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동백꽃 지다
박숙경
온 봄 내 홀딱 벗고도 더 벗을 게 남았는지
산길 경사만큼 목청을 높여가는
검은등뻐꾸기를 나무라는
이름 모를 새의 한 마디
지지배야
지지배야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동문 올라가는 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
뒷모습이 더 고운 쪽동백꽃의 하얀 능청
―시집 『날아라 캥거루』(문학의 전당,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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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15년차, 처음 산을 가기 시작하면서 3년 정도는 혼자 가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산을 혼자서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서 유유자적 가노라면 바람소리 새소리가 더 깊은 곳에서 울려오고 풀과 나무와 바위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들과 더 친밀해지는 것을 느낀다. 통성명까지 하고 나면 나중에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날도 혼자서 북한산의 한 지능선을 오르고 있었다. 비온 뒤라서 그런지 산철쭉의 자태가 더욱 고왔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해후상봉한 것처럼 기쁘고 설레었다. 청초한 모습에 반해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는데 고요한 적막을 깨고 애처로운 울음의 새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무슨 새일까...
물어물어 알아보았더니 가장 흔하게 알려진 별명이 홀딱벗고 새라는 것이다. 다른 별명도 많다. 서방 죽고 로 들린다는 한 등산객은 과부새라고 불렀다. 가산산성 등산길에서 이 새를 만난 시인은 이 새를 익히 알고 있었다. 다른 별명보다 홀딱벗고 가 먼저 연상이 된 모양이다. 다소 민망하기까지 한 이 새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이 ‘지지배야 지지배야‘ 나무라고 싶었던 모양이다. 순결해 보이는 쪽동백의 또 다른 새로운 의성어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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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계절에 생각나는 시...
지난 일요일 산행 길 내내 뻐꾸기가 따라다니던데
검은등뻐꾸기는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더군요.
감사합니다
요즘엔 듣기 어려워요 그 소리...
다음 답사 산행 할 때 찾아 볼게요. 홀딱벗고 울고 있는지
검은등뻐꾸기의 울음
임보
네 마디로 우는 저 울음소리
사람의 음성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지 않아
문자로 옮길 수가 없다
흔히
“홀딱 벗고, 홀딱 벗고”운다 하지만
어찌 들으면
“첫차 타고, 막차 타고”하는 것도 같고
“언잖다고, 괜찮다고”하는 것도 같다
또 어떤 이는
“혼자 살꼬, 둘이 살꼬” 한다고도 하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한다고도 한다
듣는 이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만어를 품고 있는 저 무궁설법
누가 따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시집『검은등뻐꾸기의 울음』(시학,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