오직 실력으로 두 나라를 평정해야 말이 없을 겁니다.
오직 실력입니다. 실력 .
그렇지요.
실력을 쌓아야하는데.
뭐 좀 해 볼려하면 온갖 규제가 너무 많아요.
기업들도 현금 쌓아놓고
투자는 안하죠.
중국은 IT, AI 정보 산업에
지원을 해주어서
젊은 신흥재벌이 많이 생겼다는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공무원 되려고 고시촌에서
몇년씩 고생하고 있지요.
대단하십니다.어떻게~역사도박식하시고일어도~ 못하시는게 없는것같아요.부럽습니당~추운날씨에 건강하고행복하세요~~
책 읽은 흉내를 내는 거지요. ㅎ
일본어도 쓸 일이 없으니
다 까먹고
이제는 기초 단어도 몰라요.
만추의 계절,
즐겁게 보내세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재일교포의 삶과 여성서사를
담아낸 소설이군요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소설만 읽다가
다른 책도 한번 읽어 봤어요.
요즘은 ' 해녀들의 섬' 을 읽고있는데
매일 놀러만 다녀서 언제 다 읽을런지....
네.. 저도
읽었습니다만,
아우라 님이 쓰신
평전에 더 더욱 놀랐습니다.
그저 일본에서의,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여성의 생활사를 보고,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일본에서의 삶을 읽고나서.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니까..그 책을 최근에 읽었으니까..
그것이, 일어방에 들어온 80 프로의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감상문을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했고..
이렇게 훌륭한 평전을 읽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 드립니다.
특히 제주도에는 재일교포가 많지요.
1930년대는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척박했을까요?
우리 전후세대도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도 있었으니까요.
책을 읽으셨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주인공 선자가 아이를 임신했지만 첩이 되기 싫어
자립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점은
그 당시의 여자로서는 힘든 결정이였죠.
우리 일어 방에는 자랑스러운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십니다.이런 이야기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차한잔 하면서 대화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느껴집니다.
아!
괜스레 어깨가 무거워 집니다.^^
아마도 천일야화가 되겠지요. ㅎ
저는 잘 이해 못하는 너무나 좋은글이라 감히 댓글달기도 면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우라님의 해박한 지식에 손뼉 쳐드리고 싶어서리....ㅎㅎ
할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을 말하다보니...
일본에서 겪었던 일들도 많았고 그렇습니다.
제주에서도 아주 살기가 박했던 곳
제주 동쪽 조천읍 사람들이 일본에 많이 갔다고 합니다.
아주 생활력이 강한 마을입니다.
3. 1 만세 사건도 있었던 곳이죠.
그래서 일본경찰에 많이 붙잡혀 갔다고 하더군요.
여긴 하루종일 비 날씨입니다.
무리하지 않게
즐거운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아우라 제주에 가면 택시운전사들이 4.3 사건 이야기를 하며 치를 떨기에 듣긴했지만 집에오면 잊어버리지요
육지에 있는 우리는 관심도 없었던 일인데 참 끔찍한 일이더라구요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
아우라님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자꾸 글 쓰는 버릇도 해야
치매예방되겠죠.
파친코의 역사속엔 교토 고려 미술관을 세운 교포 2세의 정조문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궁핍한 세월을 이겨낸 의지의 한국인으로
서울에 간송 미술관이 있다면 일본에는 자비로 1700여점이나 구입해 살던 집을 고려미술관으로
사용 하고 있다니 대단 하지요
늦은밤 명료하게 쓴 아우라님 잘 읽고 갑니다
그렇군요.
奈良県에 있는 유명한
東大寺, 法隆寺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절이 많은데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제 때 빼앗긴 문화제를 되찾아 와야 하는데
너무나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글 참 잘쓰시네요. 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배울거야 있겠습니까만
직접 가 본 곳이라
기억이 나더라고요.
전에는 조총련이 힘깨나 썼다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여물지 못한 글을 읽어 주시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겨울비가 내립니다.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