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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을 쓴 저자 줄리 세디비는 언어심리학자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로 가족 모두가 이주했다. 인간이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유년기에 이렇듯 다채로운 언어를 온몸으로 통과해낸 저자는 운명처럼 언어심리학에 이끌렸다. 그중에서도 체코어는 그녀의 모국어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캐나다에 정착한 이후 ‘주류 언어’인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비주류 언어’이자 ‘이민자의 언어’인 체코어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고,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체코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그녀의 아버지가 고향 땅에서 숨을 거둔 후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은 그리하여 모국어 상실의 메커니즘과 언어 간의 권력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수없이 스러져간 소수민족들의 ‘약한 언어’ 위로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애도 일기에 다름 아니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언어심리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답한다. 모국어와 제2언어가 자아를 사이좋게 나눠 가질까? 왜 성인은 어린 아이보다 외국어 학습에 더딘가? 만약 이중언어를 사용한다면 자아도 두 개로 나뉘게 될까? 혹시, 우리의 머릿속에서 두 언어가 주인공 자리를 두고 다투는 건 아닐까? 그러다 더 힘이 센 언어가 더 약한 언어를 밀어내고, 그것도 아주 영영 밀어내고, 한 가지 언어로만 말하게 될 수도 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가져오는 사례들은 무척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언뜻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언어심리의 기제를 에세이스트의 목소리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풀어낸다는 것이다. 독자는 모국어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결국 그것을 되찾고 평온에 이르는 저자의 삶 한 조각을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그래서 책은 크게 죽음-꿈-이중성-갈등-회복-고향으로 구성되며, 각 부에서 그와 관련한 저자의 이야기 및 세계 각지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만나게 된다.
👩🏫 저자 소개
줄리 세다비
학제를 넘나들며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작가. 체코에서 태어나 두 살까지 그곳에서 머물다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옮겨 다닌 후 캐나다 몬트리올에 정착하여 성장기를 보냈다. 체코어, 프랑스어, 영어 등 다채로운 언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언어, 그리고 언어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끼치는 영향과 심리 기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브라운대학교 인지언어학과에서 12년간 교수를 지내며 언어와 정신에 관한 논문을 삼십여 편을 발표했다. 지금은 캘거리대학교 부교수로 일하며 언어학과 심리학을 가르치고, 특히 대중을 위한 강연과 저서 집필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의 언어: 언어심리학 입문(Language in Mind: An Introduction to Psycholinguistics)』(2014), 『언어에 매혹당하다: 광고주가 말하는 방식, 그리고 이것이 당신에 대해 말해주는 것(Sold on Language: How Advertisers Talk to You and What This Says About You)』(2011, 공저) 등이 있다. 캐나다 캘거리에 살며 취미로 스키를 타거나 로키산맥을 등반하곤 한다.
📜 목차
1장. 죽음
아버지와 모국어 │ 살아 있는 언어의 죽음 │ 모국어 상실의 메커니즘 │ 독일어를 잃어버린 독일계 유대인 │ 소외당하는 소수 언어 │ 영어와 맞바꾸다 │ 모국어를 애도하기 │ 경쟁하는 언어 │ 언어를 멸종시키려면 │ 바이러스와 언어 │ 무너지는 문법: 쇼쇼니어 │ 기로에 서 있는 언어학 │ 세계를 품고 있는 단어 │ 마치 아이가 죽는 기분 │ 이중언어의 가능성
2장. 꿈
성공은 영어로 말한다 │ 모국어를 잃고 얻는 것 │ 언어의 빈부격차 │ 천진한 차별 │ 언어적 편견, 사회를 구분짓다 │ 언어의 우열: 퀘벡 프랑스어 │ 하와이 크리올어와 흑인토착영어 │ 언어의 권력은 이양되는가 │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지니는 이민자들
3장. 이중성
자아 분리 클럽 │ 언어에 따라 성격이 바뀐다고? │ 언어에도 영혼이 있을까 │ 언어가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 잃어버린 모국어를 찾아서 │ 제2언어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 틈새와 하이픈의 유혹
4장. 갈등
왜 저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는 거야? │ 여러 음이 공존하는 마음 │ 새로운 언어가 모국어를 지배하는 방식 │ 언어의 탄력성 │ 그래서, 이중언어에도 장점이 있는가 │ 언어와 효용의 문제 │ 다양성의 축복과 두려움 │ 두 커뮤니티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 트랜스랭귀지, 이상적인 학습법 │ 불협화음의 미학
5장. 회복
다시 만난 체코어 │ 우리의 뇌가 언어를 기억하는 방식 │ 아이와 성인의 차이 │ 잃어버린 모국어를 되찾을 수 있을까? │ 언어 둥지, 우리가 회복하기 위하여 │ 단순한 언어와 복잡한 언어 │ 역사를 관통해 살아남다: 히브리어 │ 문화의 소생
6장. 고향
내 집은 어디인가? │ 지배 언어와 공존하기 │ 온몸으로 마주하는 언어 │ 언어에 숨을 불어넣기: 블랙풋어 │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미치프어 │ 나와 당신의 이야기
감사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책 속으로
“여러 문화에 다리를 걸치고 사는 삶의 가장 큰 유산은 자아의 균열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호프만이 지적한 대로 현대적 삶을 특징짓는 상태가 되었다. 오히려 이민자들과 소수민족들이 폭넓게 공유하는, 균열이 자신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중성이 단지 삶의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바로 그 특질이라는 의식이 가장 큰 유산이다.”
