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 “사회에 나가시게 되면 노력에 비해 굉장히 많은 편견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편견들을 여러분들은 실력으로써 온 몸으로 깨부수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 이야기만큼은 꼭 하고 가고 싶었습니다.” - 손석희, 자신의 모교인 국민대 특강에서 -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생 선배가 있다. 그가 마이크 앞에서 경험한 한국의 20여년의 변화, 그리고 그가 바꾼 세상에 대한 이야기.
송승환 : 배우 겸 뮤지컬 제작자. 손석희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방송반에서 활동했다. 중학교 시절 기자였던 친구 삼촌이 기사 때문에 “어디 가서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를 듣고 기자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그는 방송반 활동으로 방송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그는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에 “이 학생은 똥고집”이라고 적혔을 만큼 고집이 있었고, 법(法)에 대해 “물 수(水)변에 갈 거(去), 물이 흐르는 이치대로 양심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곧 법과 같다”고 가르친 부친의 교육을 받으며 훗날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고 다짐하는 언론인의 자세를 익힌다. 그리고, 적성에 안 맞는 모 일간지 총무부 사원을 6개월 지낸 뒤, “방송 잘 할 것 같다”는 주변의 권유에 MBC에 응시해 합격한다.
정찬형 : MBC 라디오 PD.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하 <시선집중>)의 첫 연출자였고, 1992년 정부의 방송관련법 개악에 항의한 MBC노조 파업과 관련해 손석희와 함께 구속되기도 했다. 손석희는 입사 후 방송에서 정부 정책에 반하는 내용들이 줄줄이 편집되는 현실에 “허무주의적”으로 변했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들어간 노조 활동을 통해 허무주의로는 답이 나올 수 없는 선택의 길에 놓였다.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그는 파업을 지지하는 리본을 달 것인가를 고민하다 첫 날에는 어정쩡하게 양복 안 와이셔츠에 달았고, 둘째 날에는 전 날의 행동에 부끄러워하며 재킷에 리본을 달았다. 그는 노조 활동을 계기로 “사람이 사는 데에는 아무리 작더라도 전기가 있고, 때로는 어느 정도 고통이나 희생이 따른다는 말을 이제 믿는다”며, ‘양심이 흐르는대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한다. 그의 에세이 <풀종다리의 노래>는 방송 현실과 양심 사이에서 조금씩 방송을 바꾸려 했던 사람들의 담담한 기록이기도 하다.
허수경 : 방송인. 파업 뒤 손석희의 첫 복귀 프로그램인 MBC <선택! 토요일이 좋다>에서 그와 함께 출연했다. 허수경은 자신의 책에서 개인사로 힘들 때 손석희 부부가 많은 위안을 줬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당시 손석희는 뉴스가 아닌 주부 대상 정보 프로그램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회사원’이던 그는 <퀴즈 명화여행>, <장학 퀴즈>등을 진행했다. 유학 뒤 맡은 첫 프로그램도 “나를 아는 주위에선 저 친구가 어울리지도 않는 걸 하고 있다고 했다”고한 교양 정보 프로그램 <와 e-멋진세상>. 하지만 <와 e-멋진세상>은 첫 회에 네덜란드의 동성애 부부를 다루는 등 시대를 앞선 아이템 선정 등으로 시청자단체로부터 상을 받았다. 현실은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좋은 방송’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 또한 그는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진행 도중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읽고, 한 아침 프로그램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가 ‘썰렁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故 정은임 : 전 MBC 아나운서. 1990년대 초반 MBC 라디오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이하 <정영음>)을 진행했다. 당시 <정영음>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평론 코너를 비롯, 왕가위, 마이클 무어 등 당시 잘 소개되지 않던 감독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다뤘고, 오프닝 멘트에서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그랬던 故 정은임이 손석희와 노조 활동을 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 듯. 손석희는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투데이>에 ‘정은임의 영화산책’을 맡기기도 했다. ‘인생의 영화’로 “영화 취향이 매우 천박해 도무지 고상 떠는 영화는 보지 못해” 제목에 속아 봤다는 <알파치노의 뜨거운 오후>를 꼽는 손석희와 취향은 달랐지만, 자기 분야에서 현실보다 좀 더 앞선 방송을 꿈꾼 사람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듯. 또한 손석희는 레드 제플린, 퀸 등을 좋아하는 록 마니아로 이런 경험 때문인지 방송사 앞에서 인기 가수를 기다리는 소녀 팬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그의 프로그램에서 ‘디워 논란’ 등 다양한 문화적 이슈를 선정하는 건 이런 자세 때문일지도.
신현숙 : 손석희의 아내이자 전 MBC 아나운서. 손석희는 <풀종다리의 노래> 곳곳에 자신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신혼여행에 돌아온 뒤 가난한 남편이 내놓은 ‘텅 빈 통장’을 보고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살림을 꾸려 나갔다. 또한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10년 넘게 입고, 여전히 MBC 구내 이발관만 이용하는 등 “남자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지론 아닌 지론을 갖고 있는 그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파업 등 손석희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언제나 지지했다. “선택은 등가”이기 때문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든 그 선택을 최고로 만들고 증명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가 노조활동과 유학 등을 거침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한국의 방송은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그가 여성이나 10대들에게 “세상을 스스로 바꾸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경험의 산물일 듯. 그리고, 그의 선택에는 아내의 내조가 있었다.
