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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크와 기후 위기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항상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비가 아주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심각한 경기 침체와 불황이 찾아올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비단 경제학자만이 아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고 9일 뒤, 부시 대통령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국민에게 “미국 경제에 계속 참여하고 경제를 신뢰해주길 바란다”고 연설하며 ‘소비하라’고 역설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최소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과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소비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이 상황을 두고 경제학자들은 소비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경제에 치명적이라는 결론을 지었고 부시의 연설 이후, 소비가 줄어들 때마다 세계 지도자들이 ‘나가서 소비하라’고 부추기는 일은 당연시되었다. “마치 소비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 말이다.”(본문 21쪽)
인간이 모두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별개의 두 가지 경로가 있는 듯 보였다. 하나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적게 원하는 것이었다. _14쪽
온실가스 배출량이 실제로 줄어든 것은 심각한 경기 침체가 발생했을 때, 즉 세계가 쇼핑을 멈췄을 때뿐이었다. 2020년 초에 코로나19로 봉쇄령이 내려져 소비문화의 문이 닫히자 대부분의 국가에서 탄소 오염이 5분의 1에서 4분의 1가량 줄었고, 탄소 배출 절감 목표에서 몇 년씩 뒤처졌던 국가들이 갑자기 일정보다 몇 년 앞서게 되었다. _19쪽
우리는 쇼핑을 멈춰야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이 소비의 딜레마는 간단히 말해 지구에서 인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_23쪽
일반적인 미국인의 생태발자국은 8글로벌헥타르다. 8글로벌헥타르는 전 세계 개인에게 주어지는 1.6글로벌헥타르의 다섯 배이므로, 미국이라는 행성을 지탱하려면 지구가 다섯 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_50쪽
우리 경제의 동력은 소비지만, 소비는 탄소 배출의 동력이다. 이 관계가 너무나도 견고해서, 기후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둘 중 하나의 성장을 다른 하나의 성장 지표로 삼았다. _84쪽
조명은 소비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탄소 배출량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효율과 녹색 기술이 발달하는 동안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지구에서 살고 있다. _95쪽
성장의 밀물과 썰물이 대부분의 배를 띄워올리거나 내려앉힌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조직되느냐에 따라 어떤 배는 특히 더 높이 올라가고 어떤 배는 특히 더 낮게 내려앉을 수 있었다. _113쪽
베블런은 부유해야만 은수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모두가 그걸 안다는 사실에서 주로 은수저의 가치가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_132쪽
아웃도어 시장의 상당 부분은 이른바 ‘디컨슈머’, 즉 자신 또는 세상의 소비가 줄어들기를 적극적
으로 바라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_149쪽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소비를 줄인다는 사실을 알 때 그 행동에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 _151쪽
리바이스가 지향하는 사업 모델은 소비자가 상품 구매를 줄이고, 오늘날 시장에 나와 있는 일반적 상품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주로 구매하는 것, 즉 더 질 좋은 물건을 더 적게 구매하는 경제다. _183쪽
사람들은 자신이 자연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 하나는, 인간 세계가 뒤로 물러나면 자연 세계가 앞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_295쪽
현재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 및 원재료와 에너지, 제조, 마케팅, 운송 등에 들어가는 생산비를 반영한다. 그러나 오염과 토양침식, 탄소 배출, 서식지 감소에서부터,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기후변화시대에 들불과 홍수, 폭풍이 초래하는 엄청난 파멸, 매해 쏟아지는 20억 톤의 쓰레기, 백만 년을 살아온 생물종을 멸종시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도덕적 외상에 이르기까지, 생산과 소비가 일으키는 결과는 대개 가격에서 제외된다. _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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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성장의 폭주 끝에 마침내 우리는 소비를 멈추었고
전 세계가 답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는 ‘디컨슈머’들이 온다!
『뉴요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저널리스트 J. B. 매키넌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날 소비의 25퍼센트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각종 연구와 문헌, 인터뷰 등을 통해 총합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했다. 수렵·채집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나미비아의 작은 마을부터 정확하게 지속 가능한 비율로 소비하는 에콰도르의 공동체까지, 매키넌은 지구 곳곳에서 소비를 멈추었을 때 마주하게 될 세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분석의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로부터 시작되었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소비의 20퍼센트가 감소했고, 말 그대로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 소비지출이 급감하자, 쇼핑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문명의 붕괴를 막을 유일한 보루라는 생각은 우리 귀에 지극히 평범한 말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소비의 25퍼센트가 감소한 시기에 대한 저자의 가정과 이에 기반한 사고실험은 관찰 가능한 전제가 되었다.
