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욜로족 고전 15 : 32~ 34 17/11/05
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현대는 새로운 기계가 많이 발명되니 새로운 단어도 많이 만들어고 있다.
로봇, 컴퓨터,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최근에 새롭게 유행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란 요상한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은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란 뜻이다.
욜로족-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니 미래는 걱정하거나 준비하지 말고
지금 현재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삶의 태도를 가진 자들을 가리킨다.
2011년 캐나다 레퍼의 가사에 등장한 것인데 요즘 우리나라에도 유행하고 있다.
미국의 유행가인 팝송이나 락음악은 그동안 마약이나 자살 같은 것을 충동질하는 가사가 많았다.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을 망치려고 드는 것 같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니 마음껏 즐겨라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니 남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라.
요즘은 누구에게 얽매이기 싫어서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자신의 젊음과 돈을 자신의 자식을 위해서라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것이다.
욜로족은 그 말에 공감하여 사표내고 세계일주,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사는 것, 전셋집꾸미기가 있다.
비록 내년이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될지라도 그 집에 사는
동안 깔끔하고 멋있게 인테리어를 하고 살자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내가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모르는 세상인데 십년 후 삼십 년 후를 위하여
지금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 입지 않고 절약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김주혁이란 영화배우가 결혼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는 것을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 말이 맞네” 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삶의 자세는 동물적이다.
동물은 내일이 없다. 내년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걱정이 없다.
오직 지금 현재 먹을 것이 있고 안전하면 만사 오케이다.
인간이 동물처럼 살아간다면 그 인생의 말년의 삶의 질은 낮을 수밖에 없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가 있다.
개미는 뜨거운 한 여름에도 먹을 것을 열심히 나른다.
그러나 베짱이는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산다.
그러면서 개미들을 비웃을 것이다. 뭘 저렇게 힘들게 살아.
적당하게 놀면서 여유롭게 살아야지. 베짱이는 겨울이 있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당장 즐겁게 살면 된다는 식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풀이 말라 죽고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다.
베짱이는 춥고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개미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러 갔다는 내용이다.
사람에겐 내년이 있고 십년 후가 있고 오십년 후가 있다.
그런데 베짱이처럼 지금 당장 즐겁고 신나게 사는 쪽만 선택하여 산다면
늙었을 때는 겨울을 만난 베짱이처럼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욜로란 말이 없을 때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직 오늘 당장 지금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일이 없는 학생들은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오직 지금 현재 즐거우면 된다는 식으로 학창시절을 낭비하며 지낸다.
게임에 빠지거나 일찍부터 이성친구랑 사귀면서 술을 마시고 방황하며 지내는 학생들은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를 가다보면 가끔 남녀학생들이 그 새벽까지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어른들 가운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과 노름과 성적인 방탕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마음속에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아직은 욜로족처럼 사는 사람들은 많지는 않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며 산다.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도들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도 불신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여 잘 먹고 잘 살자주의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외국에 유학을 가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오면 가문의 영광이다.
대학교 교수가 되면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난 하버드대학교 박사야! 아주 당당할 것이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을 우습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매진하여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당에 들어갔다.
주님께서 “넌 뭐하다가 왔니?” 그러자 그 박사는 “저요 미국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수하다가 왔습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겠죠.
그러면 주님은 “그랬니? 그래서?”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걸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재벌이 되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죽어서 천당에 간 자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는 오직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서 성공한 후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또 최선을 다하며 살 것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할 것이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살아갔겠지요.
그러다 어느 날 천당에 가서 주님과 회계할 때는 넌 무엇하다가 왔냐라고
주님이 물으실 때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님을 위해서 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었느냐, 얼마나 벌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 보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어릴 때는 야외에 나가서 놀았다
마을의 공터에서 자치기, 공놀이, 제기차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여자어린이들은 고무줄놀이. 엄마놀이.
땅따먹기 놀이를 열심히 하다가도 저녁식사시간이 되어 엄마가 이름을 부르면 예하고
다 버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 넓게 딴 땅이 아깝다고 미련을 가지는 애들은 한 명도 없었다.
또 어릴 때 딱지를 많이 딴 초등학생이 그 딱지를 잘 보관하며
난 딱지치기 왕이었다라고 자식에게 자랑하는 아버지는 한 명도 없다.
영원의 관점에서 이 세상에 출세하고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성도는
땅따먹기 많이 한 아이와 같다. 딱지를 많이 딴 애들과 다름이 없다.
천당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도들은 불신자들처럼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면 안 된다.
미래가 있을 뿐 아니라 내세가 있음을 날마다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
천당으로 이민 갈 성도들 가운데도 욜로족처럼 사는 성도가 많이 있다.
성도들은 욜로족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는다. 미래가 있는 것을 알고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하고 저축하며 알뜰하게 산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면서도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지 않는 성도들은 영적인 욜로족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불신자들처럼 미래만 준비하고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니 영적인 욜로족이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오직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니 현재의 만족만을 위해 살고
남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라고 선동하는 것은 마귀적이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8
공적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3~ 15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 아니다. 내세가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곳은 천당과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상급의 차이가 있음을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겨울이 있는 줄도 모르던 베짱이와 같이 내세가 있는 줄 모르던 불신자들은
내세에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
천당에서는 빈부의 차이는 없지만 상급의 차이가 있음을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세가 분명히 있음을 믿는 성도들은 욜로족과 반대로 살아야 한다.
미래만 대비하며 사는 불신자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인생의 미래도 대비해야 하지만, 내세에서 받은 상급심판 때에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빌 3:17
어떤 것을 본 받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이렇게 산 바울이므로 그는 인생의 말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7,8
인생의 갈 길을 다 간 후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성공한 인생이다.
그는 추운 겨울이 오는데도 따뜻하게 입을 옷 한 벌이 없고, 그를 따르고 섬기는 사람은
의사 누가 밖에 없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그는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산 위대한 분이다.
하늘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을 분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결코 욜로족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욜로족처럼 살아서도 안 됩니다.
천당에서 베짱이처럼 부끄럽고 후회가 되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욜로족의 가르침과 반대로
주님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며 삽시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면서 또한 내세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며 삽시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 남는 인생이고 참으로 성공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