--- p.164
“그런데 이중언어가 사람들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비알리스토크와 동료들은 기억력 문제로 진료를 받고 알츠하이머라 진단받은 환자들의 의료 기록을 조사하면서 상당히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평생 두 가지 언어를 사용했던 환자들은 이 병을 진단받았을 때의 평균 연령이 한 가지 말만 쓴 사람들의 연령보다 네 살 더 많았다.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알츠하이머 연구자들이 약물적 치료 방법을 계속 찾고 있지만, 어쩌면 임상 의사들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가능한 한 정신적 활동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두 개 이상의 말을 할 줄 아는 게 정말 알츠하이머를 4년 지연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일 것이다.”
--- p.192
“두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서로 다른 세계의 번역자들, 중간자들, 두 가지 언어로 기억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 충성심이 하나 이상의 집단에 고루 퍼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정말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다양성에 따르는 최악의 위험은 피하면서 다양성이 제공하는 풍성한 것들을 얼마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 p.209쪽
“언어들은 융합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탱고를 추듯 함께 어우러진다.”
--- p.221
“비슷한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보고되었다. 네덜란드 연구에서 한국어에 대한 기억이 없는 한국계 입양인들이 한국어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네덜란드 출생 참가자들보다 한국어 소리 발음을 더 빨리 배웠다. 놀랍게도 이 학습의 유리함은 한국어를 말하기 훨씬 전인 생후 6개월 때 네덜란드로 입양된 사람들에게서도 보였다. 이것은 유아기에 단순히 한국어를 듣기만 해도 훨씬 뒤에 이들이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소리를 조직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237
“내 언어 여행 이야기는 많은 이민자들의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완전히 모국어에만 몰입되어 있다가 점점 접촉이 줄어들었다. 나의 체코어는 제대로 무성한 성체가 된 적 없이 성장을 저지당한 채로 남아 있다. 그래도 내 안에 존재한다. 제대로 양육하여 소생시킨다면, 나는 이 언어의 진짜 외부인과 쉽게 구별될 수 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모국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혀끝에서 춤추던 바로 그 말이다.”
--- p.252
“그리고 언어에 대한 노출이 갑자기 끊어지면 그것을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도 추락한다. 연구자들은 어린 시절 이후에 자기 언어를 계속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언어를 잃을 위험이 가장 크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그 상실은 아이가 한 언어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옮겨진 후 충격적일 만큼 빠르게 시작된다. 여섯 살짜리 한국 이민자 아이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아이는 한국을 떠난 지 한 달 안에 한국어 어휘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에 도착한지 두 달이 지난 뒤에는 이전에 알았던 단어의 절반만을 말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세 살 반 된 히브리 아이가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지 고작 몇 개월 만에 히브리어를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잃었다.”
--- p.257
“자치 정부를 위한 그들의 꿈은 좌절되었고 메티스족은 마침내 캐나다 초원 지방과 노스다코타주로 흩어졌다. 미치프어는 그 격동의 역사 동안 메티스들이 구축한 사회적 연대의 생산물이며, 모태가 되는 문화들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만든 고아의 언어다. 영어가 세력을 키우면서 고작 2백 살밖에 되지 않은 이 특이한 언어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끝내 절멸한다면, 이 특별한 언어는 북아메리카 언어의 기라성 중에서 잠깐 타오르던 불꽃이 될 것이다.”