과연 소비의 종말이 불러올 미래는 성장의 종말, 즉 경제와 사회의 붕괴일까? 매키넌은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 ‘디컨슈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소비문화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디컨슈머는 자신 또는 세상의 소비가 줄어들기를 적극적으로 바라는 사람들이며, ‘영리적 시간’보다 ‘비영리적 시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디컨슈머는 소비자로서 ‘사지 않을 자유 혹은 권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을 공략하려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2011년 파타고니아는 미국 최대의 소비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뉴욕 타임스에 이런 광고를 실었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또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지 마세요. 무엇이든 신중히 고민하고 구매하세요”라고 덧붙이며, 재킷 한 벌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자원과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을 표시하기도 했다. ‘디컨슈머’를 겨냥한 ‘디마케팅 전략의 시작’이자 ‘새로운 소비문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미 디컨슈머들은 더 질 좋은 물건을 더 적게 구매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파타고니아와 리바이스 등의 기업들은 디컨슈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경영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심지어 리바이스는 의류 산업이 “불필요한 소비 위에 세워져 있다”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기적 목표 대신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딥타임(deep-time) 사업관’을 실천한 일본의 제과 회사 ‘토라야’는 덕분에 약 420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매키넌은 이러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소비가 줄어든 세상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디컨슈머 시장이 경제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예견한다. ‘영원히 성장하는 소비경제와 깨끗하고 건강한 삶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디컨슈머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리바이스가 지향하는 사업 모델은 소비자가 상품 구매를 줄이고, 오늘날 시장에 나와 있는 일반적 상품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주로 구매하는 것, 즉 더 질 좋은 물건을 더 적게 구매하는 경제다. 이 모델은 브랜드 서사로서도 리바이스에 잘 부합하는데, 리바이스가 내세우는 특장점이 오래 입을 수 있는 내구성 좋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세이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소비를 줄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여전히 성장할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기존 고객이 리바이스의 의류를 더 적게 구매해 더 오랫동안 입는 동시에, 회사는 패스트패션에서 떨어져 나와 반소비적 사고로 향하고 있는 새 고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_183쪽
“사느냐(buy), 사느냐(live), 이것이 문제로다”
사는 것을 멈추는 순간, 진짜 삶이 시작된다
경제성장이 성공의 주요 척도인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소비를 하던 사람’에서 ‘소비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의 여러 정체성 중 하나에 불과했던 소비가 오늘날 유일한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매키넌은 디컨슈머 사회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정체성들을 되찾을 거라고 말한다.
디컨슈머들은 소비 집착에서 벗어나 간소함을 추구하고 내재적 가치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으로 기존 소비문화의 빈자리를 채운다. 매키넌은 다운시프팅 붐이 퍼졌던 1980년대 말 미국 사회를 재조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참여 문화를 통해 지역 전체의 소비문화를 변화시킨 런던 교외의 바킹 대거넘 자치구까지,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우선순위에 따라 구성하는 삶의 모습을 제시함과 동시에 디컨슈머가 수십 년, 심지어 수천 년 뒤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살펴본다.
세상이 소비를 멈추는 날, 디컨슈머들이 만난 것은 녹색 경제, 새로운 시장, 변화된 삶이었다.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은 물질주의보다 심리적 욕구를 더욱 잘 충족시키기 때문에, 보통 간소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와 텔레비전, 음반 소비를 줄이면서까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간을 늘린다. 소비를 멈춘 세상은 정말로 더 차분한 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빠른 속도의 삶이 필수처럼 느껴지듯이, 느린 속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간소한 삶이 자기 목소리를 더욱 명확하게 듣는 것이라면, 실제로 풍성한 고요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루어스의 말마따나, “일단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연못에서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_314쪽
이 책 『디컨슈머』는 만약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훨씬 더 적게 소비한다면 경제, 소비문화, 환경문제를 비롯해 우리 자신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탐구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매키넌은 경제학, 인류학, 기후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멈출 수 있는지, 그리고 소비중심주의를 탈피한 우리 삶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다. 즉 이 책은 ‘소비와 환경 사이에서 길 잃은 사피엔스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고도 할 수 있다.
비단 위의 사례뿐일까. 21세기에 들어서며 우리 인류가 깨우친 핵심 교훈은 ‘사고 사고 또 사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구매하는 의류를 전부 합치면 매년 5000만 톤에 달하는 옷 무더기가 된다. 이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면 웬만한 대도시는 전부 산산조각나고 전 세계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본문 16쪽) 나날이 쏟아지는 광고와 할인, 유행,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 오락, 최신 전자기기와 이 모든 것에 대한 집착들이 소비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소비가 곧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6eZPL9IU3Y
현재 미국인은 매년 디지털 기기에 2500억 달러, 개인 미용 및 위생용품에 1400억 달러 이상을 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쇼핑에 중독된 망나니’라는 미국의 이미지는 이제 다른 나라들에 물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카타르와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같은 석유 부국이 미국의 1인당 소비량을 넘어섰으며, 유럽연합의 전체 쇼핑객은 거의 미국 쇼핑객만큼 돈을 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가난한 시민들조차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싶은 것’을 구매한다. 전 세계 45억 명의 저소득층은 매년 5조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거대한 소비시장이다. _17쪽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소비가 ‘가속화’될수록 ‘기후 재앙 시계’는 ‘초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유엔의 국제자원전문가위원회에 따르면, 새 천 년이 시작될 무렵 소비는 인구수를 제치고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환경과학자들은 우리가 너무 많이 소비한다고 말한다. 재활용 기술과 에너지 효율 개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을 인상적일 만큼 높였지만, 그것만으로는 탄소 배출량을 단 한 해도 줄이지 못했다. 그 어떤 기술과 조치도 소비 욕구가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사느냐(buy), 사느냐(live), 이것이 문제로다. 지금, 우리는 소비와 환경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