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테릭 방어 총사령관 레이켈. 과거 버몬트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전공을 세운 그의 이름은 이제 거의 주문에 가깝다시피 되어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문마저도 더이상 병사들을 통솔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조차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었으니까.
적은 비공정 30여기. 그러나, 저 위에서 유유히 자신들을 바라보며 군림하고있는 로드 오브 리베리아의 가공할만한 화력이 터져나온 순간, 그들은 이미 전투할 의욕을 잃어버렸다.
수백문의 마력포에서 한꺼번에 발사된 가공할만한 위력. 그러나 그것은 공격지역이 넓은 탓에 마법사들의 방어결계로 여차저차 해서 그렇게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돌연 중앙에 배치된 거대한 포신이 성벽을 겨냥하고, 푸른 에너지가 모여 일순간 발사됐을때, 그들은 신의 이름이라도 부르짖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한방이 마력포 수십문과 비등할만한 위력을 지닌 버스터 포(Buster Cannon)가 발사되자, 그것에 직격한 마법사들의 방어결계는 순간 일그러지며 그대로 밀려버리며 성벽에 직격했다.
버스터 포에 직격된 북동쪽 성벽은 그대로 박살나버리고 말았고, 로드 오브 리베리아는 그 여세를 몰아 마력포를 풀가동해 다시 한번 데미안테릭에 쏘았다.
이미 마법사들은 방어 결계의 역류로 인해 정신상태가 엉망이 되어버려서 마력포를 막아줄 형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아까도 간신히 막아냈는데, 아마도 깨어있었다 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엔 그 수백문의 마력포는 데미안테릭에 그대로 직격했고, 로카네스프 내에서도 그 견고함을 자랑했던 데미안테릭의 은백의 성벽은 산산히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뒤 곧바로 흰 깃발이 흔들어졌음은 말할필요도 없었다.
"그러게말야. 마력포 몇번하고 버스터 포 한방에 저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리다니. 역시 지그문트 박사라니까."
그러자 백태자는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아아, 지그문트 박사 하니까. 내가 또 하나의 주문을 추가시켜뒀지. 그영감, 지금쯤은 땀 뻘뻘 흘리며 날 원망하며 일하고 있을걸?"
레인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뭔데?" 물론, 다른 일행들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백태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지크만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위스키를 잘도 넙죽넙죽 마시고 있었다. 아마도, 이 주위에 있어서 쾌활히 지내야 했던 어떤 한 인물이 사라진 탓이리라(물론, 마시자마자 토해 일행은 그의 기분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백태자는 말했다.
"응. 라이트 블링거(Light Bringer)라고 이름을 지어둔 또 하나의 리베리아급 비공정이야. 1급 마장기 샤인 아론다이트(Shine Arondite)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만들기로 한 비공정이지."
레인은 넋나간듯한 얼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헤에.. 지금 이 비공정 하나만으로도 데미안테릭같은 요새도시 하나쯤은 간단히 점령하는데.. 하나가 더 추가된다면.. 굉장하겠는데.."
"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건 적군에 비공정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지금의 실정이기에 이렇게 쉬운거지, 앞으로는 이렇게까지는 쉽지 않을걸?"
나이트블루가 말했다.
"하긴, 지금 우리의 리베리아급 비공정의 위력을 본 적들이 비공정을 앞다투어 생산하지 않을거라곤 말할 수 없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카엘?"
일행의 눈이 모두들 카엘에게 향했다. 혼자 단검가지고 장난치고 있던 카엘은 순간 긴장이 풀리며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움찔하는게 보였다(그래서 단검에 찔렸다). 카엘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묵묵히 말했다.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
일행은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카엘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비공정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신, 마장기는 그때의 2급 마장기 몇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추가생산이 따르지 않고 있다. 즉, 적은 비공정에서의 열세를 마장기로써 극복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제공권은 우리가 잡도록 놔두나, 지상전은 그쪽이 이겨나간다면 오히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라."