--- p.312
🖋 출판사 서평
모국어를 잃어버렸던 언어심리학자,
언어의 탄생과 소멸을 기록하다
우리는 날 때부터 모국어를 지정받는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영어가 모국어가 되는 식으로. 이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도 모르게 모국어에 유창해진다. 어른이 되어서 제2외국어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몰랐던 언어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얄궂게도 유창성은 투자한 시간과 꼭 비례하는 것도 아니라서, 원어민처럼 그 말로 생각하고 꿈을 꾸기까지는 얼마간의 타고난 감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습득하고 완전한 ‘이중언어 사용자’가 된 이후에는 어떨까. 모국어와 제2언어가 자아를 사이좋게 나눠 가질까? 언어와 자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만약 이중언어를 사용한다면 자아도 두 개로 나뉘게 될까? 혹시, 우리의 머릿속에서 두 언어가 주인공 자리를 두고 다투는 건 아닐까? 그러다 더 힘이 센 언어가 더 약한 언어를 밀어내고, 그것도 아주 영영 밀어내고, 한 가지 언어로만 말하게 될 수도 있을까?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을 쓴 저자 줄리 세디비는 언어심리학자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 몬트리올로 가족 모두가 이주했다. 체코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인간이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유년기에 이렇듯 다채로운 언어를 온몸으로 통과해낸 저자는 운명처럼 언어심리학에 이끌렸다. 그중에서도 체코어는 그녀의 모국어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캐나다에 정착한 이후 ‘주류 언어’인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비주류 언어’이자 ‘이민자의 언어’인 체코어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고,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체코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그녀의 아버지가 고향 땅에서 숨을 거둔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모국어로―비록 몇 가지 단어를 서툰 발음으로 드문드문 말하는 수준이었지만―대화를 나누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버지. 그제야 비로소 저자는 모국과 자신을 이어주던 닻이 진정 풀리고 말았음을 체감한다. “아버지를 애도하면서 동시에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느낄 체코어의 침묵을 슬퍼했다. 내게는 오직 체코어로만 말할 수 있는 부분, 영어로는 형제자매나 어머니에게도 표현하기 힘든 어떤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는 허공에 뜬 기분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뿐 아니라 나를 형성한 문화 전체에서 닻이 풀린 느낌이었다.”(12)
이 책은 그리하여 모국어 상실의 메커니즘과 언어 간의 권력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수없이 스러져간 소수민족들의 ‘약한 언어’ 위로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애도 일기에 다름 아니다.
“언어 상실의 중심에는 잔인한 역설이 있다. 한 언어의 약화는 종종 더 나은 삶─풍요, 안전, 주류 문화로의 진출─을 향한 꿈으로 인해 야기된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수천 개의 언어 중 단지 몇 가지만이 사회에서 대접받는 위치와 특권을 누린다. 세력이 약한 언어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정신에서 이들 우세한 언어에 자리를 양보하는데, 실제로는 더 나은 삶과 자신의 정체성을 맞바꾸는 것과 다름없다.”(13)
그리고 “우세한 언어”는 대개 영어다. 많은 사람들이 모국어와 영어를 둘 다 쓰는 이중언어 사용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는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모국어는 더욱 쉽고 편리하게 지워진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미묘하게 분리된다.
“줄리 세디비는 언어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기록하는 필경사이다.
그녀가 꿈꾸는 다성 사회는 카오스다.
가장 아름다운 카오스.”
