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분
- 이종문
시(詩) 벗 이정환이 어느 날 나를 보고 노벨 문학상을 타면 국밥을 사라기에,
상금을 싹둑 잘라서 반을 주겠다고 했네.
아 글쎄 그랬더니 그가 손사래를 치며 국밥 한 그릇 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네.
그 대신 시조상(時調賞) 타면 절반을 잘라 주고.
정말 도분이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 노벨 문학상을 기어이 타야겠네.
상금을 싹둑 잘라서 절반을 나눠 주게……
-『유심』(2010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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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슨 상을 타면 한 턱 쏘라는 얘기들을 한다.
여기서 시 벗 이정환은 시인에게 노벨상을 타면 국밥 한 그릇이면 족하고,
대신 시조상을 타면 절반을 잘라달라고 제의한다.
얼핏 많이 봐주는 생색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단단히 챙기겠노라는 으름장이다.
물론 농담이겠는데 그 농담에도 뭔가 불안한(?) 낌새를 느꼈는지
시인은 ‘정말 도분이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 노벨문학상 기어이 타서
‘상금 싹둑 잘라서 반을 주겠다’는 역 제의를 한다.
이 농담 따먹기 대화로 미뤄보면 시인이 올해 펴낸 시집 <정말 꿈틀, 하지 뭐니>가
좋은 반응을 얻어 무슨 시조상일런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시조상에 근접해 있다는 반증처럼 들린다.
왠지 시조상 하나는 탈 것 같은 예감이고,
그 상의 상금을 거들내면서 까지 과도한 턱을 낼 수는 없다는 방어 개념의 복심도 얼핏 엿보인다.
그런데 정말 ‘도분’이 나는 건
여직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나 배출하지 못 했다는 사실에 있다.
도분은 '화'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지만
그냥 화로 직역하기 보다는 ‘성질’이란 의미를 함께 버무려 읽는 게 옳지 싶다.
예를 들면 ‘그 자석 택도 없는 얘기를 자꾸 해쌓는데 어찌나 도분이 나던지’
이때는 화가 난다 라기 보다는 성질이 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지금껏 노벨상 한번 타지 못한 사실을 두고도 화를 낼 성질의 것이 아니라
성질이 좀 나고 오기가 발동한다는 뜻이리라.
8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올해도 고배를 마시고만 고은 시인을 생각하면
이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고 시인은 노벨문학상 발표 후 한 측근에게
“한국에서 시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걸 보여주는 것은 고은 시인만의 책무이고 오기여서는 안 될 것이다.
고은 시인이 한국문학의 노벨상 도전사에서 가장 목표에 근접한 인물이고
앞으로도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 시의 힘을 보여줄 시인이 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진정한 문학정신이 살아 꿈틀대는 작품을 쓰고 세계로 바르게 번역해 소개한다면
정말 노벨문학상이 우리 코앞에서 크게 꿈틀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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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