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밑 열수구에서 찾은
초고온성 미생물의 착한 변신!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생명체, 미생물! 미생물은 지구상의 어디에서나 발견되며, 깊은 바다에 살고 있는 것들도 많다. 심지어 섭씨 400도나 되는 뜨거운 물을 분출하는 심해 열수구에서 생존하는 극한 미생물도 있다. ‘바다 밑의 오아시스’라고도 불리는 열수구는 심해저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내부의 마그마에 의해 뜨거워진 물이 분출되는 곳이다.
2002년, 해양탐사선 온누리호를 이용해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근처 1650미터 깊이의 열수구에서 해양과기원 소속 과학자들이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시료를 채집하였다. 연구 팀은 곧바로 배 위에서 미생물을 분리해 배양을 시도하고 마침내 2개의 배양 용기에서 미생물이 자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당시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겼던 심해 열수구 생물 탐사와 미생물 분리에 성공한 것이다. 분리된 미생물 가운데 하나는 기존의 종들과는 차이가 있는 신규 종으로 알려졌고, 연구 팀은 이 종에 온누리호의 이름을 따서 서모코커스 온누리누스(Thermococcus onnurineus) NA1이라 명명하였다.
NA1은 ‘새로운 고균(Novel Archaea)’이란 뜻이다. NA1은 섭씨 60~90도의 높은 온도에서 성장이 가능하다는 특징만으로도 연구 팀의 관심을 끌었다. 열에 견디는 효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팀은 NA1의 일부 유전자를 이용해 ‘DNA 중합 효소’를 개발했다. DNA 중합 효소란 유전자 소량을 대량으로 늘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로, DNA를 복제하기 전에 온도를 올리는 단계가 있는데 이때 DNA 중합 효소가 고온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며 특정 DNA조각을 대량으로 복제한다고 한다.
해양과기원은 이와 관련한 원천 기술을 씨젠, 바이오니아 등 국내 생명공학 전문 기업들에 기술이전하여 실용화에도 성공했다. 현재 이 기업들은 해당 기술을 바탕으로 코로나 19 진단 키트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거나 치료 물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 심해에서 서식하던 미생물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져 오히려 인간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원천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수소 생산으로
미래 친환경 에너지 사회를 앞당기다!
NA1이 연구 팀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다양한 수소화 효소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소화 효소는 수소 분자의 산화와 환원을 촉매하는 효소로, 미생물이 수소를 생산하거나 소모하는 기능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에너지원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고, 연소 시 환경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으며 연료전지를 이용하여 전기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용 후에는 다시 물로 재순환되는 환경 친화적 특성까지 갖추고 있어 미래 에너지원으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최근에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우리나라와 일본 등의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출시되면서 수소에너지, 수소경제 사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연구 팀은 NA1이 일산화탄소를 수소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알아내고 경제성 측면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하여 바이오수소를 대량생산하고자 하였다. 곧 야생형 NA1을 일산화탄소가 포함된 혼합 가스에 장기간 적응시켜 수소 생산성이 높은 미생물로 개량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기성 폐기물이나 일산화탄소를 포함하는 산업체 부생 가스를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가진 바이오수소 생산 실증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2016년 당진제철소에서 부생 가스를 이용해 전 세계 최초로 바이오수소 연속 생산 실증을 시도, 바이오생산 기술이 산업현장에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제 해양과기원의 해양 바이오수소 생산 연구는 기술 실용화에 필수적인 공정설계 방식을 구축함으로써 ‘실용화’라는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
NA1 연구를 주도해온 이 책의 저자들은 해양과기원의 해양 바이오수소 연구가 잠재력을 가진 심해 미생물과 생명공학 기술, 열정으로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의 합작품임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연구 과정을 통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생명체가 지닌 잠재력이 구체화되어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공저자인 미생물 생명공학자이자 바이오수소 분야 전문가인 강성균 박사는 “해양 심해 미생물의 바이오수소 생산 연구는 우리나라 해양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기반으로 이룬 성과이기에 국내 원천 기술 개발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발견한 해양 미생물의 생명현상은 극히 일부분일 뿐, 어딘가에 있을 유용한 미생물을 발견하고 활용하기 위해 생명의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여 년 전, 깊은 바다 밑 열수구에서 찾은 미생물 NA1을 개량해 ‘초능력자’로 활용하고 있는 해양과기원 과학자들의 지식과 경험이 심해 미생물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진 미래의 해양 과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