-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저자
사라지는 모국어의 대부분은 “세력이 약한 언어”이다. 에야크어, 쇼쇼니어, 블랙풋어, 미치프어…….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언어가 있고, 우리는 아마 지구상 모든 언어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미처 다 들어보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 각각의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고유의 정서와 역사, 문화, 통념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트와치어는 “마른 버드나무 호수” “검은 흙 연못” “진들딸기 호수 끝 썰매길 종착지” “작은 물고기들의 호수”를 뜻하는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트와치어 사용자들은 대부분 수로 위로 배를 타고 다니며 생활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지리와 풍광을 묘사하는 것이 그들 삶에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이이스카어 사용자들은 예로부터 그 지역의 계절 리듬에 맞춰 동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기, 사냥에 적합한 시기 등을 구분지어 왔다. 그래서 “검독수리 달” “거위 달” “사슴 발정기 달” 같은 절기가 존재한다. 흔히 말하길, 한국어 사용자가 자주 쓰는 단어인 “정(情)” “한(恨)” 등의 단어는 외국어로 옮기기 힘들다. 그 단어들 안에 어쩌면 한국인이라면 모두 어렴풋하게나마 공유하는 고유의 정서가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각 언어가 가지는 무구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그 자체로 아름다운지 노래한다. 그리고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사회를 다성음악에 비유하며, “다성(多聲) 사회”(173)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성 사회를 부정적으로, 심지어는 위협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날 저자는 캘거리 중앙도서관에서 일을 하던 중, 도서관 직원이 어떤 남자에게 가서 음악 소리를 조금 줄여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남자는 이렇게 대꾸한다. “왜 내가 소리를 줄여야 하죠? 나는 여기 이 사람들이 온갖 나라 말로 지껄여대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음악을 트는 것뿐이에요. 저 사람들한테 가서 그들의 언어를 줄여달라고 하지 그래요?”(169) 보수적인 이민 규제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스페인어를 불편해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느낀다. 한국인이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수 언어를 낯설어하고 그 불편한 감정을 사용자에게까지 전이시키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하지만 저자가 인용하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불신은 이웃과 거의 또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팽배했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런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다.”(207) 단순히 다른 언어 사용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양성에 대한 불신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유 없는 불신을 사그라트리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여러 모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우리가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가진 가족, 커뮤니티, 언어와의 끈을 지지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차단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언어를 단지 유용한 경제적 자산이 아닌, 자기가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대체 불가능한 측면으로 구축할 수 있을까? 두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서로 다른 세계의 번역자들, 중간자들, 두 가지 언어로 기억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 충성심이 하나 이상의 집단에 고루 퍼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정말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다양성에 따르는 최악의 위험은 피하면서 다양성이 제공하는 풍성한 것들을 얼마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209)
언어가 기억되고 사라지는 방식을 추적하는
언어심리학자의 끈질긴 시선,
당신의 모국어는 안녕한가요?
아버지를 잃고 몇 년 후, 저자는 체코를 찾는다. 오랜 세월 고향 땅에서 터전을 짓고 대를 이어 온 친지를 만나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단기 여행자’로서가 아닌 당사자로서 바라본다. 도착한 직후 그녀의 체코어는 “누더기”(227) 같았지만, 한 달이 흐르자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체코어 단어가 불쑥불쑥 일상생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잠깐 동안은 원어민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체코어를 다시 배우는 것이 내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언어적 초능력의 발견처럼 느껴졌다. 생각에 형태를 입히기 위해 입을 열었고, 자주 적절한 문장이 흘러나와 스스로도 놀랐다. 마치 생각만으로 방 저쪽에 있는 책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 표현력이 새로 생기는 근육처럼 잔물결을 일으켰다. 내가 잊었다고 믿었던 언어의 많은 부분이 사실 잊힌 게 아니었고, 많은 부분이 단지 다른 언어들의 먼지와 파편 밑에 오래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230)
이 경험에 고무된 저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어릴 적의 모국어를 성인이 되어 다시 학습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어떤 언어를 ‘잊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보다 깊고 심오해서, 본능적으로 체화한 언어를 쉽게 포기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기억 저편의 무의식이 언어 능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치 시기 독일에 살던 유대인의 경우, 안전한 나라로 도피하기 전에 독일에서 더 오래 산 사람들이 더 짧게 산 사람들보다 독일어를 더 많이 잃어버렸다. 독일에 오래 머물렀을수록 그만큼 더 오래 독일어를 사용했을 테니 이는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연구자에 따르면, 이들은 그만큼 나치의 탄압과 폭력 행위를 더 직접적으로 경험했으며, 이 상황에 더 오래 노출된 사람의 무의식에는 독일어에 대한 부정적 감각이 덧입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자신의 모국어였던 독일어를 자연스레 소멸시키고, 제2언어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언어심리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답한다. 왜 성인은 어린 아이보다 외국어 학습에 더딘가? 그래서, 이중언어에도 장점이 있는가? 모국어를 재학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가? 다성 사회를 일구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가져오는 사례들은 무척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언뜻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언어심리의 기제를 에세이스트의 목소리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풀어낸다는 것이다. 독자는 모국어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결국 그것을 되찾고 평온에 이르는 저자의 여정을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그래서 책은 크게 죽음-꿈-이중성-갈등-회복-고향으로 구성되며, 각 부에서 그와 관련한 저자의 이야기 및 세계 각지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기척도 없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모국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단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탁월한 회고록이자 문화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논평. 언어를 학습하고 상실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정수.” ― 『이코노미스트』
“새로운 언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모국어가 위축되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파괴적인 경험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 세디비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왜 그토록 소중한지, 그리고 우리 자아에 어떠한 핵심적 역할을 하는지 우아하게 알려준다.” ― 『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