김영삼 : 전 대통령. <시선집중>의 첫 회 출연자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인간도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시선집중>의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 “내게 왜 인터뷰 하냐고 물으면, 나는 정보를 위해서 한다고 답하고 싶다. 그래서 실체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시선집중>을 통해 그 말을 실천했다. <시선집중>은 거대한 정치적 이슈부터 인터넷의 작은 논란까지 온갖 소재를 다뤘고, 그것을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했다. 그래서 <시선집중>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대중에게 시사를 밀착시켰고, 이를 통해 가장 오래된 매체였던 라디오는 가장 빠르고 생생하게 세상사를 전달하는 매체로 재탄생했다.
유시민 : 전 국회의원. 손석희 이전 <100분 토론>의 진행자였고, <100분 토론>의 단골 패널이었다. 손석희가 마지막으로 진행한 <100분 토론>에서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100분 토론>은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등 거대한 이슈부터 간통죄 폐지에 이르는 작은 이슈까지 대립이 뚜렷한 문제들을 이슈로 찬 반간의 격렬한 토론을 그대로 보여줬다. 유시민, 진중권, 신해철 등 소신이 뚜렷한 패널들이 <100분 토론>을 통해 스타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100분 토론>은 대부분 어떤 명확한 합의점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손석희는 <100분 토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설득하는 토론이 아니라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한, 자기 집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위한 토론” 대신 첨예하게 대립한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100분 토론>에서 종종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던 주성영 의원이 손석희의 <100분 토론> 하차를 반대한데는 이유가 있다.
故 노무현 : 전 대통령. 손석희는 그의 재임 시절 1:1 토론을 한 바 있다. 손석희는 고인의 재임 시절 이집트 파병 관련 칼럼을 통해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간과하고 고민의 흔적이 없이 너무 일찍 예스라고 말해버렸다”는 의견을 개진한바 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가로서 대중을 끌고 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면, 그는 그것이 대중과의 합의점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했다. 이는 손석희가 <100분 토론>과 <시선집중>을 끌고 가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시사 프로그램과 달리 첨예한 이슈를 꺼내 놓지만, 언제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하며 양측의 말을 들었다. 그는 ‘균형감’을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고, 방송에서 진행자보다는 진행자의 뉴스가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공정한 방송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는 어떤 이슈든 ‘공평’하게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됐고, 누구에게든 가감 없이 질문하는 손석희의 인터뷰는 그의 퍼스낼리티가 됐다. 권위주의의 자리에 토론이, 엘리트 대신 대중의 이슈가 방송 안에 들어올 때, 손석희의 시대가 시작됐다.
신해철 : 뮤지션. <100분 토론>에서 각종 액세서리와 문신 등을 하고 학교 체벌과 간통죄 등에 대한 진보적인 의견을 내놓아 화제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신해철의 등장은 <100분 토론>은 물론 손석희의 방송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는 관련 이슈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다하지 않았고, 대중이 궁금해 하는 이슈는 무엇이든 다뤘다. 또한 그는 얼마 전 ‘루저 논란’에서 “나도 루저”라며 농담을 던진 뒤 그것을 편집하지 않은 제작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주류 못지않게 비주류의 의견도 반영하는 것”을 ‘좋은 방송’이라 생각하는 그는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는 않지만 대중들은 알고 싶어 하는 소재를 채택해, 그것을 대중의 언어와 감각으로 풀어낸다. 물론 여기에는 ‘균형감’을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언론관이 바탕을 이룬다. ‘공평무사’의 원칙하에 유쾌한 엔터테이너의 재미를 갖춘 언론인. 그것이 손석희가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동시에 얻는 이유 아닐까.
엄기영 : MBC 사장. 손석희의 MBC 선배이기도 하다. 엄기영은 손석희의 <100분 토론> 마지막 날 오전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비록 “출연료가 많다”는 이상한 이유로 손석희를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손석희는 MBC를 통해 언론인으로서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미디어 비평>, <100분 토론>, <시선집중> 등도 “공영방송으로서 당연히 구현해야 하는 이념적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고, “조직이 개인을 통제 조정하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MBC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손석희를 비롯해 지난 20여 년 전부터 ‘공정방송’을 위해 힘쓴 사람들이 함께 이뤄놓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손석희는 후배들에게 “공영방송 노조는 자본주의적 경쟁과 효율 지상주의에 일정부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방송’이 얼마만큼 이뤄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그가 ‘좋은 방송’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주류 언론 속에서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성공까지 한 언론인을 얻었다. 손석희가 정말로 해낸 변화는, 우리 사회를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바꿔 놨다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가 더 많은 손석희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은 지금부터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