백태자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반박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비공정은 제공권 장악뿐만 아니라 지상전투에서도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을 봤을때, 마장기라고 해도 하늘에 올라갈 수 없는 이상 비공정을 따를 수 없을겁니다."
"마, 맞아. 방금도 봤잖아! 마력포 몇방에 데미안테릭이 산산조각나는걸!"
어느새 이야기에 도취된 지크도 허겁지겁 끼어들었지만,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장기는 하늘을 날 수 있다."
순간 백태자는 탁자를 탁 치며 일어났다. "뭐라구요!!"
카엘은 싸늘하게 백태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방금 말한 그대로다. 몇년 전, 우연히 엘 제나로(Al Zenaro)의 비행형 파츠가 비밀리에 연구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아마 지금쯤은 적들도 몇대쯤은 보유하고 있을거다. 실제로, 마장기의 비행형 파츠라면 그 위력은 굉장할테니까."
"하지만.. 마장기가 비공정이 아닌 이상, 적재할수 있는 에딜륨도 훨씬 적을테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장기는 비공정과 구조 자체부터가 틀리지 않습니까?"
카엘은 어느새 가져온 지크의 위스키와 맥주, 레모네이드, 기타 등등의 음료수를 섞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있었다. 한모금 음미하고 나서 카엘은 계속 말을 이었다(숨기려고 애를 쓰는 표정이었지만, 마신게 후회되는 표정은 역력히 드러났다).
"물론이지. 그래서 비상 가능 높이나 비행시간 등도 비공정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그러나 지상전에서도 거의 무적을 자랑하는 그 강철의 거신병기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포를 쏘아대고, 또 공성전이라면 날아서 성 안으로 진입하여 성벽의 의미를 무색케만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제아무리 비공정이라도 막기란 힘들지. 실제로, 이 로드 오브 리베리아 이외에는 마장기를 제대로 파괴할 수 있는 비공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실정이니까 말이다."
"그.. 그런.."
레인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잠시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지만, 이 정적상태는 카엘의 한마디로 깨져버렸다.
"자아, 어쨌든 지금은 별로 신경쓰지 말자구. 이제 데미안테릭은 점령된것 같고, 그럼 지금 웨이크필드(Wakefilde)에서 격전중인 버몬트군과 퉁 파오군으로 향한 지상군과 엇갈리지 않게 빨리 이곳 일을 마무리짓고 따라가지. 어때."
"좋아요!"
"뭐라구요?"
대공군의 수장. 버몬트 대공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대공군의 참모격을 맡고 있는 어윈 록슬리 경은 그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데미안테릭(Demianteric)의 함락소식입니다."
"그럴 리가.. 최근까지만 해도 내전세력들이 움직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혹시 잘못 들은것 아닙니까?"
대공군 제 1 성기사단 단장 죠엘 솔즈베리가 답했다.
"아닙니다. 소문에 의하면, 적들은 비공정을 앞세워 공격해왔던 것 같습니다. 리베리아급 비공정 1대와 중소형 비공정 30여기로 추정되는 병력입니다."
"리베리아급 비공정? 리베리아급 비공정이 정말로 있었단말이오! 그래 공격해온 자는 누구랍니까?"
"현 로카네스프 왕국 정식황위계승자, 백태자(白太子) 리카르트 폰 아르키아누스입니다."
버몬트 대공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태자? 백태자? 그 애송이가 말입니까! 최근까지 변변한 병력도 없이 디바이네아에 의탁해있던 그 멍청이가 우릴 노린단 말입니까!!"
"대공 전하!"
순간, 밖에서 한 병사가 뛰어왔고, 버몬트는 간신히 화를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뭐냐?"
"바.. 밖을 보십시오!!"
또 뭐지, 라고 생각하며 버몬트는 짜증을 내며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도 밖에 진을 치고 서 있는 수천, 수만명의 병사들과 똑같이 넋을 잃고 비공정으로 가려지다시피 한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이여.."
10살때 에델바이스의 대신녀에게 강건한 의지를 지녔다는 평을 받은 그도,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